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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46화 (46/251)

46화― 몽환대법(夢幻大法)

“저는 천통자를 믿고 싶습니다. 약선께서도 저분을 믿으니 데려오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까?”

이윤후는 떨리는 약선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어차피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천통자의 방법이라도 써 봐야 했다.

“그래. 너 말 한번 잘하는구나. 약선 어르신도 저를 믿어 보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검성을 깨워 보겠습니다.”

천통자는 자신의 얇은 가슴을 탁지며 말했고 그 모습에 약선도 미소를 보였다.

“그래. 나도 너를 믿는다. 너에게 맡기마.”

약선의 허락이 떨어지자 천통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몽환대법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이번 일이 큰 계기가 될 것이라 스스로 생각했다. 그저 기녀들 후리는 대만 써 왔던 몽환대법이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을 터였다.

몽환대법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비급서를 찾았을 때 성취감을 느끼긴 했지만 배우기 시작하자 몽환대법이 자기 생각보다 훨씬 난해한 술법이라는 것을 알았다.

몽환대법을 조금만 응용했다면 사천교의 교주는 잡술의 교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전능한 인물이 되었으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만큼 몽환대법은 응용에 따라 굉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술법이었다.

“그런데 몽환대법을 쓰려면 준비물이 좀 필요합니다.”

“그게 무엇인가?”

“약선께서는 아실 듯한데…… 환향초(幻香草)를 혹시 가지고 계십니까?”

“향만 맡아도 환각을 보이게 하는 독초 말인가?”

“네. 약초보다는 독초에 가깝지요. 하지만 몽환대법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물건입니다.”

천통자는 몽환대법을 사용할 때 환향초를 이용하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동안 몽환대법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았기에 환향초는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기루의 기녀들을 꼬시는 데는 딱히 환향초를 이용할 필요까지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검성처럼 특별한 경우라면, 처음부터 최상의 조건으로 몽환대법을 시전하는 것이 옳았다.

“……원래는 제가 조금 가지고 다녔는데, 화산에 잡혀가면서 다 잃어버렸습니다.”

약선은 환향초를 쓴다는 말에 다시 또 탐탁지 않았으나, 하기로 한 이상 천통자의 일에 협조해야 했다.

“환향초라면 나도 가지고 있으니 주겠네. 가루를 내어야 하는가?”

“네. 가루로 만들어 태워야 합니다. 향로가 있으니 저기 태우면 되겠군요.”

천통자는 약선이 약초를 태우고 있는 향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바로 준비해 주지. 자네는 준비하게.”

약선은 방을 나가 옆에 있는 작은 약 창고로 향했고 이윤후는 누워 있는 검성의 손을 한 번 잡고는 몸을 일으켰다.

“걱정되는가?”

“네. 살아 계신다는 말에 안도했지만, 이제는 빨리 깨어나셨으면 하는 욕심이 생기는군요.”

천통자는 이윤후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분명 일어날 것이다. 선인의 반열에 드신 분이니 의식 또한 강할 터. 깨우기만 하면 되느니라.”

“그렇습니까? 도사님의 말처럼 되었으면 좋겠군요.”

“도사라니…… 난 도사가 아니야.”

“그럼, 무엇입니까?”

“난 돌팔이지. 사실 누가 나보고 돌팔이 사기꾼이라고 하면 욕하고 싸웠지만, 날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이 그것인 거 같군. 하하.”

천통자는 말을 하며 크게 웃었고 그런 그의 유쾌함에 이윤후도 미소를 지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약선은 가루를 낸 환향초를 종이에 담아 천통자에게 건네었다.

“윤후야, 우리는 나가 있도록 하자.”

“네? 지켜보면 안 됩니까?”

약선이 이윤후에게 나갈 것을 권하자 그는 물었다.

“환향초는 향만 맡아도 환각을 보이게 하는 독초란다. 네가 이 방에 있으면 위험하다. 넌 괜찮겠느냐?”

약선은 이윤후에게 말하며 마지막에 천통자를 보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몽환대법을 제대로 펼치려면 저도 환향초를 맡아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두 사람은 나가 계십시오.”

천통자의 말에 약선과 이윤후는 방을 나섰다. 궁금하였지만 더는 머물 수가 없었다.

* * *

그들이 나가자 천통자는 작게나마 열려 있던 창문들마저 다 닫았고, 향로에 약선이 건네준 환향초의 가루를 털어 놓고는 불을 붙였다.

천통자는 의자를 가져와 검성의 침상 앞에 앉았고 두 손을 검성의 이마와 눈 쪽에 올리고는 두 눈을 감았다. 향로에서 타들어 가는 환향초의 연무가 방 안을 휘감았다.

“당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볼 차례군요.”

천통자는 나직하게 읊조리며 살짝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고, 알 수 없는 주술과도 같은 말을 뱉어 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말소리가 잦아들더니 이내 멈추었다.

* * *

“여긴 어디지?”

천통자는 검성의 몽환대법을 사용하여 검성의 의식 속에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사실상 누군가의 의식에 침입한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도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도착한 곳은 산중의 모옥의 앞이었는데 아마도 검성의 거처로 짐작되었다.

그때였다.

“진하, 당신은 왜 이렇게 말을 듣지 않는 건가요?”

모옥 앞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자, 천통자는 그곳으로 향했다.

“소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당신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그냥 일은 내일 해도 되지 않겠소?”

사내는 자신에게 화를 내는 여인을 향해 사정했고 여인은 그런 사내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은 여전하군요. 나도 당신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고 같이 있고 싶긴 하지만 신세를 졌던 분들에게 인사는 드려야죠.”

미소가 정말 아름다운 여인은 자신의 앞에서 아이처럼 칭얼대는 사내를 어르듯이 말했다.

‘소려? 검성의 정인(情人)이었던 임소려라는 여인인가, 저 사람이?’

워낙 검성의 순애보는 유명했던 이야기였기에 오래전 이야기였어도 천통자는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 것이 맞는다면 분명…… 임소려는 그 사람에 의해 죽었을 텐데…….’

지켜보던 천통자는 잠깐 생각에 빠진 사이, 젊은 나진하는 임소려의 얼굴에 손을 가져가며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당신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아시오?”

나진하는 작은 임소려를 품에 안았다. 그 당시 그들은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지만 떨어져 지내며 생활하고 있었다. 품 안에 안겨 있던 임소려는 이내 나진하를 밀어내었다.

“그래도 우리가 같이 살 수 있게 배려해 주신 분인데 인사는 드려야죠.”

“그분도 이해해 줄 거요. 내일 같이 인사드리러 가는 게 어떻소?”

나진하는 임소려의 곁을 떠나기 싫은 강아지처럼 계속 칭얼대고 있었고 그런 그를 임소려는 떼어 내고 있었다.

“신의(神醫)께서 당신을 이렇게 부르는 일도 흔한 게 아니잖아요. 급한 일일지 모르니 가 보도록 해요.”

“그건 그렇지만…….”

나진하는 임소려의 말에 어깨가 축 처졌다. 오랜만에 만난 임소려와 떨어지기 싫은 검성의 마음이 지켜보던 천통자에게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검성이 대단한 일편단심이었다고는 이야기 들었지만 여인에게 꼼짝도 못 하는군…….’

천통자는 지켜보면서 이상한 점을 느끼고 있었다.

‘검성은 왜 이 기억에 머무는 거지? 행복했던 기억이라?’

천통자가 잠깐 생각에 빠진 채 지켜보는 사이, 임소려의 설득에 나진하가 모옥을 떠났다.

나진하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모옥 안으로 들어오더니 집 안에서 소란이 일었다.

쾅! 하는 소리가 울리길 몇 번. 이내 주변은 정적에 싸였다.

잠시 후, 다시 나온 그자의 도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 * *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천통자는 모옥으로 달려갔다. 그 안에는 임소려가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 그녀의 등에 도흔(刀痕)이 길게 남아 있었고 복부에도 찔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뒤에서 공격한 후 임소려가 돌아보자 복부를 찌른 거 같았다.

“역시, 그 사람이었어…… 정말로 소문이 사실이었다니…….”

천통자는 모옥을 빠져나갔던 인물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자신이 짐작하고 있던 그 인물이었다.

임소려의 뜬 눈을 감겨 준 천통자는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오시죠!”

천통자는 갑자기 크게 외쳤고 그의 외침이 있고 얼마 있지 않아 그의 옆에 누군가 나타났다.

백발에 백염이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천통자가 잘 아는 인물이었다.

“검성, 설마 이 죽음을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자신의 의식에 갇혀 있었던 겁니까?”

천통자의 앞에 나타난 노인은 바로 검성 나진하였다. 모옥을 떠났던 젊은 시절의 모습과 다르게, 늙고 우울한 모습이었다.

“눈치채고 있었는가?”

검성은 천통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처음에는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행복함에 젖어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가 의심했는데,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모옥 안으로 ‘그 사람’이 달려 들어간 뒤, 검성 어르신의 정인이 죽은 것에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군…… 자네는 누구기에 이곳에 들어온 것이지?”

검성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눈빛으로 천통자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에 천통자는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당신이 깨어나길 바라는 사람들이 보내서 왔습니다.”

“내가 깨어나길 바라는……? 그게 누구지? 모두 내가 죽었다고 알고 있을 텐데.”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 집히는 사람이 없는 듯 물었다.

“그쪽의 제자와 약선 어르신이시죠.”

“아, 윤후. 그 아이가 내가 살아 있음을 알았던가?”

“정확한 사정을 모르겠으나 약선과 이윤후가 절 찾아왔습니다. 당신을 깨울 방법이 없겠냐고 말이죠.”

천통자는 사정 이야기를 모두 꺼내었다.

“그렇군…… 날 찾고 있는가 보군.”

검성은 약선 서문애령의 말을 믿고 스스로 영면에 들었다.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저 자신의 집념과 만상오행공의 영향으로 사념체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윤후를 떠나보내고 의식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을 때,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인지했다.

이곳에선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모든 과거가 나오고 있었다. 자신이 몰랐던 기억들도 의식 속에서 모두 드러나고 있었다. 방금처럼, 자신이 애써 외면하며 스스로 최면을 걸었던, 자신의 정인을 죽인 범인까지 볼 수가 있었다.

“이 기억을 후회하여 계속 이곳에 머물고 계신 겁니까?”

천통자는 검성이 고의적으로 이 기억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그를 반증하듯, 검성은 대답하지 못한 채 생각에 빠져 있었다.

천통자는 이미 검성의 정인인 임소려의 죽음에 누가 관련되어 있는지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검성 역시도.

“범인을 알고도 부정하고 싶으신 겁니까?”

천통자의 물음에 검성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몇 번의 기억을 더듬고 또 반복했었다. 그러나 이날의 기억을 몇 차례나 확인해 봐도, 범인은 달라지지 않았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임소려의 죽음에는 자신이 친우라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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