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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45화 (45/251)

45화― 천통자(天通子)(2)

“머리 위에 저 물건은 혹시 이 소협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까?”

담휘경은 백아가 날고 있는 하늘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왜 저랑 관련이 있다 생각하시는지요.”

“그야…… 입구에서부터 계속 이 소협의 머리 위만 날고 있으니까요.”

이윤후는 담휘경의 말에 자신의 머리 위를 날던 백아를 보았고 백아는 잠시 머물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는 잘 모르겠군요.”

“그래요?”

담휘경은 이윤후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더는 추궁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다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담휘경이 계속 말을 걸고 있었지만 이윤후는 단답형으로 답하며 거리를 두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내려오는 모습에 이윤후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포승줄에 묶여 화산의 무인들에게 끌려오는 중년 사내의 낯이 익었다.

“천통자……?”

포승줄에 묶인 중년인은 약선이 보여 준 초상화에서 봤던 천통자였다. 이윤후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달려갔다.

“약선 어르신의 명을 받고 온 이윤후라고 합니다.”

천통자를 끌고 내려오던 화산의 무인들은 대뜸 자신들 앞에서 예를 취하는 이윤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여기 약선 어르신의 서찰입니다.”

무인들의 의문을 읽은 이윤후가 약선이 떠나기 직전에 준 서찰을 그들에게 건네었다. 그것을 확인한 화산의 무인들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안 그래도 기다리다가 저희가 마중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여기.”

중년의 화산 무인은 포승줄을 이윤후에게 건네었고, 얼떨결에 이윤후는 그 포승줄을 받아 들었다.

“이놈들! 죄 없는 날 이렇게 겁박하더니 이제는 날 팔아넘기는 것이냐?”

천통자는 고래고래 화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화산의 무인들이 이렇게 자신을 마중까지 나온 이유를 알 거 같았다.

화산 아랫마을에서 점을 봐주던 천통자는 관인들과 시비가 붙었다. 자신의 점괘를 믿지 못하겠다는 관인들에게 악담했다가 큰 싸움이 벌어진 것이었다.

무림인 입장에서 결국 관인들과 싸울 수 없었기에 천통자는 일방적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다. 화산의 무인들이 그곳에 도착하였을 때는 피 떡이 된 천통자뿐이었다.

나름 그 일대의 힘이 있었던 관인은 화산의 무인들에게 천통자를 잡아 가둬 둘 것을 명했고, 화산은 그 관인의 명을 거부하지 못했다.

치료를 하고 기력을 찾은 천통자가 날마다 행패를 부리며 지금처럼 화산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 대서 곤란한 지경이었는데, 약선이 천통자를 데려가겠다 하여 당장 협조에 나섰다.

약선을 통해 이윤후가 화산으로 천통자를 데리러 갔다는 전서구를 확인한 화산은 이윤후가 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천통자를 데리고 이윤후를 마중 나온 것이었다.

그만큼 천통자로 인해 골치가 아팠던 화산은 그를 빨리 처리하고 싶었다.

죄 없는 그를 관인의 명으로 붙잡고 있는 것도 자신들의 명예에 좋지 못했고, 그렇다고 관인의 명도 없이 그를 풀어 주기도 모호했다.

하지만 약선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인물이기에 그녀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었다.

“네놈은 무엇이냐?”

천통자는 대뜸 이윤후를 보자마자 일갈했으나 이윤후는 바로 천통자의 포승줄을 풀어 주었다.

“약선 어르신께서 부탁이 있어 당신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저랑 같이 좀 가 주시지요.”

“약선 어르신이? 화산의 말이 사실이었어?”

천통자는 이윤후의 말에 자신을 데리고 내려온 화산의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사실 화산에서도 약선이 그를 데려간다고 말해 주었으나, 천통자는 관인들이 자신을 데려가려 수를 쓴다 생각하여 난리를 부린 것이었다.

“근데 네놈…….”

천통자는 이윤후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약간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고 이내 표정을 감추었다.

“제 얼굴에 뭐가 이상합니까?”

“아니다. 그냥 조금 신경 쓰였을 뿐이야. 약선 어르신은 어디 있느냐?”

이윤후는 천통자의 시선에 조금 신경 쓰였으나 일단 자신도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기에 천통자를 데리고 다시 하산하려 했다.

“이 소협, 다음에 인연이 닿으면 다시 보기로 하죠.”

“그러지요, 담 소협.”

이 모습에 천통자는 이윤후와 담휘경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자신을 끌고 온 화산의 무사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고는 이윤후를 따라갔다.

“에잉, 이제야 속이 좀 풀리네. 화산 놈들 공명정대한 것처럼 굴더니…….”

욕을 그렇게 내뱉고도 분이 안 풀리는지 천통자는 이윤후와 같이 가는 내내 화산의 욕을 했다.

“화산에 무슨 잘못을 했기에 잡혀 계셨습니까?”

“잘못은 무슨. 내가 화산에 잘못한 게 아니라, 화산이 내게 잘못을 한 것이지.”

이윤후의 질문에 천통자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답했다.

“돼먹지 않은 관직 꽤 높은 놈이 내 점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날 돌팔이로 몰기에 시비가 붙었는데, 그놈이 밑에 애들을 시켜 날 두들겨 팼다. 나중에 화산의 무사들이 왔지만 상대가 관인이라고 날 구해 주지도 않고 되레 그놈의 말대로 날 가두었지.”

천통자의 말대로라면 그는 화산의 욕을 할 만했다.

“그래도 화산파는 명성이 높은 곳인데 관인의 말만 믿고 그쪽을 가둔 겁니까?”

천통자는 이윤후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를 빤히 보았다.

“네놈, 무림인이 맞느냐?”

“그건 왜 물으십니까?”

“화산파의 명성이 높다고 그들을 공명정대하다고 생각하다니, 무림 물을 먹은 놈이 아닌 거 같은데?”

“…….”

천통자의 말에 이윤후는 잠시 말을 잃었다.

“혹시라도 네놈 구파일방(九派一幇), 오대세가(五大世家), 무림맹(武林盟) 등 정파 나부랭이들 명성만 믿고 나대는 일은 없길 바란다. 정파란 녀석들은 오히려 사파보다 더 위험한 족속들이다. 믿어서도 안 되고…….”

“그렇습니까?”

“그렇고말고. 사파 놈들이야 정의로운 척 착한 척을 하지 않지만, 정파는 정의로운 척하며 뒤에서 남들을 속이는 족속들이다. 방금 알지 않았느냐. 죄도 없는 양민을 관인 말만 믿고 가둬 버린 사실을.”

천통자는 울분을 터뜨리듯 말을 쏟아 내었고, 이윤후도 그의 말을 전부 믿지는 않았지만 천통자의 말에 공감은 했다.

“검성의 제자라더니 아직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구나?”

“제가 검성의 제자임을 어떻게 아십니까?”

앞서 걷던 이윤후는 천통자의 말에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천통자라는 이름을 괜히 달고 있는지 아느냐? 나름 정보도 빠르고 아는 것도 많아 그걸로 먹고사는 사람이란다.”

천통자는 거드름을 피우며 이윤후를 바라보았고 이윤후는 나름 신기한 듯 천통자를 살폈다.

“그런데 네가 왜 약선 어르신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지? 약선께서는 왜 날 찾으시는 거고?”

천통자는 화산파가 자신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려는지도 의심했었는데, 약선이 정말 찾는 것이라 하니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것도 검성의 제자를 보내어 자신을 찾는다면 더욱.

“……직접 가서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보는 게 좋아? 무엇을?”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직접 가서 보면 약선께서 설명해 주실 겁니다.”

이윤후는 천통자에게 설명하기 까다로워 회피했고, 그런 이윤후의 모습에 천통자는 더욱 궁금하여 이윤후를 졸라 대기 시작했다.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천통자인지라 이윤후는 조양봉의 약선의 거처에 도착할 때까지 그에게 시달려야 했다.

* * *

천통자는 누워 있는 검성을 바라보고는 믿기지 않는 듯 약선과 이윤후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사실입니까?”

“사실이네. 누워 있는 저 사람이 검성이야. 아직 살아 있는 상태고…….”

“살아 있다는 것은 딱 봐도 알겠습니다. 근데 정말로 오십 년을 이 상태로 살아 있었단 말이 정말인가요?”

천통자는 이미 이곳에 도착하여 약선에게 설명을 들은 후였지만 눈앞에서 직접 보니 믿을 수가 없었다.

“검성이 선인(仙人)의 경지에 들었다는 것은 뭐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정도 능력이 있는 분이셨으니…… 하지만 유체이탈 하여 정말로 이 녀석을 가르친 것이 맞습니까?”

“안 그러면 오십 년을 누워 있는 사람의 무공을 윤후가 어찌 알고 있겠는가?”

“그러니까요…… 안 믿을 수도 없고…….”

천통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지 이윤후를 계속 보았다.

“솔직히 저도 선인의 경지를 든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정확하게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기록에 따르면 확실히 약선 어르신의 말씀대로 먹지 않고도 견딜 수 있고 유체이탈도 분명 가능할 겁니다. 유체이탈 하여 수만 리 떨어진 곳을 다녔다는 기록도 있으니까요…….”

“이 사람을 깨울 방법이 없겠나? 약을 통해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보았지만 방법이 없었다네. 자신이 죽었다고 판단하여 의식을 스스로 닫아 버린지라…….”

“이 방법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한 가지 시도해 보고 싶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그것이 어떤 방법인가?”

방법이 있다는 천통자의 말에 약선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혹시 들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몽환대법(夢幻大法)이라고 아십니까?”

“사천교(邪天敎)의 술법이 아닌가? 들어는 봤는데…….”

천통자의 말에 희망을 품었던 약선은 몽환대법이라는 말에 조금은 표정이 나빠졌다. 천통자가 해 보려는 술법이 사천교의 술법이기 때문이다.

사천교.

오십여 년 전 몽환술이라는 술법을 내세워 사람들을 농락하고 세력을 확장하여 무림에 큰 혼란을 주었던 사파의 세력이었다.

몽환술, 몽환대법이라고도 불렸는데 사천교의 교주는 사람의 의식에 침입하여 그 사람을 조정했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했었다.

사천교주는 여색을 심하게 탐하여 특히 아녀자들을 자기의 종으로 만들어 버렸는데, 사천교주에게 납치되거나 희롱당한 여인의 수가 수백에 달하자 결국 오절이 나서서 사천교를 응징하고 해산시켰었다.

그 당시 기억이 있었던 약선으로서는 천통자가 말하는 몽환대법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사천교주는 몽환대법으로 여자를 희롱하거나 자신의 앞길에 방해되는 인물들을 제거하는 정도에만 사용했지만, 이 술법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무궁무진한 위력을 낼 수가 있습니다.”

천통자의 말에 약선은 반신반의했다.

“몽환대법은 어떻게 배운 건가? 사천교가 망한 건 자네가 강호에 나서기 훨씬 전의 일인데.”

“제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배우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어떻게든 일을 벌이는걸요.”

천통자는 기록을 통해 사천교의 이야기를 접하고는 몽환대법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사천교가 있던 곳과 생존자 등 여러 방면으로 캐고 다녔고 결국 몽환대법의 비급서를 찾아내어 익힐 수가 있었다.

워낙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성격 탓에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고, 그 과정에서 약선에게 신세도 많이 지었다. 모두에게 까다로운 그가 약선에만은 깍듯하게 대하는 이유였다.

“사천교주가 너무 괴이한 방법으로만 써 와서 그런지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군.”

“괜찮습니다. 제가 쓰는 것인데요. 제가 설마 검성을 몽환대법으로 유혹하겠습니까? 그리고 몽환대법은 상대의 무공이 높고 정신력이 강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술법입니다. 그래서 사천교주가 여자를 후리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나 회유할 때 써 왔던 것이고요.”

천통자의 말에 그제야 조금은 마음을 놓은 약선은 안심했고 듣고만 있던 이윤후의 곁으로 갔다.

“네 뜻은 어떠하냐? 저 사람에게 네 사부를 맡겨도 되겠느냐?”

약선은 이윤후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그녀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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