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44화 (44/251)

44화― 천통자(天通子)(1)

유인경과 함께 서안을 떠난 후, 시간이 흘렀다. 유인경은 무사히 빙궁으로 돌아갔고, 이윤후는 약선과 함께 사부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빼액―

화산 조양봉에 설응의 울음이 울렸다. 하늘을 바라보는 이윤후의 시야에 두 마리의 설응이 어지럽게 엉키며 싸우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또 저러고 노는 건가?”

이윤후는 익숙한 모습인 듯 미소를 보이며 두 마리의 설응을 보았다.

“백아와 소설은 매일 저러고 노는구나?”

이윤후는 뒤에 다가온 약선의 말에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서안을 떠나 빙궁에 유인경을 데려다주고 바로 조양봉으로 돌아와 사부인 검성을 돌보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소협.

유인경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으나, 이윤후는 고개를 털고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설응들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둘 다 핏줄이라는 것을 아는지 친하게 지내네요. 백아가 조금 괴롭히는 거 같은 기분은 있지만요.”

과거 검성과 약선이 나눠 받은 설응들의 후손이 바로 백아와 소설이었다.

두 설응 다 만나고부터 매일 저러고 놀며 화산을 어지럽게 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화산파에서 두 설응에 관해 알아보려 사람을 내보내기까지 했었다.

결국 약선이 나서서 무마시켜야 했다. 화산의 입장에서는 빙궁의 설응이 자신의 영역 내에서 매일 저러고 있으니 경계할 만도 했었다.

“할 얘기가 있으니 안으로 들어오렴.”

약선은 설응들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윤후에게 말하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윤후는 약선의 말투가 조금은 평소와 달랐기에 조심스럽게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 큰 침상에는 검성 나진하가 마치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고, 방 안에는 알 수 없는 약향이 가득했다.

처음엔 이윤후도 방 안에 가득 찬 약향이 적응되지 않았지만, 검성의 치료를 위한 일이니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아직은 차도가 없으시군요.”

이윤후는 잠들어 있는 검성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현재는 약선의 보살핌 덕인지 동굴에서 볼 때보다 더욱 나름대로 생기가 있어 보였다.

“신체의 활성화는 이전과 비교하면 정상적으로 돌아와 있단다. 문제는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것이지. 사념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네 꿈에 나타나고 너에게 무공을 알려 준 것은 이 사람의 집념이 만들어 낸 것인데, 아마도…… 선인들이 말하던 유체이탈(幽體離脫)이 아닌가 생각되는구나.”

“유체이탈이요?”

“그래. 나도 네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여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는데, 선인들이 경지에 오르면 우화등선(羽化登仙) 하기 전에 유체이탈이 가능한 경지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그 경지에 오르게 되면 유체이탈하여 수만 리를 갈 수도 있다더구나. 아마 이 사람도 그 경지까지 오른 것일 게야.

“그렇군요. 사부님께서는 마지막에 무당파에서 머물며 도교의 가르침에 심취하셨다고 들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이윤후도 검성이 말년에 무당파에 머물며 태극과 오행 도교의 가르침에 큰 깨우침을 얻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결과물이 자신이 배운 만상오행공(萬象五行功)이기도 했다.

“내가 지나친 억측을 하는 것일 수 있으나 이 사람은 도교에서 말하는 선인의 단계에 오른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구나.”

“선인이요?”

이윤후가 놀라 물었다. 선인의 단계라니, 전설로만 들어 봤던 경지였다.

“그래. 그렇지 않고서는 이 사람이 이제껏 곡기를 끊고도 살아 있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구나. 아마 이 사람은 자신이 이런 경지에 올랐다는 자체도 모른 채로 스스로 영면에 들었지만, 죽지 않는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 육체는 죽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유체이탈 하여 너를 찾은 것도 그렇고 말이야.”

“아, 그렇군요. 사부님이 그런 경지에 올라 있었고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유체이탈 하여 저를 찾아왔던 것도 설명이 되긴 하네요.”

이윤후는 약선의 설명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검성이 오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먹지도 않았는데 살아 있었던 이유도 설명할 수 있었다.

“문제는…… 깨어나려면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람이 나의 말을 너무 믿은 나머지 스스로 의식을 닫아 버렸다는 데에 있어…… 너를 찾고 무공을 알려 준 것을 마지막으로 또다시 스스로 의식을 닫아 버린지라 난감하구나…….”

약선은 말을 하며 자신의 책임감을 느끼며 침울한 표정을 보였다.

“방법이 없을까요?”

“안 그래도 그 방법 때문에 너와 의논을 하려고 한다.”

“방법이 있습니까?”

“짚이는 인물이 있다. 그 사람에게 물어보면 답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게 누구입니까?”

약선은 이윤후의 물음에 자신의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주었다.

종이를 펴 본 이윤후는 그것이 한 장의 초상화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년 사내의 초상화였는데, 수염이 염소수염이라 약간은 간사해 보이기까지 한 얼굴이었다. 두 눈도 작고 옆으로 길게 찢어져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인상이었다.

“이게 누구입니까?”

“스스로 자신을 천통자(天通子)라고 칭하는 인물이란다.”

“천통자요?”

이윤후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고 약선은 웃으며 답해 주었다.

“조금은 괴짜인 인물이란다. 천통성지(天通誠至)라는 말을 아느냐?”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하늘과 통한다는 말 아닙니까?”

“그래. 그 초상화의 인물은 그 말에 부합하는 인물이란다.”

이윤후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으나 약선은 말을 이어 나갔다.

“원래 천통자는 무당의 도인이었는데 무공에는 재주가 없었단다. 하지만 잡학(雜學)에 능했고, 특히 도술에 관한 책을 많이 읽은 인물이라 무당에서 나와 자신이 배운 지식으로 먹고살고 있단다. 그 깊이가 대학자들도 감탄할 정도라고 하니 그라면 혹시 이 사람의 상태에 대한 해법을 알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있겠군요.”

“사실 나와 인연이 있는 인물이라 내가 데리러 가고 싶은데, 난 이 사람을 돌봐야 하니 네가 좀 다녀오너라.”

약선은 누워 있는 검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이 없긴 했으나 어떤 변화가 있을지 모르니 약선이 옆을 지키는 것이 맞았다.

“천통자라는 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현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게 어딥니까?”

“화산파(華山派).”

“화산파요? 바로 근처 아닙니까?”

이윤후는 너무 가까운 곳에 천통자가 있다고 하자 놀라 물었다.

“……구금된 상태라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

“구금이요? 화산파에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자세한 내용은 나도 모르겠구나. 개방에다 천통자의 위치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했더니 화산파에 현재 구금되어 있다고 말해 주기에, 일단 화산파의 장문인과는 이야기해 두었다.”

“…….”

“화산파에서는 일단 천통자가 그리 큰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니 데리러 온다면 풀어 주겠다고 했다. 네가 가서 데려오너라.”

약선은 화산파의 장문인에게 부탁하여 천통자의 구명을 했고 그의 허락을 받아 둔 상황이었다. 화산파 역시 약선에게 크고 작은 일을 신세 지고 있었기에 그녀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었다.

“그럼,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마.”

이윤후는 약선에 답하고는 누워 있는 검성을 한 차례 쳐다보다 그곳을 나섰다.

빼액―

곧, 한 사람과 한 마리의 화산행이 시작되었다.

* * *

화산파.

화산 연화봉에 있는 문파로, 무당과 함께 무림의 대표적인 검파(劍派)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조양봉 아래로 내려오니 기분이 색다르군.”

이윤후는 화산파가 있는 연화봉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빙궁에 유인경을 데려다준 이후, 거의 검성의 간호를 위해 계속 머물렀고 수련을 겸하면서 지냈었다.

이윤후는 하늘을 바라보자 백아가 자신의 머리 위에 날고 있었다. 백아를 타고 가는 편이 빠르고 좋았지만 화산파에서 설응의 출현에 민감하게 대응했던 일이 떠올라 그것은 피하려 했다.

처음 백아와 소설이 서로 엉겨 붙어 싸울 때는 정말 치열했기에 화산에서는 빙궁이 습격한 것으로 알고 무사들이 다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약선이 나서서 그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돌려보낼 수가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백아가 현재 설응의 우두머리이긴 하나 소설은 우두머리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백아에게 도전하여 서열을 가린 것이었다.

“등산객들이 많네.”

연화봉을 오르기 시작하자 산 아래부터 많은 사람이 산을 오르는 것을 보고는 이윤후는 그들을 살폈다. 산에 오르는 등산객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화산파로 향하는 무인들로 보였다.

경치를 즐기며 유유자적 산을 오르던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이윤후도 누군가 자신을 계속 살피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진 않았다.

“형씨는 화산파로 향하는 것입니까?”

이윤후는 거친 말을 쓰는 상대를 보았다. 약간은 허름한 복장에 옷도 군데군데 구멍이나 헤져 있었지만 옷 자체는 고급 백포로 만들어진 옷으로 보였다. 나이는 이윤후보다는 많아 보였고 검을 든 것으로 보아 무림인으로 보였다.

“대답해야 합니까?”

상대가 너무 버릇없이 굴자 이윤후는 살짝 기분이 나빠 까칠하게 대했고, 상대는 이윤후의 대응에 크게 웃으며 걸음을 멈추고 이윤후를 향해 예를 취했다.

“이거 제가 실례를 했군요. 전 화산파의 제자인 담휘경(譚輝瓊)이라 합니다.”

약간은 무례했던 담휘경이 자신을 소개하며 예를 차리자 이윤후도 더는 그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사문은 따로 없고 이윤후라고 합니다.”

“사문이 없다고요?”

담휘경은 이윤후의 소개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보았다.

‘보통의 기질이 아닌데 사문이 없다고? 숨기려 하는 것인가?’

담휘경은 이윤후를 연화봉 아래서부터 살피며 올라왔다. 검도 특이했던 데다 기감을 통해 무공 수위가 특출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이 담휘경?”

“담휘경이라면 화산 최고의 기재라 불리는 인물이 아닌가? 화산에 돌아온 건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담휘경의 이름을 듣고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이윤후는 자신의 앞에 있는 상대가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게 기분 좋은지 담휘경은 미소를 보였다. 워낙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담휘경이었고 그런 그의 성격은 무림에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이윤후는 알지 못했다.

“화산파에 가시는 겁니까?”

“네. 볼일이 있어 화산파에 가고 있습니다.”

담휘경이 다시 똑같은 것을 물었지만 이윤후는 이번에는 대답해야 했다. 담휘경이 화산파의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이것을 물을 자격이 있었다.

“그럼, 같이 가시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담휘경의 행동에 의도가 있음을 알았지만, 화산파 기재와의 동행을 거부하진 않았다. 어차피 화산에서 천통자를 인수인계 받아야 했기에 화산파의 심기를 상하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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