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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43화 (43/251)

43화― 이별(離別)의 밤

“그럼,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요.”

미홍은 이윤후를 보며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빙궁에는 어떤 일로 간 건지 물어도 되나요?”

“안 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말해 주기 어렵네요.”

“흠, 그럼…….”

미홍은 자신의 사람들을 통해 알아낼 수 없었기에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지만, 이윤후가 대답을 거부하자 아쉬워했다.

“이 소협은 검성에게서 직접 무공을 배우신 겁니까?”

이윤후는 미홍이 왜 이런 것을 묻는지 알고 있었다. 무림에 나와 자신이 검성의 제자임을 알고 모두 같은 것을 궁금해했다.

검성이 살아 있다면 나이가 이미 일백이 넘었을 터, 과연 살아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그것도 곤란하군요.”

“비밀이 많은 소년이시군요…….”

미홍은 이윤후의 대답에 그를 뚫어지라 응시하며 살피고 있었다. 미홍은 사람과 대화 속에서 얼굴의 근육 변화나 행동을 통해 상대방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윤후의 표정을 보아하니 검성은 분명 살아 있다.

‘검성이 살아 있어? 그럼…… 오절들이 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닌가?’

미홍은 살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소협.”

미홍은 생각에 빠졌다가 유인경이 이윤후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만 돌아가죠. 우리 일은 이미 마쳤으니까요.”

“네. 그러죠.”

유인경은 미홍이 이윤후를 바라보는 눈빛이나 가깝게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윤후가 이야기하는 동안이야 어떻게든 참고 있었지만, 대화가 끝이 난 듯하자 참지 못하고 이윤후에게 나가기를 권했다.

“잠깐만요. 벌써 가시게요?”

두 사람이 나서려 하자 급하게 미홍은 그들을 붙잡았다.

“우리는 무림맹으로 가지 않을 거예요. 굳이 우리가 여기에 더 있을 이유가 있나요?”

“그거야 그렇지만…….”

미홍은 유인경이 신경질적으로 나오자 말을 더 꺼내지 못했다.

“루주님의 배려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이윤후가 인사를 하고 유인경과 방을 나서자 딱히 잡을 핑곗거리가 없었던 미홍은 그들을 잡지 못했다.

* * *

“어떻게 할까요?”

두 사람이 나간 후, 음식을 가져다주었던 중년 여인이 들어와 물었다.

“일단 사람을 붙여 지켜보도록 해. 백주객잔에 묵고 있다고 하니 그곳의 사람도 한 명 섭외해 두고.”

“네. 알겠습니다.”

명을 받은 중년 여인이 나가자, 미홍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를 뜯어 바닥에 던졌다.

“유인경과 같이 있으니 미인계를 쓸 수도 없고, 대화를 좀 하려 하면 질투해서 방해하니 난감하네.”

미홍은 유인경이 이윤후에게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는 측은하다 여겼지만 사사건건 방해하는 모습에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나저나 검성까지 살아 있다면 정말로 오절 모두가 살아 있는 건가? 이거,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들에 오절까지 움직인다면 일이 커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미홍은 자기의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이내 품 안에서 작은 붓통과 종이를 꺼내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야휘(夜輝).”

“네. 단주님.”

미홍의 부름과 함께 그녀의 앞에 검은 무복의 사내가 나타났다.

야휘라 불린 그 사내는 미홍이 건네준 종이를 받아 품 안에 갈무리했다.

“일단 이것을 대모님에게 보내도록 해. 그리고 서안으로 향하고 있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인물들에 대한 동태를 하루가 아닌 반나절마다 보고하도록 전해.”

“네. 알겠습니다.”

야휘는 나타났을 때처럼 바람과 같이 사라졌고 미홍은 바닥에 버려진 자신의 면사를 지르밟고는 방을 나섰다.

* * *

백주객잔으로 돌아간 이윤후와 유인경은 하루를 쉬고 아침에 빙궁으로 떠나기로 했다.

이윤후는 자기 전 운공을 마치고 창문을 열어 방 안의 공기를 바꿨다.

“사부님은 괜찮으시려나…….”

이윤후는 약선과 함께 있을 검성의 생각에 조금 걱정되었다. 그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이미 오랜 기간 가사 상태로 있었기에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조준혁과의 대결 후에 제대로 무공을 배워 보고 싶은 욕심이 강해졌던 이윤후였기에 검성이 빨리 깨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저 검성의 부탁과 비좁은 촌동네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만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 아닌, 제대로 무공을 배우고 싶어졌다.

이미 이론적인 것은 다 배웠던 이윤후였지만, 조준혁과의 대결에서 실전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었고 무림에 몸을 담은 이상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만큼 강해지고 싶었다.

“이 소협, 들어가도 될까요?”

이윤후는 밖에서 유인경의 목소리가 들리자 급하게 벗어 던졌던 윗옷을 챙겨 입고는 답해 주었다.

“네. 들어오세요.”

이윤후의 허락이 떨어지자 유인경이 눈치를 보며 방으로 들어왔다. 이윤후는 그녀를 구석에 있던 작은 탁자 앞 의자에 앉길 권하며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내일이면 이 여행도 끝이군요.”

이윤후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찾아온 듯한 그녀가 딱히 말없이 앉아 있자, 이윤후는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었다.

“네, 그러네요…….”

유인경도 아쉬운지 말끝을 흐렸고 이윤후도 첫 무림행이 이렇게 짧게 끝이 난 게 조금은 아쉽긴 했다.

“이 소협은 저를 빙궁에 데려다주고 어디로 가실 예정인가요?”

“일단 전 사부님이 있는 곳으로 갈 예정입니다.”

“아, 안 그래도 묻고 싶었는데 검성이 살아 계신 건가요?”

유인경은 빙궁에서부터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이미 이윤후에게 대강의 사정을 들어 검성이 살아 있다는 건 들었으나, 죽은 검성이 어떻게 살아 돌아온 것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네. 제가 말해 준다는 것을 깜박하고 있었네요. 약선과 사부님이 있던 동굴에 찾았는데 사부님이 살아 계시다고 하네요. 그래서 약선께서 사부님을 데려가셨어요.”

“그랬군요. 정말 다행이에요.”

유인경은 사실 언뜻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긴 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그럼, 다시 무림에는……?”

“일단 사부님의 상황을 보고 차후에 생각해 보려 합니다. 제대로 사부님의 무공을 익히고도 싶고요.”

“네…….”

유인경은 사실 이윤후도 빙궁에 남아 주었으면 하고 그의 마음을 떠보려 했지만, 사부를 챙기려 한다는 말에 차마 더 붙잡지 못했다.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이윤후의 도움을 너무 받았던지라 그에게 보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도 못 되었다.

“유 소저는 이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일단 빙궁에 몸을 의탁하면서 할아버지의 소식을 알아보려고요.”

“흑월도존의 소식이요?”

“네. 대사형…… 아니, 독고진이 아무리 할아버지의 자리를 탐하였다 해도 할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독고진이 사마련을 장악하여 사왕련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분명 할아버지를 따르던 자들이 전부 그에게 복종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유인경은 단지경과의 대화 속에서 어느 정도 현실을 직시했다. 무림맹주인 우금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기에 단지경의 말처럼 빙궁에 몸을 의탁하며 할아버지를 따르던 자들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도 자신 혼자 할 수 없는 무력한 현실이 암담하긴 했지만, 이제 스스로 바뀔 필요가 있었다. 앞으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 나가야 할 터이니까.

“그럼, 저희도 헤어져야 하겠네요…….”

유인경은 말을 하며 침울해졌다. 자신의 억지스런 동행 요청을 받아 준 이윤후. 지금까지 이 남자와 함께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빠져들어 있었다.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그렇지만 이렇게 된 게 다행인 거 같아요.”

“다행이요?”

“네. 빙궁의 조 대주랑 겨루어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제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요. 유 소저를 노리는 자들이 제대로 실력자들을 보냈다면 제가 막아 주지 못했을 거 같네요.”

“아…… 그 이야기였군요.”

이윤후는 조준혁이 무림에서 손꼽히는 고수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도 그에게 손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진 것에 큰 자책을 하고 있었다.

검성의 위명(威名)에 자신도 모르게 실력을 과신하고 있었다. 몇 번의 싸움에서 쉽게 이긴 것으로 자만하고 있었음을 뉘우치고 있었다.

“사실 사왕련에선 저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저에 대한 걱정은 이제 않으셔도 될 거예요.”

“그런가요?”

“네. 그들이 저를 쫓고자 했다면 잠룡대가 저를 놓쳤을 때 바로 쫓아왔을 텐데, 이후 추적이 없었던 거로 봐서는 저를 죽이지 않기로 한 것 같아요.”

유인경도 계속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사마련을 점령한 자들이 자신을 죽일 것으로 판단해 이윤후에게 억지로 동행을 요청했던 것이었는데, 잠룡대가 찾아온 이후로는 자신을 찾지 않았다.

자신을 그렇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했거나 자신의 존재를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다른 일에 바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다행이군요.”

“저도 빙궁에서 게을리하던 수련을 좀 더 열심히 해 볼까 해요.”

“기대되는데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에요!”

유인경은 이윤후가 자신의 말을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듯하자 소리를 빽 질렀다. 사실 그녀도 할아버지인 흑월도존에게 배우긴 했지만, 사실 무공은 재미가 없었다.

어렸을 때야 재능이 있어 두각을 드러냈으나, 수련 중 한 군데에서 막히자 그녀는 포기해 버렸고 흑월도존도 더는 그녀에게 무공을 익히라고 하지 않았다.

“이 소협이 오행의 상생법으로 저를 치료해 준 덕에 제 몸 안에 이전에 없던 기운이 넘치고, 막혔던 무공들도 이제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할아버지의 무공 제대로 익혀 보려고요.”

“복수하시려고요?”

이윤후의 물음에 유인경은 살짝 눈빛이 바뀌었다.

“그러고 싶지만…… 저는 너무 나약해요. 독고진이 사마련을 사왕련으로 이름만 바꾼 것이지 그전에 사마련은 그대로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제가 깨고 싶다고 깰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에요.”

유인경의 대답에 이윤후는 조금은 안심했다. 혹시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복수하겠다고 들까 봐 걱정했는데, 그건 아닌 듯하여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럼, 전 이만 방으로 돌아가 볼게요.”

“그래요. 돌아가서 쉬도록 해요. 이른 아침에 출발하도록 하죠.”

“아침 일찍이요?”

“네. 빨리 움직이도록 하죠. 서안에 오래 머무는 건 좋지 않으니까요.”

이윤후는 홍예루에서 보았던 루주가 계속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장가철장의 장윤호는 확실히 유인경을 걱정하는 것이 눈에 보였기에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홍예루로 보냈을 때도 그리 걱정하지 않았지만, 루주는 장윤호와 확연히 느낌이 달랐다.

이윤후가 생각에 빠지자 유인경은 조금은 이상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묘시(卯時)에 떠나도록 하죠. 전 백아를 좀 만나고 들어올게요.”

이윤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야기하자 유인경도 더는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저도 따라가면 안 돼요?”

“금방 나갔다 돌아올 거라 방에 가서 쉬세요.”

이윤후가 거절하자 유인경은 조금은 마음이 상했지만 더는 조르지 못했다.

“네…….”

방으로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이윤후는 살짝 웃음을 보였다가 자신도 상월을 챙겨 방을 나섰다.

그녀와의 이별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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