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홍예루(紅霓樓)(1)
서안(西安) 백주객잔(白紬客棧).
서안에서 제법 큰 규모를 자랑하는 객잔으로 음식이 특히 유명하여 많은 사람이 찾는 곳 중 하나였다.
최근 무림맹을 방문하는 무림인들이 많아 매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고, 오늘도 사람이 가득 차 자리를 찾지 못해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자리가 없겠는데요.”
유인경은 객잔 앞에 줄 선 많은 사람을 보고는 말했다.
“그래도 일단 안으로 가 보죠.”
이윤후는 유인경과 함께 객잔 앞의 많은 무리를 뚫고 들어갔다. 그들은 빙궁을 떠난 후 서안의 외곽에 내려서 서안의 시내로 들어왔고, 요기를 하기 위해 객잔을 찾다가 백주객잔을 사람들이 추천해 줘서 온 것이었다.
해가 지는 저녁 식사 시간인 데다 유명 객잔인지라 사람들이 가득 차 시끌시끌한 분위기였다.
“식사하시려고 오신 겁니까?”
그들을 향해 점소이가 그들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물었다.
“하루 지낼 방도 필요하고 식사도 하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유인경의 말에 점소이는 그녀를 보고는 넋이 나간 듯 잠시 멈칫했으나 금세 정신 차리고는 답했다.
“마침 방은 비어 있긴 하는데 보시다시피 자리가 없습니다.”
점소이의 말대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유인경은 난감해하며 이윤후를 보았다.
“일단 방을 여기 잡고 식사는 좀 늦게 하든지 하죠. 홍예루를 먼저 다녀오든가요.”
“그럴까요? 어차피 그렇게 배고프지는 않으니…….”
유인경은 조금은 아쉬운 듯 가득 차 있는 자리들을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홍예루로 가죠. 일 마치고 오면 자리도 비어 있겠죠.”
이윤후는 미련을 가지는 유인경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그럼, 가죠.”
객잔에 들어갈 때만 해도 해가 지고 있던 시점이라 그래도 조금은 밝았는데, 객잔에 들어간 잠깐 사이 해가 떨어져 어둠이 깔렸다.
그나마 만월의 밤이라 달빛이 밝았고, 상점가는 저녁 장사를 위해 활기를 띠고 있었다.
“저녁의 상점가는 더욱 활기차네요.”
“그러게요. 저도 작은 마을에서만 살아서 이런 큰 도시로 온 것은 처음인데, 확실히 다르네요.”
이윤후나 유인경 둘 다 사람이 많은 곳은 익숙하지 않아 모든 것이 새로웠다.
홍예루로 가는 길 주변엔 온갖 잡화들이 좌대에 올려져 있었고, 고루거각들도 즐비했다.
“저기가 홍예루인가 보네요.”
유인경이 멋들어진 목조 건물을 가리켰다.
홍예루라는 큰 현판과 함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 앞에는 홍예루로 들어가기 위한 인원들이 초저녁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 엄청 많네요?”
“그러게요. 이거, 들여보내 줄지 모르겠네요.”
두 사람 다 홍예루 앞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난감해했다. 워낙 많은 사람이 입구에서 들어가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일단 부딪쳐 보죠. 저희는 심부름을 온 것이니 장가철장의 이름을 대면 들여보내 주지 않을까요?”
이윤후는 등에 메고 있는 상자를 툭툭 치며 말했고, 유인경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가는 이윤후의 뒤를 따랐다.
“잠시 지나갈게요.”
이윤후가 그 많던 군중 사이를 금세 빠져나가며 홍예루의 입구에 도착했다.
“앞에서 보니 더 대단하네요.”
이윤후는 홍예루의 입구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놀라기는 유인경도 마찬가지였다. 멀리서 볼 때도 굉장히 화려하고 커 보였던 홍예루였지만, 입구에서 보니 드나드는 대문마저 엄청나게 컸다. 마차들이 지나들 때마다 대문이 열리고 있었는데 덩치 큰 장한 둘이서 힘겹게 밀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지나 드는 입구가 또 따로 있었는데, 그곳에는 홍예루의 직원들로 보이는 자들이 일일이 사람들을 점검하면서 들어갈 사람, 아닌 사람을 가려내고 있었다.
“저쪽으로 가죠.”
이윤후가 홍예루의 직원들 쪽으로 상자를 메고 성큼성큼 다가가자 문 앞의 사내 둘이 이윤후를 막았다.
“여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신분을 밝혀 주시지요.”
이윤후를 막아선 사내들은 이윤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고 뒤에 서 있던 유인경도 이리저리 살폈다.
“저희는 장가철장(張家鐵場)에서 홍예루로 전달해 달라고 한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윤후가 메고 있던 상자를 앞으로 내놓으며 사내들이 상자보다 이윤후의 말에 이미 놀란 표정을 지으며 수군대고 있었다.
이내 한 명이 홍예루 안으로 급하게 달려 들어갔고, 남아 있던 사내가 이윤후를 다시 한번 살피고 있었다.
“일단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사내의 말에 이윤후는 벗었던 상자를 다시 메고는 유인경을 보았고, 그녀는 이윤후에게 앞서가라는 듯 손짓했다.
문 안으로 들어가는 두 사람의 모습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은 부러움의 시선을 보였고, 왠지 모를 환호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홍예루 안으로 들어선 이윤후와 유인경은 그의 안내에 따라 움직였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잔잔한 악기 소리와 코끝으로 느껴지는 향기에 밖과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여기 방에서 잠시 대기하시면 루주(樓主)님이 오실 겁니다.”
사내의 말투는 어느새 공손해져 있었다. 이윤후와 유인경은 사내의 안내에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
안으로 들어서자, 두 사람 다 놀란 표정이 되었다.
“정말 아름답네요.”
유인경은 방의 구조에 놀라며 감탄했다. 그냥 일반적인 방으로 보였지만 들어서자 앞이 뻥 뚫려 있어 바깥의 경치가 보였고 방의 바깥은 정원같이 꽃과 나무들로 꾸며져 있었다. 거기에다 수로(水路)가 있어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구조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할 정도였다.
“신기한 구조네요. 보통의 방은 아닌 거 같아요.”
이윤후도 방을 살피고는 확연히 보통의 방과는 다름을 느꼈다. 방의 벽도 재질을 알 수는 없었지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것과 달랐다. 방의 가구들도 화려하지 않았지만 모두 고급스럽고 값비싸 보이는 것들이었다.
“루주가 온다는 거 보니 여기가 홍예루주의 개인 방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 방에 평범해 보이는 물건이 하나도 없는 걸 보니 말이에요.”
이윤후가 꽃과 나무들이 있는 곳을 보는 와중,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방에 들어선 이는 여인이었다. 하얀 면사로 얼굴을 가렸지만 몸매가 드러나는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어 이윤후는 그녀를 보고 얼굴을 붉혔다.
“장가철장에서 물건을 가져오셨다는 분들인가요?”
면사 여인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이윤후는 등에 메고 있는 상자를 벗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네. 장가철장의 장주님께서 홍예루에 이것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이윤후가 내민 상자를 받아 들고는 바닥에 내려놓았다.
사실 그녀는 다름 아닌 무림맹 주작단주 미홍(美紅)이었다. 여러 신분을 가진 그녀는 홍예루의 루주이기도 했다. 물론 면사와 역용술(易容術)을 활용했기에 누구도 그녀의 정체를 알아채진 못했다.
무림맹주인 우금도 그녀가 원래 다른 세력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홍예루에 관해서는 관여하지 않고 있었고, 그녀도 다른 이들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는 한에서 조심하고 있었다.
‘이자가 검성의 제자라……?’
미홍은 이윤후를 찬찬히 살폈다. 그러던 중 따가운 시선에 돌아보니, 유인경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음을 알았다.
‘흑월도존(黑月刀尊)의 손녀…….’
미홍은 이미 두 사람의 정체를 보고받았기에 관심 있게 보았다.
“상자는 확인해 보지 않으십니까?”
이윤후는 미홍이 상자를 열어 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어 보이자 의아해하며 물었다.
“열어 보지 않아도 장가철장에서 보낸 물건임을 아니까요. 두 분 다 고생하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도착한 거죠? 제가 예상한 도착 시점보다 너무 빠른데요.”
“아. 그게, 일이 좀 있어서 일찍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미홍은 이미 이윤후가 설응을 통해 왔음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상대로 모른 척 얼버무리는 소년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럼, 저희는 물건을 전했으니 가 보겠습니다.”
“벌써 가시려고요?”
이윤후와 유인경은 어차피 무림맹에 가지 않으려 했기에, 루주에게 들을 것이 없다 생각했다.
“그래도 먼 길을 물건 가지고 오셨는데 대접을 해야죠. 그냥 가시면 저희가 미안해서 안 되겠어요. 안 그래도 먹을 것과 홍예루가 자랑하는 취접주(醉蝶酒)를 대령하라고 해 두었으니 드시고 가세요.”
미홍의 제안에 어차피 배가 고팠던 이윤후는 유인경을 보았다. 그녀는 떠나고 싶었으나 이윤후나 자신 모두 굶은 상태라 먹을 것을 거부하기는 힘들었다.
“밖에 누가 있느냐?”
미홍이 외치자 밖에서 시비로 보이는 여인이 들어왔다.
“네, 루주님.”
“준비한 음식과 술을 내어 오거라.”
“알겠습니다.”
여인이 미홍의 명을 받고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건장한 사내 둘이 길고 커다란 탁자를 가져와 방 중앙에 내려놓고는 빠져나갔다.
“앉으시죠. 곧 음식들이 올 테니 편히 이야기나 나누고 싶군요.”
미홍의 권유에 멍하니 서 있던 두 사람 다 자리에 앉았다. 미홍이 상석에 앉았고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앉았다.
“전 홍예루의 주인인 설란(雪蘭)이라고 해요.”
미홍은 홍예루주로서 쓰는 가명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전 이윤후라고 합니다.”
“전…… 인경입니다.”
이윤후는 자신의 본명으로 소개했지만 유인경은 홍예루처럼 큰 기루의 기녀라면 자신의 본명을 알 수도 있다 여겨 성을 빼고 소개했다. 이미 두 사람의 정체를 알고 있는 미홍이었기에 유인경의 소개에 속으로 미소를 보였다.
“두 사람 다 무림의 분들이신가요?”
미홍의 물음에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윤후나 유인경 모두 무기를 들고 있었기에 미홍으로서는 당연한 질문이라 생각했다.
“네.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홍예루의 주인이시면 바쁘지 않으신지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홍예루의 손님들은 저보다 더 어리고 아름다운 아이들을 좋아하니까요.”
“아주 아름다우신데요.”
“그런가요? 호호.”
생각지 못한 이윤후의 칭찬에 미홍은 기분 좋은 듯 크게 웃었고, 유인경은 못마땅한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이거 두 사람이 같이 다닌다 했더니…… 유인경 쪽이 이 소협에게 마음이 있는 듯하군.’
미홍은 유인경의 눈빛에서 그녀가 이윤후에게 연정을 품고 있음을 눈치챘다.
“이 소협은 특이한 검을 들고 다니시는군요?”
미홍은 이윤후가 지닌 상월을 신기한 듯 보았다. 이미 그녀는 그것이 상월이고 신장의 무기임을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하며 관심이 있는 듯 굴었다.
이윤후는 상월이 내공 증진에 효능이 있다는 단지경의 말을 듣고 나서 잘 때도 몸에서 떼지 않았고, 평소에도 손에 꼭 쥔 채 다녔다.
모를 때는 인식 못 했지만, 알고 나니 확실히 더 효능이 있는 것 같았다.
“제 검보다는 저희가 가져온 상자부터 확인해 보시지요.”
이윤후는 화제를 돌렸다.
“상자 안에야 무엇이 들었는지 아니까 굳이 확인 안 해 보아도 돼요.”
그런 이윤후의 모습이 미홍은 정말 귀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