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약선(藥仙)
이윤후의 물음에 조금 당황한 약선은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는 이윤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냐?”
“단채영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조금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단 궁주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욱 의심스러웠습니다. 약선께서 사부님을 찾고 있다는 말…… 사부님은 분명 약선께서 자신에게 고칠 수 없는 병이라고 진단하셨고, 그 말에 사부님은 무림을 떠나 잠적하셨습니다.”
이윤후의 말이 시작되자 약선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었다. 이윤후도 말을 하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그런데 약선께서는 사부님이 살아 계실 거라 생각하며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약선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었고 생각에 빠진 듯 잠시 두 사람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 사람은 어디 있느냐?”
“제 질문부터 먼저 답해 주십시오.”
자신의 물음에 단호히 답하며 굳은 표정을 하는 이윤후를 보고는 약선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들의 관계는 알고 있느냐?”
“오절의 관계 말입니까?”
“그래. 알고 있는 듯하구나. 오절이라 불렸던 여인 나와 도후는 그 사람을 같이 좋아했다.”
약선의 이야기기 시작되자 이윤후는 그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도후는 적극적인 성격이라 그를 따라다니며 구애했지만, 나는 그런 성격이 되지 못해 먼발치에서 그를 지켜보았었지. 결국 고백을 해 보았지만 그는 받아 주지도 않았다. 도후 역시 그에게 선택받지 못했기에 나는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었지 긴 세월을…….”
약선은 이야기하며 옛 생각이 났는지 표정의 변화가 심했다.
“긴 세월을 그 사람의 곁에 머물렀지만 우리는 그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 그래서 그를 좋아했던 마음은 원망이 되었다. 특히 도후는 그를 크게 원망했었다. 화풍곡(火風谷)의 명령까지 어기며 그를 따라다녔고 함께했었으니 더욱 심했지.”
“사부님은 왜 두 분 모두를 곁에 두지 않았던 거죠?”
이윤후는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유인경에게 오절의 관계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도 들었던 의문이었다.
“그 사람은 한 여인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여인과 함께하지 못했어. 죽어 버렸으니…… 그 여인이 죽은 후에도 그는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고, 도후와 나는 그를 원망했었지.”
“그렇군요.”
“이제 네가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해 주어야겠지.”
약선이 조금은 뜸을 들이며 입을 열었다.
“검성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
“네? 그게 무슨…….”
약선의 말에 이윤후는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그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았다. 처음 나를 찾아와 몸의 이상을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새로운 무공을 익히면서 이전에 익힌 무공과 전혀 다른 무공을 배우면서 오는 몸의 이상이었고, 크게 문제 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거짓을…….”
이윤후는 약선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그 당시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그저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안다면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 옆에서 치료만 받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했는데…… 그 사람은 나의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믿고 사라져 버렸지…….”
약선은 말을 하며 눈물이 흘렀고 이윤후도 어이없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사부님은 제가 만났을 때 분명 돌아가신 상태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약선은 이윤후의 말에 놀라 물었다. 그는 검성과 처음 만났던 일부터 시작해서 모두 이야기를 했고, 약선은 그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어졌다.
“그건 죽은 게 아닐 거야.”
“네? 정말입니까?”
생각에 빠졌던 약선이 침묵을 깨고 꺼낸 이야기에 이윤후는 놀라 물었다.
“그 사람이 나의 말만 믿고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살아 있을 것이야. 영체로 나타난 것은 그가 무당에서 깨우친 것으로 만들었다던 그 무공의 영향인 듯한데…….”
약선은 검성이 영체로서 이윤후에게 무공을 전수하고 목소리로 대화했다는 말에 신기해했다.
“그런데…… 사부님의 힘이 약해져 감을 느꼈습니다. 정말 살아 계신 게 맞습니까?”
“약해져 갔다고?”
약선이 놀라 되묻자 이윤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제가 동굴에서 수련을 한 지가 오 년 정도인데 사부님의 영체로서 느껴지던 기운이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잃어 간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에야 전혀 느껴지지도 못했던 기운이었으나 제가 무공을 배우면 배울수록 확신할 수가 있던 부분이었습니다.”
이윤후의 말에 약선은 안절부절못하며 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었고 초조해함이 이윤후에게도 느껴졌다.
“그는 어디 있느냐? 동굴이 여산의 어디지? 지금 당장 가 봐야겠다.”
약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윤후의 다가와 이윤후를 잡았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긴 했지만, 검성을 걱정하여 그러는 것을 알았기에 저지하지는 않았다.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직접 봐야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럼 지금 당장…….”
약선은 진정이 안 되는지 가만히 있지 못했고 이윤후는 그녀의 떨리는 손을 잡아 주었다.
“진정하십시오. 설응으로 가면 금방 갈 수 있으니…….”
“그래…… 그렇지.”
약선은 이윤후의 말에 그래도 조금은 안정을 찾았는지 떨림이 멈추었다. 두 사람은 같이 방을 나섰고 방 밖으로 나가자 그 앞에는 조준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끝나셨습니까? 궁주께서 두 분 이야기 끝나면 모셔 오라고 하셔서…….”
조준혁은 이야기를 마치지 못했다. 약선이 손사래를 쳤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게 급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아이와 잠시 다녀올 곳이 있으니 지경이에게 그렇게 전해다오.”
“네? 그게 무슨……?”
약선의 말에 조준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조 대주님, 유 소저에게도 잠시 다녀올 곳이 있어 떠나니 기다려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얼른 가자.”
의아해하던 조준혁에게 이윤후도 말을 남기고는 약선에 손에 이끌려 떠나 버렸다.
남겨진 조준혁은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을 짓다가 정신을 얼른 차리고 그들을 쫓아갔을 땐 이미 두 사람은 빙궁의 연무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갑자기 어딜 가십니까?”
조준혁이 두 사람의 등을 보며 묻고 있을 때 하늘에서 두 마리의 설응이 강하하고 있었다.
“잠시 사부님을 만나러 여산에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산이요? 검성이 여산에 있습니까?”
빼액―
백아는 이윤후를 보고 반가운 듯 크게 울었고 땅에 내려선 두 설응은 각자의 주인에게 다가갔다.
“얼른 가자. 늦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네.”
약선이 조급한 듯 말하자 이윤후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각자의 설응의 등에 올랐고 조준혁은 멍하니 그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약선이 애가 타게 찾던 검성의 위치를 알고 찾아가는 것이니, 자신이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빼액―
빼액―
백아가 울고는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자 약선을 태운 설응도 뒤이어 울고는 그 뒤를 따랐고, 상승한 후 순식간에 조준혁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인지…….”
조준혁은 사라진 두 사람을 허망하게 쳐다보다가, 기다리고 있을 단지경에게 보고해야 하기에 발걸음을 옮겼다.
* * *
빙궁에서 출발했던 이윤후와 약선은 여산의 하늘에 나타났고, 이윤후를 태운 백아는 바로 여산 아래로 강하해 절벽의 동굴로 향했다.
빼액―
“그래. 결국 돌아왔구나.”
퍼드득―
절벽의 동굴이 보이자 속도를 죽이며 멈추어선 백아는 큰 날개를 펼쳤고, 이윤후는 백아가 멈추자 등에서 뛰어 동굴로 향했다. 뒤이어 약선도 이윤후를 따랐다.
“동굴치고는 밝은 곳이구나…….”
동굴의 입구에 선 약선은 안쪽을 바라보더니 말했고 이유를 알고 있었던 이윤후는 살짝 미소를 보였다.
“들어가 보시면 알 겁니다. 가시죠. 사부님은 안쪽에 있습니다.”
“그래.”
이윤후가 동굴 안으로 앞장서 가자 동굴이 밝은 이유를 금세 알 수가 있었다. 동굴의 천장의 곳곳에 야명주(夜明珠)가 박혀 있었다.
꽤 긴 동굴의 안쪽으로 들어서자 넓은 공간이 나왔고 넒은 공간의 벽 쪽에 좌선하여 영면에 든 검성이 있었다.
“당신……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요. 그래서 제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약선은 검성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감싸 안고는 눈물을 흘렸다. 이윤후도 기대를 하고 동굴 안에 들어섰지만 검성의 음성이 들리지 않자 조금은 침울해진 상태였다.
“사부님이 살아 계신 것이 맞습니까?”
이윤후는 약선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었다. 그의 말에 약선도 눈물을 닦아 내고는 천천히 검성을 살피기 시작했다.
검성을 살피던 약선의 표정이 심각해졌다가도 이내 화색이 돌아왔기에 이윤후는 기대를 가졌다.
“살아 있다.”
“정말입니까?”
약선의 말에 이윤후는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방치되다 보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한 탓에 의식이 깊게 잠들어 버린 듯해.”
약선의 말을 듣고서야 이윤후는 동굴에 들어섰을 때 검성의 음성이 들리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검성은 이윤후가 떠난 후 제자를 키웠음에 만족하고 스스로 의식을 닫아 버린 상태였다. 몸은 죽지 않았지만 의식 자체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부님은 거의 오십 년 가까이 먹지도 않고 이 상태였는데 아직 멀쩡할 수가 있는 겁니까?”
“그건 나도 궁금하구나…… 나도 네 이야기를 듣고 가장 걱정했던 게 건강 문제였는데, 뜻밖에 몸에는 이상이 없고, 반대로 의식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 이게 더 문제인 듯하구나.”
약선도 이윤후의 이야기처럼 검성이 스스로 자신은 죽는다고 판단하여 영면에 든 상황이라기에 먹지 않고 오십 년 버틴 부분을 걱정했으나, 의외로 몸엔 이상이 없었다.
“아마도 모든 것은 이 사람이 창안해 낸 무공에 해답이 있을 거 같구나. 영체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도, 먹지 않고 버틸 수가 있었던 것도 모두 말이다.”
약선은 모든 것이 검성이 창안해 낸 만상오행공(萬象五行功)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깨어날 방법이 있겠습니까?”
“찾아봐야지…… 내가 저지른 잘못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사람을 깨울 것이다.”
결연함마저 느껴지는 약선의 대답에 이윤후는 안심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무사하다는 말에 무엇보다 안도할 수가 있었다.
“이 사람을 내가 데려가도 되겠느냐?”
약선은 이윤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검성은 따로 가족이 없었기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제자인 이윤후였다.
“동굴은 이 사람이 깨어나는 데 환경이 좋지 않을 것 같구나. 통풍이 잘되고 좋은 환경으로 데려가 이 사람을 치료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느냐?”
“네. 물론입니다.”
“고맙구나…… 모두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사과는 사부님을 깨어나게 하신 후 직접 하십시오. 전 두 분의 관계와 감정을 알지 못하니 제가 뭐라고 할 부분은 아닌 듯합니다.”
이윤후의 말에 약선은 눈물을 훔쳐 내었다.
“어디로 가실 겁니까? 제가 사부님을 옮기겠습니다.”
“화산(華山) 조양봉(朝陽峰)에 내 거처가 있다. 그곳으로 이동하자.”
이윤후는 검성을 조심스럽게 안은 후에 앞으로 업었다. 조금 불편한 모양새였지만 백아를 타고 안전히 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