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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34화 (34/251)

34화― 의문(疑問)

단지경은 이윤후와 유인경을 빙궁의 손님으로서 대접했다. 그들의 정체가 정사에 극단을 달리는지라 빙궁에서도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단지경은 그런 논란을 일축했고, 어차피 빙궁이 무림의 정사에 관여할 이유가 없었기에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라졌던 오절의 제자가 빙궁에 나타난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 빙궁에서도 이번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일 떠날 건가요?”

유인경은 창밖을 바라보는 이윤후를 보며 물었다.

“네. 단 궁주께서 하루만 있다가 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니 거부하지 못했네요.”

이윤후와 유인경은 단지경과의 대화를 마치고 궁을 떠나려 했으나 그가 극구 만류했고 하루만 더 있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의도가 있는 듯하지 않던가요?”

유인경의 물음에 이윤후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유인경이 눈치챘듯이 그도 단지경이 자신들을 하루 더 있게 한 것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경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기에 크게 의심은 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그들이 백아에 욕심내더라도 이미 자리를 떠나 있는 백아를 잡을 길이 없었고, 백아가 이끄는 설응의 힘을 보았을 때 빙궁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 백아를 굳이 잡으려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게다가 명분상 검성의 제자인 자신과 사파 지존의 손녀인 유인경을 쉽게 건드려 무림의 정사파를 자극시킬 수도 없을 터.

“내일 되어 보면 알겠죠. 단 궁주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그건 그렇고 생각은 좀 해 보셨나요?”

“무엇을요?”

“서안에 도착하면 무림맹주를 만날 건지요.”

“아, 그 이야기라면……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유인경은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윤후는 장가철장에서 장윤호를 만난 이후로 유인경에게 무림맹의 맹주를 만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했었다.

그녀 역시 장윤호가 많은 말을 해 주지 않았지만, 자신들을 홍예루로 보낸 이유가 그녀가 무림맹주를 만나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을 알고 시킨 일이라 생각했고, 홍예루에 가 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장윤호는 유인경과 무림맹주 우금의 만남을 막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내일이 지나면 바로 서안으로 갈 예정이니 고민을 해 보세요.”

“네. 그럴게요.”

유인경은 대답하고는 조금은 의기소침해졌다. 사실 그녀로서는 현재 상황이 너무나 버거웠다.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던 할아버지 유상휘가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였고 돌아갈 곳도 잃은 상태였다.

게다가 억지스럽게 동행을 했던 이윤후와도 서안에 도착하면 헤어져야 했다. 그나마 할아버지의 친우라고 여겼던 무림맹주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왠지 그것도 잘못된 선택이리라는 생각이 들자 더욱 고민스러운 그녀였다.

“이 소협은 서안에서 일을 마치고 어떻게 하실 예정이죠?”

“전 다시 여산으로 돌아가 사부님의 유해를 묻어 주고 본가에 들린 후 다시 생각해 보려고요.”

“그렇군요…….”

유인경이 조금은 기운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고, 이윤후도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서안에 도착하여 일을 마치면 그녀와 더는 같이할 이유가 없었다.

벌써 어느 정도 무림에 검성의 제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이상, 사파의 지존이었던 흑월도존의 손녀와 동행을 계속하면 자신 사부의 명성에 누가 될 수가 있다고 여겼다.

사부인 검성이 정사의 구분을 두지 말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라고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윤후는 알고 있었다.

유인경과 동행하면서 잃을 것이 많다는 것도, 이미 남궁세가의 인물들과 만났을 때 인지한 상태였다.

그렇게 이윤후와 동행을 원하던 안명도 유인경이 사파의 여인이라는 사실에 깨끗하게 물러났었다.

유인경과 계속 동행하는 한 정파의 인물들과 껄끄러운 관계가 될 수가 있었다.

“전 이만 방으로 돌아가 볼게요.”

한동안 서로 말이 없자 어색해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윤후도 유인경이 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내일 단 궁주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떠나죠. 푹 쉬도록 해요.”

“네. 이 소협도 편히 쉬어요.”

유인경은 말을 마치고 방을 나섰고 그녀가 방에서 나가자 이윤후는 탁자에 올려 두었던 상월을 손에 쥐고는 침상으로 향했다.

“너를 지닌 것만으로도 내공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거지?”

이윤후는 상월에게 마치 말을 걸듯이 쓰다듬으며 말했다. 단지경의 말을 듣고는 상월을 잘 때도 지니고 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다짐을 실천하고자 침상에 몸을 누이며 검을 자신의 옆에 두었다.

“이것만으로는 내공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실질적으로 비뢰검결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영약이라는 것이 필요하겠지.”

이윤후는 현재 자신의 처지에 딱히 불만이 없었으나 조준혁과 겨룬 이후 자신의 내공 부족이 큰 결점임을 알았다.

아무리 최고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 한들 쓰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었다. 조준혁과 검을 겨루는 내내 비뢰검결을 사용했다면 좋을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었다.

단지경에게 조준혁이 빙궁 내에서 손꼽히는 고수라는 말에 어느 정도는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분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는 지고 싶지 않아…….”

이윤후는 다짐하듯 낮게 읊조리고는 눈을 감았다.

* * *

“이 소협, 일어나셨습니까?”

아침이 밝고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쯤 문밖에서 누군가 부르자 이윤후는 문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조 대주님이 이른 아침부터 웬일이십니까?”

방문을 연 이윤후는 문 앞에 조준혁이 서 있자 놀라 물었다. 자신이 일찍 일어나긴 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이른 시간에 찾아와 죄송합니다. 이 소협을 만나고 싶다고 하신 분이 찾아오셔서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찾아왔습니다.”

“저를 만나러 온 손님이요?”

조준혁의 말에 이윤후는 어리둥절하며 물었다. 자신이 무림에 아는 자는 없었다. 이제 막 무림에 나와 유인경이 처음 만난 무림인이었기에 자신을 보고 싶어 할 인물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가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이윤후가 조금 의아한 표정을 보이자 조준혁이 말했다.

“검을 들고 가도 됩니까?”

이윤후는 멋쩍은 표정으로 조준혁을 바라보고는 물었다. 이제 막 일어난 이윤후가 벌써 상월을 손에 쥐고 있자 조준혁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이윤후가 어떤 생각으로 묻는지 알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네, 그러시죠. 귀한 물건을 빈방에 놓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조준혁은 이윤후가 단지경에게서 상월을 지닌 자체로 내공에 탁월한 효능이 있음을 듣고 손에서 놓고 싶어 하지 않음을 알았기에 허락을 해 주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뒤를 따르던 이윤후는 살짝 옆방을 보았고 그 모습에 조준혁이 멈추었다.

“찾아오신 분은 이 소협만 보길 원해서요. 이른 시간이니 유 소저는 자도록 두는 게 좋을 듯합니다.”

“아, 네. 그런 의미로 본 게 아니라…….”

“그럼. 저를 따라오시죠.”

“네.”

걷기 시작한 지 오래지 않아 조준혁은 어느 방 앞에 멈추어 섰다.

“이 방입니다. 들어가면 이 소협을 만나고자 하는 분이 기다리고 있으실 겁니다.”

조준혁이 안내한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백발의 중년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비한 분위기의 여인은 이윤후가 방에 들어서자 그를 빤히 응시했고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앞에 앉기를 손짓으로 권했다.

이윤후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그녀의 앞에 앉았고 자신의 앞에 앉은 중년 여인을 찬찬히 살폈다.

백발에 사십 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이윤후는 그녀의 나이가 보기보다 많을 거라 짐작했다.

결정적으로, 가까이 앉자 그녀에게서 퍼지는 은은한 약향(藥香) 내음을 맡고는 그녀가 누군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약선(藥仙)이십니까?”

이윤후의 물음에 여인은 살짝 미소를 보이더니 입을 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

“은은하게 퍼지는 약향과 젊어 보이시긴 하지만 머리가 백발이시고 나이가 보기보단 있으실 거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단 궁주님이 굳이 저를 하루 더 있게 강권하신 게 이유가 있다 생각했습니다. 약선의 이야기를 도중에 해서 설마 했는데 말이죠.”

이윤후는 자신의 말에 여인의 입가 미소가 짙어지는 것을 보고는 확신했다.

사실 이윤후는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의 약선이지 않을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무림 초출이기에 아는 사람이 전무했고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할 사람도 있을 리가 없었다.

남궁세가의 사람들이라면 서안으로 향하고 있을 테고 가장 잘 아는 유인경은 현재 동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단지경이 이야기 중에 꺼내었던 약선밖에 남지 않았다.

“제법 똑똑한 아이구나. 그 사람이 제자를 잘 고른 듯 같네.”

이윤후의 짐작대로 그녀는 오절(五絶)의 일인인 약선 서문애령(西門愛玲)이었다. 그녀는 단지경이 빙궁에 검성의 제자가 나타났다는 연락을 해 와서 바로 북해빙궁으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약선께서 빨리 빙궁으로 오신 거죠? 전 어제 빙궁에 도착했는데 말이죠.”

이윤후는 자신이 빙궁에 머문 지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단지경이 약선과 연락을 하고 벌써 자신의 앞에 서 있는지 궁금했다.

“너도 설응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나 역시 설응을 가지고 있단다. 원래 검성과 나는 전대 궁주에게 한 쌍의 설응을 선물받았었지 수컷 설응을 검성이, 암컷 설응은 내가 가졌었단다.”

“아…….”

약선의 말에 이윤후는 그제야 이해를 할 수가 있었다. 단지경의 하루의 말미를 가진 이유도 약선이 설응을 가지고 있음을 아니까 금방 빙궁으로 올 수 있다고 판단하여 시간을 번 것이었다. 자신과 약선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해.

“그 사람이 오십 년이 넘게 나타나지 않더니, 이렇게 갑자기 제자를 키워 냈을 줄은 몰랐네.”

약선은 다시 한번 이윤후를 찬찬히 살폈다.

“그 사람의 무공은 다 배웠느냐?”

“네. 배우기는 다 배웠으나 아직은 제가 미력하여 사용하는 데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겠지. 그 사람의 무공은 내력 소모도 심하고 초식 하나하나가 패도적이었으니…….”

약선은 말을 하다가 예전 생각이 난 듯 조금은 머뭇거렸으나 이내 정신을 차렸고 자신의 앞에 꺼내 두었던 작은 함을 이윤후에게 내밀었다.

“무엇입니까?”

이윤후는 약선이 내민 함을 한 번 바라보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열어 보아라.”

이윤후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함에 손을 가져갔고 열어 보았다.

함을 열자마자 알 수 없는 향기가 방 안에 가득 찼다. 함 안에는 둥근 적색 환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이름을 따로 붙이지 않았지만 내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조합한 약초들과 영약으로 만든 환이다. 복용한다면 네 무공 수련에 도움이 될 것이다.”

탁―

약선의 말에 이윤후는 함을 닫고는 다시 내밀었다.

“무슨 뜻이냐?”

약선은 이윤후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물었다. 이미 단지경을 통해 이윤후가 내공이 부족하여 검성의 무공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이 전국을 돌며 제조한 환을 선물한 것이었는데 이윤후의 행동은 의외였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이윤후가 눈빛이 바뀌며 자신을 바라보자 약선은 흥미롭다는 듯 표정을 보이며 이윤후를 보며 물었다.

“사부님의 불치병, 제대로 된 진단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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