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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31화 (31/251)

31화― 설응의 우두머리

북해빙궁(北海氷宮).

북해빙궁은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현재 비상 상황이었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빙궁의 전투대가 소집되었으며 외곽으로 임무를 나갔던 인원들까지 모두 불러들이고 있었다.

빙궁 내 넓은 연무장에 궁주인 단지경을 비롯하여 북해빙궁의 장로와 무인들이 모여들어 하늘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설응들이 빙궁을 하늘을 뒤덮고 있다니요?”

북해빙궁의 장로인 검윤상이 누군가를 나무라듯이 말하자 누군가는 그의 말에 고개를 숙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궁주인 단지경의 눈치를 살폈다.

검윤상의 말대로 빙궁의 하늘엔 수십 마리의 설응이 마치 빙궁을 포위하듯 선회하며 날고 있었다.

갑작스레 날아든 설응들의 모습에 빙궁은 비상이 걸렸다. 현재 설응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탓에 설응들의 행동이 빙궁에 큰 위협이 되고 있었다.

모두의 눈길을 받는 빙궁의 궁주인 단지경은 침통한 표정으로 하늘을 날고 있는 설응들을 보았다.

하늘을 날고 있는 설응 중에는 자신의 설응인 설왕(雪王)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설응마저도 통제력을 벗어난 채 빙궁의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내가 진즉에 상황 판단을 빨리했어야 했었나…….’

단지경이 자신을 원망스럽게 쳐다보는 빙궁의 인물들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설응의 우두머리였던 자신의 설응 설왕이 싸움에서 패하고 모든 설응의 통제권을 빼앗겼을 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그저 다음 우두머리 싸움에서 이기게 하면 된다고 너무 간단하게 여겼다.

하지만 설왕은 번번이 우두머리 도전의 싸움에서 패하고 돌아왔고, 그 결과가 지금 펼쳐진 상황이었다.

“궁주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검윤상이 단지경을 향해 따지듯이 이야기하자 그 모습에 궁주의 호위무사들이 그를 제지하고 나섰다.

“검 장로! 아무리 비상 상황이라 하더라도 예를 갖추시오. 그대가 하는 행동이 얼마나 무례한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까?”

궁주의 호위대의 대장인 진성군은 검윤상의 행동을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

“흥, 지금 상황이 누구 탓에 비롯되었는지 모르는 것인가? 설응의 힘은 언제고 북해빙궁의 것이었다. 그 힘이 있었기에 북해빙궁의 궁주로서 인정을 받는 것인데 현 궁주는 그 힘을 잃은 지 오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빙궁을 이렇게 큰 위기에 직면하게 했는데 빙궁의 호위대는 그 허울뿐인 궁주를 지키겠다는 것인가?”

검윤상의 말에 진성군은 크게 분노했다. 아무리 현 상황이 위기라지만, 그의 행동은 궁주를 능멸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위 누구도 그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었다.

“감히! 그대가…….”

“됐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상황이 아니다. 자중하여라.”

“하지만…… 궁주님.”

진성군은 뽑아 든 검을 다시 집어넣은 채 주위를 둘러보았고, 현재 상황이 자신들에게 좋지 않음을 인식했다.

현 궁주인 단지경은 전대 궁주의 적통이긴 했지만 성격이 유약했고, 소궁주 시절에도 많은 이들이 궁주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가 많았었다.

특히 검윤상 장로는 전대 궁주의 사생아인 단경호를 후계자로 세워야 한다고 했던 인물로, 지금 상황에 이르자 궁주에게 책임 소재를 묻고 있는 것이었다.

‘좋지 않다…… 하필 조준혁이 궁에 없을 때 이런 일이…….’

진성군은 현재 궁에 없는 조준혁이 못내 아쉬웠다. 현 궁주의 의형제이자 빙궁의 실력자인 그가 있었다면 아무리 검윤상이라고 해도 이렇게 막 나가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그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즈음.

“설응 두 마리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누군가 소리쳤고 모두 그 모습에 놀라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잠깐. 누군가 타고 있다.”

하강하고 있는 설응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진성군은 모두가 설응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류했다.

빼액― 빼액―

하강하는 설응이 울자 모든 설응이 울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북해를 삼킬 듯이 크게 진동했다.

“크흑…….”

설응의 울음소리에 내공이 약한 자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응? 조 대주. 아니 아가씨도…….”

바닥에 착지한 두 마리의 설응에는 그들이 아는 자들이 타고 있었다. 진성군은 조준혁과 단채영을 발견하고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어떻게 된 일이요?”

조준혁과 단채영은 설응에서 내리며 많은 인물이 모여 있자 그들도 놀라고 있었다.

“저희는…… 설응의 우두머리를 찾아 돌아왔는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왜 이렇게 다들 나와 있습니까?”

조준혁은 모여 있는 자들의 면면을 살피며 얼떨떨한 마음에 진성군에게 답했다.

“아저씨, 잘 지내셨죠? 아버지도 나와 계시네? 우리가 돌아오는지 아셨던 건가요?”

단채영은 단지경을 발견하고는 총총걸음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단채영이 달려오자 단지경은 두 팔 벌려 그녀를 반겼고, 작은 키의 그녀는 그대로 폭 안겼다.

“이 천둥벌거숭이가 설원에 조사를 보냈더니 어디를 갔다 온 것이냐?”

“헤헤, 아버지가 기뻐하실 일을 하고 왔죠. 저기 저자가 설응 우두머리의 주인이에요.”

품에 안긴 단채영은 백아와 이윤후 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이윤후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백아에서 내린 후 유인경이 내리는 것을 잡아 주던 그는 모두의 시선을 느끼고는 멋쩍은 표정을 보였다.

“정말 저 설응이 현재 우두머리 설응이라고? 저자가 주인이고?”

단채영의 말에 놀란 단지경이 되물었고,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검윤상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모두, 저자를 잡아라!”

검윤상이 수하들에게 소리치자 그의 수하들이 순식간에 백아와 이윤후를 포위해 왔다.

“무슨 짓입니까? 검 장로.”

조준혁은 검윤상의 행동에 놀라 그에게 물었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 있었다.

빼액―

“피해요!”

조준혁은 백아가 울자 몸을 피했고 검윤상과 그의 수하들은 위에서 쏟아지는 기운에 하늘을 보았다.

“이런…….”

하늘을 날고 있던 설응들이 일제히 내려와 저공비행을 하며 검윤상과 그의 수하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응들이 내뿜는 기운에 온몸이 떨려 왔다.

“한낱 미물들이…… 감히…….”

검윤상은 침착하게 기운을 끌어 올리려 했으나 백아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행동을 멈추어야 했다. 마치 백아의 눈빛이 그를 겁박하듯이 옭아맸다.

“저것이 설응의 우두머리의 힘이구나…….”

단채영은 백아의 울음에 맞춰 움직이는 설응들의 행동에 감탄했다. 마치 무공을 익힌 무인들처럼, 설응들이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검진(劍陣)을 펼치듯 하늘을 유영하며 검윤상과 그의 수하들을 포위하고 있는 모습 또한 놀라웠다.

“검 장로님, 그만하십시오. 아가씨께서 손님으로서 데려온 분들입니다.”

조준혁은 백아와 검윤상이 눈싸움을 하는 사이에 끼어들었고 그를 만류했다.

“손님? 죽여서 설응의 통제를 찾아와야 할 문제인데 손님이라니?”

검윤상의 말에 조준혁은 낯빛이 바뀌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검 장로님, 제가 장로님에게 추궁받을 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분명 아가씨의 손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큭…….”

조준혁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검윤상은 잡힌 어깨를 부여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흥……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설응의 통제권을 잃은 궁주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오. 이 문제를 얼른 해결하지 못한다면…….”

“못한다면?”

검윤상은 조준혁과 궁주인 단지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궁주의 책임을 묻는 장로 회의를 건의할 것이오.”

“뭣이라?”

검윤상의 말에 조준혁은 물론 진성군도 분노하여 그를 단숨에 베어 버릴 듯했지만, 단지경이 그들을 막아 세웠다.

“검 장로가 경호를 믿고 이렇게 설치는 것이라면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단지경은 한 발짝 앞으로 나서 그의 곁으로 갔다. 그가 다가서자 알 수 없는 기운에 검윤상은 온몸이 찌릿함을 느껴야 했다.

‘이게 무슨 기운이란 말인가……? 이게 정말 유약하던 단지경이 맞는가?’

검윤상은 단지경의 기세에 눌려 뒷걸음질 쳤다. 그가 알던 궁주 단지경은 장자라는 이유로 북해빙궁의 궁주가 된 자로, 유약하여 빙궁의 인물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던 인물이었다.

‘무공이 형편없다고 하더니…… 이건 마치 전대 궁주를 방불케 할 정도의…….’

검윤상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를 중심으로 설응의 통제권을 잃은 궁주를 장로 회의를 통해 내치는 것을 은밀하게 협의 중에 있었는데, 그 전제 조건이 현 궁주의 무위가 형편없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검윤상 자신에게 느껴지는 단지경의 기세는 궁내에서 범인으로 평가하던 수준과는 전혀 달랐다.

“……궁주님, 제가 누구를 믿는다는 말입니까? 오해이십니다.”

검윤상은 납작 엎드리며 고개를 숙였고 그 모습에 단지경과 지켜보던 모든 인물들은 고소(苦笑)를 금치 못했다.

“그대와 몇몇 인사들이 은밀히 경호에게 접근하여 그 녀석을 움직이려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경은 검윤상을 향해 말하며 동시에 주위의 몇 명의 인물을 향해 시선을 주었고, 그의 시선을 받은 인물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숙인 채 단지경의 시선을 피했다.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겁니다. 내가 오래 참고 있으나, 인내심이 바닥이 나면 그대들을 어떻게 할지 모르니 말입니다.”

단지경의 힘 있는 말에 검윤상은 물론 지목된 몇 명의 인물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단지경은 검윤상을 뒤로한 채 갑자기 벌어지는 상황에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이윤후와 유인경의 앞으로 갔다.

이윤후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대충은 이해하고 있었다. 이미 단채영과의 대화 속에서 현 궁주의 입지가 탄탄하지 못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이거, 빙궁에 찾아온 손님들의 대접을 너무 소홀하게 하였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이윤후와 유인경은 단지경이 직접 예를 먼저 갖추자 재빨리 마주 예를 갖추었다.

“검성의 제자인 이윤후라고 합니다. 빙궁의 궁주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마련…… 아니, 유인경이라고 합니다. 빙궁의 궁주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유인경은 사마련의 소속이라고 소개를 하려다가 참아야 했다. 이미 사마련은 없어진 곳이기 때문이었다.

빙궁의 인물들은 두 사람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윤후가 검성의 제자임을 밝히자 모두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사라졌던 오절의 제자가 나타났음에 놀랐고, 그가 설응의 우두머리의 주인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라고 있었다.

“역시. 설응의 우두머리가 바뀐 것이 검성께 전했던 설응과 관련이 있을 듯했는데, 맞았군요.”

단지경은 말을 하며 이윤후의 뒤에 있는 백아를 보았으나 백아는 경계하느라 단지경을 곱게 보지는 않았다.

꾸륵―

“가능하면 설응에게 경계를 풀어 달라고 전해 주지 않겠습니까? 빙궁을 위협하는 기세가 사라져야 우리도 편히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을 듯한데 말이죠.”

단지경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고 이윤후는 백아의 곁으로 가 쓰다듬어 주었다.

“설마 저 많은 설응을 네가 부른 거야?”

꾸륵―

“괜찮으니 다 돌아가라고 해. 우리 걱정하는 것은 알겠지만, 빙궁에 폐가 되고 있으니 말이야.”

꾸륵―

백아는 이윤후의 말에 대답했고 지켜보던 빙궁의 사람들은 모두 신기한 듯이 그와 백아를 보고 있었다.

빼액―

백아가 하늘을 향해 크게 울자 낮게 선회하고 있던 설응들이 일제히 하늘로 솟구쳐 날아올랐고 이내 퍼지며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빙궁의 사람들은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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