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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30화 (30/251)

30화― 백아를 찾아(4)

“설응의 외피는 보통 무기로 베기 힘든데 왜 거기서 검을 휘둘러요?”

“……막상 달려드니 손부터 나가 버리네요. 사실 얘기만 들었지 그렇게 설응을 상대할 일이 있었나요. 저희가.”

체면을 구긴 조준혁은 몸을 일으켰다. 북해설응이 전투 상태로 들어갔을 때 외피의 단단함은 상상을 불허한다.

사실상 조준혁도 듣기만 했지 설응과 싸울 일이 없으니 설마 자신의 검을 튕겨 내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정확하게는 설응이라서 그의 검을 튕겨 낸 것이 아니라 백아였기에 가능했던 것이긴 했다. 백아가 상처 입고 돌아왔을 때 오행상생으로 이윤후가 치료했고 그 과정에서 유인경과 마찬가지로 백아의 몸엔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

“조 대주도 저자를 시험하는 건 그 정도로 됐잖아요. 이제 대화를 해야죠.”

“네…… 아가씨.”

조준혁은 뭔가 꺼림칙한 듯 답했다. 분명 이윤후의 검은 느렸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닿지 않았다.

하지만 싸움이 계속되었다면 자신이 정말 이겼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멀리 떨어져 지켜만 봤던 단채영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직접 검을 섞으며 상대한 조준혁은 이윤후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윤후에겐 단순 내공 따위의 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검에 대한 재능이 숨어 있음을.

유인경도 이윤후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그는 조준혁의 공세를 피하다 보니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보통 고수가 아닐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 소협이 반격도 제대로 못 하고 이렇게 되다니…….’

유인경은 조준혁을 보았다. 그는 백아에게 놀라 땅에 주저앉기는 했지만, 흙이 묻은 것 외엔 땀방울 하나 흘리지 않고 있었다.

꾸륵―

백아는 단채영과 조준혁이 다가서자 경계하며 큰 날개를 펼쳐 상대를 겁을 주듯이 위협했고, 그 모습에 다가서던 두 사람은 백아의 눈치를 봐야 했다.

“도대체 왜 빙궁에서 백아를 원하는 거죠?”

지쳐 있는 이윤후를 백아에게 맡기고 유인경이 나섰고 백아는 다시 펼쳤던 날개를 접어 이윤후를 감싸 안았다.

“저 설응의 이름이 백아인가요?”

유인경의 말에 단채영은 고개를 돌렸으나 살기를 내비치는 백아와 눈을 오래 마주치고 있지 못했다.

“흠, 하여간 저 설응 때문에 지금 빙궁에 문제가 생겼어요. 우리에게 저 설응…… 아니, 백아를 내주세요.”

“아니, 그게 무슨 태도인가요? 백아가 물건도 아니고 내놓으라니. 그리고 백아는 이 소협의 사부께서 빙궁의 궁주에게서 받은 설응의 후손이라고 들었어요. 왜 빙궁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죠?”

꾸륵―

이윤후를 감싸 안고 있던 백아는 유인경이 말이 맞는다는 듯 울었고 그 반응에 신기해 단채영은 조준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설응이 저렇게 주인에게 순종적인 영물이었던가요?”

“아니요. 주인과 교감을 나누기는 하지만…… 보통은 저렇지 않죠.”

두 사람은 백아가 이윤후를 품에 안은 채 보호하려는 듯한 모습이 신기했다. 설응은 호전적이고 전투적인 영물이라 주종 관계를 맺기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빙궁에서도 대대로 내려오는 설응을 무리의 우두머리로 만들어 이용해 왔었다.

궁주 일족과 대주들의 설응도 북해빙궁의 궁주 일족에 내려오는 설응의 후손들이었기에 주종 관계를 맺는 게 가능했으나. 야생의 설응은 주종 관계를 맺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도 했다.

“점점 더 탐이 나요…….”

그녀의 눈이 초롱초롱 빛이 나자 조준혁은 살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궁주 일족의 설응을 자신의 설응으로 삼지 않고 야생의 설응과 주종 관계를 맺겠다며 설원을 헤집고 다닌 적이 있었고, 그로 인해 자신도 그 어처구니없는 일에 끌려다녀야 했었다.

야생의 설응을 잡는 일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남의 설응을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고 나오는 단채영이 그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생각 접으세요. 지금 우리로서는 저 설응을 강제로 데려가기도 힘듭니다.”

조준혁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했고 단채영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욕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백아를 데려갈 순 없을 겁니다.”

이윤후는 백아의 품에서 벗어나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엔 서려 있던 한기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꾸륵―

백아는 그가 걱정되는지 울었고, 이윤후는 괜찮다는 듯 백아를 한 차례 쓰다듬고는 단채영과 조준혁 앞에 나섰다.

“흠, 이 사실은 빙궁의 극비 사항이라 말하기 힘들지만…….”

단채영은 유인경을 보며 눈짓을 보냈고, 이윤후도 그녀의 말뜻을 금세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전음으로 하죠.”

“그래요.”

유인경은 단채영의 말이 자신은 들으면 안 된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두 사람이 전음으로 이야기하겠지만 일단 뒤로 물러나 백아의 곁으로 갔다.

[소협은 북해빙궁이 설응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알고 있나요?]

[아니요. 그저 북해빙궁에서 설응을 전투와 이동에 사용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빙궁은 설응을 그렇게 이용하는데 개체 수가 늘 백 마리 정도 유지되는 설응을 통제하려면 우두머리 설응이 필요해요. 설응들은 우두머리 설응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따르는데, 빙궁의 궁주의 설응이 늘 그 우두머리였죠.]

단채영의 말에서 이미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알아채었던 이윤후는 등 뒤의 백아를 보았다.

[오 년 전부터 설응의 우두머리가 궁주인 아버지의 설응에서 다른 설응으로 바뀌었어요. 그 때문에 북해의 모든 설응이 빙궁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버렸죠.]

이윤후는 그제야 왜 백아가 가끔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는지 이해가 갔다.

[그쪽의 설응…… 백아가 현재 설응의 우두머리예요. 빙궁에서는 설응의 통제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에요. 처음에야 우리 쪽 설응이 다시 우두머리가 될 수 있도록 영약을 먹이고 훈련을 시켰지만 우두머리 도전에 늘 패하고 돌아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왔어요.]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백아는 물건이 아닙니다. 제가 빙궁에 돌려줄 수도 없고 그러지도 않을 겁니다.]

단호한 이윤후의 말에 단채영은 고운 아미(蛾眉)를 치켜올렸다.

[현재 궁주이신 아버지는 설응의 통제권이 없는 바람에 곤란한 지경에 빠지셨어요. 그쪽의 스승이 전 빙궁주에게 선물받은 거라면 돌려줄 수도 있는 게 아닌가요?]

억지를 부리는 단채영의 모습에 이윤후는 얼굴을 굳혔다.

[어차피 원하는 게 설응의 통제권이라면 백아가 우두머리에서 물러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거야 그렇죠. 그렇게 해 줄 건가요?]

단채영은 이윤후의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윤후의 말처럼 억지로 데려가지 않아도 백아가 우두머리에서 물러나 준다면 해결이 될 일이긴 했다.

이윤후는 백아를 살짝 쳐다보고는 다시 단채영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아에게 그렇게 하도록 하죠. 어차피 저 녀석은 우두머리가 될 생각도 없었을 거예요. 단, 거부한다면 피를 봐야 할 겁니다.]

[그렇게만 해 준다면야…… 더 바랄 게 없기는 한데…….]

단채영은 조준혁에게 달려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이윤후도 백아의 곁으로 갔다.

“너, 피투성이로 돌아올 때부터 무언가 수상하다 했더니 그 먼 곳까지 가서 일을 저지르고 왔던 거였어?”

꾸륵―

이윤후가 백아의 목을 끌어안은 채 이야기하자 백아는 낮게 울었다.

“저 사람들이 너 때문에 곤란하다고 하니까 해결해 주도록 하자. 빙궁의 궁주께서 사부님에게 선의(善意)로 너의 부모를 선물 주었던 건데, 네가 빙궁을 곤란하게 하면 사부님의 입장도 곤란하실 거야.”

사패 중 하나인 북해빙궁과 척을 지기보단, 백아를 설득하는 편이 더 유리한 선택이었다.

꾸륵―

백아는 이윤후의 말을 알아듣는 듯 울자 그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유인경은 궁금해서 이윤후의 뒤통수만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과 한 마리 새는 그녀의 존재는 잊은 듯 둘이 부둥켜안은 채 쓰다듬고 있었다.

이윤후가 백아와 떨어지자 유인경은 그에게 모든 것이 궁금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윤후는 그녀를 뒤로한 채 단채영의 곁으로 갔다.

“너라도 이야기 좀 해 주지 않으련…… 궁금해서 미칠 거 같아.”

꾸륵―

유인경은 백아를 붙잡고 하소연하다가 그런 자신이 웃기는지 금세 제정신 차리고 이윤후와 단채영 쪽을 보았다.

“소협의 말대로만 된다면 빙궁에서는 저 설응에 관한 일을 그냥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조준혁이 나서서 말했고 그의 말에 이윤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조준혁도 이윤후가 자신의 말에 기분 나빠함을 알았기에 말을 바로 이어 나갔다.

“빙궁에서는 이 건이 중대 사항이기에 분명 저 설응을 죽여 설응의 통제를 바로잡으려 할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소협께서 협조를 해 주신다 하셨기에 저희는 그 뜻을 빙궁에 전해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조준혁의 말은 정중했지만 이윤후에게 충고 내지는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준혁에 이어 단채영까지 상대하게 된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다.

단채영이 옷 속에 숨기고 있는 무언가를, 이윤후는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조준혁보다 강하진 않겠지만, 만만치 않은 상대임이 분명했다.

“이 소협은 저희와 빙궁으로 가시죠.”

“지금 말입니까?”

“네. 지금이요.”

조준혁의 말에 이윤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희가 먼저 이 소협과 저 설응을 찾아온 것이 맞긴 하지만 빙궁에서 언제 사람들을 보낼지 모릅니다. 그 전에 가서 마무리하는 게 소협에게도 좋을 겁니다.”

조준혁은 말을 하면서도 어쩌면 벌써 빙궁에서 백아를 잡기 위한 행동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우두머리 설응을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궁내에 가득했고, 현 빙궁주는 자신의 설응이 다시 우두머리 자리를 찾아오길 믿으며 기다려 왔었다.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빙궁 내에서 궁주에 대한 불신까지 쌓일 정도가 되었고,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오고 있었다. 자신이 단채영 때문에 궁을 나서기 전까지도 그 일로 시끄러웠었다.

이윤후도 당장 가야 한다는 이야기에 유인경 쪽을 보았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 채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고, 빙궁에 가야 한다는 말에 놀란 듯 보였다.

“이름을 걸고 안전 보장을 맹세한다면 가겠습니다.”

“그러지요. 설풍대 대주인 나 조준혁이 그대들과 설응의 안전을 보장하겠소.”

“……일행과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이윤후는 조준혁과 단채영을 향해 양해를 구하고 유인경의 곁으로 갔다.

조준혁과 단채영의 말처럼 빙궁에서는 백아가 설응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 큰 문제였고, 당장 해결해야 될 사안이었기에 이윤후가 빙궁에 가는 것을 미루기엔 힘들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유인경을 설득해야 했다. 이미 장가철장에서 받은 의뢰 물품도 있었기에 위험할지도 모르는 유인경을 혼자 보낼 수도 없었다.

“유 소저, 이미 이야기를 들어 아시겠지만 백아의 문제 때문에 빙궁으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 괜찮을까요?”

이윤후는 말을 하고는 유인경의 눈치를 살폈다.

“저는 상관없어요. 설마 저를 이곳에 두고 간다는 이야기는 아니시죠?”

“물론이죠. 같이 서안으로 가야 하는데, 혼자 보내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백아를 타고 가야 할 듯하니 빙궁에 갔다가…… 바로 서안으로 백아를 타고 가면 될 듯한데요.”

“정말요?”

유인경은 백아를 탈 수 있다는 말과 빙궁에 들렀다가 서안으로 바로 간다는 말에 기뻤다. 귀하게 자라 온 그녀다 보니 여행이 길어져 모든 것이 불편했고 남자와 단둘이 긴 여정을 가다 보니 생리 현상부터 모든 것이 껄끄러웠다.

“그런데 무슨 거래를 한 거예요? 백아 문제로 이야기하는 듯한데…….”

“그것도 이동하면서 알려 주겠습니다. 저쪽 일부터 얼른 처리하죠.”

“네. 그래요.”

이윤후는 유인경과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단채영에게로 갔다.

“지금 바로 이동할 건가요?”

“바로 가야죠. 어차피 지체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단채영은 이윤후의 물음에 답하고는 조준혁에게 무언가를 지시했고 조준혁은 무언가를 꺼내어 세차게 불었다.

‘설응을 부르는 도구인가 보군.’

이윤후는 조준혁이 사용한 도구가 설응을 부르는 물건이라고 짐작했다.

한 식경이 지나지 않아 그들을 태워 주고 사라졌던 설응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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