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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29화 (29/251)

29화― 백아를 찾아(3)

꾸르륵―

백아는 어제 피투성이가 된 채 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유인경은 그 모습에 의아해했으나 설응 자체가 회복이 빠르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하지만 백아의 빠른 회복은 이윤후의 만상오행공 덕분이었다.

게다가 백아는 단순히 회복된 것뿐 아니라 기운이 이전보다 더욱 강건해져 있었다.

무리 없이 움직이며 유인경과 놀고 있는 백아를 바라보며 이윤후는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사부님은 말도 안 되는 무공을 만드신 건지도 모르겠군…….’

무림에 대한 경험이 없는 그였지만, 무림을 떠나서라도 오행상생을 통한 치료가 이렇게 효과가 있다면 경이적인 발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유인경의 말처럼 잠재력까지 건드리는 치료법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이윤후는 다시 한번 오행의 상생 치료를 자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서두르면 해가 지기 전에 무한에 도착하겠는데요?”

“그러게요. 백아의 치료 때문에 조금 더디어지긴 했지만 그렇게 늦어지지는 않았네요.”

백아가 피투성이가 되어 나타난 탓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금세 기력을 회복했기에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꾸륵―

퍼드득―

유인경을 졸졸 쫓아다니던 백아가 갑자기 먼 곳을 쳐다보며 경계하더니 큰 날개를 펼쳤고 이에 두 사람도 놀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어요.”

이윤후는 백아가 경계하는 이유를 눈치챘다. 하늘에서 무서운 속도로 무언가 날아오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설응……?”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거조(巨鳥)였다.

빼액―

갑자기 백아가 세차게 울자 다가오던 설응이 하늘에서 멈추더니 움찔거렸다. 날아온 설응은 다름 아닌 조준혁의 설응이었고 등 뒤엔 그들이 타고 있었다.

* * *

“왜…… 이래요?”

“은설이 우두머리인 저 설응의 울음에 겁을 먹은 거 같습니다. 은설을 타고 저기까지 가는 것은 무리인 듯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여긴 하늘, 어……?”

단채영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준혁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그대로 설응 등에서 일어섰다.

“넌 그만 돌아가거라. 여기 있어 봐야 도움도 되지 않으니.”

조준혁은 은설의 등을 한 차례 쓰다듬고는 아래로 뛰어내렸고 단채영은 놀라 눈을 감았다. 그나마 은설이 최대한 땅과 가깝게 내려서긴 하였으나 여전히 높은 위치였다.

하지만 조준혁은 그대로 경공을 펼쳐 큰 나무 위로 몸을 날렸고, 나무의 잔가지를 재차 밟으며 낙하의 가속을 줄여 안전하게 땅에 내려섰다.

빼액―

은설은 조준혁과 단채영이 무사히 땅에 착지하는 것을 보고는 한 차례 울고는 사라졌고, 백아는 그 모습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저들은 누구죠? 갑자기 설응을 타고 나타나다니…… 빙궁의 사람일까요?”

“그렇겠죠.”

유인경의 물음에 이윤후의 표정이 긴장한 모양새가 되었다. 누구를 상대하던 늘 여유 있었던 이윤후였지만, 상대의 무위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했다.

만상오행공을 익힌 덕에 상대에 대한 기운을 잘 느낄 수 있게 된 이윤후는 조준혁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에 긴장하고 있었다.

땅에 안전하게 내려선 조준혁은 단채영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녀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조준혁의 실력을 믿고 있었기에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았었다.

빼액―!

“크흑…….”

“아악…….”

백아는 그들을 보고 매섭게 울었다. 그 울음은 조준혁과 단채영의 내부를 뒤흔들릴 정도로 강력하게 들려왔다.

“설응의 우두머리가 될 만한 녀석이군요. 울음으로 이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다니…… 은설이 다가오지 못하고 망설인 이유를 알겠네요.”

조준혁은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그러니까 더욱 우리가 잡아야죠.”

단채영은 백아를 보고는 더욱 욕심이 생겼다.

설응의 우두머리는 늘 궁주 일족의 소유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저 설응으로 인해 북해설응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동안 설응들을 통제하여 전투나 이동에 사용해 왔는데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그쪽은 도대체 누구기에 이렇게 우리 앞길을 막는 거죠?”

유인경은 말없이 저들을 지켜보는 이윤후 대신 먼저 나섰다.

“아, 당신이 흑월도존의 손녀인 유인경인가 보군요?”

“그걸 어떻게……?”

단채영은 개방에서 들었던 것을 말했고, 유인경은 자신을 아는 단채영에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아……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단채영은 조준혁을 보았으나, 그는 괜찮다는 듯 그녀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쪽들은 빙궁의 사람들인가요?”

입을 닫고 있던 이윤후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고, 그제야 조준혁도 나섰다.

“그렇소. 저 설응의 주인이 소협이요?”

조준혁은 그들의 뒤에서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는 백아를 가리켰다.

꾸륵―

백아는 두 사람을 계속 경계하며 울었다.

“백아는 사부님께서 내게 남겨 주신 친구입니다. 주종 관계가 아닙니다.”

이윤후의 말에 단채영은 앞으로 나섰다.

“우린 그쪽의 설응에게 볼일이 있어요. 저 설응을 우리에게 넘겨주세요.”

“싫다면?”

스릉―

이윤후는 바로 검을 뽑았다. 상월은 검집에서 나오자마자 이윤후의 감정과 반응하듯 한기(寒氣)를 뿜어내며 공기를 얼려 갔다.

“저 검이 빙정(氷晶)으로 만들어진 검인 거죠?”

이윤후가 검을 뽑자 단채영과 조준혁이 상월에 관심을 보였다. 빙정은 빙궁에서도 귀한 희귀 광물이었기에 실제로 눈앞에서 보자 더욱 흥미로웠다.

“빙정은 한기를 머금은 광물입니다. 저렇게 제련했다는 것도 놀라운데 검에서 느껴지는 저 기운은 믿을 수가 없군요.”

조준혁은 개방에서 이윤후가 빙정으로 만든 검을 들고 있다기에 사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겨 신경도 안 쓰고 있었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니 검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이윤후가 검을 뽑자마자 검의 주위 공기가 얼어붙고 있음이 보였다.

“흥, 당장 저 매 대가리를 비틀어 버리지요.”

단채영이 나서려 하자 조준혁은 그녀를 막아 세웠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아가씨.]

이미 조준혁은 이윤후가 검을 뽑는 순간부터, 검을 마주하고 싶어 하고 있었다.

“저 뒤에 설응이 가만히 안 있을 기세인데, 혼자 괜찮겠어요?”

“아가씨를 지키는 게 제 임무입니다.”

조준혁은 백아 쪽을 쳐다보았다. 이미 백아는 털을 빳빳하게 세운 채 여차하면 달려들 기세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일개 짐승이 뿜어낼 수 있는 기세가 아니었다. 보통 무인들이었으면 백아가 노려보는 기운만으로도 온몸에 압박을 느껴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버지의 설왕(雪王)이 몇 년간 패배한 이유를 알겠네요.”

단채영은 백아를 보고는 낮게 말했다. 그녀가 말한 설왕은 현 궁주인 단지경의 설응으로, 백아가 설응의 우두머리가 되기 전까지 설왕이 설응의 우두머리였다.

하지만 갑자기 나타난 백아의 존재로 인해 우두머리의 자리를 빼앗겼고, 그 후 주인이 있는 설응들 외엔 모두의 통제권이 빙궁에게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 후 계속 백아에게 설왕이 도전을 해 왔지만 매번 패배하며 피투성이가 된 채 빙궁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처음에야 단지경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설왕이 다시 우두머리의 자리를 찾아오길 바랐지만, 몇 년이 지나가자 빙궁에서도 급해진 것이었다.

대대로 궁주에게 존재했던 설응의 통제권이 없다는 사실도 단지경에게 큰 압박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릉―

조준혁이 검을 뽑아 자세를 잡았고, 두 사람이 대치하자 유인경과 단채영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백아는 이윤후가 걱정되는 듯 어떻게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였으나 유인경이 그런 백아의 곁으로 가 진정시켜 주었다.

“네 주인의 실력을 일단 보자. 위험해지면 그때 도와주면 되니까.”

유인경은 백아를 쓰다듬으며 말했고 백아는 이윤후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 * *

대치 상황 중, 이윤후는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북해빙궁이 백아에게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상대는 백아를 찾아왔고 자신을 백아를 지킬 것이다. 각자의 사정을 늘어놓아 봐야 낭비일 뿐.

이윤후의 눈에 푸른 한기(寒氣)가 서렸다. 상대가 살기를 보이는 이상 평소처럼 웃는 얼굴일 수 없었다.

그런 이윤후를 노려보던 조준혁은 자세를 숙이며 검을 검집에서 슬며시 잡아당기려 했다.

그 순간.

타닥―!

찰나의 순간, 조준혁은 땅을 박차며 공간을 격해 이윤후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어느새 뽑았는지 그의 검첨은 이미 이윤후의 목을 찔러 가고 있었다.

상대의 인지를 벗어나는 발검술, 이것이 조준혁에게 은설풍이란 별호가 붙은 이유. 여태껏 그의 발검을 막은 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는 검성이 인정한 이윤후였다.

채앵!

이윤후는 제자리에서 상월을 종(縱)으로 쳐올려 조준혁의 검을 튕겨 내었다.

극쾌(極快)의 묘리가 담긴 검이었기에 오대세가 출신이 아닌 이윤후가 육안으로 보고 막을 순 없었다.

다만, 상대의 보법을 통해 검의 위치를 예지(豫知)했을 뿐!

“이런 말도 안 되는…… 큽!”

검이 마주치는 순간, 조준혁은 검신과 자신의 손이 얼려져 있음을 깨닫고 거리를 벌려 뒤로 물러났다.

촤앙―

조준혁은 검을 잡은 손에 기를 집중시켜 얼어 버린 검과 손을 털어 낸 뒤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지켜보던 단채영도 그 모습에 놀라 이윤후의 검을 자세히 쳐다봤다.

“……검에 그냥 부딪치면 안 되겠군.”

조준혁은 낮게 읊조리고는 다시 움직였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근접했고, 검을 휘둘러 이윤후의 목을 노려 왔다.

이윤후는 가볍게 몸을 뒤로 물린 뒤, 다리를 향해 오는 조준혁의 검을 다시 한번 막았다.

채앵―!

두 사람이 그렇게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조준혁이 검과 손에 기를 집중시켜 상월의 한기에 대항하였기에 조금 전처럼 어는 모양은 보이지 않았다.

조준혁의 검을 곧잘 피해 내고 있는 이윤후였지만, 겉으로만 보기엔 막기에 급급했고 공격다운 공격은 하지 못한 채 방어 일변도로만 보였다.

“검성의 제자라더니 실력은 그리 뛰어나지 못하네.”

그러나 만약 그녀의 무공 수준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이윤후가 보이는 움직임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공도 경험도 모두 조준혁의 우위였지만, 이윤후는 뛰어난 오성을 통해 바둑을 두듯, 서너 수 뒤의 검로를 예측하며 회피하고 있었다.

“후…….”

정작 공격 일변도로 상대를 몰아치는 조준혁이었으나 그의 얼굴엔 경탄만이 서려 있었다. 아무리 검성의 제자라 하나 상대는 약관이 채 되지 않았고, 자신은 북해빙궁의 대주였다.

그런데도 자신의 검은 허공만 벨 뿐이었다.

‘분명 내공도 경험도 나의 우위. 그런데도 내 검을 피하고 있다는 건…….’

그렇게 조준혁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뒤로 물러나려는 찰나.

빼액―!

“……!”

지켜보던 백아가 갑작스럽게 뛰쳐나와 커다란 날개를 조준혁에게 휘둘렀다.

촤자작―!

“컥……!”

조준혁이 짓쳐들어오는 설응의 날개 앞으로 검을 들었으나 단단하게 강화된 깃털을 베지 못하여 튕겼고, 백아의 발톱이 자신에게 덮쳐 오는 것을 마주해야 했다.

“그만 물러나!”

이윤후의 말과 함께 백아는 멈추었다. 백아의 크고 날카로운 발톱은 조준혁의 얼굴을 뭉개기 직전이었다.

꾸륵―

백아는 그대로 물러나 뒤뚱거리며 이윤후의 곁으로 갔고, 그런 백아를 그는 쓰다듬어 주었다. 단단하게 강화되었던 백아의 깃털은 벌써 부드럽게 변해 전투 상태를 푼 상황이었다.

“괜찮나요! 조 대주!”

단채영은 쓰러져 있는 조준혁에게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상처를 입지는 않았지만, 놀라 바닥에 주저앉은 것 자체가 그의 굴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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