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백아를 찾아(2)
“현재 파악하기로는…… 그는 서안으로 이동 중입니다.”
“서안이요? 서안이면 무림맹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조준혁은 지천 개의 말에 부담을 느꼈다. 서안이라면 정파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자신들이 서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서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나야겠군요.”
“흠, 이동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재 안휘성을 지나 호북성으로 들어가고 있단 보고를 받았으니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지천 개의 말에 조준혁과 단채영은 서로를 보았다.
“조금 전에 말했던 이윤후라는 인물이 유명인과 동행 중이라는 것은 무슨 이야기죠?”
단채영은 지천 개가 말했던 부분 중 신경 쓰였던 부분이었기에 물었다.
“흐음, 이건 꽤 비싼 정보인데요.”
지천 개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흥정하는 장사꾼의 모습을 보였다.
“원하는 게 무엇이오?”
조준혁의 말에 지천 개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입을 열었다.
“빙궁에서 그를 찾는 이유를 말해 주십시오.”
“그건…….”
지천 개의 말에 조준혁은 곤란한 듯 표정을 보였고 자신도 모르게 또 단채영을 보았다. 단채영은 그런 조준혁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말해 주면 우리가 원하는 정보를 다 내어 줄 겁니까?”
결국 단채영이 나섰고 지천 개도 이미 그녀가 조준혁보다 신분이 위임을 예상하였기에 그녀가 나서는 것에 의문을 달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어차피 그자를 찾아가실 예정이라면 만날 때까지 계속 위치 정보를 드리지요. 우리 쪽 수하들이 이미 그를 따르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천 개는 일이 순조롭게 되어 가는 듯하자 기분이 좋았다. 빙궁이 무림에 등장하지 않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는데, 그들이 찾는 자가 개방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사내라는 점이 더욱 흥미로웠다.
“좋아요. 정보를 주세요.”
단채영이 대화를 주도하자 조준혁은 괜히 걱정스러웠으나, 눈치 없는 그만이 이미 단채영의 신분이 들통난 지 오래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현재 설응의 주인으로 보이는 이윤후라는 사내는 한 여인과 동행 중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의 신분이…….”
지천 개가 말을 하며 잠깐 뜸을 들이자 성격이 급한 단채영은 화를 참아야 했다.
“흑월도존(黑月刀尊)의 손녀인 유인경입니다.”
“흑월도존? 사파 지존의 손녀란 말이요?”
지천 개의 말에 조준혁이 놀라 물었다.
“사파의 지존의 손녀였었죠…….”
“응? 그게 무슨 말이요?”
지천 개가 과거형으로 말하자 조준혁이 다시 물었다.
“현 사파의 상황을 잘 모르시는군요?”
지천 개는 조준혁과 단채영이 자신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하자, 그들이 무림의 상황에 어둡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현재 사마련은 해산했습니다. 흑월도존 역시 병상에 들었다는 소문만 무성했는데 사마련이 해산하고 행방이 묘연해졌고요. 이미 죽었다는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는 상황이지요.”
조준혁과 단채영 모두 지천 개의 말에 놀라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단채영의 설응들의 상황을 살피는 임무 때문에 몇 달째 설원에서 살았던지라 그간 무림 상황이 급변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여간 사마련이 해산하면서 흑월도존의 손녀의 행방이 묘연했는데, 이윤후라는 자와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그자도 사파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겠군요.”
“저희도 그쪽에 가능성을 두고 조사를 해 봐야겠지요. 원래는 빙궁의 인물일 거라 생각하고 그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는데 빙궁에서 확실히 확인해 주셨으니 그 가능성을 배제하여야죠.”
지천 개도 이윤후에 대한 신원을 확신하고 있지 못하기에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사파의 인물은 아닐 가능성이 클 거예요. 사파로 국한하지 말고 전체 가능성을 두고 조사를 하세요.”
“왜죠?”
지천 개는 단채영의 말에 약간 의구심이 생겼다. 빙정으로 만든 검과 설응으로 인해 빙궁의 가능성을 크게 확신하고 있었지만 아니었다. 그렇다면 유인경과의 친분상 사파의 가능성을 두고 조사하는 편이 빨리 신원 파악하는 데 좋았다.
“빙궁에서 설응을 선물했던 무림인은 한 명뿐이에요. 그러니 그자는 ‘그분’의 제자일 가능성이 크겠죠.”
“빙궁에서 설응을 선물한 사람이 있었나요?”
지천 개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도 그런 개방의 기록은 본 적이 없었다. 개방의 비밀 정보까진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신분이 가능한 모든 정보는 머릿속에 있었다.
“전대의 궁주께서 검성에게 선물한 적이 있어요. 우린 그 설응의 새끼를 되찾으러 왔습니다.”
“헉, 사실입니까?”
지천 개는 단채영의 말에 기겁했다. 단채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필 이 시기에 검서으이 제자가 출현했다니, 게다가 검성의 제자가 흑월도존의 손녀와 동행 중이라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 정도 정보라면 우리가 얻고자 하는 정보의 값은 되었겠죠?”
“무, 물론입니다. 제가 모든 개방에 연락해 둘 터이니 정보가 필요할 때마다 개방에 들러 알고자 하는 것을 물으십시오.”
지천 개는 자신이 아는 정보를 빨리 본방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지금 그들의 이동 거리로 유추해 보면, 내일쯤 무한(武漢)에 도착할 겁니다. 그러니 서두르셔야 할 겁니다.”
지천 개는 정보를 주고받았으니 그다음 일은 별로 상관치 않았다. 거리로 계산해 본다면 이윤후 일행이 서안에 도착하기 전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무한에 가면 만날 수 있다는 거죠?”
“그렇죠. 조금 전 정보를 봐서는 내일 정오가 지난 시각이면 아마도 무한에 도착할 거라 하더군요.”
지천 개의 말에 단채영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조준혁을 보았다.
[여기서 설응을 불러 무한까지 이동 가능해요?]
눈치 없는 조준혁이라도 지천 개와 단채영의 대화 속에서 이미 그녀가 이렇게 나올 것을 예상하였다.
[가능이야 하지만…….]
조준혁은 무림에서 설응을 데리고 다니는 자체가 부담스러웠기에 단채영의 말에 확답을 못 했다. 무림은 사패의 한 곳인 북해빙궁에 대한 경계가 대단하기에 너무 눈에 띄면 자칫 분란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조준혁으로서는 최대한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이동만 해요. 그자를 안 잡을 거예요? 여기까지 와서?]
[음…… 알겠습니다.]
조준혁으로서는 단채영을 말리기도 힘들었기에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단채영과 무림에 나온 순간부터 그녀를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원하는 정보를 교환했으니 저희는 이만 가 볼게요.”
단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조준혁도 그녀를 따라 일어났다.
“……그들이 지금 무한으로 가는 건 맞는 정보겠죠?”
“네. 물론이죠. 그들이 동선상 반드시 내일이면 무한을 거쳐서 서안으로 이동하려 할 겁니다. 아마 무한에서 숙식을 해결할 것이고요.”
지천 개는 대답을 하면서도 단채영이 이것을 묻는 이유가 궁금했다. 사패 출신이기에 개방의 신용을 모르는 것일 수도, 일이 잘못되었을 시 자신에게 책임을 물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의 머릿속 주판이 빠르게 돌아가는 사이 단채영과 조준혁이 방을 빠져나갔고, 지천 개는 황급히 수하의 거지 하나를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본방에 이것을 전하도록 해. 그리고 방금 나간 저들에게 미행을 하나 붙여라.”
지천 개는 급하게 서찰 하나를 써서 그에게 전했다.
“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명을 받은 거지가 빠져나가자 지천 개는 생각에 빠졌다.
‘분명 어린 여자아이 쪽이 높은 신분인 거 같았어. 은설풍보다 높은 신분의 여인이라면 하나밖에 없지.’
은설풍은 북해빙궁에서 손에 꼽히는 고수였고, 그런 그가 수행할 만한 여인은 궁주 일족밖에 없었다.
지천 개는 생각을 마치고 작은 종이 하나를 꺼내어 무언가를 적은 뒤, 어디론가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타를 빠져나간 지천 개는 인적이 없는 곳으로 움직여 허름한 폐가에 도착했다. 그는 방의 구석에 무언가를 숨겼다.
지천 개는 이내 폐가를 빠져나갔고, 그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폐가 안으로 들어갔다.
* * *
“아가씨, 이번에 정말 설응으로 이동하실 겁니까?”
개방의 분타에서 나온 단채영을 뒤따르던 조준혁이 물었고 그 물음에 단채영은 앞서가다 홱 뒤를 돌아보았다.
“그럼, 걸어가다 그들을 놓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시간 여유가 있던가요?”
“그거야…….”
단채영의 말이 맞으니 조준혁은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와 단채영은 얼른 일을 마무리 짓고 빙궁으로 돌아가야 했다. 빙궁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무림에 나와 있는지라 빙궁에 알려져도 큰일이고, 무림에 자신들의 소문이 나더라도 문제가 될 게 분명했다.
단채영의 말대로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지으려면 이윤후를 만나 설응에 관한 것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알겠습니다. 설응을 부르겠습니다.”
조준혁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개방에서 우리에게 사람을 붙인 거 같죠?”
단채영의 말에 조준혁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뭐, 그들로서 저희 움직임이 궁금하긴 하겠죠.”
조준혁도 이미 개방의 분타를 나서는 순간부터 따라붙고 있는 거지들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개방에서 냄새를 맡기 전에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설응을 이용해 얼른 가자고요.”
조준혁도 더는 단채영의 부탁을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지천 개와의 대화 속에 자신들이 설응을 되찾으러 왔음은 밝혔으나, 왜 되찾으려 하는진 말하지 않았다. 사실 그것까지는 말할 수가 없었다.
현재 북해설응의 우두머리가 바뀌었고, 그로 인해 설응의 통제력이 북해빙궁에 없음을 무림에서 안다면 큰 문제였으니까.
빙궁 전력의 절반이 북해설응의 활용에 있었다. 설응을 통한 빠른 이동과 설응 그 자체에 강력함은 빙궁의 큰 강점이었다.
“저들을 처리하도록 해요. 조 대주.”
“네.”
단채영의 명에 조준혁은 답했다. 사람이 많은 곳을 빠져나가 한적한 곳으로 접어들자 조준혁이 잠시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단채영 곁으로 왔다.
“죽이지는 않았죠?”
“네. 개방과 마찰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요. 잠깐 기절만 시켜 두었습니다.”
단채영과 조준혁은 개방의 미행을 처리하고는 가까운 산으로 향했고, 어느 정도 산중에 접어들자 조준혁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삐익―
날카로운 소리가 산을 울렸고 단채영과 조준혁은 하늘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얼마 후 하늘에서 설응이 나타나 그들을 향해 서서히 하강해 왔다.
“은설(銀雪), 너무 자주 불러내어 미안하구나.”
꾸륵―
땅으로 내려온 설응은 조준혁에게 다가가 그의 품에 안기었다. 은설이라 이름 붙여진 설응은 조준혁의 개인 설응이었다. 빙궁의 궁주 일가와 각 대주만이 설응의 소유권을 가지는데, 조준혁도 대주의 일인으로 설응의 소유권자였다.
“얼른 이동해요.”
단채영은 조준혁의 소매를 당기며 보채었다. 성격이 급하기도 한 그녀였지만 무엇보다 설응을 타는 것을 좋아했기에 빨리 타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 조준혁이었기에 은설을 앉게 하고 그녀를 설응의 등에 태운 뒤 자신도 따라 올랐다.
두 사람 다 자신의 등에 태운 은설은 커다란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날 준비를 했다. 부드럽던 깃털이 단단하게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설응이 먼 거리를 날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꽉 잡으세요.”
조준혁의 말에 단채영은 은설에 딱 달라붙어 몸을 밀착시켰다.
파앗―
은설은 하늘로 날아오르며 상승하다가 이내 속도를 붙여 앞으로 날았고 순식간에 근방에서 사라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