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백아를 찾아(1)
북해(北海).
얼음 대지 위에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이곳에 피한복(避寒服)을 두껍게 입은 여인과 중년인이 서 있었다.
“알아보았나요?”
여인의 말에 중년인은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입을 열었다.
“네. 출신을 알 수 없던 설응(雪鷹)은 아마 전 궁주께서 검성(劍聖)에게 선물했던 설응의 자식인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니…… 북해빙궁에서 태어나고 자란 설응도 아닌데 그 설응이 우두머리가 되었다는 게 말이 되나요? 해마다 찾아와 우두머리 싸움만 하고 사라지는 녀석을 잡을 길이 없겠습니까?”
여인은 화가 난 듯 중년인을 향해 쏘아붙였다.
“그게…… 아가씨도 아시겠지만 설응 무리는 우두머리에게 절대복종합니다. 그 설응을 잡고자 한다면 지금 거느린 설응 전체와 상대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인은 중년인의 말에 말을 잃었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너무 답답했다.
북해설응은 영물로서, 그 우두머리는 늘 궁주의 혈맥과 짝을 맺어 왔다.
북해빙궁은 우두머리 설응을 통해 명령을 내려 모든 북해설응을 부려 왔는데, 몇 년 전부터 웬 못 보던 설응 녀석이 찾아와 우두머리를 차지한 탓에 설응 전체가 북해빙궁의 통제력에서 벗어난 상황이었다.
“아가씨, 궁주께서도 이 일로 인해 무림으로 인원을 파견한다고 하셨습니다. 아가씨께서는 기다리시죠.”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여인은 이미 그 말에 미간이 찌푸려지며 중년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인의 정체는 북해빙궁의 궁주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인 단채영(段彩瑛)이었고, 무릎을 꿇고 있는 인물은 북해빙궁의 설풍대(雪風隊) 대주인 조준혁(趙俊赫)이었다.
“궁으로 돌아가죠.”
“궁은 갑자기 왜요?”
단채영의 말에 조준혁은 화들짝 놀라 물었다. 단채영은 현재 궁주의 특별 지시로 북해설응 상황을 살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돌아간다 하니 놀란 것이었다.
“난 그 우두머리가 된 설응을 죽어도 내 짝으로 삼아야겠어요. 그 설응의 주인이 무림에 있는 듯하니 그에게서 뺏을 수밖에요.”
단채영의 호기로운 말에 조준혁은 난감했다. 안 그래도 설응의 우두머리가 바뀐 것으로 인해 말들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 궁주가 인원을 파견하여 설응의 주인과 설응을 잡아 오려는 것인데 세상 물정 모르는 단채영의 말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가씨…….”
총총걸음으로 벌써 멀리 가 버린 단채영은 조준혁의 부름에 뒤돌아보았다.
“얼른 와요. 따라오지 않으면 나 혼자 갈 거예요.”
단채영은 자신의 할 말만 하고 움직이고 있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궁주가 자신을 단채영의 보호 역으로 붙인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왜 저쪽으로 가는 거야.”
조준혁은 단채영이 가는 방향이 빙궁으로 가는 방향이 아님을 알자,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 * *
“아니…… 이렇게 마음대로 빠져나가도 되는 겁니까?”
조준혁은 앞서가는 단채영의 뒷모습을 보며 투덜거렸다. 이미 사십이 다 돼 가는 그가 약관의 단채영에게 투정 부리는 모습이 웃기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이 조준혁으로서는 난감했다.
“따라오기 싫으면 조 대주는 돌아가도 좋아요.”
“아니, 그게 가능하면 이곳까지 오기 전에 돌아갔죠.”
단채영의 무심한 말에 조준혁은 울분을 토해 내었다. 설원에서 벗어난 단채영은 궁으로 돌아간다 하더니 반대로 무림으로 향했고, 그녀를 설득하지 못한 조준혁은 그대로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었는지 마을에 도착하자 옷을 바꾸어 입고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해 나갔다.
‘아오…… 형님에게 정말 혼나겠는데…….’
조준혁은 이대로 무림에 나갔다가 단채영에게 무슨 불상사라도 생긴다면 궁주인 단지경을 볼 낯이 없었다. 호형호제(呼兄呼弟)하며 친분을 쌓았기에 궁주가 자기 딸의 호위도 맡긴 것이었지만, 단채영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존재였다.
“조 대주, 그 설응을 빨리 찾을 방법이 없을까요?”
“아무 생각도 없이 이렇게 무림에 나온 겁니까? 당연히 방법을 아가씨가 생각하고 있으신 줄…….”
“내가 무슨 생각이 있겠어요. 그냥 무작정 나온 거지. 그래도 무림 경험이 있는 조 대주가 저보다 낫지 않아요?
단채영의 말에 조준혁은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저 어린애가 생각하고 무림으로 나왔다 여긴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우두머리가 된 설응이 검성에게 주었던 설응의 후손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잖아요.”
“높은 게 아니라 아마 그럴 겁니다. 백 년 사이 설응을 밖으로 데려간 자는 검성밖에 없으니까요.”
“그럼 검성을 찾으면 설응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검성은 이미 무림에서 사라진 지 오십 년이 넘은 인물입니다. 찾을 수 없다고요.”
“검성이 사라진 인물이라면, 설응은 그와 관련 있는 인물의 소유겠죠. 그를 찾아야죠.”
“어떻게요?”
“그걸 조 대주에게 묻는 거잖아요.”
조준혁은 단채영의 말에 화를 삭여야 했다.
“방법 없겠어요? 찾을 만한?”
단채영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묻자 화를 내려다가 참고 입을 열었다.
“가까운 개방의 분타를 찾아보죠. 개방이라면 정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빨리 움직이죠.”
성격 급한 단채영은 조준혁을 다그쳤고, 다시 한번 화를 삭이며 조준혁은 그녀가 이끄는 대로 움직여야 했다.
“개방의 분타를 먼저 찾아갔다가, 말을 사러 가시죠.”
“말요? 설응을 타고 가지 않고요?”
단채영은 조준혁의 말에 반문했다. 설응을 이용하면 금방 도시와 도시를 오고 갈 수 있었기에 묻는 것이었다. 북해에서 이곳 난주(蘭州)까지는 조준혁의 설응을 타고 이동해 왔지만, 조준혁으로서는 설응을 무림에서 더 사용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저희는 북해빙궁의 사람들입니다. 굳이 신분을 숨길 필요까진 없지만, 너무 드러내고 다니면 무림인들이 경계할 겁니다. 괜히 우리의 존재가 시비의 빌미가 될 수도 있고요.”
“아……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어요. 조 대주 말대로 해요.”
조준혁이 앞장서 가자 단채영은 그의 뒤를 따랐다. 조금 걷기 시작하자 단채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준혁을 따라갔다. 북해에서 나고 자랐던 그녀였기에 모든 모습이 새로웠다.
조준혁도 그런 그녀를 위해 걸음을 천천히 그녀에게 맞추어 걷고 있었다.
“여기네요.”
조준혁의 말에 단채영이 고개를 들어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허름한 건물이 보였다.
“들어가죠.”
단채영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조준혁은 건물 안으로 앞장서 들어갔고 그녀는 말없이 뒤를 따라갔다.
건물 안에 들어가자마자 거지 한 명이 나타나 조준혁과 대화를 나누더니, 대화가 끝이 나자 어디론가 안내를 했다.
“운이 좋군요. 저희가 알고 싶어 하는 정보가 있다고 하네요.”
“정말요?”
“네. 책임자를 만나게 해 준다고 합니다.”
안내한 거지를 따라가던 그들은 작은 방에 도착했다. 허름한 건물치고 내부는 제법 건실했다. 따로 장식은 되어 있지 않지만 나름 깨끗했다.
그들이 탁자에 앉아 기다리자 얼마 있지 않아 중년의 거지가 방으로 들어왔다.
“설응에 관한 정보를 알고 싶다고 한 게 당신들이요?”
조준혁은 중년 거지의 행색을 보고 그가 분타주임을 알았다. 보통 개방의 분타주는 삼결이었는데, 눈앞의 중년 거지가 삼결의 매듭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북해빙궁(北海氷宮)에서 왔습니다. 개방에 도움을 조금 받고 싶습니다.”
“북해빙궁? 사실이요……?”
조준혁의 말에 중년 거지가 놀라 반문했다. 조준혁도 웬만해서는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았지만,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자신들의 신분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전 난주의 분타주, 지천 개라고 합니다.”
자신을 지천 개라고 밝힌 거지는 조준혁과 단채영을 찬찬히 살폈다. 사패 중 한 곳인 북해빙궁의 인물이었기에 그의 말투는 존대로 바뀌었다.
“전 빙궁의 조준혁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의 제자입니다.”
“채영입니다.”
조준혁은 단채영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 둘러대었고, 단채영도 그의 의도를 알았기에 바로 자신의 소개를 바로 했다.
“호오, 은설풍(隱雪風)의 명성은 귀가 따갑게 들어왔는데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군요.”
개방의 인물답게 조준혁을 바로 알아보았고, 단채영은 지천 개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그녀도 조준혁에 관한 이야기를 빙궁에서 많이 듣긴 했지만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 그다지 믿지 않고 있었다.
“예전 북해빙궁이 남하했을 때, 무림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자가 은설풍이라고 듣기만 했는데…… 이렇게 만날 기회가 생길 줄은 몰랐군요. 설응에 대해 알고 싶다 하기에 누구인가 했는데 빙궁의 분들이었군요.”
지천 개의 칭찬에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조준혁은 얼굴에 웃음기가 만연했다. 거기에 단채영도 자신을 보는 눈빛이 달라지자 더 우쭐해진 조준혁이었다.
“흠, 혹시 무림에 설응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좀 있습니까?”
“안 그래도 최근 몇 건의 괴조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괴조라기에 이상하다 여겼는데 북해설응이더군요.”
“혹시 누구 소유인지 알 수 있습니까?”
지천 개는 조준혁의 말에 답하지 않고 잠시 입을 닫았다.
“개방에서는 정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아시지요?”
지천 개가 갑자기 진중하게 나오자 조준혁도 조금은 움찔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싶어 하는 정보를 드릴 테니 저희 쪽에도 정보를 교환해 주십시오.”
지천 개의 말에 조준혁은 자신도 모르게 단채영을 쳐다보았다.
“흐음…… 어떤 정보를 교환하자고 하는 겁니까?”
“안 그래도 설응이 무림에 나타난 것으로 말들이 많았습니다. 그 설응에 대한 정보를 주십시오.”
지천 개의 말에 조준혁은 다시 한번 단채영을 보았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재차 이어지자 지천 개도 단채영의 신분이 보통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무림에 나타난 설응은 북해빙궁의 소유가 아닙니다.”
“아, 그럼 그 사내는 빙궁의 사람이 아니군요.”
“사내? 설응의 주인을 말하는 겁니까?”
“네. 이윤후라고 하는 청년인데 나이는 스물이 되지 않은 듯하고, 정확한 신분은 저희 쪽도 파악하는 중입니다. 이름만 알고 있습니다.”
개방에서도 설응과 이윤후에 대해 파악을 하는 중이었고 아직은 그의 신분까지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 알아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갑자기 무림에 나타났는데, 현재 특이하게도…… 유명인사와 동행 중에 있습니다. 거기에 설응과 빙정으로 만든 검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요.”
“빙정으로 만든 검?”
“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빙궁의 인물이 아닌가 여기고 있었는데 아니라고 하시니 점점 더 정체가 궁금하군요.”
개방에서는 이윤후를 북해빙궁의 인물이라 짐작했으나,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말은 곧 조사의 접근법을 달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빙정으로 만든 검이라……?”
조준혁은 지천 개의 말에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빙궁에 몸을 담은 지 삼십 년이 되었지만 빙정으로 무기를 제련한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빙정은 북해빙궁에서도 가장 귀중히 취급하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빙정으로 만든 검이 무림에 있다니?
“그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조준혁은 점점 이윤후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