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26화 (26/251)

26화― 우금의 실체

늦은 시각 무림맹의 맹주실.

무림맹주 우금은 축시가 지난 시간인데도 잠을 청하지 않은 채 맹주실의 자신의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맹주님, 현무단(玄武團)의 성지현입니다.”

“들어오너라.”

우금은 이제껏 그를 기다린 듯 성지현의 방문과 함께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지현은 방에 들어오다 일어서 있는 우금을 발견하고는 예를 취했다.

“말씀하신 것에 대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 말해 보아라.”

“사마련(魔月閣)이 해산 후 사왕련(邪王聯)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기존 사마련의 실세들은 모두 독고진의 밑에서 복종을 맹세했다고 합니다. 사마련의 호법(護法)인 월랑(月狼)이 사왕련을 떠나긴 했지만 그 외엔 전력의 손실이 없습니다.”

“그래? 예상외이군. 사마련은 유상휘의 영향력으로 돌아가는 곳인지 알았더니…….”

생각보다 전력의 이탈이 없자 우금은 조금 신경이 쓰였다. 사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고자 독고진과 사파의 강경파를 자극해 지금의 상황으로 만든 것이었지만, 사마련이 유상휘를 보고 모인 문파다 보니 분명 독고진으로 권력 이양이 되는 상황에서 반으로 쪼개질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리고 서안으로 오고 있던 오대세가의 인원들의 신분이 파악되었습니다.”

우금의 물음에 성지현은 일어나 서찰 하나를 건네주었다.

[오대세가 대표]

모용세가 모용우.

남궁세가 안명.

사천당가 당인표.

하북팽가 팽기찬.

산동악가 악진율.

간단하게 적힌 서찰의 내용이었지만 그 이름 면면이 주는 무게감은 남달랐다.

“오대세가 놈들이 단단히 열을 받긴 했나 보군. 이렇게 실세들을 보내오다니…….”

우금의 말에 성지현은 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인 채 듣고 있었다. 성지현은 저번 보고 때 아버지인 현무단주 성하진에게 모든 비밀을 들은 후 선택을 해야 했다.

성지현의 가문은 아버지인 성하진이 이룬 무가였다. 이름 없던 무가 집안이었다가, 성하진이 무림맹에서 출세하면서 가문의 세가 커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무림맹의 현무단주의 가문으로 서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름 없던 성하진이 갑자기 성공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무림맹주의 구린 일을 뒤처리해 주면서 힘을 얻었고 현재도 무림맹주의 수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대를 이어 성지현에게도 선택의 시간이 왔고 그 역시 우금을 따르기로 맹세를 한 것이었다. 존경하던 아버지의 다른 일면과 맹주의 추악한 면을 동시에 알았지만 그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번 회합이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겠군. 구파일방에서는 움직임이 없느냐?”

“네. 구파일방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이번 회합에 대한 소집령도 오늘 내려졌으니 누가 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성지현의 말에 우금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련이 사왕련으로 이름을 바꾸고 세를 규합하는 것이 밝혀졌고 무림맹에서는 각 소속 문파들에 소집령을 내린 상태였다.

“그리고…… 화풍곡(火風谷)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성지현의 보고에 우금은 관심을 가졌다. 화풍곡이라는 이름이 주는 특별함 때문이었다.

“이번 대의 도후(刀后)가 정해졌나 보군.”

“네. 화풍곡에서 도후의 취임을 알려 왔습니다.”

“흐음…….”

우금은 도후의 이야기에 말이 없어졌다. 화풍곡은 그의 일에 방해가 될 만한 요소였으나 그나마 활동이 없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세력이었다.

하지만 도후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들의 무림 활동을 선언하는 것.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머리가 아파져 오는군. 일이 내 생각보다 커질 수도 있겠구나…….”

우금은 조금은 곤란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사왕련의 문제로 오대세가의 회합을 막을 수 있으니 다행인 거 아닙니까?”

“미봉책에 지나지 않지 않느냐? 이렇게 오대세가가 자신들의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부터가 문제가 될 거야…….”

그 말에 성지현은 답하지 못했다. 우금은 현재 무림맹을 자기 뜻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무림맹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대무단에 모두 자신의 사람을 앉혀 두었고 각종 요직 또한 우금의 수족과도 다름없는 인물들이었다.

무림맹은 현재 우금 개인의 세력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이 떠들지 못하도록 독고진이 더 날뛰어 줄 필요가 있느니. 크핫!”

우금이 말을 하고는 웃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성지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그도 아버지에게 우금에 관한 모든 것을 들었을 때 자신의 귀를 의심했었다.

흑월도존과의 친분도 거짓이었다. 무림맹주에 오르기 위해 그를 이용하고 마교와 사패의 세력까지 끌어들여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였음을 들었을 때는 자신의 아버지가 자신을 놀리느냐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누구인지 모르고 들었다면 희대의 악인이라고 생각했을 내용이 모두 자신의 앞에 있는 무림맹주 우금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래도 그는 결국 우금을 따르기로 했지만, 눈앞에서 우금의 모습을 재확인하자 마음 한구석이 아려 왔다.

“독고진을 자극할 방법을 찾아보아라. 그가 빨리 움직여 줘야 우리에게 유리할 테니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성지현은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우금이 더는 묻지 않자 성지현은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섰다.

그가 방을 나가자 우금은 닫힌 창을 열었다.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느냐?”

우금의 말이 빈방을 울렸고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호호, 맹주을 속일 수가 없군요.”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이는 주작단주(朱雀團主)인 미홍이었다. 오늘은 나풀거리는 나의가 아닌 단정한 홍의를 입고 있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그들이 움직여 주겠다고 하더냐?”

우금의 눈빛이 달라지자 미홍도 웃음기 사라진 얼굴로 그를 보고 입을 열었다.

“북해빙궁(北海氷宮) 쪽은 제안을 무시하였고, 만독곡(萬毒谷)은 움직이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래? 그들이라면 제안을 거절하지 않을 줄 알았지. 빙궁은 궁주가 바뀐 후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군.”

미홍의 말에 우금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만독곡의 요구가 만만치 않지 않을까요?”

미홍이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사패(四覇) 중 한 곳인 만독곡을 움직이는 일이라, 그들이 요구할 보상이 걱정스러웠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반발을 잠재우려면 사패 중 한 곳은 움직여야 하지 않겠느냐?”

우금은 말하며 다시 한번 웃음 지었고 그 모습에 미홍은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우금을 돕고는 있었지만 그의 방식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림맹을 장악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서슴없이 외부 세력을 이용하는 우금.

그는 자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악행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수시로 불만을 이야기해 올 때마다 사패와 사파를 자극하여 전란이 일어날 것 같은 상황을 연출했고, 그로 인해 불만은 잠잠해지고는 했다.

결국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건 언제나 그였고, 그 후 무림인의 찬사를 듣는 것도 언제나 맹주인 우금이었다. 문제 해결을 늘 우금이 해내고 있으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자신들의 불만을 이야기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오대세가가 단단히 준비하는 듯한데, 이번 일로 뜻을 굽힐까요?”

미홍은 오대세가에서 이렇게 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 조금 의아했다. 그간 오대세가는 나름 불만을 잘 참아 오고 있었기에 이렇게 집단으로 움직이는 것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나와 관련자들이 모두 일선에서 물러났으니 움직이는 거겠지. 이미 예상했던 움직임이야.”

“그게 무슨……?”

우금의 말에 바로 이해하지 못한 미홍이 반문했고 우금이 그녀를 보았다.

“내가 맹주가 되기 전에 나에게 더러운 일을 시켰던 오대세가의 주요 인사들이 전부 일선에서 물러났으니, 새로운 인사들은 지금 자신들이 받는 대우를 이해할 수가 없지.”

“아…… 그 이야기였군요.”

미홍은 우금의 말을 이해했다. 우금은 원래 무림맹의 더러운 부분을 처리하던 뒤처리 암살조였다. 그리고 그의 배후자는 원래 무림맹의 실세였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인사들이었고. 그러니 그들은 우금에게 반발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더러운 이면이 드러날까 봐 순순히 우금이 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고, 무림맹의 요직에서도 반발 없이 물러난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럼, 구파일방에서도 움직이지 않을까요?”

“그들은 모르겠군. 내가 사패와 사파를 이용해 불만을 잠재운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을 거야. 그들의 방식이었으니까…… 하하.”

우금은 말을 하며 즐거운 듯 웃었다. 자신이 맹주직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무림맹의 그림자로서 더러운 일을 하며 그들에게 배웠던 방식이었다.

적을 이용하는 것도, 사패와 결탁하여 내부의 적을 제거하는 것도. 모든 방식이 그들에게 배운 것이었다.

미홍은 우금에게서 광기를 느꼈다. 최근 들어 더 심해지는 듯했다.

“하여간 이번 일로 인해 오대세가는 불만을 이야기하지 못하긴 하겠지만, 결국 무림맹에 소속된 모든 정파는 서안으로 모이게 되었어요. 그때 무언가 하려 하지 않을까요?”

미홍의 말에 우금은 웃음을 멈추고는 그녀를 보았다.

“그것도 그거 나름대로 재미있겠군. 젊어진 오대세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기대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우금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였고 미홍은 그의 말에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참, 그 일은 어떻게 되었나?”

“무슨 일이요?”

“유상휘의 손녀 말이야.”

“아, 일단 소재 파악은 해 뒀는데 이상한 소문이 있더군요.”

“이상한 소문?”

우금은 미홍의 말에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그녀에게 현재 동행이 있는데, 보통 실력자가 아닌 거 같아요.”

“사마련의 고수가 아닌가? 월랑이 사마련에서 나갔다 했으니 그가 아닌가?”

“아니요. 젊은 사내라고 보고받았어요. 월랑의 외견이라면 수하들이 못 알아볼 리가 없죠.”

“그렇지.”

우금도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월랑은 특이한 외견을 지니고 있어, 그를 못 알아본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따를 자가 있었나? 유상휘의 수족들은 모두 독고진의 감시를 받는 상황일 텐데?”

“신분을 알 수 없어 일단 사람을 붙여 두었습니다. 그녀를 찾고 싶어 찾은 것은 아니고, 남궁세가의 인물들을 미행하던 수하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보고해 왔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맹주의 명으로 오대세가의 전원에게 수하들을 붙여 두었는데 남궁세가의 인물들이 쌍사련의 영역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유인경과 동행하던 사내가 그들을 구해 주었는데, 재미있는 건 쌍사련의 지욱이 그와 검을 겨루고는 물러났다는 거죠.”

“지욱? 그가 물러났다면 보통 고수가 아니겠군.”

우금은 미홍의 말에 조금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지욱은 환우십강에 들지는 못하지만 사파의 고수 중 손에 꼽히는 실력자였고, 그런 그와 겨룰 실력이라면 보통 고수는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런 고수가 옆에 붙어 있으니, 유인경을 자신의 노리개로 만들려는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하는 것이다.

“정보가 더 들어오면 보고하도록 해.”

“네. 전 이만…….”

미홍은 자리에서 벗어나며 등 돌린 그의 등을 한 번 바라보고는 발길을 돌렸다.

‘유인경의 곁에 있는 사내가 북해설응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저 어떤 반응을 할까 궁금하긴 하지만…… 그건 나중에 알려 주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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