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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25화 (25/251)

25화― 백아의 부상

“크게 다친 거 아닌가요?”

핏빛으로 물든 백아의 털을 보고 유인경이 놀라 호들갑을 떨었고, 그런 백아의 모습에 이윤후는 담담하게 백아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꾸륵―

백아가 내려와 이윤후 곁으로 다가왔고 그는 백아를 그대로 바닥에 눕혀 상태를 살폈다. 그 모습에 유인경은 걱정스러운 듯 안절부절못하며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유 소저, 천에 물 좀 적셔 와 주세요. 물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왼쪽으로 조금만 가면 물가가 있을 거예요.”

“아, 네. 얼른 갔다 올게요.”

유인경은 자신의 도를 감싼 두꺼운 천을 벗겨 내곤 이윤후가 말한 방향으로 달려갔다. 유인경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는 백아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흰 털 아래 여기저기가 찢겨 피부가 갈라져 있었고 심한 부분은 살이 파여 있었다.

“이번엔 좀 심하게 다쳤구나.”

부웅―

이윤후의 손에서 빛이 나더니, 그 손을 백아에게 가져다 대어 백아에게 자신의 기운을 흘려 넣었다. 만상오행공의 상생을 이용한 치료법을 백아에게 적용해 보는 것이었다.

백아의 기운은 수기(水氣)를 바탕으로 한 기운이었기에 금기(金氣)를 운용해 주입하고 있었다. 이윤후의 기운을 받아들이자 백아는 한결 편안한 표정이 되었고 낮게 울던 울음소리도 멈추었다.

“다행이다. 너에게도 효과가 있구나.”

백아의 상태가 호전되자 이윤후는 안도감에 기뻐했다. 사실 백아는 가끔 이런 식으로 다쳐서 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약초를 구해다가 치료해 주었다.

유인경에게 효과가 있음을 기억했던 이윤후는 백아가 상처 입고 온 모습을 보자 오행의 치료법을 적용해 보자 생각했고, 일부러 유인경을 보낸 것이었다. 보여도 상관은 없었지만 굳이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게 너한테도 효과가 있을 줄은 몰랐네…… 사부님도 모르셨을 거야. 자신이 만든 무공의 대단함을…….”

이윤후는 그대로 눈을 감고 잠들어 버린 백아를 쓰다듬으며 계속 기운의 순환을 도왔다.

검성도 만상오행공의 완성은 죽기 직전에서야 했었다. 그래서 직접 사용해 볼 수도 없었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확인해 보지 못했을 터였다.

그렇기에 동굴에 있는 동안에 백아가 다쳐서 올 때도 오행공을 이용한 치료는 생각도 못 했었다. 문제는 이게 치료에 그치지 않고 체내 활성화를 시키면서 잠재력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었다.

유인경이 이미 그 효과를 보았다. 자신이 기운을 북돋아 준 덕에 막혀 있던 기혈들이 통하면서 무공이 한 단계 진일보하게 되었다.

곧 천에 물을 적셔 달려오고 있는 유인경이 보였다. 그녀는 백아가 움직이지 않고 바닥에 누운 모습에 놀라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죽은 건…… 아니죠?”

유인경은 이윤후에게 적신 천을 넘겨주며 조심스럽게 묻고는 백아를 살폈다. 그녀는 백아가 숨을 쉬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했고 적신 천으로 백아의 피를 닦아 주기 시작했다.

“손 더러워질 텐데, 제가 할게요.”

“아니요. 제가 할래요. 백아가 제 목숨을 구해 준 은혜도 있는데 이런 거라도 해 줘야죠.”

이윤후가 천을 뺏으려 하자 유인경은 만류하며 자신이 직접 백아의 피로 물든 털들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털이 굉장히 억세네요.”

유인경은 백아의 깃털들이 빳빳하고 날카롭게 서 있어 조심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감싸고 잘 때는 털이 부드러웠는데 이상하다 여겼다.

“하늘을 날거나, 싸울 때는 깃털이 평소와 다릅니다.”

“아…….”

“설응들은 날 때나 싸울 때 깃털들을 강화해 딱딱하게 유지하고, 평상시엔 부드러운 깃털을 유지하죠. 정신을 잃은 상태라 깃털이 강화된 상태일 거예요.”

“그렇군요. 그런데 어디서 이렇게 다쳐서 온 걸까요?”

유인경은 백아의 털들을 닦아 내며 이윤후에게 물었다.

“제가 수련을 할 때도 가끔 이렇게 다쳐서 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사부님도 따로 말씀을 안 해 주셔서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도 궁금하긴 하네요.”

이윤후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처음 저렇게 다쳐서 왔을 때는 자신보다 강한 무언가를 사냥하려다 다치거나 사람들에게 당한 상처라 여겼는데, 그 횟수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자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꾸륵―

“이제 정신이 들었나 보네요. 털들도 부드러워졌어요.”

백아가 머리를 울며 고개를 세워 둘을 바라보았고 빳빳했던 깃털들도 부드럽게 바뀌었다.

꾸륵―

“어머.”

백아가 유인경의 얼굴에 자신의 머리를 비비자 그녀는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기에 뒤에 서 있던 이윤후가 그녀의 등을 잡아 주었다. 백아는 그것도 모르고 얼굴을 그녀 품에 비볐다.

“어리광이 심하네.”

백아의 그런 모습에 이윤후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백아는 사람들을 잘 따르는 편이었는데 검성도 백아는 좀 특이하다고 했었다.

자신이 원래 북해빙궁에서 받았던 설응. 백아의 어미는 검성 외에는 전혀 따르지 않았고, 자신의 주위에 여자들이 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전했는데. 그의 새끼인 백아는 사람을 잘 따르고 특히 여인들을 좋아했다.

검성의 설명으로는 설응은 원래 사람을 잘 따르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백아의 경우 유일하게 북해에서 벗어나 태어난 경우라 그런지 특이한 경우라 했다.

백아는 머리를 유인경의 무릎에 누운 채 그녀가 털을 닦아 주는 것이 기분 좋은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 * *

남궁세가(南宮世家).

창룡원(蒼龍院).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인의 거처로 누군가 다급하게 달려와 방 앞에 섰다. 달려온 터라 가쁜 숨을 고르고는 천천히 사내는 입을 열었다.

“가주님, 연(鳶)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사내가 말하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래. 들어오너라.”

사내는 안에서 허락이 떨어지자 다시 한번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살피고는 방 안으로 들었다.

방 안에는 중년인이 읽던 책을 내려놓고 들어온 사내를 보며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뭐가 급하다고 그리 뛰어왔느냐?”

중년인은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인(南宮仁)이었고, 보고를 하러 달려온 사내는 남궁인의 시중을 드는 창연(蒼鳶)이라는 사내였다.

“안명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연락이기에 네가 그리 매우 급한 것이냐?”

남궁인은 창연의 얼굴이 붉게 상기된 것으로 보아 전서구들이 모이는 곳에서부터 뛰어왔을 거라 생각했다. 차분한 성격인 창연이 저렇게 급한 것으로 보아 보통 소식이 소식은 아니리라.

“쌍사련의 영역을 지나가다가 소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냥 지나가는데, 무슨 소란 있을 일이 있느냐? 미리 쌍사련에 이야기해 두지 않았느냐?”

남궁인은 창연의 보고에 조금은 이해가 안 되는 듯 물었다. 현재는 정파와 사파가 어느 정도 평화적인 상황이라 쌍사련에 미리 양해를 구해 둔 상태이거늘, 왜 소란이 생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창연은 곤란한 듯 말을 더듬었고 그의 태도에 남궁인이 고소를 금치 못했다.

“나연이 그 아이가 일을 벌인 모양이구나.”

남궁인은 창연이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자 남궁나연이 문제임을 짐작했다. 세가에서도 워낙 골칫덩이라 이번 일에 보내면서도 걱정했던 그였다.

아내가 일찍 병을 얻어 죽었기에 세가의 모두가 남궁나연이 어렸을 때부터 너무 봐주며 대해 왔다. 그 탓에 버릇이 나빠졌고, 지금은 자신도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골칫덩이였다.

“무슨 소란을 피운 건가? 그 아이가…….”

남궁인은 생각할수록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인상을 쓰며 창연에게 물었다.

“그게…… 객잔에서 음식이 맛이 없다고 투정 부리다가 하필 그 객잔에 쌍사련의 무사들이 있어서 그 사람들과 시비가 붙어 싸움이 났다고 합니다.”

창연의 보고를 듣던 남궁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 무슨 그런 일로 싸움이 나는 거야?”

“아가씨 투정 아시지 않습니까…… 안명 선생의 말로는 전적으로 아가씨 잘못이라고 하더군요. 쌍사련의 무사들도 처음에는 조용해 달라는 정도로 이야기했는데, 아가씨께서 거기다가 자기들이 누군지 아느냐고 따지다가 결국 싸움이 커졌다고 합니다. 결국 쫓기다 쌍사련에서 지욱을…….”

“뭐? 쌍사련의 삼천왕 중 하나인 지욱이?”

남궁인의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리 철없는 딸인지는 알았지만 사파의 영역에서 조심하지 않고 소란을 피울지는 정말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모두 무사한 건가?”

지욱의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야 일이 커졌음을 인식하고 남궁나연과 일행들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정사파가 평화로운 시절이라지만 사파의 영역에서 사고 친 딸내미가 걱정 안 될 수 없었다.

“다행히 무사히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무사하다고? 지욱이 나섰는데 말인가? 안명 선생이나 찬이라도 지욱을 상대하기엔 무리일 텐데.”

“그게……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달려온 것입니다.”

“도움?”

남궁인은 창연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달려온 이유가 자신의 딸의 안위 때문이 아니라 도움 받은 것 때문이라니.

“두 명의 남녀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는데, 여인의 정체가 유인경이라 합니다.”

“유인경? 그게 누구지?”

남궁인은 이름을 듣고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선뜻 생각나는 이가 없었다.

“흑월도존(魔月刀尊)의 손녀입니다.”

“아, 뭐라고? 흑월도존의 손녀가 왜 그곳에?”

남궁인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이름이 나오자 다시 한번 놀랐다.

“사마련의 명칭이 바뀐 게 흑월도존이 물러난 일과 관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흑월도존이 전혀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바뀐 사태에 사파들도 동요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녀의 행보로 보아 현 사왕련은 흑월도존에 뜻에 반하는 집단임이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결국, 정말 일이 그렇게 되었군. 이제 곧 전란이 벌어지겠어.”

“무림맹의 사대무단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황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흐음, 무림맹주는 운이 좋군. 그를 몰아내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데 이렇게 일이 터지다니…….”

남궁인은 마음이 복잡했다. 현 무림맹주인 우금이 무림맹의 실권을 잡고 나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 명문가라고 할 수 있는 문파들은 무림맹의 주요직에서 전부 쫓겨나다시피 했고, 그 일로 인해 우금과 은근한 갈등이 심화하여 오고 있었다.

그래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장문과 가주들이 모여 현 맹주에게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뜻을 전하고, 이번에도 무시한다면 차후의 일을 도모하기로 뜻을 모은 상태였다.

하여 오대세가의 뜻부터 전하기 위해 남궁나연과 일행을 서안으로 보낸 것이었고, 오대세가의 대표들이 서안으로 모이고 있었다.

“역시, 무림맹에 오대세가의 뜻을 지금 전하는 건 어렵겠습니다.”

“맞네. 정황이 분명해진 이상, 지금 맹주를 끌어내린다면 문제가 커질 거야.”

“네. 그럼 안명 선생에게 가주님의 뜻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창연은 남궁인에게 예를 취하고 방을 나서려다가 그의 말에 행동을 멈추었다.

“나연이 관리 좀 신경 써 달라고 해 줘. 창피한 이야기지만, 그 아이가 서안에서 사고 친다면 진짜 남궁세가의 위신을 떠나서…… 그 아이 어디 시집이라도 보내겠냐는 말이야.”

남궁인은 조금은 얼굴을 붉힌 채 창연에게 말했다. 창연은 웃음이 났지만 남궁인의 심정을 알았기에 속으로 삼킨 채 고개를 숙인 채 답했다.

“네. 안명 선생에게 전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아까 유인경과 한 명이 더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 제가 깜박할 뻔했습니다. 안 그래도 안명 선생께서 그 사내에 대해 알아봐 달라는 요청을 해 왔습니다.”

“그래? 안명이 모르는 사람도 있었나? 그렇게 박학다식을 자랑하는 인간이 말이야?”

남궁인은 약간은 비꼬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안명과 그만큼 친했기에 하는 말인 것을 창연은 알고 있었다.

“이윤후라고 하는데, 일단 안명 선생이 적어 준 내용에 의하면 보통의 인물은 아닌 거 같습니다. 지욱이 물러난 이유가 이 사람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욱을 물러나게 할 만큼 강하다고? 흥미롭군. 그에 대한 조사가 끝나면 나에게 먼저 알려다오.”

“네. 알겠습니다.”

창연은 대답하고 방을 빠져나갔다.

“흑월도존의 손녀와 동행하는 사내라…… 사마련의 무사인 건가? 왜 나연이 일행을 구해 준 것이지?”

남궁인은 그 부분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인경이 남궁나연 일행을 구해 줬을 리는 없으니, 분명 동행한 사내 쪽이 나섰으리라. 사파 지존의 손녀가 정파를 구하기 위해 사파를 막아설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는 내려놓았던 책을 다시 집었다. 남궁인은 창연의 보고에 심란한 마음을 책으로 위로받고자 하는 듯 금세 책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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