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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24화 (24/251)

24화― 오절의 관계

객잔을 떠나 다시 서안으로 길을 잡은 이윤후와 유인경은 산중을 거닐고 있었다. 서안까지는 아주 먼 여정이라 말을 구해야 했지만 이윤후는 말을 탈 줄 몰랐고, 유인경이 그럼 자신의 뒤에 타서 가자고 했지만 결국 거부해 걷고 있었다.

안명이 전해 준 사마련의 이야기로 인해 기분이 처져 있던 유인경은 밖으로 나와 걷고 있으니 생각이 많이 정리되어 기분이 풀린 상태였다.

“아까부터 백아가 보이지 않는데, 어디 보냈어요?”

그녀는 산의 초입에서 백아가 자신들의 머리 위를 나는 것을 확인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이지 않자 이윤후에게 물었다.

“가끔 말없이 사라지기도 하는데 저도 잘 모르겠네요. 따로 뭔가 시킨 것은 아닌데.”

이윤후는 백아가 사라진 것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그냥 편하게 백아를 타고 가도 되지 않아요?”

이윤경은 문득 생각이 든 것을 물었다. 자신들이 잠룡대에게서 도망칠 때도 백아를 타고 먼 거리를 날아 장가철장이 있는 곳까지 왔음을 떠올렸다.

“저도 생각 안 해 본 것은 아닌데…… 백아는 너무 눈에 띄어 추격자들이 바로 뒤따라올 가능성이 높아 위험합니다.”

“아…… 그렇군요.”

급할 경우엔 어쩔 수 없었으나, 덩치 큰 백아를 타고 다니다 보면 사파의 추격자들이 붙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백아는 북해설응이기에 사패(四覇)로 오해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소협.”

“네.”

조금 앞장서 가던 이윤후는 그녀의 부름에 걸음을 늦춰 그녀 옆에 발을 맞추어 섰다.

“음…… 이 소협의 사부님에 관해 이야기 좀 해 주면 안 돼요?”

유인경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부님이요?”

“네. 이제 누구인지도 아는데 말해 주어도 되지 않아요? 이미 제 이야기는 속속들이 알고 있잖아요.”

유인경은 또 이윤후가 이야기를 회피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사부님이 궁금한가요?”

“궁금하죠. 검성이라면 갑자기 무림에서 사라져 많은 이야기를 양산하게 했었는걸요. 오절 중에 가장 먼저 사라진 인물이기도 하고요.”

“가장 먼저요?”

“네. 사실 검성이 사라진 것을 두고 꽤 이야기가 심각한 게 많았다고 들었어요.”

이윤후는 자신이 모르는 사부에 관한 이야기를 유인경이 하자 도리어 궁금해져 묻기 시작했다.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아…… 또 내가 이야기해야 해요?”

유인경도 또다시 이윤후가 이야기를 회피한다는 생각에 살짝 마음이 상하려 했다.

“저도 이야기해 줄게요. 궁금해서 그래요.”

“정말요? 약속해야 해요.”

그녀는 그의 말에 기뻐하며 물었고 이윤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절이 사라진 일로 말들이 참 많았는데 그중 가장 신빙성 있게 이야기되었던 게, 서로 간의 치정(癡情) 문제로 다투다 등을 돌렸을 거란 이야기가 돌았었거든요.”

“치정 문제요? 오절 간에?”

이윤후는 유인경의 이야기가 자기 생각과 너무 의외라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가르친 검성은 그저 무공 잘하는 할아버지 느낌이었기에, 사랑 이야기가 나오니 어리둥절했다.

“오절은 동시대 무림에 나타난 인물들이 성장해서 최고수가 된 것이기 때문에 젊었을 적부터 친분이 두터웠다 해요. 검성의 신분은 가장 밝혀진 것이 없긴 하지만 도후는 화풍곡(火風谷)의 후계자였고 약선은 서문세가(西門世家)의 사람이에요. 도후와 약선은 소속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소속이 없었어요.”

“사부님은 사냥꾼 출신이세요. 우연히 기연을 얻었다고 하셨어요.”

“그래요? 검성에 대한 것은 워낙 밝혀진 것이 없어요. 친분이 그렇게 두텁다고 한 이들도 없었고…… 검성을 따르는 인물들이 있었다고는 들었는데 저도 기억은 잘 안 나네요.”

유인경도 오절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의 할아버지인 유상휘에게 많이 들었던 터라 꽤 많이 알고 있었다. 특히 도후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해 할아버지에게 많이 물었다.

오절(五絶).

무림의 한 시대를 장악했던 절대자(絶對者)들이었다. 그들의 나이는 권왕이 가장 많았고 약선이 가장 적었는데, 둘의 차이가 다섯 살밖에 나지 않았다. 그만큼 또래의 무인들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모두 얽혔던 그들은 연애 관계도 복잡했다. 오절의 두 여인인 도후와 약선은 검성을 좋아했다. 그리고 권왕과 신투는 약선을 좋아했는데, 그들의 관계는 나이가 들어서도 복잡했다.

두 여인의 사랑을 받던 검성은 약선과 도후를 여자로 보지 않았고, 그런 검성의 눈에 들기 위한 두 여인의 구애는 처절하기까지 했다. 반대로 약선을 좋아했던 권왕과 신투는 자신을 봐주지 않는 그녀를 원망하기보다는 검성을 미워했다.

이 같은 관계로 인해 다섯 모두 혼인을 하지 않았고 도후와 약선마저도 자신들의 마음을 끝까지 받아 주지 않는 검성을 미워하기에 이르렀다.

검성이 갑자기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약선이 자취를 감추었다. 약선이 사라진 일에 서문세가 마저 몰랐고 그녀를 수소문하기까지 했었다. 뒤이어 신투와 권왕. 마지막으로 도후까지 무림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모두 사라진 것을 두고 많은 말이 생겨났었는데 다섯 명이 모여 자웅을 가리다가 모두 죽은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흐음, 오절 간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유인경의 이야기를 다 들은 이윤후는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소협은 혹시 검성에게 오절 간의 이야기를 들은 게 있나요?”

“아니요. 전혀요. 그저 수련에 관한 이야기만 했지 일상적인 대화는 거의 없었어요.”

이윤후도 유인경의 물음에 기억을 되짚어 보니 정말 그러했다. 검성은 자신이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지 몰라 이윤후의 수련에만 매진하느라 따로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가 아쉽기도 그립기도 했다. 검성이 살아 있을 때 만났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았겠냐는 생각에 조금은 검성이 잔소리가 그리워졌다.

“이제 이 소협의 이야기를 해 봐요.”

유인경은 이제껏 궁금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라 즐거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검성의 제자는 어떻게 된 거예요?”

“그건…….”

유인경의 질문에 처음부터 이윤후는 곤란함을 감추지 못했다. ‘귀신이 나타나 자신을 동굴로 이끌었고, 귀신에게 무공을 배웠다’라고 사실대로 말하기에는 조금 걸렸다.

“어? 또 숨기려는 건가요?”

“아니요. 사실대로 말해도 믿을지 모르겠어요.”

“무슨 이야기이길래요?”

유인경은 이윤후가 너무 뜸을 들이자 더 궁금해졌다.

“사실 사부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이윤후는 어렵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네? 검성이 돌아가셨다고요? 무공을 배우다가 도중에 돌아가신 건가요?”

“아니요. 그 이전에요.”

“이전이라면……?”

이윤후의 말에 유인경은 조금 어리둥절하며 되물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가셨어요.”

“아……? 저 놀리는 거죠?”

“아니요. 그래서 제가 믿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요.”

“아니…… 이 소협은 분명 사부님께 무공을 배웠다고 말했잖아요. 태어나기도 돌아가셨다니요?”

유인경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윤후가 검성이 남긴 무공서와 유지를 발견하여 제자가 되었다면 이해할 수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윤후는 사부에게 직접 상월을 찾으러 장가철장에 가라고 들었다 말했고, 백아도 사부에게 받은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렇기에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 원래 여산 아래 작은 마을에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꿈에 누군가 나타나 여산으로 와 달라고 말했어요.”

“…….”

“처음엔 무시했지만 한 달이나 넘게 그렇게 꿈에 찾아왔고, 자신을 검성이라고 하는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어 산으로 올랐어요.”

“꿈에 검성이 나타났다고요?”

“네, 도착한 곳에는 사부님의 시신과 무공서와 준비해 놓은 안배들이 있었어요. 사부님은 사념으로 세상에 남아 있었고, 자신이 후인을 위해 남겨 놓은 곳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자 직접 찾아 나섰던 게 저였던 거죠.”

“놀라운 이야기군요.”

이윤후의 이야기를 듣던 유인경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보였다.

“사부님은 이미 오십 년 전에 불치병에 걸려 무림을 떠났다고 하셨어요.”

“오십 년 전…… 그건 검성이 처음 사라졌을 시기와 맞을 듯하네요. 그럼, 검성이 무림에서 사라진 이유가 병 때문이었군요. 그런데 다른 오절은 왜 사라졌던 걸까요?”

“거기까지는 들은 것이 없어 모르겠어요.”

이윤후도 검성과 무공 수련 외의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아 그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전 늘 오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했던 게…… 검성이 왜 도후와 약선의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았겠냐는 의문이 있었는데, 이제 알 길이 없군요. 혹시나 이 소협은 알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하긴 잘생기셨던데, 사부님.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나 보네요.”

이윤후는 가부좌를 튼 채 영면에 들어 있던 검성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이 든 모습이긴 했지만 인자해 보이는 인상에 선한 눈매가 젊었을 적 여자들에게 인기 있었을 거로 생각했다.

“제가 듣기론 대단했다고 들었어요. 검성이 나타나면 여자들이 그를 보려고 줄을 섰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늘 도후가 검성을 옆에서 지켰다는 말도 있어요.”

“하하, 듣기만 해도 재미있네요. 그냥 제가 보기엔 장난기 많은 노인이었는데, 그렇게 여자들의 사랑을 받았다니. 그런 줄 알았으면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비법이나 배워 둘 걸 그랬어요.”

이윤후는 자신만 알던 검성의 이야기를 유인경과 하고 있는 게 즐거워 웃음이 났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계속 검성이 그리웠고, 가능하다면 자신이 서안에 다녀올 때까지 검성이 소멸하지 않았으면 하고 속으로 바라고 있었다.

“여자한테 인기 있는 비법을 알려 줄까요?”

“네? 정말 그런 비법이 있어요?”

유인경의 말에 이윤후가 되물었다.

“있죠. 그리고 이 소협은 조건들이 좋은 편이죠.”

“비법이 무엇인데요?”

자신의 말에 관심을 보이며 귀를 기울이는 이윤후의 모습에 그녀는 약간 웃음이 났다. 사실 세상 물정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말이 농담인 것을 알 텐데 집중하고 듣는 그의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흠, 이 소협이 여자에게 관심받으려면 신분을 공개하세요.”

“신분이요?”

“검성의 제자라는 것이요. 그것만 밝혀도 무림의 여인들만 아니라 모든 이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거예요.”

“전 또 뭐 대단한 비법이라도…… 알려 주시나 했네요.”

유인경의 말에 조금은 허탈한 듯 이윤후는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그녀는 다시 웃음 지었다.

빼액―

그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익숙한 울음소리가 산을 울렸다.

“백아의 울음소리 아닌가요?”

“그러네요. 어디서 놀다가 이제 저희를 찾고 있나 보네요.”

삐익―

이윤후는 손가락을 모아 바람을 불어 세차게 소리를 냈다. 그리 크지 않은 소리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백아가 하늘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백아의 상태가 이상한데요?”

하강해 오는 백아의 모습에 유인경이 소리쳤다. 이윤후가 바라보자 백아의 아름다운 흰털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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