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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22화 (22/251)

22화― 서안(西安)으로(2)

“저희도 서안으로 가는 중인데 같이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안명이 말을 하고는 이윤후와 유인경을 차례로 바라보며 반응을 살폈다. 유인경은 탐탁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이윤후는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의도가 수상해요. 거절해요.]

유인경은 바로 이윤후에게 전음을 날렸다.

“모시고 가던 남궁가의 아가씨가 까다로워 보이던데 저희와 동행을 하겠다고 하던가요?”

“아가씨도 싫다고 하시진 않을 겁니다. 여행은 사람이 많을수록 즐거우니까요.”

안명은 말하고는 미소를 보였고 그의 넉살 좋은 행동에 이윤후도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동행을 결정하기엔 유인경이 마음에 걸렸다.

“그건 곤란하겠네요.”

“네?”

이윤후가 거절하자 유인경이 말을 이으며 이유를 밝혔다.

“이미 짐작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사파의 사람입니다.”

“…….”

안명도 이미 짐작하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자 조금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사파인 제가 남궁세가와 같이 다닐 수는 없지요.”

“음, 그렇군요.”

안명도 더는 권유할 수가 없었다. 유인경이 사파라는 건 별문제가 아니었으나, 가장 중요한 이윤후가 그녀를 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이 소협도 사파분이십니까?”

안명은 이윤후를 보며 물었다.

“아닙니다. 저는 아직 정사의 개념을 잘 모르겠습니다.”

모호한 이윤후의 말에 안명은 조금은 어리둥절했지만 사파는 아닌 것에 속으로 안도했다.

“정사의 개념을 모르겠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무림에서 정파와 사파를 나누고 서로 싸우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그 경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정파라고 무조건 협객(俠客)인 것도, 사파라고 다 악인(惡人)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사파의 대부분 악인이라고 봐야 하죠.”

안명의 말에 유인경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고 인상이 깊게 써졌다.

“정파야말로 대부분 악인이 아닌가요?”

“네? 그게 무슨…….”

안명의 말에 약간은 흥분한 유인경이 대뜸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파야말로 오절(五絶)이 무림을 대표하던 시절, 그들을 등에 업고 사파를 업신여기며 많은 악행을 하지 않았나요?”

“…….”

유인경의 말에 안명은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정파의 가장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오절의 시대. 불과 백 년도 안 된 그 시절에 정파는 크게 세를 과시했었다. 오절이라 불렸던 검성(劍聖), 신투(神偸), 도후(刀后), 권왕(拳王), 약선(藥仙). 그들이 무림을 종횡했던 시절, 사파는 힘을 쓰지 못했다.

마교(魔敎)조차 오절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무림에 등장하지 못했고, 사패(四覇)에서도 오절이 있을 때 무림을 넘보지 않았다.

하지만 정파의 가장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절, 정파는 가장 부패했다. 사파들이 오절의 영향력에 힘을 쓰지 못함을 알고 사파를 업신여겼다.

그 시기, 가장 큰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 백천문(白天門)의 후계자가 사파의 한 문파를 멸문시킨 일이었다.

백천문의 후계자가 자신들의 영역에 있던 사파의 문파를 제거하기 위해 거짓으로 누명을 씌웠고, 무림맹은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백천문과 협력하여 그 지역의 사파를 멸문시켜 버렸다.

하지만 나중에 백천문의 후계자가 말한 내용이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무림맹은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갔다. 그만큼 그 당시에 사파는 힘이 없었다.

“음…… 제가 말실수를 한 듯하군요. 사파가 대부분 악인이라는 것은 제 실언입니다.”

안명이 자신의 말실수를 인정하자 유인경은 조금은 화가 풀렸지만, 그를 보는 눈이 곱지는 않았다.

“저도 사파가 무조건 악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마련주이신 흑월도존은 정파에서도 존경을 받는 인물이고요.”

“사파의 인물이 정파의 존경도 받습니까?”

안명의 입에서 자신의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유인경은 금세 화가 완전히 풀렸다. 이윤후는 안명이 흑월도존의 이야기를 꺼내자 궁금한 듯 묻기 시작했다.

“이 소협은 무림의 소식을 잘 모르시나 보군요. 흑월도존(黑月刀尊)은 사마련의 련주이신데 무림맹의 맹주님과 마교의 진격을 막아 낸 무림의 영웅이시죠.”

안명은 이윤후가 관심을 가지자 자신이 아는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유 소저께서 말씀하셨던 정파의 오절이 갑자기 사라지고 무림은 약간은 혼란기가 있었는데, 그 혼란기가 지나고 사파는 흑월도존에 의해 평정되었습니다. 구심점이 없던 사파가 흑월도존의 도 아래 뭉치기 시작했고 정파에게 큰 위협이 되었지요.”

“대단한 인물이군요. 사파를 뭉치게 하다니요.”

이윤후는 안명에게 말하며 살짝 유인경을 보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할아버지 칭찬에 유인경이 괜히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정파의 인물, 그것도 남궁세가의 인물에게서 자신의 할아버지를 존경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흑월도존의 영향력이 대단하기도 했지만, 오절에 의해 억압받았던 사파는 흑월도존에게서 희망을 보게 되었지요. 그래서 흑월도존이 사마련을 결성하실 때 거의 모든 사파들이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제 흑월도존의 유지는 사라진 것 같지만요…….”

“그게 무슨 말이죠? 흑월도존의 유지가 사라졌다니요?”

안명의 말에 유인경이 놀라 물었다.

“소식을 모르십니까? 사마련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흑월도존이 사마련을 그의 대제자인 독고진에게 물려줬다는 소식이 퍼진 후, 바로 독고진은 사마련의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사왕련(邪王聯)으로요.”

안명의 말을 듣던 유인경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고 이윤후가 그런 그녀 옆으로 가서 위로해 주었다. 그 모습에 안명은 조금은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독고진이 왜…… 이름을 바꾼 건가…… 요?”

안명은 유인경이 계속 묻자 뭔가 짚히는 게 있는 듯 확신에 찬 표정이 되었다.

“흑월도존의 뜻을 잇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다들 짐작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안명은 한 차례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사파의 입장에서 흑월도존의 등장은 억압받았던 지난날의 설움을 갚아 줄 구세주와 같았겠지만, 흑월도존은 그 행보를 멈추고 정파와의 화합을 택했죠.”

“그건…….”

“흑월도존이 무림일통의 뜻을 접었기에 지금까지 정파와 사파는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파들은 그 평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죠. 그렇기에 독고진이 흑월도존의 뒤를 잇자마자 이름까지 바꾸며 자신은 흑월도존과 같은 길을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겠지요.”

“…….”

“사왕련이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독고진은 자신의 야욕을 드러냈습니다. 사파도 그런 그에게 더욱 지지를 보내고 있고요.”

안명의 말에 유인경도 더는 말을 하지 못했다.

“사왕련으로 바꾼 후 그전에 사마련에 협력했던 문파들이 대부분 협력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상황이니, 몇몇의 문파가 아직 입장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결국 사파는 뭉치게 될 겁니다.”

“정파 입장에서는 큰일이겠군요.”

“그렇죠. 평화로웠던 무림에 전운(戰雲)이 감돌기 시작하는 듯합니다.”

안명은 말하고는 표정이 무거워졌다. 너무 긴 평화로움에 안주하던 무림에 큰 파란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장 준비되어 움직이는 사파들에 비해 정파는 모든 사건이 일어난 후 지금에서야 움직이고 있었다.

“서안에 가시는 것도 지금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겁니까?”

이윤후의 말에 안명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 변화에 이윤후는 자기 생각을 확신할 수가 있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는데 숨기는 것은 무의미하겠죠. 사실은 원래 서안에 가는 의도는 달랐으나 상황이 급변하면서 이 소협이 말한 이유가 되어 버렸죠.”

“그렇군요. 정파와 사파의 싸움이 벌어질 거 같습니까?”

“확신하지 못하겠군요. 하지만 사파의 기세로 봐서는 언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서 대비를 해야 하는 것이고요.”

안명은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생각에 빠진 유인경을 살짝 쳐다보았다. 이번 대화를 통해 경험 많은 그는 이미 유인경의 신분을 짐작하고 있었다.

‘설마 흑월도존의 손녀가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그녀와 함께 다니는 이 소협은 도대체 어떤 사이인가……?’

대화의 분위기와 기존에 들었던 흑월도존 손녀의 용모파기를 연결시킨 안명은 유인경이 유상휘의 손녀임을 알아챘다. 그렇기에 자신 역시 무림맹으로 가는 목적을 밝히고 정보를 풀어 작게나마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 했던 것이다.

이윤후도 안명이 유인경을 주시하는 모습에서 그가 유인경의 신분을 짐작하고 있음을 알았고, 안명과의 대화에서 그녀가 작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 걱정스러웠다.

“저희는 여기서 오후에 출발하려고 하는데 이 소협과 유 소저는 어떻게 하실 예정인가요?”

안명도 유인경의 신분을 안 이상 이제는 같이 동행할 것을 권유하지 않았다.

“저희는 식사하고 떠나려 합니다.”

“그렇군요…… 다시 만날 일이 있었으면 좋겠군요.”

안명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뵙게 될 겁니다.”

안명은 말없이 생각에 빠진 유인경을 한 번 보고는 등을 돌려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가 떠나자 이윤후는 그녀의 앞에 섰다.

“유 소저.”

“아…… 네.”

이윤후의 진중한 음성에 그녀는 정신을 차렸고 안명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게 가시지 않은 지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저기…… 여기요.”

그들을 지켜보던 점소이가 쭈뼛거리며 다가와 말을 걸었다. 유인경이 옷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던 어린 점소이었다. 점소이는 다가와 자신이 찾아온 옷을 내밀었고 이윤후가 받아 들자 말없이 돌아갔다.

이미 벌써 와 있었지만 그들이 대화를 너무 심각하게 하자 다가가지 못한 채 지켜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옷을 전한 것이었다.

“옷 갈아입고 떠나죠. 오래 머물러 좋을 게 없을 듯하니…….”

이윤후는 받아 든 옷을 유인경에게 전했고, 그녀는 말없이 이 층으로 향했다. 너무 축 처진 그녀가 걱정스러워 이윤후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도 갈아입어야겠지.”

이윤후는 장가철장에서 홍예루로 전해 달라고 했던 상자와 상월을 챙기고는 다시 방으로 향했다.

* * *

이윤후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이미 방 앞에는 유인경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잘 어울리네요.”

“그래요?”

옷을 갈아입은 유인경의 모습에 이윤후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원래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백의를 입고 꾸민 유인경의 모습은 자신이 봤던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답네요. 홍의보다는 백의가 더 잘 어울리네요. 유 소저에게는.”

거침없는 이윤후의 말에 유인경은 얼굴이 붉어졌다. 조금 전까지 복잡했던 고민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이 소협은 정말 생각하는 것을 가감 없이 뱉어 내는군요.”

유인경은 이윤후의 솔직한 화법을 몇 번이나 경험해 봤기에 그가 하는 말이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말이 아니란 것을 알았고, 더욱 기분이 좋았다.

“출발하죠. 갈 길이 머니 얼른 가야죠.”

“얼른 저 데려다주고 갈 길 가고 싶어서 보채는 건가요?”

이윤후의 말에 유인경은 삐진 듯이 반응했다.

“그럴 리가요. 내려가죠. 백아가 기다릴 거예요.”

이윤후는 무기가 든 상자를 등에 메고 앞장서서 내려갔다. 유인경도 백아의 이야기가 나오자 더는 말하지 못한 채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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