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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20화 (20/251)

20화― 숨겨진 의도(2)

남궁나연의 잔소리에 다 같이 시달린 남궁세가의 사람들이 객잔에 들어왔다. 다들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짙게 드러나 있었다.

“늦으셨네요.”

옆자리에 자리 잡은 남궁세가의 인물들을 향해 이윤후가 물었다. 금세 따라 들어오리라 생각했던 그들이 생각보다 늦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정이…… 좀 생겨서…….”

남궁나연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었기에, 그녀의 성격을 파악하지 않은 이윤후가 안명의 대답에 어리둥절했으나, 유인경은 대충은 짐작된다는 눈빛이었다.

“그래도 저희가 인연인 모양이군요. 이렇게 금방 다시 만나는 걸 보니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안명이 이윤후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윤후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음식이 나오자, 안명도 더는 귀찮게 하지 않고 자신의 탁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기에 조용히 식사할 수 있었다.

하나, 식사하는 이윤후의 모습을 남궁나연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남궁나연은 이윤후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상월에 자꾸 눈이 갔다. 안명이 워낙 귀하다고 말을 했기에 더욱 신경 쓰이고 있었다.

‘저 검이 남궁세가의 전 재산보다 비싸다고…….’

확실히 가까이서 보니 특이한 검이긴 했다. 검의 모든 부분이 희고 검 자체에 은은한 광채가 흐르고 있었고 누가 보아도 눈길이 갈 만한 검이었다.

그렇지만 안명의 말처럼 저 검이 남궁세가의 모든 재산을 들여도 살 수 없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검 한 자루가 오대세가의 수장을 자처하는 남궁가의 전 재산과 맞먹는단 말인가.

“가까이서 보니까 어떠신지요?”

안명은 남궁나연이 이윤후의 상월을 계속 주시하자 물었다.

“아름답고 특이하네요. 그렇지만 안명이 말한 가치에 대해서는 의문이에요.”

솔직한 남궁나연의 말에 안명은 피식 웃음을 보였다.

“이 소협의 검을 한번 잡아 보시죠, 아가씨.”

자신을 간절히 바라보며 눈짓하는 안명의 말에 이윤후 역시 허락했다. 세상 험한 줄 모르고 나대는 어린 아가씨에게 조금씩 쓴맛을 가르치려는 부하의 충절이었다.

두 사람의 반응에 남궁나연도 괜히 조심스럽긴 했지만, 안명의 말대로 상월에 손을 대려 했다. 하지만.

쩌적―

“아악!”

상월에 손을 가져가기도 전에 손에 느껴지는 한기(寒氣)에 손을 빼야 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녀의 손은 얼어 있었다.

“아가씨.”

남궁나연이 뒤로 물러나자 그녀의 시비들이 놀라 그녀를 부축했고, 그녀는 안명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세상은 남궁의 장원보다 드넓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검의 한기를 이미 근처에서 느낀 적 있던 안명이 짐짓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도대체 이 한기는 뭔가요?”

남궁나연은 손에 느껴지는 한기에 진저리를 쳤다. 그녀의 손이 그 짧은 순간 얼어붙어 빨개져 있었다.

“빙정(氷晶)의 효과지요.”

“효과?”

“빙정의 값어치가 높은 건 빙정 자체가 한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워낙 단단하여 통상의 방법으론 제련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데, 저렇게 빙정으로 검을 만들었으니 필시 이름 높은 명장께서 직접 손대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가치를 값으로 매길 수 없겠지요.”

‘특히나 저 정도의 최상급 빙정을 가질 수 있는 자는 북해빙궁의 직계뿐. 더더욱 아가씨가 함부로 나대게 두어선 안 되겠지.’

남궁나연에게 현실을 깨우쳐 준 안명이 이윤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 소협은 현재 어디로 가고 있으신지요?”

이윤후가 입을 열기 전, 곁에 있던 유인경이 먼저 대답해 왔다.

“우린 서안으로 가고 있어요.”

자신이 사파인 탓에 이윤후가 곤란해지는 듯하여 먼저 나선 것이다.

“서안이면 혹시 무림맹을 가시는 겁니까?”

“아니요. 저희는 다른 볼일이 있어서요.”

“흐음…….”

안명은 유인경이 답을 피하자 궁금함에 답답했다. 그래도 가는 곳을 알았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남궁세가의 탁자 쪽도 음식이 나오자 안명이 조용해졌고 이윤후와 유인경도 식사를 편히 마칠 수 있었다.

잠시 후, 점소이 하나가 계속 유인경을 힐끔거리더니, 둘의 식사가 멈춘 것을 보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방 안에 씻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습니다.”

“고마워.”

유인경이 웃으며 말하자 점소이는 깜짝 놀라 금세 뒷걸음질 쳐서 물러났다. 그 모습에 이윤후가 덤덤히 말을 이었다.

“유 소저의 웃음에 놀랐나 보군요.”

“제 웃음이요?”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을 보고 웃어 주니 놀란 것이겠지요. 저는 제 방에 쉴 테니 무슨 일이 없다면 아침에 뵙도록 하죠.”

말을 마친 이윤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쉬시게요?”

“어차피 유 소저도 씻고 쉬셔야죠. 며칠을 계속 노숙했더니 편안한 침상에서 푹 자고 싶네요.”

“그럼, 그렇게 해요. 어차피 옷도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찾을 수 있을 테니 오늘은 일찍 쉬도록 하죠.”

유인경은 조금은 아쉬웠지만 이윤후의 말처럼 만나고 나서 계속 노숙을 한 터라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싸움에 휘말려 피곤하기도 했다. 그녀의 마음 같아서는 씻고 이윤후를 데리고 저녁에도 거리에 나가 보고 싶었으나 포기하기로 했다.

“……두 사람이 연인관계는 아닌 듯하죠?”

이윤후와 유인경이 방으로 올라가자 식사를 마친 시비 중 한 명이 말했다. 안 그래도 산에서 내려오면서 두 사람이 연인 관계다, 아니다를 두고 내기했던 터라 두 사람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터였다.

“그런 듯하군요.”

안명도 두 사람의 사이가 궁금하여 계속 살피고 있었는데, 예상과 다르게 둘 사이는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다.

“뭔가 걸리는 것이 있으신가요?”

안명이 생각에 빠지자 남궁찬이 물었다.

“아니요. 유 소저를 가까이서 보니 어디서 보았던 거 같아서요.”

안명은 다시 생각에 빠졌고 그의 모습에 남궁찬도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남궁나연도 음식이 마음에 드는지 투정 없이 식사에 집중하였기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식탁이 되었다.

* * *

퍼드득―

객잔의 뒤편 하얀 새가 어둠을 뚫고 날아올랐고, 새의 발엔 연통이 메여 있었다.

새를 날린 이는 객잔 구석에서 식사하던 중년인이었다.

그는 금세 어둠 속으로 사라졌으나 자신을 지켜보는 이가 있음을 중년인은 알지 못했다.

“누구일까요?”

닫힌 창 사이로 밖을 지켜보던 안명에게 남궁찬이 물었다. 중년인이 사라진 듯하자 안명은 창을 활짝 열었고 중년인이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잘은 모르겠네요. 남궁세가를 출발할 때부터 따라붙는 거로 봐서는 분명 우리가 무림맹으로 가는 것을 감시하며 누군가에게 보고하는 듯한데 말이죠.”

안명은 남궁세가에서 출발했을 때부터 추격자들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누군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안명은 모른 척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단순히 우리를 미행하며 보고만 하는 듯한데, 도대체 의도를 모르겠군요.”

“우리가 무림맹에 가는 것을 굳이 따라붙어 가며 보고를 받을 만한 곳이 어딜까요?”

남궁찬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생각나는 곳이 없기에 물었다. 철부지 남궁가의 아가씨 하나 무림맹에 데려가는 일을 굳이 따라붙어서 보고할 만한 한가한 집단은 떠오르지 않았다.

“행동을 조심하긴 해야겠군요. 저들의 의도를 모르니 말이죠. 아직은 공격을 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이긴 하지만 서안에 가까워지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니까요.”

그 말에 남궁찬도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가볍게 나섰던 서안행이었지만, 안명이 저들의 미행을 알렸을 때부터 긴장감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쌍사련의 영역을 지나다 남궁나연이 소란을 일으켜 큰 싸움으로 번지면서 정말 죽음의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다행히 큰일 없이 넘어갔지만, 이윤후와 북해설응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쌍사련의 무사들에게 잡혀가거나 죽었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이윤후 그자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다 보니 남궁찬은 이윤후가 더욱 궁금해졌다. 다른 것을 떠나 쌍사련의 지욱이 소란을 일으킨 자신들을 포기하고, 이윤후와 인연이 닿은 것에 만족하며 떠나간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북해설응에 빙정으로 만든 검…… 거기에 지욱과 잠시지만 맞서서 밀리지 않던 실력까지…… 의문스러운 것뿐이지요.”

이윤후가 사부의 정체를 숨기는 것으로 보아 알려지길 바라지 않는 은거기인의 후인일 가능성이 크다 여겼다.

“아가씨는 서안 무림맹으로 가는 이유를 전혀 모르시는데, 계속 알려 주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남궁찬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들은 남궁세가주의 특별 임무로 무림맹으로 가는 것인데 남궁나연은 그 사실을 몰랐다.

남들의 시선을 속이기 위해 남궁나연을 동행시킨 것이었지만, 이미 자신을 따라붙는 자들이 생겼다. 나중에 남궁나연이 이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뭐라고 할지 상상도 하기 싫은 남궁찬이었다.

“어디로 튈지 상상도 안 되는 아이인데, 알면 감당이 되겠습니까?”

안명의 말에 남궁찬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세가 내부에서도 남궁나연에 대해서 손을 놓을 정도로 천방지축이었고, 그녀의 아버지이자 가주인 남궁인조차도 그녀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했다.

어릴 적 몸이 약해 좋다는 귀한 것들을 구해서 먹인 덕에 내공이 높고 무공의 재능도 뛰어났으나, 워낙 게으르고 힘든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좋은 재능을 낭비하는 경우였다.

남궁세가에서도 어떻게든 무공을 가르치려고 했지만, 결국 그녀의 막무가내 성격을 감당하지 못했고, 그나마 안명이 그녀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 학문과 무공 스승이 될 수가 있었다.

“내일 출발은 어떻게 할까요? 아가씨에게나 시비들에게 전해 주어야 할 것 같은데요?”

“일단은…….”

남궁찬의 물음에 안명은 바로 대답지 못했다.

“그들과 동행을 하려는데 어떨까요?”

안명은 잠깐 말을 아끼고는 남궁찬에게 답했다.

“저들의 정체도 모르는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안명이 말하는 그들이라는 것이 이윤후와 유인경이라는 것을 알아챈 남궁찬은 곤란한 표정을 보였다.

“이미 우린 구명지은을 입었습니다. 그들이 악인이었다면 우리가 죽도록 내버려 두었겠지요. 또한 같이 돌아다니면서 빚을 갚다 보면 저들의 정확한 신분을 알 수도 있겠지요.”

안명의 말에 남궁찬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안명 어르신이 결정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가주님이 안명 어르신께 이번 서안행의 모든 것을 일임하셨으니까요.”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죠.”

“전 저쪽 방에 가서 오후에 출발하는 것으로 알려 두겠습니다.”

남궁찬은 말을 하고는 방을 나섰고 안명은 다시 생각에 빠졌다. 이윤후와 유인경에게 동행을 어떻게 요청을 할지 방법을 생각해야만 했다.

유인경이 은근히 자신들에게 적대감을 비추고 있었기에 이윤후를 공략하는 게 유리했다. 안명은 그 방법을 생각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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