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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7화 (17/251)

17화― 호색응(好色鷹) 백아(1)

어지럽게 엉키고 있는 남궁세가와 쌍사련의 무인들의 전황을 보며 이윤후는 계산을 마쳤다.

수준으로 보아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자는 없었다. 자신에겐 검성의 무공이 있고, 백아가 있고, 상월이 있다. 그러니 무림맹으로 가는 와중 남궁세가에 빚을 사 두는 일도 나쁘지 않았다.

“유 소저는 잠시 물러서 있어요.”

그녀가 물러서자, 이윤후는 상월에 손을 가져다 댔다.

상월을 시험할 순간이었다. 상월도 마치 자신이 활약할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지, 칼에 손을 대고 있는 이윤후가 느낄 정도로 진동하기 시작했다.

빼액―

백아가 먼저 참지 못하고 싸움에 끼어들기 위해 날아들었다. 갑자기 뒤에서 덮쳐 오는 백아의 존재에 쌍사련의 무사들은 순간 대형이 흐트러졌고, 그 틈을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찰나의 순간에 남궁찬과 안명이라 불렸던 사내가 두 명의 쌍사련 무사를 해치웠고, 백아도 한 명을 낚아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콰앙―

“크학……!”

백아가 낚아챈 쌍사련의 무사를 다시 바닥에 추락시키자, 무사는 그대로 단발마 비명과 함께 충격으로 기절하고 말았다.

“…….”

혼란 속에 이윤후는 남궁세가 측에 섰다. 남궁세가의 인물들은 이윤후가 자신들을 돕겠다는 나서자 한결 숨을 돌린 표정이었다.

유인경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윤후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이 소협의 실력을 제대로 볼 기회겠네.’

여차하면 자신이 나서 이윤후를 돕겠지만, 그녀는 지금이 이윤후의 실력을 견식할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

스르릉―

이윤후는 천천히 상월을 검집에서 뽑았다. 희다 못해 투명한 검신이 드러나자 모두 그의 검에 집중했다. 그만큼 이윤후의 검은 누가 봐도 특이한 모양새였다.

파바박―

갑작스러운 이윤후와 백아의 개입으로 혼란스러웠지만, 수의 강세는 자신들에게 있었기에 쌍사련은 진형을 가다듬었다.

“여인들을 노려라!”

파바밧―

외침과 함께 여러 명이 남궁나연 쪽으로 달려들었고, 나머지는 전부 남자들을 에워싸며 여인들 쪽으로 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런, 아가씨를……!”

남궁찬이 물러나며 그쪽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자기 몸을 건사하기도 힘들었다.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시오.”

차분한 이윤후의 말에도 남궁찬과 안명은 남궁나연의 안위가 걱정되어 계속 힐끔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쌍사련의 무사들은 그들에게 여유조차 주지 않고 몰아붙이고 있었고, 많은 수가 남궁찬에게 붙어 특히 위험해 보였다.

“실력을 숨기시는 건가.”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유인경은 이윤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으나, 그는 딱히 별다른 무공을 펼치지 않은 채 상대의 검과 도를 흘리며 방어만 하고 있었다.

여유로워 보이는 이윤후와 달리 남궁세가의 남궁찬과 안명 쪽은 조금 위험해 보였다.

이제껏 쌍사련이 많은 수로 그들을 제압하지 못했던 이유가 남궁찬과 안명 때문이다 보니 많은 수를 둘에게 붙였고, 사방에서 달려드는 적으로 인해 그들의 행색은 시간이 갈수록 초췌해져 갔다.

둘은 안 그래도 남궁나연 걱정에 신경 쓰느라 더욱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들의 걱정처럼 남궁나연 쪽은 쌍사련의 무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던 데다, 이윤후 혼자서 지켜야 하는 여인들이 있었기에 불리해 보이는 게 당연하였다.

물론 이윤후 혼자였다면야 이 정도 무인쯤 몇이 달려오든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하나 그가 반격만 하고 살초를 쓰지 않는 이유는 단지 한 지역을 담당하는 사파 집단과 피를 보면서까지 척을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저 남궁가의 여식과 시비들을 지켜 주는 일만으로도 명문 대파인 남궁가에 많은 빚을 지워 둘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이윤후는 그저 오는 검을 덤덤히 맞받아쳐 퉁겨 낼 뿐이었다.

촤앙―!

“헉, 이게 무슨……!”

이윤후와 검을 부딪친 쌍사련의 무사는 기겁하며 검을 놓치고 뒷걸음질 쳤다. 그의 손은 한기에 얼어 있었다.

검을 맞잡은 순간 한기가 전해져, 놀라 검을 떼려 했지만 이미 손이 얼어붙은 것이었다.

퍽―

“커헉……!”

이윤후는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다가가 검수(劍首) 부분으로 상대의 목을 내려쳤다.

퍼벅―

‘어렵지 않다.’

이윤후는 추가로 셋을 제압하고는 슬쩍 백아의 쪽을 보았다.

백아는 어느새 땅에 내려온 채 있었는데 그 위압감에 쌍사련의 무사들이 접근도 못 하고 있었다.

상황이 점차 정리되는 기색에 이윤후가 긴장을 놓으려는 순간, 맞은편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네놈! 도대체 누구기에 우리 일을 방해하는 것이냐?”

수하들이 계속 당하자, 지켜만 보던 쌍사련의 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이윤후라 하오.”

“우리가 왜 저들을 쫒는지 알고 나서는 것이더냐.”

“궁금하지 않소.”

“뭣, 이놈……!”

진실로 궁금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사정은 있는 법. 단지 눈앞의 있는 자와 자신의 사정이 다를 뿐이다.

사파인 쌍사련의 손에서 명문 대파 출신인 남궁나연을 구하면 자신과 유인경은 무림맹의 호의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질 터.

그러니, 검을 뽑는다.

평상시 모습과는 다르게, 이윤후의 눈에 차가운 한기(寒氣)가 서려 있었다.

“허, 나는 쌍사련의 지욱(池昱)이다.”

지욱의 소개에 힘겹게 쌍사련의 무사들을 상대하고 있던 남궁찬과 안명이 놀랐다.

쌍사련이 사파 중 큰 문파는 아니었음에도 이 일대에서 힘을 과시할 수가 있었던 이유는 쌍사련에 삼천왕(三天王)이라는 세 명의 고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지욱. 삼천왕의 무위에 대해선 이미 소문이 자자했기에 남궁세가의 무인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남궁찬과 안명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 중 그와 겨룰 만한 실력을 갖춘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꽤나 명성이 있는 무인이신가 보오. 저들이 저렇게 놀라는 것을 보니.”

이윤후의 말에 지욱은 기가 찬 듯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무위을 과신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무림에서 명성을 가지고 있다 자부했다.

사실 이름을 밝힌 이유도 이윤후가 자신의 이름을 듣고 물러나 줬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백아의 존재도 까다로웠지만, 자신의 수하를 단숨에 제압한 이윤후의 무위가 신경 쓰였기에 싸움을 피하고 싶었다.

스릉―

지욱이 검을 뽑았다. 그의 기도 앞에 이윤후도 긴장감을 가졌다. 경험이 많지 않은 이윤후였지만, 지욱이 검을 뽑자 느껴지는 기세에 순간 움찔하며 상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고수구나.’

이윤후는 마주하고 있는 지욱의 실력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온몸에 느껴지는 그의 기세에 몸이 저려 왔다.

내공으로만 본다면 이전에 만났던 잠룡대 대주 장명(張明)보다 살짝 하수. 그러나 내공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경험으로 쌓아 올린 예기(銳氣)가 검에 담겨 있을 터다.

[이 소협, 상대하는 자는 사파 무림에서 알아주는 고수예요. 절대 방심하면 안 돼요! 가능하면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 해요.]

이윤후에게 전음이 전해졌다. 유인경의 걱정스러운 말이었다.

그녀 역시 적풍도를 뽑아 들며 기세를 피워 올렸다. 그만큼 지욱이 강자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유인경의 전음 이전에 이미 지욱의 강함을 이윤후도 몸으로 느끼고 있던지라 방심하는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이윤후는 호승심(好勝心)이 생겨나고 있었다.

[유 소저, 이 대결에 다른 무인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해 주세요.]

어렸을 적, 아버지의 기대감에 탓에 뛰어남도 감춘 채 범인처럼 살아야 했던 그에게 검성과의 만남은 또 다른 기회였다.

붓만 쥐었던 자신이 스승의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 전해 받은 무공과 심득을 이어 검성 나진하의 후인이 되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무공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지욱을 만난 것에 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빼액―!

이윤후가 내공을 끌어 올리며 준비하자, 백아가 그의 기에 호응하며 매섭게 울며 다가오는 쌍사련의 무인들을 막았다.

“역시, 저건 북해설응(北海雪鷹)인가. 대체 네 정체가 무엇이느냐.”

“알 거 없소.”

산전수전 다 겪어 온 지욱은 백아의 정체를 눈치챘다. 이미 보여 준 모습으로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북해빙궁에서만 기른다는 설응임을 알고 나니 더욱더 긴장되었다.

두 사람의 대치가 길어지자 긴장감이 흘렀다. 백아와 유인경의 활약으로 어느새 쌍사련의 무인들이 천천히 제압당하고 있었다.

‘부하들을 버릴 수는 없는 법.’

지욱은 백아 밑에 깔린 부하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이윤후에게 집중했다.

자기가 데려온 무사의 수라면 쉽게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제압하고 남궁나연을 잡아갔어야 했으나, 예상치 못한 변수에 모든 일이 수포가 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쓰러진 쌍사련의 무사들이 거의 죽지 않고 다친 정도로 끝이 났다는 점이었지만, 여기서 그냥 물러나기엔 그의 자존심이 허하지 않았다.

스으으―!

찰나, 지욱의 손이 떨리는 듯 진동하더니 검이 번쩍였다.

사변지미(蛇變之尾) 이검(二劍).

샤샥―

지욱을 삼천왕 반열에 올려놓은 환검(幻劍). 내공이 가득 담긴 그의 검첨이 갈라지며 이윤후의 머리와 가슴으로 향했다.

두 방향으로 쏘아 오는 검첨. 하지만 이윤후는 상대의 검 대신 지욱의 눈을 쳐다보았다. 날아오는 검은 두 개였으나, 시선은 하나였다.

‘머리는 허초, 가슴이 진짜다.’

촤장―!

상월을 위로 쳐들어 진검(眞劍)을 쳐 낸 뒤, 내공을 담아 횡(橫)으로 휘둘러 지욱에게 한기(寒氣)를 쏘아 내었다.

지욱은 자신의 검을 손쉽게 막고 반격까지 하는 이윤후에게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 일 합을 나눈 것뿐이었지만, 대결을 지켜보는 모두가 지욱처럼 이윤후의 무위에 놀라고 있었다.

삼천왕(三天王)이라 불리는 지욱의 명성은 허명이 아니다. 전장에서 살아남으며 천천히 이름을 쌓아 올렸기에 누구도 지욱을 의심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지욱의 검을, 아직 약관도 되지 않아 보이는 청년이 손쉽게 상대하고 있었다.

“……저자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죠?”

남궁나연은 갑자기 나타난 이윤후를 흥미롭게 쳐다보며 물었다.

“이름은 이윤후라고 하던데, 따로 사문을 밝히지 않아 정체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 설응의 주인이기도 한 거 보면 보통 인물은 아닌 듯합니다.”

백아의 도움으로 쌍사련의 무사들을 모두 제압한 남궁찬이 어느새 그녀 곁으로 와 답했다.

그의 대답에 남궁나연은 자신의 앞에서 주인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는 백아를 보다가, 이내 두 사람의 싸움에 다시 눈길을 돌렸다.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 것인가?”

지욱은 자세만 잡고 공격해 오지 않는 이윤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자세가 도저히 먼저 공격해 올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물은 것이었다.

“말이 많소이다.”

이윤후는 먼저 공격하기 껄끄러워 가만히 대기하였고, 지욱도 상대의 빈틈이 보이지 않아 쉽게 들어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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