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남궁나연(南宮娜璉)
“그래도 홍예루가 서안에 있어서 다행이네요.”
유인경은 앞서 걸어가는 이윤후를 보며 말했다.
“아마 장 장주님이 저희가 서안에 가는 것을 알았으니 겸사겸사 시키신 게 아닐지요.”
“그럴까요?”
두 사람은 장가철장에서 나온 뒤 산 아랫마을에서 홍예루가 서안에 있다는 것을 듣고 이동 중이었다.
‘흠, 장가철장의 장주는 분명 유 소저가 서안으로 간다는 것을 듣고 동요하는 분위기였는데, 왜 굳이 서안에 있는 홍예루로 보낸 것일까…….’
이윤후는 사실 장윤호가 유인경을 조금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건 여인으로서가 아닌, 마치 딸을 걱정하는 눈빛과도 같았다.
그가 갑작스럽게 홍예루로 가 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서안으로 가는 것을 말리려고 하는 뜻이 아닌지 의심했는데, 홍예루가 서안에 있다는 사실에 조금 의아했다.
‘서안에는 무림맹이 있으니, 그곳에 가는 것을 말리려 했다면 그 지역에 있는 홍예루로 보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장 장주는 우리가 무림맹에 가는 것을 말리려고 한 게 아닌 것인가? 말리고 싶어 하는 느낌 같았는데…….’
그가 생각에 빠진 사이, 어느새 유인경이 다가와 그런 이윤후를 빤히 보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정신을 차린 이윤후가 자신을 바라보는 유인경의 모습에 의문을 표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음, 유 소저는 장 장주님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못 느꼈는지요.”
“확실히 이상했죠.”
이윤후의 물음에 유인경도 걸음을 옮기며 그의 말에 찬동했다. 그녀 역시 장주가 자신을 특별히 대해 주었다는 점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사실 장 장주님을 처음 보는 것인데, 저를 보는 눈빛이나 말투도 그렇고. 거기에 이런 귀한 것까지 주는 것을 보니…… 이상하더라고요.”
유인경은 자신의 손에 들린 적풍도를 보이며 말했다. 유서 깊은 장가철장의 장주가 직접 제작해 선물한 도.
도에 문외한인 이윤후가 봐도 적풍도는 명도였다. 장윤호가 신장의 무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신장의 무기와 비교했을 때지, 보통 때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냥 철장의 장주라고 하기에도 비밀스러운 느낌이 많이 들었지요?”
“그렇죠. 무림의 정보에 대해 너무 빠르고…… 당장 제가 겪은 사마련의 일을 이곳에서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요. 아무리 무림의 정세에 빨라야 하는 장사치라지만, 그것은 너무 이상하죠.”
유인경도 의문점은 많았다. 게다가 그곳에서 봤던 장칠이나 자신들을 안내했던 중년 여인도 모두 보통의 무공을 지닌 인물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선의를 가지고 자신들을 도우려 했다.
“우리를 홍예루로 보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해요?”
“…….”
유인경의 물음에 이윤후는 선뜻 답하지 않았다.
“홍예루가 서안에 있다니, 제 예상과는 조금 달랐어요.”
유인경은 말을 마치고는 의견을 묻듯이 이윤후를 보았다.
“유 소저도 알고 있었군요.”
“뭘요?”
“장 장주가 우리가 무림맹으로 간다는 것을 알고 말리려 했다는 것을요.”
“날 너무 눈치 없는 사람으로 봤군요.”
유인경은 이윤후의 말에 투정을 부렸다.
“죄송합니다.”
“뭐예요. 정말 그렇게 봤다는 거예요?”
이윤후가 부정 않고 사과만 하자 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아니라고 변명할 텐데, 왜 그저 사과만 한단 말인가.
“흥. 그럼, 이 소협이 생각하기에 장 장주의 의도가 무엇이라 생각해요?”
“예상은 가지만, 일단 홍예루에 가 봐야 알겠지요.”
장주는 상월과 적풍도에 건넨 것에 그치지 않고, 무림 사정에 대해 자세히 알려 주기까지 했다. 마치 자신들에게 실마리를 던져 주려는 듯이.
천무고의 모든 무기가 풀렸고, 흑월도존의 대제자인 독고진이 련주 자리에 올랐으며, 필시 서안에 위치한 무림맹에도 무언가 문제가 있다.
그의 정확한 의도를 알려면 홍예루에 가 봐야 하겠지만, 만약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빼액―!
그 순간, 산중에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렸고, 두 사람은 동시에 하늘을 보았다. 백아가 자신들의 머리 위를 뱅글뱅글 날고 있었다.
“왜 저러는 거죠?”
유인경은 백아가 내려오지 않고 하늘만 돌고 있자 이상함을 느껴 이윤후에게 물었다.
“자신을 따라오라는 이야기 같은데요.”
이윤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백아가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 보죠.”
“아, 네.”
* * *
백아가 날아간 방향으로 이윤후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유인경도 놀라 뒤따랐다. 그렇게 달리기를 반각(半刻) 정도 했을 때 제자리를 날고 있는 백아를 발견했고 그들은 속도를 내 그곳으로 향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마차가 부서진 채 있었고 그 마차를 끌었을 것으로 보이는 말들의 사체가 보였다. 그리고 마차 주위에 엉켜진 채 싸우고 있는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산적일까요?”
“산적치고는 무공을 체계적으로 배운 이들 같아 보이네요.”
이윤후의 말을 듣고서 유인경이 다시 무리를 보자 확실히 양쪽 다 무공의 수준이 높아 보였다.
습격한 쪽으로 보이는 자들은 가슴에 두 마리의 뱀이 엉켜 있는 문양의 남색 옷을 입고 있었고, 마차의 주인으로 보이는 자들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입은 여인 한 명을 남은 네 명이 보호한 채 공격을 막아 내고 있었다.
“쌍사련(雙蛇聯)의 무인들이군요. 상대는 누군지 모르겠네요.”
유인경은 가슴에 뱀 문양을 보고 습격한 쪽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쌍사련이라면 주로 정보를 사고파는 문파이지, 이렇게 대낮에 산적질을 벌일 놈들은 아니었기에 다소 의문이 들었다.
“백아는 왜 우릴 이쪽으로 안내한 것이죠?”
자신들을 이쪽으로 데려온 이유가 궁금해진 유인경이 싸움을 바라보고 있는 이윤후를 향해 물었다.
“……백아는 아름다운 여인들을 좋아하거든요. 저 여자를 도우라는 뜻일 겁니다.”
“엥, 정말요?”
이윤후의 대답에 믿기지 않는 듯 하늘을 날고 있는 백아를 바라보았다.
“백아의 여성 취향 덕에 유 소저도 목숨을 구명(求命)하지 않았나요? 사부께서 말씀하시길, 저 녀석은 제가 수련할 때도 산에서 길 잃은 여인들을 구해 주고 다녔다더군요. 특히 여인들만…… 또 그중에 아름다운 여인들로요.”
이윤후의 말이 믿기지는 않았지만 아름다운 여인들만 구해 준다는 부분은 자신의 마음에 들었기에 딱히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흠…… 아름답긴 하네요.”
유인경은 보호받는 여인을 보고는 말했다. 쌍사련의 공격을 받는 쪽은 정파의 인물들로 보였으나, 정확한 정체를 파악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할 건가요? 구해 줄 건가요?”
“놔두면 백아가 알아서 정리할 겁니다.”
유인경의 말에 이윤후는 하늘을 가리켰다. 그녀의 시선이 하늘로 갔을 때는 이미 백아가 무서운 속도로 하강하고 있었다.
빼액―
“크흑…… 뭐냐?”
백아의 울음소리에 다들 귀를 부여잡은 채 하늘을 바라보았고 자신들을 향해 내려오는 흰색 물체에 놀라 흩어졌다.
콰직―!
쿠당탕―
“크악!”
순식간에 날아든 거대한 물체에 쌍사련의 인물이 부딪쳐 땅에 뒹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움직임이 멈춘 채 바라보았다.
“괴물…….”
“무슨…… 새가 저리…….”
날아든 백아가 위압적으로 거대한 날개를 펼치자 다들 놀라 뒷걸음질 쳤다.
“무슨 일이죠? 안명(安明).”
“잘은 모르겠는데…… 저 거대한 새가 저희를 도와준 것 같습니다.”
가운데 있던 여인은 갑자기 나타난 백아가 자신들을 보호하듯이 큰 날개를 펼치고 상대를 위협하고 있자 앞의 무사에게 물었으나, 무사들도 어리둥절하며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희를 도와주려는 것은 맞는 거 같은데요.”
여인의 옆에 있던 시비로 보이는 여인이 말했다.
“그런데…… 저 새는 도대체 뭐죠? 저런 거대한 새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거 같아요.”
그들이 소란스럽게 의견을 나눌 즈음, 반대쪽 쌍사련의 무사들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안 그래도 자기들이 수가 많음에도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난 백아의 존재는 그들에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대장님…….”
“동요하지 마라. 대열을 갖추고 일단 지켜보…… 응?”
쌍사련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무사들을 혼란을 추스르려 했으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날개를 한껏 펴고 있던 백아가 날개를 접더니 어디론가 어울리지 않게 총총거리며 가고 있었다.
꾸륵―
백아의 이동에 쌍사련의 인물들이나 마차의 인물들 모두 그 모습에 집중했다. 백아가 간 곳에는 남녀 한 쌍이 걸어오고 있었다.
“이 녀석, 그렇게 급하게 가더니…….”
나타난 이들은 이윤후와 유인경이었다. 백아는 큰 덩치임에도 이윤후에게 안겼고, 그는 백아를 쓰다듬으며 양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저들을 구해 주고 싶은 것이냐?”
꾸륵―
이윤후의 말을 알아듣고는 백아가 답했다. 유인경도 이미 백아가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처음보다 놀라지 않았지만 신기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안녕하시오, 소협.”
그런 그들에게 마차의 무사 중 한 명이 예를 표했다.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찬(南宮璨)이라고 합니다. 저희를 도와주신 거 같은데 감사드립니다.”
명문 대파 출신 남궁찬이 정체를 밝히자 유인경은 난처해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이윤후는 유인경에게 전음을 날리며 남궁찬의 말을 받았다.
“이윤후입니다.”
그 대답에 남궁찬이 둘을 살피는 듯한 눈빛을 보내던 순간.
빼액―
이윤후와 남궁찬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쌍사련의 인물들이 움직이려 하자 백아가 한 차례 크게 울었고, 그 울림에 쌍사련의 무사들은 귀를 부여잡고 비틀거렸다. 거기에 몇몇은 쓰러지기까지 했다.
“대단하군요, 소협……. 어떤 영물(靈物)입니까? 울음소리로 피해를 주다니 마치 사자후(獅子吼)와 같이…….”
그 모습에 남궁찬은 진심으로 놀라 이윤후에게 물었다.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는 이렇게 큰 새도 처음이었지만, 사자후를 내뿜는 영물은 더더욱 금시초문이었다.
‘게다가 적에게만 피해를 주다니…… 대체 정체가 무엇이지.’
촤장―
“더는 지체하지 마라. 일제히 공격해 남궁나연(南宮娜璉)을 확보하라.”
쌍사련의 대장은 괜히 시간이 끌리자 마음이 급해진 듯 명령을 내려 움직이기 시작했고, 다시 남궁세가의 일행들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남궁찬도 검을 들고 자세를 잡았다.
백아는 남궁나연이라 불렸던 여인을 도와주고 싶은지 이윤후의 옆에서 낑낑대고 있었다.
“남궁나연이라면 남궁세가의 꽃이라 불리는 여인이군요.”
“꽃이요?”
“무림에선 아름다운 여인들을 꽃과 비유해서 부르기도 해요.”
“유 소저도 그럼 꽃으로 불렸겠군요.”
“네?”
덤덤한 이윤후의 말에 유인경은 놀라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죠. 저도 사마련에서는 꽃이었죠.”
유인경은 기분이 좋은 듯 혼자 배시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