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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4화 (14/251)

14화― 신장(神匠)의 무기

“여기 다른 방에는 어떤 물건이 있는 건가요?”

앞서가던 유인경이 미련이 남는지 뒤돌아보며 물었다. 다른 방에도 굉장한 물건들이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궁금했었던 그녀였다.

“각 방에는 사연이 있는 물건들이 있었죠. 방으로 가 말씀드리죠.”

장윤호는 빙긋 웃으며 말하고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웃으며 말하는 그의 뒷모습이 어딘가 후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뒤를 따라 이윤후와 유인경도 움직였다.

드드드―

지하의 천무고에서 올라오자, 장윤호는 무언가를 건드려 기관을 움직였고 들려져 있던 바닥이 천천히 닫히며 감쪽같이 평범한 바닥이 되었다.

“저를 따라서 오시죠.”

바닥이 완전히 닫히자 장윤호는 확인하고 밖으로 나섰다. 그를 따라 밖으로 나서자 언제부터 기다린 건지 중년 여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주님, 부인께서 손님들과 드실 다과(茶菓)를 화성정(和成亭)에 준비해 두셨습니다.”

“그래. 부인에게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천무고의 진(陣)을 다시 가동하도록 해 주세요.”

“네. 안 그래도 장칠이 주위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장윤호는 이윤후와 유인경을 다시 안내하기 시작했다.

“천무고가 있던 건물 배치가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진이 존재했던 거 같네요.”

유인경이 이윤후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이윤후도 처음 안내받았을 때, 천무고의 지하가 있던 건물의 방향이나 밖의 구조물들의 배치가 조금 특이했던 데다가 오행이 어딘지 뒤틀려 있어 의문이 들었는데, 진을 가동하라는 장윤호의 말에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 * *

“와, 아름다워요.”

잠깐 생각에 빠진 채 걷고 있던 이윤후는 유인경의 감탄사에 고개를 들었다. 눈 안에 들어온 것은 작은 인공 연못과 정자(亭子)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지만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런 곳이 집 안에 있다니 놀랍군요.”

이윤후는 자신의 집과 작은 마을 외에는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이런 호화스러움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인경은 이미 대문파의 손녀였기에 이윤후에 비해 놀라지는 않았다. 장가철장의 규모로 보았을 때 이런 것이 있다고 해도 놀랄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가 좋아하겠군요. 이곳은 그녀가 신경을 많이 쓰는 장소거든요. 이쪽으로 오시죠.”

장윤호는 정자 안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곳엔 아까 전 중년 여인이 말했던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아내가 두 분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장윤호는 준비되어 있던 유인경과 이윤후에게 각각 따라 주었다. 그의 말에 두 사람이 쳐다보자 장윤호는 자신의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여기 화성정은 아내와 저만 오는 장소였는데, 이렇게 이곳에 차를 내주며 두 분을 접대하라는 건 여간 마음에 들지 않고는 힘든 일이거든요. 무림맹주가 왔을 때도 여기를 내주지 않았던 사람이라서요.”

“그렇군요. 나중에 부인께 인사를 해야겠어요.”

유인경은 화정 부인에 대한 감사를 표했고, 그 말에 차향을 음미하던 그는 잔을 내려놓고 다시 말을 이어 갔다.

“신장의 무기가 이렇게 동시에 무림에 다시 나가다니…… 흥미로운 일이긴 하군요.”

“상월 외에도 신장의 무기가 무림에 또 있습니까?”

“공교롭게도 최근 저희를 찾아와 무기를 찾아간 이들이 꽤 있습니다. 조금 전 천무고의 방을 보셨죠?”

장윤호의 물음에 이윤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무고의 방은 모두 여덟. 그곳에는 모두 신장이 만든 무기가 보관되어 있었습니다만, 조금 전을 마지막으로 천무고는 텅텅 비게 되었습니다.”

장윤호는 말을 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그럼, 신장의 무기 여덟 개가 모두 무림에 풀렸다는 건가요?”

이윤후의 물음에 장윤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신장께서 만드신 무기는 총 열둘입니다. 처음 만들어 주었던 도, 검, 궁 세 개와 북해빙궁의 빙정으로 만든 상월. 그리고 장가철장을 만들어 준 사람에게 넘긴 무기가 하나. 신장께서 죽기 전까지 만든 일곱의 무기까지 총 열두 개의 무기가 현재 무림에 있습니다.”

“신장의 무기는 알려진 것은 세 개인데, 그것도 무림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지지 않았나요?”

유인경은 장윤호의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 무림에 알려진 것은 한 자루의 도(刀)와 검(劍) 그리고 궁(弓) 세 가지였다. 갑작스러운 상월의 존재도 놀라운데, 무려 그것 말고도 여덟 개의 무기가 더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장윤호는 이윤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남아있던 신장의 무기, 상월의 주인이 된 청년.

눈앞의 이윤후가 상월의 선택을 받을지 조금은 의심스러웠지만, 그는 검성의 제자답게 상월을 취했고 천무고는 모든 방이 비게 되었다. 이로써 신장의 염원은 이루어졌다.

“유 소저가 궁금해하실 홍라염도(紅羅炎刀) 역시 무림에 나와 있습니다.”

“누구의 소유인가요? 홍라염도는?”

유인경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며 물었다.

“이미 예상하시지 않습니까?”

“역시, 도후(刀后)의 소유인가요?”

“……홍라염도도 신장 시절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진 도이긴 하나, 사정이 있어 화풍곡(火風谷)에 있었습니다.”

장윤호가 한참 이야기하던 도중 천무고 앞에서 자신들을 안내했던 중년 여인이 화성정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그녀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 있었다.

“장주님, 이야기하신 것 가져왔습니다.”

“그래. 이리 주게.”

장윤호는 그녀가 건네는 것을 받아 들었다. 그것은 붉은색의 도신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한 자루의 도였다.

“그게 무엇인가요?”

여인이 도를 장윤호에게 넘겨주고는 모두에게 예를 취한 뒤에 화성정을 나섰다.

그녀가 나가자, 궁금했던 유인경은 바로 물었다. 여인이 가져온 도에 관심이 생겼던 탓이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네.”

장윤호가 가져온 도를 유인경에게 건네었다. 도를 받아 든 그녀는 유심하게 이곳저곳 살피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장윤호는 미소를 보였다.

‘이런 화려한 도라니…… 마치 소문의 홍라염도와 같은데…….’

유인경은 자신의 품에 있는 도가 마치 듣기만 했던 홍라염도의 외견과 비슷하다고 여겼다.

붉은 도신과 도집 그리고 도면(刀面) 부분에 적풍(赤風)이라고 음각되어 있었다. 손잡이인 도병 부분에도 화려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있었다.

“도의 명칭이 적풍인가요?”

“그렇습니다. 신장께서 남겨 주신 기록에 따라서 홍라염도와 같은 방법으로 만든 도이긴 하나…… 비교하긴 부끄러운 작품이죠.”

장윤호가 멋쩍게 이야기했지만, 유인경이 보기에는 명도(名刀)였다. 도에서 느껴지는 예기가 보통이 아니었고 들어 봤을 때도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좋았다.

“좋은 물건인 거 같은데요. 도의 외견이나 날카로움을 보니 보통 정성을 쏟으신 게 아닌 듯하고, 무엇보다 장가철장의 장주님이 만드신 물건이라면 부끄러운 작품일 리가 없죠.”

“과찬이십니다.”

유인경이 자신이 만든 도를 칭찬해 주자 장윤호는 민망한 듯 표정을 보였다. 사실 신장의 기록에 따라 만든 도이긴 하나 밖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에 드신다면 유 소저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네?”

장윤호의 말에 유인경은 눈이 동그래지며 놀란 표정을 보였다.

“도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흑월도존의 손녀이시니 도를 쓰실 거 같은데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만…….”

장윤호의 제안이 갑작스러운지라 유인경은 조금은 당황했다. 도에 대해 욕심이 나긴 했지만 이렇게 그가 먼저 제안해 줄 것은 예상 밖이었다.

“어차피 팔 수 없는 물건입니다. 유 소저가 사용해 주신다면 제가 기분이 좋을 듯합니다.”

장윤호가 기분 좋게 도를 내주자 유인경은 더는 사양할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겨우 살아 도망쳐 나온 입장이라 자신의 애도를 챙겨 나오지 못해 아쉬웠던 차였다.

“감사합니다. 장주님 안 그래도 제 사정이 안 좋아 도를 하나 부탁드리려 했는데…….”

“유 소저의 일은 소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무림에 사마련에 대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더군요.”

“어떤 소문이요?”

유인경은 왠지 모를 불안함에 물었다. 사마련은 이미 모반한 자들의 세상이었다. 분명 무림에 소문이 날 시점이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 소문이 날지 불안함이 들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장윤호는 유인경을 조금은 걱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흠. 일단 소문으로는 사마련주이신 흑월도존 유상휘께서 와병(臥病) 중이기에 대제자인 독고진이 련주로 취임할 거라 하더군요.”

“독고진. 그자가 역시…….”

장윤호의 말을 듣고 유인경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최악의 가정이 사실이었다.

수라마검과 흑룡창제의 모반이라 여기고 도주했었지만, 련주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경혼까지 그들을 편임을 알았을 때, 배후가 그 둘이 아니라는 의심을 하고 있던 유인경이었다.

그렇다면 배후를 의심해 볼 만한 이는 폐관수련에 들었던 독고진이었다.

그는 어릴 적 정파로 인해 자신의 문파가 멸문당한 적 있었는데, 어린 나이에 가족을 잃은 그를 가련히 여긴 유상휘가 제자로 삼아 자기 자식처럼 정성을 쏟았었다.

정파로 인해 가족의 모두를 잃었던 독고진이었기에 유상휘의 제자가 되어 정파에게 복수를 꿈꾸었으나, 제 스승이 정파와의 일전을 접으면서 불만이 쌓였을 터.

그 사실을 유인경도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모반까지 하면서 제 스승을 배반할 줄은 생각 못 했었다.

‘대사형은…… 폐관수련 중이라 아닐 거라 여겼지만…… 아니야…… 단지 소문일 수도 있어.’

혼자 고민하던 유인경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을 부정하려 했다. 혹시라도 모반을 꿈꾸던 자들이 할아버지를 보호한 채 은폐하고 독고진을 련주로 내세웠을 가능성도 있을 거라 여겼다.

어차피 정파와 싸움을 원하는 자들이라면, 독고진 역시 정파와의 일전에 찬성하는 편이니 그를 련주로 내세워 사파의 분열을 막고 강경파들의 힘을 결집하려 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사형을 만나야 한다.’

혼자 긴 생각에 빠졌던 그녀는 결심한 듯 생각을 정리했다. 그제야 두 남자가 자신을 빤히 보고 있음에 얼굴이 붉어졌다. 워낙 혼자 오래 생각에 빠졌던 탓에 이윤후와 장윤호 두 사람 모두 그녀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워낙 생각에 깊게 빠지신 거 같아서 말을 못 걸고 있었습니다. 괜찮으신지요?”

“아…… 괜찮아요. 갑자기 생각이 많아져서…….”

이윤후의 물음에 유인경은 민망한 듯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그 모습에, 장윤호가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유 소저, 혹시나 사마련으로 돌아갈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면, 그 생각 접으시길 바랍니다.”

“그게 무슨 말이시죠?”

장윤호의 뜻밖의 말에 유인경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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