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장가철장(張家鐵場)(2)
유인경은 이윤후의 입이 열리길 기대하며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저희한테 물건을 맡기신 분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갑자기 이윤후가 말이 없자 장칠은 다시 한번 물었다. 장가철장에 물건을 맡길 정도면 꽤 이름 있는 무인일 가능성이 컸었기에 그도 이윤후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었다.
“사부님의 이름을 알려 드릴 순 없습니다.”
“아…….”
이윤후의 말에 뒤에서 듣고 있던 유인경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장칠과 이윤후가 그녀를 동시에 쳐다보자 그녀는 민망한 미소를 보였다.
“그럼, 물건을 어떻게 찾아가시겠다는 건지요? 어떤 물건을 맡겼는지요?”
“어떤 물건인지도 모릅니다.”
“하…….”
장칠은 왠지 모르게 화가 났다. 마치 이윤후가 자신을 두고 장난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던 탓이었다. 그래도 사마련의 손녀와 같이 온 사람이라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었지만 더는 참기 힘들었다.
“사부님이 장가철장의 장주를 만나 상월(霜月)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상월? 그게 무엇인지 모르지만 장가철장의 장주가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쪽이 무엇 하나 밝히지 않고 있는데 너무 무례한 이야기가 아니오?”
장칠은 화가 난 상태라 이윤후를 향해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요?”
“화정 부인, 여긴 어쩐 일로…….”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외견에 단아한 기품이 느껴지는 중년 여인은 장가철장의 장주의 아내인 화정 부인이었다. 그녀 뒤에는 시녀로 보이는 두 명의 여인이 뒤따르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소란스럽기에 와 보았죠. 무슨 일인가요?”
“아, 그게…… 이 청년이 저희에게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하는데, 맡긴 사람의 이름을 숨기지 뭡니까. 게다가 맡긴 물건도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칠이 조심스럽게 화정 부인에게 고했고 말을 다 들은 그녀는 이윤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공자는 찾을 물건이 있다면서 왜 맡긴 이가 누군지 말하지 않는 거죠?”
“사정이 있습니다. 사부께서 장가철장에 물건을 오래전에 맡기셨고, 상월을 찾으러 왔다 말하면 장주가 물건을 내어 줄 거라 했습니다.”
“상월? 그게 무엇인지 모르고요?”
“네. 저도 찾아가라고만 들었지 어떤 물건인지 듣진 못했습니다.”
“흐음…… 그래요?”
화정 부인은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뒤에 시비 하나를 불러 귓속말을 했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시비는 이내 어디로인가 종종걸음으로 움직였다.
“공자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장주에게 말을 전하러 갔으니 정말로 공자의 말이 맞는다면 장주가 오겠죠.”
“주인마님, 이런 일로 장주님에게까지 확인할 필요가…….”
화정 부인의 말에 장칠이 놀라 말했으나.
“저 공자의 말이 맞는지 틀린지는 장주에게 확인해 보면 알겠죠. 혹시라도 저 공자의 말대로 상월이라는 것을 장주가 알고 있다면 장칠은 어떻게 하려고 확인조차 하지 않는 거죠?”
화정 부인은 조곤조곤하게 말하며 장칠의 행동을 지적했고, 그녀의 말에 장칠도 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전 그저…….”
“장칠을 나무라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러니 그렇게 고개를 숙일 필요 없어요. 그저 장가철장의 손님일지도 모르는 사람이니, 그대가 더 신경을 써 주어야죠.”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제 실수를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화정 부인의 말에 장칠은 이윤후에게 예를 다시 취하며 사과해 왔다.
“괜찮습니다. 제가 사정상 밝히지 못해 그런 것인데요.”
이윤후는 장칠이 진심으로 사과하자 조금은 놀랐다. 보통 자기보다 윗사람에 의해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경우, 진심이 담기지 않기 마련인데 장칠은 화정 부인의 말에 진심으로 고개 숙이고 있었다.
‘흠, 보통 여인이 아닌 듯하군.’
이윤후는 처음 화정 부인을 보았을 때부터 보통의 여인들과는 다르다 싶었지만, 생각보다도 더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 놀랐다.
그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장가철장의 장주에게 갔었던 시비가 돌아왔다. 모두 그녀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뭐라고 하시더냐?”
“부인, 장주님께서 손님을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정말이냐? 장주님께 모셔오라고 했다고?”
장칠은 그녀의 말을 믿을 수가 없는지 다시 한번 되물었다.
“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천무고(天武庫)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천무고에 들어가신다고?”
시비의 말에 장칠은 물론 화정 부인까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사정을 모르는 유인경과 이윤후는 그들의 모습에 의아해하긴 했지만, 워낙 자기들끼리 묻고 놀라고 해서 끼어들지 못하고 있었다.
“장칠, 일단 이분들을 장주님께 모시도록 해요.”
“아…… 네. 제가 이런 무례를,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장칠에 말에 따르기 전, 이윤후는 화정 부인을 향해 예를 취하고는 움직였다.
“이 소협 덕에 장가철장의 장주까지 볼 기회가 생겼네요.”
유인경은 장칠을 따르며 이윤후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왜요? 장주를 만난 적 없어요?”
“두 번 와 봤던 곳인데, 두 번 다 보지 못했었죠. 나름 장가철장에 큰 고객인데 사마련에 얼굴 한 번 안 보여 주던걸요. 그런데 이 소협은 단번에 장주에게 불려 가다니…… 도대체 이 소협의 사부란 사람은 누군지 점점 궁금해지네요.”
그녀의 말에 이윤후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장주님.”
장칠은 앞장서 있다가 멀리 누군가 서 있음을 보고는 뚱뚱한 몸을 뒤뚱거리며 달려가 예를 취했다.
“장주님, 손님을 모셔 가고 있었는데 어찌 나와 계십니까?”
서 있던 자는 다름 아닌 장가철장의 장주인 장윤호(張胤浩)였고, 푸근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큰 저택의 주인답지 않게 소박하고 평범한 백의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흔한 반지 하나 없었다.
“상월을 찾으러 오신 분이 누구신지요?”
장윤호는 장칠이 데려온 이윤후와 유인경을 쳐다보았다.
그의 말에 이윤후가 한 발짝 앞서 예를 취했다.
“이윤후라고 합니다.
장윤호는 이윤후를 찬찬히 살폈다.
“상월이 어떤 물건인지 아십니까?”
“잘 모릅니다. 그저 사부님이 이곳에 찾아가 상월을 찾아왔다고 말을 하면 내어 줄 거라고 하셨습니다.”
“아…… 그분의 제자이십니까? 그분이 제자가 있으셨군요.”
이윤후의 말에 장윤호는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둘의 대화에 배제된 유인경과 장칠은 도대체 이윤후가 누구의 제자이기에 장윤호가 저렇게 놀라는지 궁금해했다.
“그분이 은거하신 지 오십 년이 지났는데, 제자를 키우고 계셨군요. 저도 만나 본 적 없이 아버님에게 듣기만 했었는데…… 놀랍군요.”
이윤후는 장윤호의 반응에 딱히 뭐라 대처해야 할지 난감했다. 이미 죽은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배웠다고 말하기도 이상했다.
“정파 무림에는 큰 복이군요. 그분이 사라지셔서 정파 무림이 큰 충격을 받기도 했었는데…….”
“장주님.”
장윤호의 말이 길어지자 이윤후는 그의 말을 끊었다. 놔뒀다가는 검성에 대해 말할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장윤호의 말에 집중하며 듣고 있던 유인경은 그의 말에서 어느 정도 이윤후의 사부에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역시, 보통의 인물은 아닐 거라 생각은 했지만, 오절의 후인이었어. 거기다 검을 쓰는…… 검성의 후인인 건가? 음…… 아니야. 신투도 모든 병기에 능통한 인물이라 검을 쓸 가능성이 있어. 검성과 신투 둘 중 한 명의 제자인 거구나.’
이윤후는 살짝 유인경을 보았다. 이미 그녀가 장윤호의 말로 이미 자신의 정체를 짐작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장칠, 천무고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나?”
장윤호는 자신의 뒤에 대기하고 있던 장칠을 보며 물었다.
“네, 장주님. 오기 전에 미리 말해 두었습니다. 바로 가시면 됩니다.”
“그럼, 이분들을 모시고 내가 가겠네. 자네는 돌아가 일 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장윤호의 말에 장칠이 답하고는 물러났다. 그가 사라지자 장윤호는 이윤후와 유인경을 바라보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가시죠. 상월을 내어 드리겠습니다.”
“아, 네.”
장윤호가 앞장서자 둘은 그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장주인 장윤호가 직접 자신들을 안내하자 조금은 이상하기도 했지만 따로 더 묻지는 않고 따라갔다.
“그런데 장주님.”
“네. 이 소협.”
장윤호의 뒤를 따르던 이윤후가 그를 부르자 고개를 살짝 돌려 장윤호가 답했다.
“제가 이름만 밝혔는데 상월을 그냥 내주시는 건가요? 혹시 제가 사칭을 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윤후의 물음에 유인경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이미 이윤후의 무위도 확인했고 어느 정도 판단할 근거가 있었지만, 장윤호는 그저 장가철장에 찾아온 손님이 상월이라는 물건을 찾으러 왔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윤후를 귀빈으로 모시고 있었다.
“소협의 사부께서 상월을 이곳에 맡기신 것은 맡기신 분만 아는 사실입니다. 그게 소협을 믿는 근거이지요.”
“아, 그렇군요.”
장윤호의 말에 이윤후도 그대로 수긍했다. 자신의 사부인 검성은 무림에 절대자였으니, 그를 혹시나 겁박해 상월의 존재를 알아내는 일 따위 있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혹여나 그분에게 상월이 이곳에 있다고 말을 듣고 욕심내어 찾아온 것이라 해도, 그분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 찾아갈 수 없는 물건입니다.”
장윤호는 말하며 살짝 미소를 보였고 다시 걸음을 재촉해 앞서 나갔다.
“상월이란 물건이 어떤 것인지 몰라도 무슨 금제가 되어 있다는 이야기 같죠?”
“네. 저렇게 확신하는 거 보니 그런 듯하네요.”
유인경은 장윤호의 말을 듣고는 이윤후에게 다가가 물었고 이윤후 역시 동의했다.
“저곳입니다.”
장윤호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고 그곳은 허름한 건물이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장가철장의 내부에 이렇게 볼품없는 건물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건물이었다.
“들어가시죠.”
장윤호는 먼저 앞장서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섰고 그들도 일단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장가철장에 이런 곳이 있다니 의외네요.”
“조금은 특별한 곳입니다. 장가철장의 모든 것이 담긴 곳이기도 하지요.”
들어선 방은 평범하고 아무런 물건이 없는 텅 빈 방이었다. 장윤호는 중앙의 바닥을 더듬더니 무언가를 찾는 듯 먼지를 쓸고 다니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갑자기 바닥이 흔들리더니 바닥이 솟구쳤다. 그 바람에 유인경은 놀라 이윤후의 팔을 붙잡은 채 그의 뒤로 숨었다.
“비밀 통로군요.”
들려진 바닥 아래 작은 통로가 존재했고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장가철장에 이런 곳이 있었군요. 그저 단순한 철장이 아니었네요.”
유인경은 진심으로 놀라 말했고 그녀의 말에 장윤호는 미소 지었다.
“장가철장의 역사를 생각하시면 이런 비고(秘庫)가 있을 만도 하지요. 장가철장이 이렇게 규모가 커진 것은 증조부 때부터입니다. 그전 장주들은 대대로 기술을 가지신 장인이었으니까요.”
장가철장은 원래 역사가 꽤 오래된 장인 가문으로, 이렇게 대규모의 철장으로 성장한 지는 오래되지는 않았다.
분명 과거엔 손꼽히는 장인 가문이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장가철장의 실력은 점점 퇴보되어 갔다.
지금은 그저 철장으로써 명맥을 이어 가는 셈이었다.
“내려가시죠. 상월은 아래에 있습니다.”
장윤호는 열린 바닥의 계단으로 먼저 움직였고, 이윤후와 유인경도 서로를 한 번 바라보고는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