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10화 (10/251)

10화― 우금(于金)

서안(西安). 무림맹(武林盟)의 맹주실.

“드디어 움직였는가?”

창밖을 바라보던 덩치 큰 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그 노인에게 무릎 꿇은 채 보고를 하는 젊은 사내가 있었는데, 그는 무림맹의 사대무단(四大武團) 중 현무단(玄武團)의 단원인 성지현(成志賢)이었다.

“네. 독고진은 폐관수련을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손을 써 둔 거 같았습니다.”

“그렇겠지. 아무리 유상휘 그 친구가 병중(病中)이라지만,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사마련이 뒤집히다니……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씁쓸한 보고로군.”

“사파는 이미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곧 큰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지현의 목소리에선 다급함과 걱정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자네, 지현이에게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은 건가?”

“네? 그게 무슨…… 헉.”

갑작스러운 노인의 말에 성지현이 놀라 쳐다보자 누군가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아버지…… 여긴 어떻게……?”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 현무단주(玄武團主) 성하진(成河珍)이었다.

“굳이 먼저 알려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성하진은 자기 아들을 애처로운 눈으로 쳐다보고는, 노인에게 예를 갖추었다. 노인은 다름 아닌 무림맹의 맹주인 비천신검(飛天神劍) 우금이었다.

“어차피 모든 것을 알고 처리해야 할 자리에 앉혀 놓고 감출 필요가 있나?”

“그건 그렇지만…….”

성하진이 맹주에게 쩔쩔매는 모습에 눈으로 보고도 성지현은 믿기지 않았다. 근엄하고 말수가 많이 없었던 자신의 아버지였는데 오늘 다른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하게 돌아갔군. 자네가 큰 고생 했어. 자네 가문의 공을 잊지 않겠네.”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무림맹의 일원으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일의 마무리는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네. 그리고…… 맹주님.”

“뭐 따로 할 말이 있는가?”

자신의 앞에서 머뭇거리는 성하진의 모양새를 보고는 우금이 물었다.

“유상휘의 손녀가 살아서 도망쳤다고 합니다…….”

“그래? 그 친구의 손녀라면 한 번 본 적이 있지 예쁜 아이였는데…… 사마련에서 그 아이를 살려 둔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정확한 내용은 아직 보고가 들어오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마련에서도 제거하려 했는데 놓친 모양입니다.”

“그 녀석들이 그렇게 허술하게 일 처리를 한단 말인가?”

우금은 탐탁지 않은 듯 혀를 찼다.

“일단 저 아이를 데리고 나가 보게. 유상휘 손녀의 일에 대한 보고가 들어오면 바로 알려 주고.”

“네. 알겠습니다.”

성하진은 무릎을 꿇고 얼떨떨하게 듣고 있던 성지현을 일으켜 세우고는 방을 나섰다.

* * *

그들이 나가자 우금은 다시 창밖을 보았다. 홀로 뜬 달이 어두운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친우(親友)의 비보(悲報)를 듣고 감성적이 되셨군요.”

우금은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나긋나긋한 음성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속이 비치는 나의(羅衣)를 입은 중년의 여인이 서 있었고, 풍만한 몸매에 속살이 훤히 비치고 있었다.

“내가 감성적이라고?”

“그럼,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호호.”

여인은 간드러지게 웃으며 우금을 향해 다가갔고 그대로 그에게 몸을 맡긴 채 안기었다.

“그 정도가 적당하겠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중…….”

우금은 약간은 심각해진 표정을 보였다가, 이내 여인의 허리를 감싸곤 여인을 들쳐 안았다.

“이제 모두 맹주가 바라는 대로 되는 거 아닌가요? 왜 그리 심각한 표정을 보이세요?”

우금은 여인을 안은 채 자신의 큰 의자 위에 앉아 그녀를 무릎에 앉히고는 그녀를 더듬기 시작했다.

“모두 내가 바라는 대로 되고 있지. 예전의 마교의 침공도, 유상휘 그 친구가 나와 절친이 된 것도. 그리고 그 친구가 무림일통의 꿈을 접은 것도 말이지.”

우금의 말에 여인은 배시시 웃으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 친구를 죽음의 문턱으로 보낸 것은 왜 빼시나요? 그리고 친구의 제자를 충동질해서 그를 배반하게 한 것도요~”

여인의 말에 우금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녀의 목을 큰 손으로 잡았다.

“커헉!”

“미홍(美紅)아, 넌 몰라도 되는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구나.”

차갑게 표정이 굳어 버린 우금은 미홍이라 부른 중년 여인의 목을 잡은 손아귀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살, 려…… 주…….”

목을 잡힌 여인은 눈이 뒤집히며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우금은 손아귀에 힘을 풀었다.

“허억…….”

여인은 숨을 크게 쉬고서야 자신이 살아 있음에 안도했으나 자신을 내려다보는 우금의 눈빛에 주눅이 들었다.

“소첩이…… 실수했습니다. 맹주께서는 용서를…….”

“미홍아.”

“네…….”

자신을 부르는 우금의 목소리에 미홍은 한기(寒氣)를 느껴야 했다.

“네가 이용 가치가 있을 때 더욱 몸을 조심해야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네가 날 더욱 조심해야 하지 않겠느냐?”

“명심…… 하겠습니다.”

미홍은 다시는 우금에게 장난처럼 말을 꺼내지 않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평소 때라면 이런 자신의 장난도 받아 줬을 우금이었지만, 확실히 유상휘의 안위가 그의 대제자인 독고진에게 넘어간 것이 걱정되어 날카로워졌으리라고 여겼다.

‘모두 자기가 꾸민 짓이면서 그런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단 말인가? 위선자…….’

미홍은 속으로 생각한 것을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무림인들이 존경하는 무림맹의 맹주이자, 검성(劍聖)이 사라진 이후 무림 최고의 검이라 불리는 비천신검 우금이 추악한 인간이라는 것은 무림맹의 몇몇만이 아는 사실이었다.

구심점인 오절이 다 같이 사라지자 정파 무림은 큰 혼란에 빠졌고, 때마침 나타난 사파의 기린아 유상휘의 등장에 위기감까지 느껴야 했다.

처음 유상휘가 나타나 사파 무림을 평정하고 자신의 세를 만들 때, 사파의 힘이 뭉칠 리가 없다는 것에 안심해 그를 너무 내버려 두었고, 유상휘는 단시간에 사파 무림의 거두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고 많은 문파의 동의를 얻어 사마련을 만들어 내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파 무림도 무림맹을 중심으로 움직였지만 이미 하나 된 사파의 힘은 거대했고, 정파는 나태해져 그 힘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때, 젊었던 우금이 나서 모든 것을 해결해 보겠다고 나섰다.

우금은 모두를 속이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처음 유상휘의 만남에서 우금은 그와 안면을 익히며 친해졌고, 두 번째의 만남에서 형과 아우의 사이가 되었다.

뒤로는 정사파가 대립하고 있는 지금이 무림 침공의 기회라 말하며 마교를 자극해 움직였고, 앞으로는 유상휘와 독대하여 친분을 쌓고 계획의 기틀을 다져 나갔다.

마교가 그의 뜻대로 움직여 점창파와 곤륜파를 치고 북진해 올 때, 유상휘의 성격을 잘 파악해 두었던 우금은 그의 의협심에 호소해 같이 일단 마교를 막자고 말했고, 마교가 무림을 짓밟는 것을 보기 힘들었던 유상휘는 결국 그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우금의 뜻대로였다.

마교를 물리치고 마교의 본산인 십만대산까지 추격했던 정사 연합은 큰 피해를 보며 후퇴하였는데, 거기서 유상휘는 자기 아들과 며느리를 잃게 되었고 큰 슬픔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우금의 계략이었다.

마교와 내통하고 있었던 우금은 유상휘의 아들 부부를 마교의 잔당들이 있는 곳으로 유도했다. 미리 내통하고 기다렸던 마교인들은 그들을 분시(分屍)하여 유상휘에게 보내었다.

그것에 큰 충격을 받은 유상휘는 혼자 남게 될 손녀의 안위를 걱정했고, 자신의 선택으로 아들 부부를 모두 잃은 슬픔에 빠져 일 년을 가까이 폐인처럼 지내었다.

그 바람에 무림일통을 내세우며 모였던 사파의 연합은 삐걱대기 시작했고, 우금의 이간질 속에 모였던 사파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말았다.

결국 유상휘는 우금과 평화 동맹을 맺으며 무림일통의 꿈을 접었고, 더는 무림의 싸움에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지 않겠다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파를 다시 균열하게 했고 그를 믿으며 뭉쳤던 사람들의 생각을 변하게 했다.

유상휘의 강함은 그들의 반발을 억눌렀지만 그들의 분노를 풀어 주지는 못했고 불만은 쌓이기 시작했다.

유상휘도 그 모든 것을 알았지만 싸움을 통해 아들 부부를 잃었듯이 또다시 자신들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의 그런 마음이 사파를 억지로 뭉치고 있었지만 균열 또한 만들고 있었다.

“미홍, 유상휘를 본 적 있나?”

갑작스러운 우금의 물음에 목이 아파 괴로워하고 있던 미홍의 눈이 동그래졌다.

“먼발치에서…… 본 적은 있죠.”

미홍은 어렸을 때 자신의 스승을 따라 유상휘를 만난 적이 있었다. 사파의 인물이라 조금은 편견이 있었지만 그를 보고는 그런 편견이 모두 깨졌었다.

“천상 무인(武人)이었죠. 한 자루의 검을 보는 듯이 날카로운 예기(銳氣)를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가운데 따뜻하고 남들을 배려하는 말투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렇지. 나도 그를 처음 봤을 때 많이 놀랐지. 그는 알면 알수록 대단했고, 대화를 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했어. 사파는 물론 정파의 인물들까지 그를 존경했지.”

우금의 말이 시작되자 미홍은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금은 늘 유상휘에 대해 찬양을 했는데 그런 마음이 결국 그를 질투하여 작금의 상황에 다다른 것이었다.

미홍으로서도 오래 우금을 지켜봤던 터라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무림맹의 말단으로 시작해 험한 일을 도맡아 가며 출세를 해 왔고, 운이 좋게 기연(奇緣)을 얻어 상승의 무공을 배웠지만 그를 뒤받쳐 줄 세력이 없었다.

그런 우금이 택한 것은 권력자들의 뒤를 처리해 주는 일이었다. 실력이 있었던 그는 권력자들에게 쓰임새가 많은 인물이었다.

그렇게, 우금은 무림맹의 중책을 맡기 시작했고 우금을 이용해 뒤가 구린 행동을 해 온 사람들은 그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다.

상승 무공과 든든한 뒷배.

유상휘가 사파를 규합하고 사마련을 만들어 정파를 위협하자 무림맹에서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신진고수 우금이었다.

그 당시 무림은 정사파 간에 작은 사고만 터져도 크게 싸움이 벌어질 정도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고, 호시탐탐 무림을 노리는 사패(四覇)와 마교는 이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 상황에서, 과거 구린 일을 하며 마교와의 연줄까지 쌓아 두었던 우금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본격적으로 마교를 선동했다.

―정사파가 대립하는 지금이 기회요. 더 늦으면 사패가 나서서 무림을 침공할 터.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않소?

실제로 사패에서도 정파와 사파의 싸움이 시작되면 움직이려 했기에 마교는 우금의 선동에 움직였고, 사파와 일촉즉발의 상태에 고수들이 모두 무림에 나가 있었던 점창파와 곤륜파를 손쉽게 밀어내며 북진을 시작했다.

기세를 탄 마교는 아미파까지 단숨에 해치우며 올라오기 시작했고, 무림은 큰 혼란에 빠졌다. 그 위기 상황에 나선 게 바로 우금이었다.

우금은 유상휘를 찾아가 담판을 짓고, 마교를 몰아내기 위해 손을 잡았다. 일찍이 유상휘의 성품을 알았던 우금이기에 설득하고 사정하면 그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사파와 손잡는 것에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유례없는 정사파의 연합은 마교를 단숨에 몰아내고 북진하던 마교인들을 십만대산까지 밀어내었다.

우금은 그렇게 공로를 인정받아 모두의 추대로 무림맹주에 올랐고, 말단에서 시작했던 그는 인생 역전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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