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9화 (9/251)

9화― 독고진(獨孤珍)

“몸은 괜찮아요?”

“네. 상처 부위가 조금 당기는 거 말곤 괜찮네요.”

백아의 도움을 받아 잠룡대의 추적을 따돌린 그들은 어딘지 모를 또 다른 산으로 왔고, 백아는 왔던 길을 다시 날아가 혹시나 쫓아오는 자들이 있는지 확인하러 간 상태였다.

“혹시 피가 새어 나오지 않았어요?”

이윤후는 백아의 다리를 잡고 탈출하면서 혹시나 유인경의 상처가 벌어지지 않았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눈으로 봤을 때 옷으로 피가 새어 나오진 않았기에 상처가 벌어지진 않은 듯했다.

“제 몸에 도대체 무엇을 한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이 소협이 오행을 이용한 치료를 한 이후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거기다 상처도 아물었어요. 단 하루 만에 말이죠.”

유인경도 자신의 몸이 걱정되었던지라 상처를 살폈는데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되었다. 상흔이 있기는 했지만, 깊게 찔렸던 상처가 단 하루 만에 아물어 있었다.

“다행이네요. 유 소저의 몸에 힘이 넘치는 건 제 기운으로 유 소저의 본연의 능력이 일깨워진 덕분일 거예요.”

“제 능력이요?”

이윤후의 말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던 유인경은 되물었다. 계속 너무 궁금했던 부분이라 이 기회를 잡아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제 무공은 전에 말했다시피 오행을 기반으로 하는데, 유 소저는 체내에 금기(金氣)를 품고 있어요. 맞나요?”

“금기요? 음…… 정확하게 어떤 기운인지 잘 모르겠어요. 신경 써 본 적이 없어서…….”

“맞을 거예요. 하여간 유 소저 몸에 가득한 금기에 상호(相好)하는 토기(土氣)를 불어넣어 몸의 기운을 활성화시켰고 그 과정에서 유 소저의 잠재력이 깨어난 듯하네요.”

사실 이윤후도 이런 결과가 일어날지 몰랐기에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오행으로 상대의 잠재력을 깨우다니. 과연 검성이 만상오행공을 숨기라 강조한 이유가 있었다.

“잠재력을 일깨운다고요? 그런 무공이 있다니…….”

이윤후의 말에 유인경은 놀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몸이 나은 것과 체내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그 말의 증거였기에 부인하기 어려웠다.

이윤후의 말이 사실이라면 무림인들은 그를 만나기 위해 억만금이라도 낼 게 분명했다.

“그건 그렇고, 이거 이대로 노숙을 해야겠는데요. 괜찮겠어요?”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좀 추울 거 같네요.”

“그건 걱정 안 해도 돼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걱정 안 해도 된다니?”

이윤후의 말에 되묻던 유인경의 시야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백아가 담겼다.

백아는 무언가를 말하듯 이윤후랑 교감하고 있었다.

‘정말 신비한 사람이야. 무공의 깊이도 가늠이 안 되고…….’

유인경은 이윤후를 볼수록 놀라웠다. 어느 정도 무공실력이 있을 줄은 알았지만 잠룡대를 당황하게 하여 단숨에 두 명을 제압하고 검을 빼앗는 실력이나, 검기를 사용하는 수준은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유 소저.”

“네?”

생각에 빠져 있던 유인경은 그의 부름에 백아와 이윤후의 곁으로 갔다. 그와 동시에 백아가 큰 날개를 펼쳤다가 접으면서 한쪽에는 이윤후가 다른 한쪽에는 유인경이 감싸였다.

“어……?”

유인경이 놀라 뒷걸음질 치려 했으나 백아의 날개에 잡혀 움직이지 못한 채 그대로 잡혔다. 둘은 백아의 품에 안긴 모양이 되었고, 뜻밖에 백아의 품 안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이대로 눈 좀 붙여요.”

이제야 추위 걱정하지 말라는 그의 말이 이해가 갔다.

“제법 괜찮죠? 저도 추울 때는 백아가 이렇게 감싸 안아 줘서 편히 잘 수 있었어요.”

“그러게요…… 불편하지도 않고…….”

모양새가 좀 우습긴 했지만 편하긴 했다. 이윤후의 얼굴과 자신의 얼굴이 마주 보고 있다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그것도 추위에 혼자 있는 거보다는 견딜 만했다. 그렇게 둘과 백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고 다난했던 밤이 지나고 있었다.

* * *

황산(黃山) 사마련(邪魔聯) 대회의실.

크고 긴 탁자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모두 각 문파의 수장급 정도 되는 쟁쟁한 인사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상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사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놓쳤다고?”

이마에 열 십 자 상처가 있는 상석의 사내. 그가 눈을 뜨고 입을 열었으나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선뜻 답하지 못했다.

정적이 이어지던 와중.

“……잠룡대주의 보고에 의하면 북해설응의 주인으로 보이는 자가 유인경을 데리고 있었다 합니다. 추격 끝에 포위망을 펼쳤으나 북해설응이 그들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갔다 하니 도리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내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검은 장포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사마련의 이인자였던 수라마검(修羅魔劍) 육장천이었다.

“이렇게 된 거, 유인경의 처리는 미루도록 하시오.”

“련주님, 그건 안 됩…….”

수라마검의 반대편에 앉아 있던 흑룡창제(黑龍槍帝)가 상석 사내의 말에 반대하려다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말을 다 하지 못한 채 앉아야 했다.

사내가 몸에서 뿜어내는 위압감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숨이 막힐 정도였다.

“련주, 화를 가라앉히시게.”

어디서 나타난 건지, 상석의 사내는 옆에 나타난 노인의 한마디에 위압하던 기운을 가라앉혔다.

“어차피 내가 사마련의 련주가 되는 일에 유인경의 존재는 문제가 되지 않으니, 그녀에 대한 일은 이 시간 이후 잊으시오. 사부님이 물러나시면 내가 그 후계자가 되는 거야 모든 무림이 아는 일.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오.”

사내의 말에 다들 무슨 말이 하고 싶었지만 이미 흑룡창제가 당하는 것을 보았기에 입을 열지 않았다.

상석의 사내는 사마련주였던 유상휘의 대제자인 독고진(獨孤珍)이었다. 오랜 기간 폐관수련에 들어갔다가 얼마 전 수련을 마친 그는 나오자마자 사마련의 전권을 장악하고 모반을 일으켜 사마련주의 자리에 올랐다.

원래 야심이 많았던 독고진은 늘 자신의 사부에게 무림일통(武林一統)을 말해 왔으나, 유상휘는 그것을 무시해 왔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이 내부에 많았기에 수련에 들어가기 전 사마련의 장악을 지시하고는 수련에 들어갔고, 때마침 유상휘가 병상에 들면서 일사천리로 일이 추진되었다.

독고진이 나오자 그들은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사마련의 이인자인 수라마검과 흑룡창제 그리고 사마련의 대소사를 맡고 있던 경혼과 잠룡대주 장명까지 합세하니 사마련은 손쉽게 독고진에게 넘어왔다.

정파 오절(五絶) 시대에 억압을 받았던 사파. 그렇기에 유상휘가 말했던 ‘하나 된 사파의 힘을 보여 주자’는 말에 이끌려 모여든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유상휘의 뜻은 변했고, 그에 대한 불만은 한도 없이 커져만 갔다.

정파의 오절은 딱히 실력 행사를 하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들을 등에 업은 정파의 횡포였다. 각 지역의 군소 사파들은 정파의 힘에 눌려 기를 펴지 못했고, 심한 곳은 정파가 사파를 무시하고 돈을 갈취하는 일도 생겼다.

그렇기에, 사파인은 복수를 원했다.

“환노(幻老).”

“왜 그러느냐?”

독고진의 부름에 옆에 서 있던 노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의 뜻을 반대하는 자들을 처리해 주시오.”

“크크, 그건 내 전공이니 들어주마.”

노인은 독고진의 말이 마음에 드는지 섬뜩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대회의장에 참석한 자들조차 이 노인의 정체를 알지 못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윤엽(尹曄), 사파의 세를 전과 같이 규합하려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독고진은 수라마검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중년의 서생에게 물었다. 그는 사마련의 두뇌라 불리는 윤엽으로, 사마련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사파 전체를 사마련 내에서 통제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생각보다 이 평화에 물들어 있는 사파인이 많습니다. 그들을 다 제거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설득만 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설득만 하려 한다면 길게는 일 년…… 더 길 수도 있습니다.”

“제거할 자들은 제거하고 설득해야 할 자들은 가려 주세요. 그 모든 처리는 여기 환노가 할 겁니다.”

윤엽은 독고진의 말에 환노를 한 차례 바라보았다.

“환노 어르신이 나서 주신다면야 일이 수월하겠지요.”

“오호, 날 아는 것이냐? 애송아.”

자신을 알아보는 듯한 윤엽이 신기한지 환노는 그를 보고 미소를 보였다.

“저도 환노라는 말에 설마 했지만…… 백 년 전 악명을 떨쳤던 환영신마(幻影神魔) 어르신일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엽의 말에 회의장에 모든 사람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환영신마는 백 년 전부터 활동하던 노마두로, 정파의 오절 중 검성(劍聖)과 도후(刀后)가 젊은 시절 환영신마를 물리쳤다고 전해져 왔다.

그 사건 이후 죽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는데,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었다.

“이거 계획이 쉬워지겠군요. 환영신마께서 련주를 따르고 계시다니…….”

윤엽은 갑자기 즐거워졌다. 그동안 사파는 너무 평화에 안주하며 살아왔다.

이제 사마련을 시작으로 다시 사파일통을 해 나갈 것이었고, 그 후는 무림일통을 꿈꾸게 될 것이었다. 정파의 오절조차 혼자선 당해 내지 못했던 환영신마가 우리 편이라는 것은 큰 힘이었다.

“적하문(赤霞門)과 구룡도문(九龍刀門)은 반드시 우리의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적하문은 내가 찾도록 하겠소. 윤엽.”

윤엽의 말에 흑룡창제가 나섰다. 사실 윤엽도 그가 나서 주길 바랐다. 적하문주와 흑룡창제는 친우였으니 그의 말이라면 들어줄지도 몰랐다.

문제는 적하문주가 호전적이지 않다는 점이었지만, 대세를 읽을 줄 아는 인물이기에 오래 버티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구룡도문은 내가 가 보도록 하지.”

뒤이어 수라마검이 나섰고, 윤엽은 의외라는 듯 그를 보았다.

“구룡도문과 수라검제께선 악연이 있지 않습니까?”

윤엽은 걱정스러운 듯 이야기했다.

구룡도문의 문주와 수라마검은 서로 어릴 때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구룡도문 문주의 아내가 수라마검을 짝사랑하여 오랫동안 속앓이를 했고, 수라마검은 그 마음을 받아 주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위로해 주고 곁에 있어 주던 구룡도문의 문주와 혼인을 했고, 그 이후 수라마검은 구룡도문을 찾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문제가 없을 사이 같았지만, 수라마검은 그들을 찾아가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치정에 의해 친구들 사이가 갈라진 것으로 보였다.

“그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제거해야 하니 내가 가겠다는 것일세.”

“그러시죠. 구룡도문이 우리의 뜻에 함께해 준다면 큰 힘이 될 겁니다.”

윤엽은 수라마검의 뜻을 알았기에 그가 구룡도문을 설득해 주길 바랐다. 수라마검은 자신의 옛 친우의 구룡도문이 혹시나 이번 일에 반발하여 사마련에 의해 지워질까 봐 자신이 나서는 것이었다.

“무림맹 쪽의 동태는 어떻습니까? 윤엽.”

듣고 있던 독고진이 윤엽을 향해 물었다.

“아직 소식이 닿진 않은 듯하지만, 내일 아침이 되면 무림맹뿐 아니라 전 무림이 알게 될 겁니다. 사파에 새로운 태양이 떴음을요.”

윤엽의 말에 회의장 안의 인물들 모두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유상휘에게서 사파의 희망을 보았으나 그는 안주해 버렸으니. 이제 새로운 사파의 희망에게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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