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6화 (6/251)

6화― 동행(同行)(2)

이윤후는 유인경의 부탁이 서로에게 나쁘진 않다고 여겼다.

말 그대로 자신은 무림 초행이다 보니 모든 게 낯설었다. 유인경에게 도움을 받는다면 나쁘지 않을 거 같았고, 그녀를 오래 겪어 보지는 않았지만 인상이 악하지도 않았다. 백아가 그녀를 따르는 것만 봐도 좋은 사람인 듯했다.

그러나.

―무림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니 조심하여라. 특히 너에게 다가오는 여자와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자들을 조심하도록 하고.

사부님의 전언을 떠올린 이윤후는 조금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산 아래에 마을이 있으니, 거기까진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어, 네, 네…….”

이윤후의 말에 유인경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이 소협은 제 할아버지이신 흑월도존(黑月刀尊) 유상휘에 대해 아시는 게 있으신가요?”

“죄송합니다. 잘 모릅니다.”

무림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유상휘를 모른다는 그의 말에 유인경은 놀라지 않았다. 이미 모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유상휘에 대해 알았다면 이미 자신이 소개를 유상휘의 손녀라고 했을 때 놀랐을 것인데, 이윤후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아무리 무림 초행이라지만 무림인이 아니더라도 유상휘 정도는 알고 지내는데, 이윤후는 전혀 반응조차 없었기에 그녀는 이윤후가 어딘가에서 면벽수련한 뒤 나와 밖의 정세에 완전히 어두운 상태일 거라 판단했다.

“그럴 거라 생각했어요. 제 할아버지께서는 정파의 무림맹주 우금과 더불어 천하를 이분하는 사마련의 수장이셨어요. 하지만 오늘 누군가에 의해 사마련에서 모반이 일어났고, 저는 이런 모습이 된 채 달아날 수밖에 없었어요.”

유인경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윤후는 차분하게 듣기 시작했다. 계속 궁금했던 부분이고, 무림의 이야기를 듣는지라 흥미가 있었다.

“사마련이 무너진 이상 무림에도 큰 변동이 생길 거예요. 저는 몸을 의탁할 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현재로썬 혼자 움직일 만한 상황이 아니라 이 소협의 도움을 받고 싶어요.”

목숨을 구해 주고 치료까지 해 준 자이니, 유인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솔직히 털어놓고 다시 한번 도움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저를 도와주신다면…… 차후에, 제 할아버지께서 사마련에 숨겨 두신 비고(秘庫)의 열쇠를 드리지요.”

“흠…….”

“부족하시다면 금은보화도 드리지요. 사마련만 되찾는다면, 무엇을 상상하든 기대 이상의 보상을 드리겠어요!”

“…….”

말을 마친 유인경은 이윤후의 눈치를 살폈고 그는 잠깐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이윤후는 그녀의 제안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미 치료를 마친 상태였지만, 유인경을 두고 가는 것은 그녀에게 죽으라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속했던 곳에 모반이 일어났다면, 그들이 추적해 올 게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무림의 정점을 차지했던 흑월도존이 남긴 비고의 열쇠. 데려다주고 비고 열쇠를 받는다면, 수지는 맞는 거래였다.

하지만 처음 본 소녀와 여행을 같이한다는 것은 왠지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이 소협이 내키지 않으시면 그냥 여기서 헤어지도록 하지요.”

“음, 그렇게 해도 괜찮을지요?”

“…….”

유인경은 대답을 바로 하는 이윤후의 모습에 조금은 화가 났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자신의 벗은 몸도 본 사내 아닌가. 사실 어느 정도 외모에 자신이 있었던 그녀는 늘 남자들의 관심을 받고 자랐는데, 앞의 남자는 자신을 너무 귀찮아하는 것에 화가 났다.

보통 남자였다면 자신 같은 여인의 동행 요청에 생각도 안 하고 승낙했을 텐데, 고민을 하는 데다가 자신이 예의상 여기서 헤어지자고 했더니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그러자고 하고 있었다.

“네, 이 소협이 저와 동행하는 것을 꺼리는 것 같으니 더 권하기 어렵겠네요.”

“그래요, 소저. 상처가 잘 치료되었으니, 조금 쉬다 산을 내려가시면 될 거예요.”

“이대로 헤어지면…… 전 모반을 일으킨 자들에게 추적을 당하고…… 이렇게 상처 입은 몸으로 그들을 당해 낼 수가 없을 테니 죽을 확률이 높겠죠…… 그렇게 되면 절 기억이나 해 주세요.”

유인경은 약간 독에 바쳐 이윤후의 마음이 걸리는 말만 했다. 사실 그녀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하는 모습이 우습긴 했지만 지금은 기댈 곳이 생면부지의 이윤후밖에 없었다.

“풋…… 하하하.”

“……?”

그런데 갑자기 이윤후가 미소 지으며 웃었다.

“장난입니다, 소저. 같이 가도록 하죠.”

“네……?”

갑자기 같이 가자는 말에, 유인경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조건이 있어요.”

“말해 주세요.”

“우선 제가 먼저 가야 할 곳이 있으니, 제가 갈 곳을 먼저 가도록 해요.”

“네. 물론이죠!”

유인경은 이윤후의 조건이 까다로울까 봐 걱정했는데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라 안도했다.

“거래는 성사되었어요. 그런데 유 소저가 가야 할 곳은 어디지요?”

“전 서안(西安)의 무림맹으로 가야 해요.”

“서안이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요.”

“그렇죠. 황산(黃山)에서 섬서성까지는…….”

“안휘성 황산이요? 여긴 여산(廬山)인걸요.”

“여산이라고요? 전 황산의 사마련에서…….”

유인경은 이윤후의 말에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고 계속 이상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산에서 그렇게 오래 있었지만 그간 이런 폭포를 본 적이 없었고 주변 경치들이 새로워서 이상하다 느낀 터였으나, 여산이라는 소리에 믿을 수가 없었다.

“황산과 여산의 거리가 얼마인데요. 전 분명 사마련을 빠져나와 얼마 안 돼서 칼에 맞고 쓰러졌는데…….”

유인경은 말을 하다 백아와 눈을 마주쳤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리 거대한 백아라고 해도 그 거리를 날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럼, 저 녀석 짓인가 보네요.”

이윤후도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집히는 것은 백아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백아가 사냥을 위해 사라진 시간은 반 시진 채도 안 되어 그 거리를 날았다는 사실이 믿기진 않았지만 다른 이유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백아는 북해의 설응(雪鷹)인데 아마 멀리 빠르게 나는 재주가 있나 보네요. 그동안 사냥을 여산 내에서만 해 오는지 알았는데, 인제 보니 그것도 아니었나 봐요.”

“북해설응(北海雪鷹)이라고요?”

“네, 사부께서 북해빙궁 궁주에게 받아 오셨다더군요. 당분간 같이 지낼 사이이니 알려 드리는 겁니다.”

유인경이 화들짝 놀라 묻자 이윤후가 답했다.

“북해설응이라면…… 가능하겠네요. 저도 듣기만 했지만, 북해설응은 하루에 수천 리를 날아다닌다고 들었어요.”

유인경은 자신이 황산에서 여산에 있는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윤후의 입에서 북해빙궁의 존재가 언급되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사부가 누구기에 북해빙궁주가 설응을 선물로 주는 걸까?’

유인경은 더욱 이윤후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졌다. 북해빙궁은 폐쇄적인 곳으로, 무림과 많은 교류가 없는 곳이었다. 북해의 패자(覇者)로서 그들의 힘은 무림에 위협적이었다. 현재 무림도 북해빙궁의 동태를 늘 살피고 있었다.

“이 소협이 가야 할 곳은 어딘가요?”

“아, 전 장가철장(張家鐵場)이라는 곳을 먼저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받아야 할 물건이 있어서요.”

“장가철장이면 남창(南昌)이군요. 어차피 들러서 가면 될 거 같은데요.”

장가철장이면 무림인들이 선망하는 곳이라 유인경도 아는 곳이었다. 사마련에서도 고수들의 무기를 제작할 때 장가철장에 의뢰해 오고 있었으니까.

“위치를 아세요?”

“네. 예전에 어렸을 때 할아버지를 따라 그곳에 가 본 적이 있어요.”

“그럼, 안내를 부탁드릴게요. 저도 헤맬까 하여 조금 걱정했었거든요.

검성은 이윤후에게 무림에 나가기 전에 반드시 장가철장에 먼저 가서 자신이 맡겨 둔 물건을 찾아가라는 말을 해 두었는데, 이윤후는 그것이 검성이 남긴 검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움직일 수 있겠어요?”

몸 상태가 괜찮은지 묻는 말에 그녀도 몸을 한 차례 움직여 보고는 미소를 보였다.

“신기하네요. 칼을 맞을 때만 해도 분명 이대로 끝인지 알았는데, 움직일 때 약간 통증이 있는 정도네요. 몸은 그전보다 더 가뿐한 거 같아요.”

유인경은 말을 하고는 이윤후를 빤히 보았다. 상처야 그렇다지만, 자신의 몸에 일어난 변화는 그가 무언가를 한 덕분이라는 게 확실한데, 도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건지 궁금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주위를 정리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여기가 여산이라면 정말 추적당할 염려가 없겠네요. 황산에서 사라진 절 찾으려고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쳤을 텐데, 제 흔적조차 발견 못 하고 있을 거예요.”

그녀는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사마련의 습격자들은 분명 도망친 자신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텐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난리가 났을 게 분명했다.

누가 날아서 순식간에 황산에서 여산까지 왔으리라고는 생각하겠는가. 포위망을 좁혀 가며 자신을 찾을 걸 생각하니 웃기기까지 했다.

* * *

이윤후가 주변 정리를 하는 사이 유인경은 흐트러진 옷을 다시 챙겨 입었다. 이윤후가 벗기고 대충 입혀 놓은 탓에 가슴 가리개는 안에서 따로 놀고 있었고 위에 옷도 제대로 입혀져 있지 않았다.

유인경이 옷을 다시 입는 사이, 이윤후는 모닥불을 끄고 백아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말했고 백아는 그 후 어디론가 날아갔다.

“설응은 어디로 보냈어요?”

유인경이 어느새 그의 곁에 다가와 물었다.

“덩치가 커서 데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 하늘에서 주위를 살피면서 따라오라고 시켰어요.”

이윤후의 말에 그녀는 하늘을 보았고 백아가 그들의 주위를 뱅뱅 돌고 있는 게 보였다.

“혹시 유 소저를 쫓는 자들의 모습이 보이면 백아가 알려 줄 거니까 마음 놓아요.”

“아…… 네.”

유인경은 생각지 못한 배려에 조금은 감동을 했다. 자신은 어떻게든 이윤후를 이용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가 자신을 배려함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마을로 내려가죠. 유 소저도 그렇고 저도 옷을 새로 사야 할 거 같네요.”

“아, 그러네요.”

유인경은 인식 못 하고 있었지만, 이윤후의 양쪽 소매는 찢어져 있었고, 옷도 피로 인해 엉망이었다.

“여긴 제가 지리를 아는 곳이니 제가 안내할게요.”

“네. 알겠어요. 그런데 이 소협은 나이가……?”

이윤후는 앞장서 걷다가 따라오던 유인경이 나이를 묻자 그녀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전 열여덟입니다.”

“앗, 어려 보였는데 생각보다 많네요.”

유인경은 이윤후의 나이를 듣고 조금은 놀랐다. 앳되어 보이는 외모라 덩치는 큰 편이었지만 자신보다 어릴 거라 판단했던 것이었다.

“저도 나이가 같아요. 잘 부탁드려요.”

새삼스러운 그녀의 인사에 이윤후는 괜히 머쓱해졌다. 육체는 성숙해 보였으나 얼굴은 앳돼 보여 자신보다 어릴 줄 알았는데, 동갑이었던 것이다.

“하나 물어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세요.”

“아까도 묻다가 말았지만, 저를 치료했을 때 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하셨는데, 그게 궁금해서요.”

유인경은 아까 묻다가 백아가 나타나는 바람에 묻지 못했던 질문을 했다. 사실 계속 너무 궁금했던 터라 기회만 보고 있었다.

이윤후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금세 입을 열었다.

“제가 사부님께 배운 무공 중에 오행(五行)을 바탕으로 하는 무공이 있어요. 하여 소저의 금기(金氣)와 상생하는 기운을 불어넣었는데, 다행히 효과를 본 모양입니다.”

“오행이라니…… 대단하네요, 소협.”

사실 유인경은 그의 말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당파를 만난 적이 있었기에 자신도 오행에 대해 어느 정도 듣긴 했지만 그런 것을 이용해 치료가 가능하냐는 점을 선뜻 이해하지 못했다.

거기다가 유인경의 내부에는 알 수 없는 힘이 가득했다. 상생 법칙에 의한 효과로 그녀의 무공이 진일보한 것이었지만, 그녀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만 이해해 주세요. 더는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이윤후는 스승이 만상오행공의 사용을 웬만해서는 숨기라고 했기에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더 말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기도 했다.

“제 이야길 들으셨으니, 이제 유 소저가 말할 차례예요.”

“저의 이야기요?”

“음, 제가 무림에 대해 거의 몰라서요. 무림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떤 것이든 좋아요.”

“아, 그렇군요.”

유인경은 이윤후가 궁금해하는 게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무림의 이야기라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실망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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