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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5화 (5/251)

5화― 동행(同行)(1)

“다행히 효과가 있었구나.”

이윤후는 다시 유인경을 눕히고는 피가 멈춘 것을 확인하며 안도했다. 사실 검성에게 가능하다고 말만 들었지 시도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 자신이 없었던 탓이었다.

“새 옷 입은 지 얼마 되었다고…….”

찌익―

이윤후는 아까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소매 섶을 길게 찢었고 소매를 뭉쳐 계곡물에 적셨다가 물기를 짜내었다.

유인경은 자신에 의해 윗옷이 벗겨져 조금은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오른쪽 가슴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고 흐른 피로 인해 배 쪽도 엉망이었다.

이윤후는 그녀의 옷가지와 가슴 가리개로 가슴을 가리고, 상처 부분과 피가 흘러 굳어 버린 배 쪽을 닦아 주었고 한 번에 되지 않아 반대쪽 소매를 찢어 물을 적셔 와 마저 닦아 주었다.

“백아(白兒).”

꾸륵―

이윤후를 계속 멀찌감치 지켜보고만 있던 설응이 자신을 부르자 뒤뚱거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 여인을 지켜봐 주렴. 일단 난 마을에 내려가 약을 좀 사 와야 할 거 같으니. 이렇게 된 것을 보아 분명 이산에 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가 지켜 줘. 네가 데려왔으니.”

꾸르륵―

설응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고, 큰 덩치에 그러는 모습이 귀여웠던 이윤후는 설응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고는 마을로 향했다. 이미 피는 멈추었으나 혹시 모르니 금창약과 필요할 수도 있는 약을 사두려는 것이었다.

이윤후가 떠나자 설응은 한쪽 날개를 펼쳐 유인경을 품어 주었다.

이윤후가 착각하고 있는 게 있었는데, 백아가 유인경을 데려온 곳은 여산이 아니었다. 설응의 비행 거리를 정확하게 예측 못 하고 있었기에 생긴 오해였다.

설응은 한번 날면 수백 리도 단숨에 날 정도로 긴 거리를 비행했고, 속도 또한 엄청났다.

그걸 모르는 이윤후는 그간 설응이 잡아 오던 사냥감들이 여산에서만 잡힌 것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고, 각지의 산에서 잡힌 동물들이었다.

* * *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산을 내려갔던 이윤후가 돌아오자 백아는 날개를 거두어 접었다.

꾸륵―

“잘 보살피고 있었구나.”

이윤후는 유인경의 얼굴에 조금은 화색이 돌아온 것을 보자 안심했고, 백아에게 수고했다고 쓰다듬어 주었다.

꾸르륵―

“그래. 부탁한다. 저 여인에게 죽이라도 먹여 줘야 할 테니.”

백아의 울음소리에 이윤후가 답했고 이내 하늘로 날아갔다.

그는 백아와 동조를 한 이후부터 백아의 울음소리에서 어느 정도 의미를 알아들었다. 사냥을 해 오겠다는 백아의 말에 그렇게 하라고 허락한 것이었다.

이윤후가 유인경의 곁으로 다가가 살펴보니, 상처는 피가 멈춘 채 아물고 있었다. 혹시나 다른 곳에 상처가 더 있을까 살폈으나 칼에 찔린 상처 외에는 상처가 없었다.

상태를 확인한 이윤후는 상처 부위에 금창약을 바르고 깨끗한 천으로 덮은 뒤 고정해 주었다.

눈에 들어오는 유인경의 하얀 살결의 감촉에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었으나, 이미 다른 곳도 본 마당에 살의 감촉에 흥분하는 자신이 웃기긴 했다.

유인경의 옷을 다시 입혀 준 뒤 바닥에 다시 눕혔다. 아까와 달리 얼굴의 화색도 돌아와 있었고 작게나마 숨을 내쉬는 것이 들려 안심이 되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 소녀일까?”

이제야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던 이윤후는 왜 소녀가 이런 상처 입은 몸으로 백아에게 구조되어 왔는지 궁금했다.

검성에게 무림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칼을 맞은 채 자신의 곁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으음…….”

그녀가 소리를 내며 깨어나려 하기에 이윤후는 곁으로 다가갔다.

“정신이 드십니까?”

유인경은 자신의 앞에 의문의 남자가 보이자 놀라서 주위를 살피며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가 기억을 더듬었다.

“여긴 어디…… 으윽!”

몸을 일으키려던 유인경은 가슴 아래에 통증으로 비명을 질렀고 그제야 자신이 칼을 맞았었다는 것을 다시 기억해 내었다.

“아…….”

상처 부위에 손을 대었던 그녀는 상처가 치료되어 있음을 알았고 생각에 빠졌다가 얼굴이 붉어졌다.

“혹시…… 제 상처를 치료해 주신……?”

유인경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자신의 앞에 있는 이윤후에게 물었다.

“칼에 맞은 채 위험해 보여서 제가 치료를 했습니다. 아, 혹시 제가 그쪽의 옷을 벗긴 것이 불쾌했다면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윤후는 그녀가 얼굴을 붉힌 이유를 알 수가 있었기에 먼저 이야기를 꺼내었고, 유인경 또한 그런 이윤후에게 고마움이 들면서도 자신의 가슴을 보였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자신의 옷매무새도 흐트러져 있었고, 가슴을 가리던 가리개 또한 풀어져 옷 안에서 따로 놀고 있었다. 그것으로 앞의 사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봤음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치료해 주지 않았다면 위험한 상태였음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이윤후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공자의 도움에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전 사마…… 아니, 유인경이라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려다가 아직 이윤후에 대한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름만 밝힌 채 예를 표했다.

“전 이윤후라고 합니다. 따로 사문은 없고 무림은 초행길입니다.”

“아…… 어디 문파에 소속된 분이 아니십니까?”

유인경은 자신의 중상을 치료해 준 이윤후의 무공이 고강하다 여겼기에 그의 사문을 알고 싶었다. 혹 그가 사파에 적대적인 명문 정파 출신이라면 사마련의 손녀인 자신에게 어찌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냥 우연한 기회에 무공을 배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몸은 어떠십니까? 혹시 몸에 이상이 느껴지지는 않으시는지?”

“괜찮은 거 같은데요. 상처가 아프긴 하지만…… 어라?”

유인경은 이윤후의 말에 내력을 살짝 끌어올려 몸 상태를 확인하려 했는데 이전과 다르게 엄청난 힘이 내부에서 느껴지자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일이지? 이전과 다른 힘이 몸에서 느껴지는데…….’

여전히 상처 부위는 아팠지만 그녀의 몸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고 다치기 전보다 몸이 훨씬 좋아져 있었다. 거기에다 가슴 아래 칼이 박힌 심각한 상처였는데 조금 욱신거리고 있을 뿐 심한 통증은 아니었다.

“제가 배운 무공으로 소저의 체내에 기운을 조금 북돋아 주었는데 혹시 몸에 문제는 없으신지요?”

그녀는 이윤후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의 몸의 변화가 이윤후에 의한 것임을 알았다.

“도대체 무슨 무공을 배우셨기에 제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는 건가요?”

빼액―

그녀가 궁금증을 못 참고 물어보던 찰나, 하늘에서 날아든 백아의 발에는 덩치 큰 멧돼지가 잡혀 있었다. 그 광경에 유인경은 놀라 입이 벌어졌다.

“저 매는…….”

유인경은 백아를 보고는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봤던 새임을 알아보았고 그제야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사냥을 갔던 이 녀석이 사냥감은 안 가져오고 소저를 데려왔기에 놀랐습니다. 소저를 구한 건 이 녀석이에요.”

이윤후는 사냥해 온 백아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기이할 정도로 큰 덩치의 매를 쓰다듬는 그 모습에 유인경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잠시 쉬고 계세요. 이것으로 요리해서 드릴 테니까요.”

이윤후의 배려에 유인경은 미안했지만 가슴 아래쪽의 통증으로 일어서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랐고, 백아와 이윤후를 계속 지켜보았다.

‘도대체 누구의 제자일까? 보통 실력은 아닌 듯한데…….’

유인경은 앉아서 몸을 기댄 채 이윤후를 살폈다. 그의 출신이 계속 궁금했던 그녀였다.

이윤후는 백아가 잡아 온 멧돼지를 능숙하게 해체하면서 고기 일부를 설응에게 먹이곤 남은 고기를 이용해 요리하기 시작했다.

백아가 이윤후가 넘겨준 멧돼지를 뜯어먹으며 유인경을 살짝 쳐다보자 눈이 마주친 그녀는 화들짝 놀라 눈을 피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쳐다보았는데, 백아가 마치 자신에게 자신이 먹던 것을 권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설마 그럴까 하는 생각에 다시 눈을 피했다.

만약 이 매가 북해빙궁의 설응이란 것을 알았다면 자신이 느꼈던 것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유인경의 눈은 계속 이윤후를 좇고 있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가슴 아래 상처가 아려 올 때마다 부끄러우면서도 생면부지인 자신을 도와준 이윤후가 너무나 고마웠다.

‘할아버지는 무사하시려나…… 사마련 소식도 궁금하고…….’

유인경은 몸이 좀 괜찮아지자 사마련과 할아버지인 유상휘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수라마검이 이번 일의 주도자라면 할아버지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았지만, 자신이 아는 수라마검이나 흑룡창제는 이인자들이지 절대 일을 도모할 만한 인물들이 못 되었다.

‘분명…… 그들을 부추긴 자가 있을 거야…… 경혼 아저씨까지 뒤에서 움직인 자가 분명히…….’

유인경은 머리가 복잡해졌고 떠오르는 생각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사마련이 무너졌다는 것이고, 이제 사파는 분쟁에 휩싸일 거라는 점이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렵게 규합해 놓은 사파는 다시 사분오열(四分五裂) 날 것이고 평화롭던 무림에 일대 혼란이 올 게 분명했다.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하지…….”

결국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유인경은 울 거 같은 표정이 되었다.

병상의 할아버지를 사마련에 둔 채 빠져나왔다. 어렸을 때 부모님을 사고로 잃어 가족이라곤 할아버지인 유상휘뿐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혼자가 된 셈이었다.

꾸륵―

퍼드득―

“응?”

유인경은 갑자기 자신을 감싸는 무언가에 놀랐다.

그것은 백아의 한쪽 날개였다. 마치 자신을 위로하는 듯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따듯하게 날개로 감싸 주니 온기가 느껴졌다. 그 덕에 그녀는 마음이 따듯해졌다.

“날 위로해 주는 거니?”

꾸르륵―

“내 말을 알아듣는 거야?”

유인경은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백아가 신기했고, 아까 느꼈던 백아의 눈빛이 자신의 착각이 아님을 알았다.

“이것 좀 드세요.”

유인경이 백아를 쓰다듬는 사이, 어느새 요리를 마친 이윤후가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그릇에는 백아가 잡아 온 멧돼지 고기로 만든 고깃국이 가득 들어 있었다.

“고마워요. 목숨을 구해 주셨는데 이렇게 신세만 지게 되네요.”

유인경은 자신이 이윤후에게 감사의 표시도 못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지하고 감사를 표했다.

“일단 이거 먹고 기력을 찾아야죠. 그 후 어떻게 할지 생각하시고요.”

“네…….”

유인경은 그가 건넨 그릇을 받아 들었다. 맛있는 냄새에 허기가 몰아쳤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이윤후도 고깃국을 하나 더 퍼 와서는 유인경 앞에 앉았고 먹기 시작했다.

“이 소협.”

“네.”

유인경의 부름에 이윤후는 답했고 그녀는 눈치를 조금 보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소협의 사부가 누구인지 물어도 될까요?”

그녀의 물음에 이윤후는 답하지 않은 채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고 그 시선에 조금은 민망했던 유인경은 다시 입을 열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이었으니, 어찌 되든 자신의 출신을 밝히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전 사마련(邪魔聯)의 련주이신 흑월도존의 손녀, 유인경이라고 해요. 제 소개도 하지 않은 채 상대의 사문을 묻는 실례를 범했네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이윤후가 답해 주길 바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이내 잠깐 생각에 빠져 말이 없던 이윤후가 입을 열었다.

“전 아까 말했다시피 특별히 속한 사문은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직접 무공을 전수하였고, 어제 하산하라는 사부의 명을 받아 처음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이윤후의 대답에 조금 실망한 유인경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숨기는 것으로 봐서는 더 물어도 답해 줄 리가 없다 여겨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앞의 사내가 자신의 앞길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확고히 했다.

이윤후가 자신을 치료해 주었다던 방법을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체내에 솟구치는 힘은 분명 이윤후 덕분이었다.

“소협, 염치없으나 혹시 가능하다면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건가요?”

“무림이 초행길이라 하셨는데 제가 길동무를 해 드려도 될지요?”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데다, 사파임을 밝혀도 별다른 반응이 없으니 분명 선인 중에 선인일 터. 분명 단번에 허락해 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좀 곤란한데요.”

유인경은 예상외의 거절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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