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3화 (3/251)

3화― 하산(下山)하다

오 년(五年).

이윤후가 동굴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오 년이 지났다.

소년이었던 이윤후의 모습은 어느새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 되어 있었고, 오 척(五尺)이 안 되던 키는 어느새 육 척에 가까울 정도로 컸다.

검성은 이윤후가 벽곡단(辟穀丹)으로만 끼니로 연명하는 것을 염려해 설응에게 매번 사냥을 해 오게 시켰고, 설응이 잡아 오는 짐승들로 이윤후의 끼니는 벽곡단으로 생활했던 첫 일 년보다 풍족해졌다.

이미 만상오행심법(萬象五行心法)과 만상오행공(萬象五行功)의 전반적인 모든 것을 익혔고, 비뢰검결(飛雷劍訣)도 만족할 만큼 성과를 얻은 상태였다.

“이제 동굴을 나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

검성의 말에 이윤후는 미소를 보였다.

“제가 떠나면 외롭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놈, 귀신을 앞에 두고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검성은 이윤후가 자신 때문에 이곳을 못 떠나고 있음을 진작 알고 있었다. 이미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무공은 이 년도 채 되지 않아서 익혔었다.

하지만 이윤후는 동굴 밖을 나갈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묵묵하게 자신의 말에 따라서 무공 수련만 하고 있었다.

검성은 힘을 잃어 감에 따라 존재가 점점 흐려져만 갔다.

이를 눈치챈 이윤후도 검성에게 무공을 배울 수 있는 날이 오래지 않음을 알았고, 그의 가르침을 최대한 마음에 새기려 했다.

만상오행공.

검성이 말년에 창안해 낸 무공으로 오행을 바탕으로 하는 무공이었다.

우주만상(宇宙萬象)을 지배하는 기운.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가지 기운을 일컫는 오행은 상호(相好) 도와주는 상생 법칙이 있는가 하면, 서로 견제하고 극(克)하고 다스리는 상극 법칙이 있다.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목극토(木克土), 토극수(土克水), 수극화(水克火), 화극금(火克金), 금극목(金克木).

이윤후는 이미 배워 둔 학문과 뛰어난 오성을 통해 검성의 가르침을 수월하게 이해했고, 오행의 상생 관계와 상극 관계 또한 빠르게 이해했다.

검성은 오행공에다가 마교의 흡성대법을 참고해 차력을 더했는데, 이 차력을 쓰는 데도 두 가지 응용이 가능했다.

바로 오행의 상생 법칙을 이용한 차력과 오행의 상극 법칙을 이용한 차력.

상생 법칙의 차력이 상대와 동조하여 서로 도움을 받는 방법이라면, 상극 법칙의 차력은 말 그대로 상대의 기운을 흡수하는 흡성대법의 방법을 취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윤후는 두 가지 모두 익혔지만 검성은 상극 법칙에 의한 차력을 절대로 금하길 원했다.

마교의 흡성대법과 비슷하다는 점도 문제이긴 했으나, 더 큰 문제는 시전자인 이윤후에게도 심각한 부담이 간다는 점이었다. 검성은 이를 걱정하여 웬만한 위기가 아니고서는 절대 쓰지 말 것을 명했다.

이윤후도 검성이 말하는 의미를 알았기에 그의 말을 따르겠다고 답했고 검성은 그 대답에 만족했다.

“내 앞에 앉아 보아라.”

검성의 말에 이윤후는 검성의 시신 앞에 섰고 그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이윤후는 이 동굴에 와 검성에게 무공을 배웠지만, 사제의 예를 갖추지 않았기에 이제야 제대로 구배지례(九拜之禮)의 예를 갖춘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검성은 처음 맞이하는 제자의 예법에 마음이 시큰해져 왔다.

검성도 살아 있는 사부를 얻은 게 아니라 기연으로 이 동굴에서 비뢰검제의 무공을 얻었고, 후에 무공에 빠져 제자를 둘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병을 얻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 허울뿐인 예를 뭐 하려고 하느냐?”

검성은 부끄러운 듯 마음에 없는 소리를 했고 그의 말이 진심이 아님을 알았기에 이윤후도 미소를 보였다.

“그래도 처음 스승이 생긴 것인데 제대로 모셔야지요.”

“이제 모든 무공을 익혔으니, 더는 이 동굴에 머물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저도 슬슬 때가 왔음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윤후도 이미 검성의 무공을 다 익혔으니, 이제 필요한 건 경험이라 생각하던 터였다.

그저 검성의 마지막을 보고 떠나려 했기에 지금까지 동굴에 머물렀던 것이고 검성 또한 그 마음을 알았기에 시기를 보고 있었다.

“오행공은 웬만해서는 사용하지는 말아라. 비뢰검결 만으로도 무림에서 너의 가치를 인정받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거다.”

“네. 알겠습니다.”

“비뢰검결을 사용하게 되면 분명 나에 관해 묻는 자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 나의 제자임이 알려진다면 너를 찾아올 사람들이 있을 거다.”

“사부님은 홀로 무림을 활동하셨다고 하셨는데 누가 찾아온다는 말입니까?”

이윤후가 알기로 검성은 무공이 고절하였으나 세력을 가지지 않고 홀로 활동하다가 사라졌다.

“물론 난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나를 따르던 자들이 꽤 있었다. 아마 그들이 너를 찾을 수도 있다.”

“그렇군요.”

이윤후는 검성의 말에 따로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검성의 말에 다른 의미가 있음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사부는 지금 자신에게 경고해 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네가 정파인으로서 살아가길 원하지 않는다.”

“사부님은 정파인이 아니셨습니까?”

“굳이 따지자면 나는 분명 정파인으로 살아왔으나, 네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너도 무림이라는 곳을 경험해 보면 느낄 것이다.”

이윤후는 더는 되묻지 않고 차분하게 검성의 말을 들었다.

“정파와 사파라는 편견으로 무림을 대하다 보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사파인 중에도 충분히 교류를 해 볼 만한 자들이 존재하고, 반대로 정파인 중에 비열하고 편협한 자들도 있단다. 특히 정파인 중에는 명문 대파라는 허울에 갇혀 남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권위를 즐기는 자들이 있다.”

이윤후는 무림인들을 알지는 못했으나 검성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아라. 그리고 네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제자야, 이제는 너를 위해 살거라.

“네. 사부님 말씀, 가슴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이윤후는 이것이 검성의 마지막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진지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네가 무림을 다니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구나…….”

검성의 말에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으나, 이윤후는 따로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검성과 이별은 이윤후도 아쉬웠다.

“제자야, 내 너에게 맡길 물건이 있으니, 나가면 장가철장(張家鐵場)부터 들러 상월(霜月)을 찾거라.”

“네. 알겠습니다.”

이윤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절을 하며 예를 취했다.

“사부님의 말씀은 잊지 않겠습니다. 사부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내 명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미 죽은 사람의 명성 따위 무슨 소용이겠냐? 그저 네가 옳다고 여기는 일은 소신 있게 행하되 고민이 되는 일은 세 번 더 생각해 보고 행하여라.”

“네.”

씩씩한 이윤후의 대답에 검성은 그를 바라보았다. 이미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 버린 그를 보자 자신이 괜히 멀쩡하게 살던 아이를 무림에 끌어들이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윤후로 인해 자신의 모든 것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감사했다.

“이제 떠나거라. 백아(白兒)를 타고 나갈 거냐?”

“네, 사부님.”

빼액―

밖에서 새 우는소리가 우렁차게 울렸고 이윤후와 검성은 동굴 밖에 설응이 와 있음을 알았다.

“백아가 온 모양이네요.”

“그래. 가 보자.”

이윤후는 동굴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성이 그를 뒤따라갔다.

동굴 밖에 도착하자 하늘을 날고 있던 설응이 이윤후에게로 날아들어 왔다.

퍼드득―

설응의 날갯짓에 바람이 거세게 일었다.

“무림은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니 조심하여라. 특히 너에게 다가오는 여자와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자들을 조심하도록 하고.”

“네.”

“몸조심하여라.”

“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윤후가 설응의 발을 잡자, 설응은 천천히 날갯짓을 하며 떠올랐다. 이윤후와 설응이 점점 떠오르자 지켜보던 검성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으나 더 이윤후를 잡아 두기에는 자신의 욕심이었다.

“벌써 보고 싶어지는군…….”

어느새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진 이윤후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검성은 그저 아쉬운 마음에 사라진 방향을 계속 쳐다보았다.

* * *

퍼드득―

어느새 절벽 위로 올라온 설응은 이윤후를 안전하게 내려다 주었다.

탁―

“이게 얼마 만에 밟아보는 땅인지, 원…….”

동굴 안이 아닌 땅을 밟는 기분이 색달랐던 이윤후는 펄쩍펄쩍 뛰었고 설응은 그 모습이 이상한지 쳐다보고 있었다.

꾸륵―

설응이 자신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자 이윤후는 그제야 자신의 행동이 무안한지 설응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일단 너랑 같이 다닐 수는 없으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거라.”

꾸륵―

설응은 이윤후의 말을 알아들은 듯, 한 차례 울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는 설응이 사라지는 모습을 응시하다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래…… 사부님의 명대로 장가철장(張家鐵場)부터 가자.”

이윤후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마음을 굳힌 듯, 하산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듯 발걸음이 가벼웠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새로웠다.

일조향로생자연(日照香爐生紫煙).

향로봉에 햇빛 비쳐 자줏빛 안개 일어나고.

요간폭포괘장천(遙看瀑布掛長川).

멀리 폭포를 보니 긴 강이 걸려 있는 듯.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

날 듯이 흘러 수직으로 삼천 척을 떨어지니.

의시은하락구천(疑是銀河落九天).

은하수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

콰콰콰―

이윤후는 여산을 내려가기 전 자신의 몸을 씻기 위해 폭포를 찾아가 한 구절의 시를 읊었다.

이백(李白)이 여산의 폭포를 보고 읊었던 비류직하삼천척이란 시구였다.

여산의 아름다움을 좋아했던 이백은 여러 번 찾을 정도로 여산을 좋아했다고 전해졌다. 여산 아래 살았던 이윤후도 여산을 좋아했고, 이백에 대해 공부도 했었기에 자연스레 여산에 관련된 이 시도 외우고 있었다.

이윤후는 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고는 폭포 아래로 들어갔다. 오 년간 제대로 씻지도 못했기에 그의 모습은 땟국물이 흐르고 옷은 넝마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물에 머물다 나왔을 때, 이윤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기에 긴 머리가 늘어뜨려지긴 했지만 꾀죄죄하던 모습이 말끔해졌고 오 년간의 무예 수련으로 몸은 탄탄해져 근육질의 몸매가 되어 있었다.

“후아, 오랜만에 물에 몸을 담그니 이렇게 좋은걸…….”

이윤후는 온몸의 물기를 털어 냈지만, 마땅히 닦을 것이 없었기에 난감해하다가 돌 위에 알몸 채로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았다.

“아, 혹시 무공으로 물기도 마르게 할 수 있으려나?”

그는 갑자기 든 생각에 벌떡 다시 일어났고 가부좌를 튼 채로 운공을 했다. 만상오행심법을 운공하기 시작했고 차례대로 목화토금수의 기운을 몸 전체에 돌리고 나자 몸의 물기는 완벽하게 말라 있었다.

“진작 이렇게 할 것을.”

몸에 물기가 사라지자 넝마가 된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옷도 이미 몸에 맞지 않아 문제가 있었기에 일단 이윤후는 옷 문제를 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마을로 가기는 해야겠군.”

오 년 만에 나온 세상이었다. 모든 게 새로웠다. 이윤후는 부드러운 땅의 촉감을 느끼며 걸음을 옮겼다.

드디어, 좁디좁은 이곳에서 벗어날 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