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최후의 결전(1)
2018.08.09.
담무흔은 최후를 대비하여 보존해두었던 내력을 모조리 끌어 올렸다.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진무량을 쓰러뜨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윽고 담무흔이 제어하고 있던 힘을 온전히 해방시키자, 그야말로 천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지는 신음하듯 부르르 떨렸고, 맑았던 하늘에는 컴컴한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게다가 담무흔이 쥔 흑오신도에서 발산되는 칠흑처럼 검은 기운으로 인해 주변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
삽시간에 흉흉하게 바뀐 분위기를 파악한 연시우는 멀찍이 떨어진 진무량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 시선 속에는 우려스런 심정이 여실히 담겨 있었다.
누구보다 진무량을 신뢰하는 연시우였으나, 담무흔이 발산하는 파괴적인 기운은 철통같았던 믿음마저 의심하게 할 정도로 막강했다.
그때 위지운이 시름을 안고 있던 연시우를 찾아왔다.
“이대로 보고만 있어도 괜찮겠어?”
위지운 역시 연시우와 마찬가지로 불안한 심정을 느끼는 중이었다.
몽원양을 쓰러뜨리면서 성공적으로 구중련 패거리를 몰아냈다. 그렇다면 인원을 나눠 진무량을 돕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터.
허나 진무량은 출진 전부터 담무흔과의 승부에 끼어드는 것을 엄격히 금지시켰다.
진무량의 명을 따른다면 나서지 않아야겠으나, 담무흔의 기세가 너무도 위협적이라 마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연시우는 결국 비상식적인 담무흔의 무위를 보고서 현재 시국을 예상치 못한 변수로 판단했다.
“내가 대주를 구하러 가겠다. 삼조는 주백기를 도와 구중련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줘.”
대답을 마친 연시우는 진무량이 있는 방면으로 몸을 돌렸다.
그때 연시우의 심정을 이미 알아챘다는 듯 진무량이 염옥창을 높이 치켜들었다.
오랜 시간 함께 전장을 누벼온 연시우는 진무량의 행동이 나타내는 의미를 단번에 눈치챘다.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올곧게 염옥창을 뻗는 행위가 전하는 바는 한 가지.
도움은 일체 필요치 않다는 뜻이었다.
연시우가 위지운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간섭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 같군.”
진무량이 다시금 확실한 의지를 내비친 이상, 연시우는 그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위지운은 연시우의 의견을 반박하고 나섰다.
“담무흔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놈이다. 대주 혼자서 상대하도록 내버려두는 건 너무 위험해.”
“다시금 대주님께서 직접 명령을 내리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뜻에 따라야 돼.”
위지운 역시 멸천대의 일원이었기에, 연시우가 전하고자 하는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걱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담무흔이 내뿜는 존재감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시우는 흔들리는 위지운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진심을 담아 격려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언제나 그러했듯, 목숨을 걸고 대주님의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다.”
* * *
담무흔은 염옥창을 치켜들고 있는 진무량을 향해 여유로이 말을 건넸다.
“절망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고 도망칠 줄 알았거늘, 꿋꿋이 내게 맞서려는 그 담력만은 칭찬해 줄 만하군.”
“잡소리는 거기까지. 최강을 가리는 자리에 주절주절 말이 너무 많아.”
담무흔은 검게 물든 검신을 뽐내는 흑오신도를 슬며시 치켜들었다.
“하긴, 피차 긴 말은 필요 없을 테지. 이제부터는 네놈을 직접 힘으로 찍어 눌러 주마.”
순간적으로 담무흔의 신형이 일렁이더니 단숨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바로 눈앞에 있던 진무량의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담무흔의 움직임은 신속했다.
허나 제아무리 번개 같은 움직임이라 하더라도 진무량의 날카로운 감각을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다. 특유의 육감으로 단숨에 경공을 펼치는 담무흔의 위치를 파악한 것이다.
‘멋대로 날뛰게 둘 수는 없지.’
진무량은 전속력으로 달려 담무흔과 거리를 좁혀갔다. 담무흔 역시 아랑곳하지 않고 저돌적으로 진무량에게 나아갔다.
두 사람 중에서 먼저 원하는 거리를 취한 쪽은 진무량이었다. 긴 염옥창을 십분 활용하여 선제공격을 취한 것이다.
시작은 빛살처럼 빠른 진무량의 찌르기였다.
슉! 슉! 슉!
처음에는 직선적이었던 염옥창의 움직임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진무량이 손목을 통해 염옥창의 미묘한 탄성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염옥창은 미세하게 위아래로 떨리며 용형십삼식의 일식, 마영수라가 펼쳐졌다.
마영수라는 담무흔에게 지독한 환각을 보여주었다.
점차 수백수천 개로 불어난 염옥창의 창끝이 일제히 자신을 덮쳐오는 것이었다.
허나 담무흔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날아드는 염옥창을 모조리 쳐냈다.
진무량의 초식, 마영수라는 상대에게 불필요한 움직임을 강요하여 생긴 빈틈을 찾아내는 것.
허나 담무흔은 환각을 포함한 공격을 모조리 방어하면서도 작은 빈틈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승부의 균형이 담무흔에게로 기울어져 갔다.
염옥창이 한 번 찌르면 여지없이 흑오신도는 두 번 휘둘러졌다.
간혹 진무량이 변칙적인 일격을 가하려 할 때면 여지없이 날아드는 담무흔의 검격으로 인해 방어에 치중해야만 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내는 바는 실로 간단했다.
담무흔이 진무량의 속도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수세에 빠진 진무량을 지켜보던 담무흔의 눈빛이 사납게 변했다.
‘고작 이 정도로 당황하면 안 되지.’
담무흔은 내력을 실은 흑오신도를 일직선으로 내리쳤다.
캉!
진무량은 육중한 담무흔의 일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신형이 뒤로 밀려났다.
담무흔이 날린 검격의 무게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간신히 충격에서 벗어난 진무량은 흐트러진 몸의 균형을 잡으려 했다.
물론, 담무흔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필살의 절초를 펼쳤다.
‘등천이기검(登天二起劍)!’
진무량은 급히 몸을 회전시켰다. 이윽고 펼쳐진 초식은 빠른 회전을 이용하여 상대의 공격을 차단하는 등마회륜참이었다.
회전을 머금은 염옥창은 흑오신도를 쳐내는 데 성공했다.
진무량이 잠시 안도의 한숨을 돌리려던 찰나, 곧바로 상체에서 지독한 고통이 느껴졌다.
진무량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새빨간 피가 흘러나오는 허리에 손을 갖다 댔다.
담무흔은 지혈 중인 진무량을 내려 보았다.
“용케 일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으나, 이격은 인지조차 하지 못한 모양이군.”
“설마 이깟 생채기 좀 냈다고 우쭐한 건 아니겠지.”
담무흔은 진무량의 허리에 난 검상을 자세히 살폈다.
확실히 예상보다 상처가 얕았다. 그러니까 진무량은 두 번째 일격이 닿기 전에 몸을 틀어 피해를 최소화한 것이었다.
담무흔은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꺼냈다.
“흥미롭군. 천하에서 이 정도로 나와 대적할 수 있는 적수가 있으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네 예상은 또 틀리겠군. 나는 단순히 널 대적할 수 있는 적수가 아니야. 네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을 상대지.”
패기 넘치는 호언장담과 달리, 진무량의 속내는 더욱 신중해졌다.
힘, 속도, 기술, 모든 면에서 담무흔에게 밀렸다.
담무흔의 움직임은 강호의 무공을 통해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중련 소속이란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담무흔의 무공은 특별했다.
실제로 담무흔이 익힌 무공은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 발전한 것이 아니었다.
구중련주에게만 전수되는 무공이 바탕이 된 건 사실이나, 펼치는 모든 초식들은 담무흔의 손에서 재창조된 것이었다.
담무흔은 천년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들다는 역천혈마지체를 타고남과 더불어, 사람을 죽이는 재능을 가졌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무공으로만 따진다면 담무흔은 실로 최강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만한 사내였다.
허나 바로 그 사실이 진무량을 뜨겁게 타오르게 했다.
진무량은 다시 한번 정과 마의 기운을 동시에 운용하기 시작했다.
‘최강의 상대를 이기는 방법은 한 가지. 그 상대보다 더 강해지는 것밖에 없지.’
담무흔에게 얕은 수는 통하지 않을 터. 그를 쓰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정면승부였다.
진무량은 찬란한 황금빛 기운을 두른 채 담무흔을 향해 돌격했다.
챙!
잇따라 염옥창과 흑오신도가 격렬하게 부딪쳤다.
진무량은 무아지경으로 염옥창을 휘둘렀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담무흔을 쓰러뜨리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진무량의 기백에 눌릴 법도 했으나, 담무흔은 지독히도 침착했다.
결국 몰아치는 염옥창은 번번이 흑오신도에 의해 튕겨나갔다.
냉정하게 진무량의 공세를 받아내던 담무흔은 곧 반격의 기회를 포착했다.
이윽고 진무량이 창을 거둬들이는 순간, 훤히 노출된 가슴팍을 향해 흑오신도가 나아갔다.
챙!
허나 담무흔의 예상과 달리 가슴팍을 노린 흑오신도는 염옥창에 막혀 버렸다.
곧바로 진무량은 낮췄던 몸의 중심을 담무흔 쪽으로 향하게 하면서 염옥창을 뻗었다.
담무흔은 제자리에서 검로를 틀었다.
챙!
담무흔은 성공적으로 염옥창을 받아냈으나, 예상과 달리 몸이 뒤로 밀렸다.
여태까지 진무량이 날린 일격과는 그 무게가 확연히 달랐다.
담무흔은 갑작스런 변화에 의문을 품었으나, 진무량은 담무흔의 심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염옥창은 쉴 틈 없이 휘몰아쳤고, 전과 달리 담무흔은 사력을 다해 방어에 전념해야 했다.
흑오신도와 염옥창이 부딪칠 때마다 진무량을 감싸는 황금빛 기운이 더욱 찬란해졌다.
염옥창과 혼연일체가 되어 담무흔을 압박하던 진무량조차도 곧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눈치챘다.
확연한 변화는 지금까지 인지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운이 단전 내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허나 그 기운은 마치 처음부터 자신과 함께했던 것처럼 굉장히 친숙했다.
그 기운은 여태 진무량 자신조차도 깨닫지 못했던 내면 속의 잠재력이었기 때문이다.
합쳐진 정과 마의 기운은 내면 깊은 곳에 숨이었던 진무량의 잠재력을 자극했다.
그리고 여태까지 전장에서 강자들과 겨뤘던 사투와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한 시간은 그 잠재능력을 끌어내는 도화선이 되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전력을 다해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담무흔과의 승부는 숨어 있던 잠재력이 깨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정과 마의 기운과 더불어 용솟음치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기운은 진무량에게 어떤 확신을 주었다.
지금까지 번번이 실패했던 용형십삽식의 정수를 펼쳐낼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콰과과과광!
담무흔은 득달같이 달려드는 진무량을 떼어놓기 위해 강기를 날렸다.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진 진무량은 담무흔이 날린 검강에 정면으로 충돌했다.
담무흔은 나가떨어지는 진무량을 보고서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고 예상했다.
허나 그 예상과 달리, 진무량은 태연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까지 비장의 한 수를 숨겨두고 있었던 게냐?”
담무흔의 어조에는 전에 보였던 여유로움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였다.
진무량은 몸속에서 넘실거리는 기운을 만끽하며 대답했다.
“숨겨둔 비기 따윈 없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네놈과 겨루면서 성장한 것일 테지.”
강자와의 상대에서 성장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허나 무엇보다 담무흔이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진무량과 달리, 자신은 성장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담무흔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채 물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묻지. 네놈은 왜 썩어빠진 무림의 편에 서는 거지? 그만한 힘을 지녔으면서도 왜 벌레들을 돕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군.”
“…….”
“강자라면 마땅히 모든 걸 빼앗고 지배해야 하지. 그것이 강호의 법도이자, 마교의 이념이 아니던가.”
“강자란 무공이 뛰어난 사람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또한 마교의 이념은 약자를 벌레 취급하는 게 아니야. 네 멋대로 남의 뜻을 해석하지 마라.”
진무량은 여실한 비웃음을 띤 채 말을 이었다.
“썩어빠진 무림이라고 했던가. 나 역시 그들 편에 설 생각은 없지만, 내 눈에는 네놈이 훨씬 더 추악해 보이는군. 결국 넌 확고한 목적도 없이 제 마음대로 천하를 휘두르려는 것이 아닌가.”
“과연 적무혁의 생각대로야. 무슨 수를 써도 절대로 너와는 힘을 합칠 수 없었겠군.”
“이제라도 알았다니 다행이군. 그럼 이제 슬슬 끝을 내도록 하지.”
진무량과 담무흔은 동시에 내공을 끌어올렸다.
담무흔을 중심으로는 짙은 어둠이 몰려들었고, 반대로 진무량에게는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진무량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은 점차 일련의 형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또렷이 모습을 드러낸 그 형상은 찬란한 황금빛 용이었다.
용형십삽식은 말 그대로 용의 형상을 본떠 만든 초식. 그 정수를 깨우친 자만이 완전한 용의 형상을 구현해낼 수 있는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용의 형상을 몸에 두른 진무량이 담무흔을 향해 염옥창을 겨눴다.
“용형십삼식 마지막 절초 황룡십팔해(黃龍十八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