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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무도-140화 (140/143)

140화. 상승

2018.08.05.

멸천대의 등장은 담무흔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봐도 구중련의 위치가 노출될 만한 작은 단서도 남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천라지망을 깨부술 때는 강호 무사들의 포진을 면밀히 살펴 최적의 경로로만 이동했다.

방비가 가장 취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노렸으며, 경계가 삼엄했던 곳에서는 역으로 상대를 혼란시켜 단숨에 돌파를 감행했다.

어디 그뿐인가, 휴식을 취할 지점부터 시작하여 강호 무사들의 다음 대처까지 모두 철저히 계산하지 않았던가.

실제로 천라지망을 돌파하는 담무흔의 움직임에서 빈틈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허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점이 진무량에게 덜미를 잡히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진무량은 담무흔의 입장으로 생각을 바꿔서 추격을 설계했다. 그리고 진무량은 정확히 담무흔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기에 이르렀다.

즉, 진무량과 담무흔의 생각이 정확히 일치했던 것이다. 하여 진무량은 한발 먼저 행동하여 담무흔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었다.

허나 담무흔은 생각지 못했던 멸천대의 등장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담무흔은 오히려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모습을 드러내라.”

담무흔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에서 말발굽 소리와 함께 자욱한 먼지가 일기 시작했다. 매복 중이던 멸천대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진무량은 담무흔과 구중련 고수들을 상대할 때 매복은 큰 이점이 없다고 판단했다.

어설프게 거리를 두고 대치하다가는 즉발적인 담무흔의 움직임에 대처하지 못할 터.

현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구중련과 맞서는 방법은 단 하나, 정면승부였다.

이윽고 멸천대 전 인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멸천대 측에서도 가장 선두에 선 이는 진무량이었다.

“이렇게 만나기까지 참 오래 걸렸군.”

진무량의 목소리에는 바위도 녹여버릴 듯한 살기가 담겨 있었다.

담무흔은 진무량이 내뿜는 묵직한 살기를 정면에서 받아냈다. 이윽고 매서운 눈길로 진무량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네놈이 진무량이군.”

담무흔은 한눈에 진무량을 알아봤다.

담무흔에게 진무량은 결코 몰라볼 수 없을 만한 존재였다.

진무량은 구중련과 강호 전쟁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꾼 인물이었다.

진무량의 개입으로부터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기 시작했고, 결정적인 사건에는 모두 진무량이 개입되어 있었다.

담무흔이 그린 천하일통. 그 계획의 단 하나의 오점이 바로 진무량이었던 것이다.

“너만은 반드시 내 직접 끝장내고 싶었거늘, 스스로 찾아와주다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진무량은 한 쪽 입꼬리를 올리는 특유의 비웃음을 지었다.

“주둥이를 제멋대로 놀리는군.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됐나 보지?”

“설마 이 정도로 내가 위기의식을 느낄 거라 생각했는가?”

담무흔은 같잖다는 듯한 눈길로 주변을 훑어보곤 다시 입을 열었다.

“떨거지들을 데리고 한꺼번에 덤벼보거라. 네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착각인지 내 직접 보여주마.”

“자만이 너무 심하니 오히려 웃음이 나올 지경이군. 허세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진무량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염옥창을 굳세게 쥐었다.

“정신 차려. 너 따윈 나 혼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

진무량과 담무흔이 당장에라도 서로를 향해 달려들 듯한 태세를 취하자, 몽원양을 비롯한 구중련 정예 고수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이윽고 구중련의 정예 고수들은 일련의 진형을 구축해 나갔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몽원양이 대표로 우렁찬 목소리를 냈다.

“련주님을 도와 멸천대를 처단한다! 한 놈도 살려두지 말고 모조리 쓸어버려라!”

멸천대 측에서 몽원양에게 대항한 이는 연시우였다.

“적들을 대주님께 접근시키지 마라. 우리가 친히 나서 구중련 놈들의 마지막 발악을 끝내주자.”

구중련 정예 고수들의 움직임은 이미 예상한 바. 멸천대는 이미 한참 전부터 전투태세를 갖춰둔 상태였다.

이윽고 구중련과 멸천대는 목숨을 걸고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세력이 부딪치면서 장내는 삽시간에 살벌한 전장으로 변했다.

격전의 중심에 자리한 진무량과 몽원양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상대를 제압할 기회를 살폈다.

그때 유서하의 연주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디링-! 디리리링-!

그 아름다운 선율은 진무량과 담무흔에게 정적을 깨는 신호로 작용했다.

파바바밧!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빛살처럼 진격했다.

선공을 취한 쪽은 담무흔이었다. 그는 태산도 가를 듯한 기세로 흑오신도를 내리찍었다.

진무량은 그 기세에 눌리지 않고, 도리어 담무흔을 향해 어깨를 들이밀었다.

그대로 진무량과 충돌한 담무흔은 미묘하게 균형이 깨졌다. 진무량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염옥창을 횡으로 휘둘렀다.

능히 천지를 갈라놓을 정도의 기운이 실린 염옥창!

염옥창은 거대한 반월의 궤적을 그렸으나, 담무흔은 순식간에 경공을 펼쳐 그 궤적에서 벗어났다.

진무량은 공세를 이어가기 위해 연이어 담무흔을 향해 염옥창을 뻗었다. 물론 담무흔 역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번개처럼 찔러오는 염옥창의 궤도를 포착하여 도리어 진무량에게 역습을 가하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그에 맞서 진무량은 뻗은 염옥창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미묘하게 방향만 틀어 쇄도해오는 흑오신도를 쳐냈다.

찰나의 순간 동안 벌어지는 최고 수준의 공격과 방어.

진무량과 담무흔은 무아지경에 빠져 각자의 무를 선보였다.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오직 상대를 쓰러뜨리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치열한 공방전이 어느새 스무 합에 이르렀을 때. 염옥창과 흑오신도가 거세게 부딪쳤다.

챙!

담무흔은 전력으로 염옥창을 밀어내며 근접한 진무량을 흘겨보았다.

‘사대신마들이 연이어 패배한 이유를 알 것 같군.’

진무량의 무공은 세간의 정형화된 수준으로는 감히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단순히 찌르는 동작만으로도 전해지는 압도적인 강함.

진무량에게는 힘이나 속도 따위로 정의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마치 작은 몸놀림 하나하나까지 포함한 모든 동작들이 스스로가 최강임을 증명하려는 듯했다.

진무량은 경합 중이던 담무흔을 완력으로 밀어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스스로 거리를 내어준 것은 힘이 실린 일격을 가하기 위함이었다.

점차 불길한 묵색 기운과 함께 염옥창의 창끝으로 막대한 기운을 지닌 강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

‘천공포!’

정과 마의 기운이 합쳐지면서 천공포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맹한 기운을 발산했다.

그럼에도 담무흔의 평정심을 잃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담무흔의 반격.

‘혼원일검(混元一劍)!’

담무흔은 진무량과 마찬가지로 강기를 날려 천공포와 정면으로 대적했다.

쿠구구구궁!

두 사람의 강기는 얼핏 팽팽하게 부딪치는 듯 보였으나, 순식간에 균형이 깨졌다.

결국 혼원일검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천공포가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이다.

거칠 것이 없어지자 담무흔이 쏘아 보낸 강기는 그대로 진무량을 덮쳤다.

진무량은 급히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혼원일검을 파쇄했다.

진무량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뒤틀린 몸의 균형을 다잡았다.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이제껏 적수들 중에서 고전했던 인물은 분명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적무혁과 감천기가 그러했으며, 과거에서는 유월천 정도를 꼽을 수 있을 터.

허나 담무흔은 그들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담무흔과 견줄 만한 인물은 단 한명. 전 마교 교주 천군위뿐이었다.

담무흔은 어떤 공격을 가해도 물러나지 않는다.

도리어 자신이 가한 일격을 능가하는 공격으로 반격해온다.

아무리 뛰어난 절초를 퍼부어도 되받아치는 강인함. 그 끝을 모르는 강인함이 담무흔에게서 느껴졌다.

‘재미있군.’

진무량은 다시 한번 거침없이 담무흔을 향해 돌격했다.

그에 따라 염옥창과 흑오신도는 수없이 부딪치고 교차되며, 때론 뒤엉키면서 하나로 어우러져갔다.

접전이 이어질수록 진무량은 점차 담무흔과 승부에 빠져들었다.

담무흔은 실로 호적수라 불릴 만한 자.

그런 상대와 치열하게 겨루면서 진무량은 무의식중에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진무량과 담무흔은 오직 서로를 향해 몰두하느라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허나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승부를 벌이는 건 비단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주변에는 담무흔의 측근들로 구성된 구중련의 정예고수들과 맞서, 삼 조장이 이끄는 멸천대가 치열한 격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구중련 측의 무인들을 통솔하는 자는 몽원양이었다.

그 사실을 파악한 멸천대 세 명의 조장은 구중련의 합격진을 뚫고 몽원양에게 도달했다.

위지운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근처에 보이는 몽원양에게 비아냥거렸다.

“여전히 보기만 해도 구역질나는 늙은이군. 그 질긴 명줄도 이젠 끝이다.”

몽원양은 난처한 심정을 애써 숨겼다.

필사적으로 멸천대 조장들을 막으려던 시도가 결국 실패했기 때문이다.

몽원양은 떳떳한 자세로 멸천대 조장들을 꾸짖었다.

“혼자서 당해낼 수 없으니 무리지어 덤빌 생각인 것이냐? 멸천대가 어떤 식으로 명성을 떨쳤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구나.”

연시우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곧바로 몽원양에게 일침을 날렸다.

“세치 혀로 위기를 벗어날 생각은 하지마라. 멸천대가 따르는 건 오직 대주의 명령뿐. 네놈이 내뱉는 간교한 말 따위에 흔들릴 우리가 아니다.”

주백기는 슬쩍 인상을 찌푸리더니, 위지운을 향해 질문했다.

“……저놈은 꼴사납게 대주를 피해 도망쳤던 놈이 아니냐?”

“에이, 말은 똑바로 해야지. 침을 질질 흘리고 오줌도 지리면서 겨우 도망쳤다던데.”

위지운은 진절머리를 치며 말을 이었다.

“자기가 불리할 때 그럴싸한 핑계를 대는 건 겁쟁이들의 특징이잖아.”

빠득.

몽원양은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올 정도로 세게 이를 갈았다.

몽원양의 심정이 어떻든 간에 연시우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이번에는 결코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스오오오오!

연시우는 본인의 절기인 흡마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점차 그의 손이 검게 물들어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몽원양은 연시우보다 한 발 먼저 움직였다.

“이런 버릇없는 놈들이 감히!”

순식간에 검을 치켜든 몽원양이 노리는 상대는 밉살스러운 위지운이었다.

몽원양이 치고 나갈 때, 그 앞을 가로막은 건 거대한 체구의 주백기였다.

몽원양은 거치적거리는 주백기를 단숨에 베고 지나칠 요량이었다.

챙!

허나 주백기는 굳건히 두 다리를 땅에 디딘 채, 몽원양의 일격을 받아냈다.

몽원양은 곧바로 자세를 바꿨다. 그리고는 가장 자신 있는 초식인 환상사검(幻想四劒)을 펼쳤다.

몽원양의 초식은 본디 지독한 변화를 지닌 초식이다. 특히 십성 경지에 이른 환상사검은 한 번 휘두름에도 수만 가지 변화가 섞인 초식이었다.

챙! 챙! 챙!

허나 헤아릴 수 없는 변화를 지닌 지독한 몽원양의 환검도 주백기의 쌍철극을 뚫어내지는 못했다.

주백기는 상대의 일격을 받아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맹사와 겨루면서 상대의 일격을 흘려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힌 것이다.

몽원양은 주백기의 반격에 난처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런 몽원양을 기다리는 건 어느새 배후를 잡은 위지운이었다.

“설마 나를 잊은 건 아니겠지? 그럼 섭섭한데.”

몽원양은 곧바로 몸을 돌려 위지운의 신형을 쫓았다.

허나 의표를 찔린 몽원양이 발도와 함께 펼쳐지는 위지운의 무상검을 받아낼 수는 없었다.

서걱.

위지운의 검은 몽원양의 허리를 베면서 깊은 자상을 새겼다.

삽시간에 불리한 상황에 빠진 몽원양은 또다시 후퇴를 생각했다.

‘이 상태로 멸천대 놈들과 겨루는 건 자살행위다.’

몽원양은 대치 중인 위지운과 주백기를 살피며 빈틈을 찾으려 애썼다.

그때 서늘한 감각이 뒷골을 스쳐갔다.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됐다.

정면에서 연시우가 파고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손에 칠흑처럼 검은 기운을 감싼 채로.

몽원양은 급히 경공을 펼쳐 연시우와 거리를 벌리려 했다.

허나 허리에 입은 부상으로 인해 몸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연시우는 단번에 검게 물든 손으로 몽원양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도망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스오오오오!

연시우는 가차 없이 몽원양을 상대로 마정대흡인을 펼쳤다.

마정대흡인은 몽원양의 마지막 생기까지 완전히 빨아들였다.

* * *

멸천대 조장들의 손에 몽원양이 쓰러지면서 구중련의 체계적인 움직임은 점차 사라져갔다.

결국 구중련의 정예 고수들은 단번에 궁지에 몰렸다.

구중련을 상대로 멸천대가 확연히 승기를 잡기 시작했고, 진무량과 담무흔도 그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담무흔은 슬쩍 주변을 살피고선 언짢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쓸모없는 것들. 끝까지 짐이 되다니.”

“전황을 보아하니 승패는 정해진 것 같군. 이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가?”

비단 유리한 전황은 멸천대 조장들의 승리뿐만이 아니었다.

담무흔이 발이 묶였으니, 유월천과 묵위현, 여도강을 포함한 강호 무사들이 곧 이곳으로 몰려들 것이었다.

담무흔은 진무량과 똑바로 눈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섣부른 판단은 하지 마라.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널 끝장내고 천라지망을 빠져나가면 그만이니.”

지금까지 진무량을 상대로 최선을 다한 건 사실이다. 허나 후일을 위해 남겨둔 여력까지 모두 쏟아부은 것은 아니었다.

막상막하의 상대와의 승부에서는 보통 조급한 쪽이 불리해지는 법. 허나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버릴 수 없었다.

즉, 최후의 비기까지 모두 꺼내서라도 진무량을 쓰러뜨려야 했다.

진무량은 여유로이 담무흔의 말을 받아쳤다.

“섣부른 판단보다 멍청한 생각이 바로 불가능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지.”

진무량은 사선으로 뻗은 염옥창을 다시금 움켜잡았다.

“너무 보챌 필요 없어. 그러지 않아도 넌 내 손에 죽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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