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135화 (135/143)

135화. 성취.

2018.07.19.

구중련의 본진이 진무량에게 습격당할 무렵.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철혈부원들은 몽원양의 명령대로 사력을 다해 묵위현의 뒤를 쫓는 중이었다.

철혈부의 추격대를 이끄는 오정주(吳正輳)는 영사문의 움직임을 조사할수록 혼란이 심해졌다.

영사문 일행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묵위현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정주가 담당한 핵심 임무는 묵위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영문을 알 수 없는 영사문의 움직임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간신히 공을 들여 영사문의 진로까진 파악할 수 있었으나, 묵위현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현재 묵위현과 영사문도들이 움직이는 방향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방면으로 나아가서는 구중련의 요충지를 공격할 수도 없을뿐더러, 특출한 구중련 고수를 제거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즉, 묵위현은 현재 전장에서 아무런 이득도 취할 수 없는 무의미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었다.

묵위현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으니, 오정주는 답답한 마음에 속에서 천불이 났다.

‘묵위현이 필시 실성한 것이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식으로 움직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정주는 스스로 뺨을 치며 흥분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정신 차리자. 묵위현 정도 되는 고수가 무의미하게 움직일 리가 없지.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오정주는 다시 한번 눈에 불을 켜고 묵위현의 진로를 기록한 지도를 쏘아보았다.

한참 묵위현의 생각을 파헤치기 위해 몰두하던 중, 임무 수행을 위해 파견되었던 철혈부원이 다가와 오정주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적포신군이 또다시 진로를 바꿨습니다. 이번에는 특히 그 움직임이 신속하니, 영사문의 뒤를 쫓으려면 인원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묵위현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멀리서 영사문을 감시 중인 부원들까지 모두 추격에 투입시켜라.”

“알겠습니다.”

“영사문이 노리는 바를 한시라도 빨리 알아내야 한다. 모두 서둘러라.”

* * *

오정주와 철혈부원들의 다급한 움직임과 달리, 묵위현과 영사문도들은 여유롭게 나아갔다.

사실 묵위현이 작정하고 나선다면 철혈부의 추격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도 가능했다.

허나 묵위현은 진무량의 계획에 따라 적의 시선을 끄는 역할을 수행 중이었기에, 일부러 상대가 쫓아올 수 있도록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묵위현의 곁에서 철혈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중책을 맡은 이는 바로 멸천대의 삼 조장, 위지운이었다.

인근 정찰을 마친 위지운은 파악한 정보를 묵위현과 공유했다.

“추격대가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각(30분) 정도 후에 다시 움직인다면 적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네 말이라면 틀림없겠지. 수고했네.”

묵위현은 짧은 시간 호흡을 맞춘 위지운의 능력을 실로 높이 평가했다.

위지운이 파악한 정보는 오차가 조금도 없었다. 또한 제시한 의견 역시 모두 적합한 근거를 토대로 하였기에 일리 있는 판단이었다.

또한 이동 중에 예상치 못한 구중련 무인들과 맞닥뜨렸을 때도 위지운은 돋보였다.

사나운 기세로 달려드는 적들을 순식간에 베어 넘기는 모습은 저절로 시선이 향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활약이었다.

위지운은 실로 영사문으로 데려오고 싶을 정도의 인재였다. 허나 진무량과 친분으로 인해 생각한 바를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묵위현은 위지운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멸천대주는 자네 같은 수하를 두었으니 참으로 든든하겠군.”

위지운은 평소 장난기 넘치는 모습을 완전히 감추며 대답했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항상 진지한 모습만 보이다보니, 오히려 대주께선 너무 올곧아 쉽게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하곤 하십니다.”

평소 절친한 주백기가 이 소리를 들었다면 당장에라도 까무러칠 발언이었으나, 위지운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끝마쳤다.

묵위현은 유쾌한 듯 눈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거 참 부러운 걱정이로군.”

슬슬 이동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 위지운은 근처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들었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가볍게 땅 위에 올려둔 채, 잡고 있는 손을 뗐다. 이윽고 나뭇가지는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뭇가지 끝이 향한 방면을 바라보며 위지운이 말했다.

“이번에는 이쪽 방면으로 움직이면 될 듯합니다. 슬슬 출발하시지요.”

여태껏 묵위현을 포함한 영사문의 진로는 이렇듯 단순히 떨어뜨린 나뭇가지가 향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즉, 아무런 의미도 없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허니 당연히 구중련의 추격대는 영사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도 없었고, 앞으로의 진로도 예측하지 못했다.

단순히 나뭇가지가 향하는 대로 나아가는 진로에 철혈부의 추격대는 의미를 찾아내려 했으니, 끊임없이 인원들을 투입시킬 수밖에 없었다.

철혈부는 그야말로 헛고생으로 전력을 낭비하고 있던 것이다.

이렇듯 묵위현은 구중련의 이목을 집중시켜 힘을 분산시키는 작전을 완벽히 수행했다.

위지운과 묵위현을 포함한 영사문도들이 출발 준비를 끝마쳤을 때, 갑자기 유서하의 연주소리가 들려왔다.

디링-! 디리리링-! 디리리리링-!

위지운은 유서하의 음률이 바뀌었음을 곧바로 눈치챘다.

지금까지 유서하가 연주를 통해 보내왔던 신호는 구중련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시간을 끌라는 내용이었다.

허나 지금 연주한 곡조는 분명히 정면승부를 뜻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뒤이어 유서하는 진무량의 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연주를 통해 전해주었다.

묵위현은 떠날 준비를 마치고도 우두커니 서있는 위지운을 의아하게 여겼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가?”

“그 반대로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 합니다. 이제부터는 굳이 도망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당장 적을 쳐부수러 가시지요.”

진무량은 몽원양에게 다가가기 위해 여도강과 묵위현, 유월천을 통해 구중련의 주력들을 유인했다. 계획했던 작전이 성공하였으니 이제 적을 끌어들이는 역할은 끝난 셈이다.

이제 다음 단계는 세 명의 절세고수들이 각각 흩어진 구중련의 주력들을 따로 각개 격파하는 것이었다.

위지운의 대답을 들은 묵위현은 가볍게 어깨를 돌려 뭉친 근육을 풀었다.

여태까지 구중련과 맞서면서 제대로 된 일전을 펼치지 못했었다. 주로 적의 형세를 파악하거나 유인하는데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묵위현 역시 구중련을 쳐부수고자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여태껏 승리를 위해 그 마음을 억눌러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눌러 담았던 분노를 여지없이 터뜨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주 반가운 소식이군. 마음껏 날뛸 수 있겠어.”

묵위현은 즉시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며 영사문도들을 고무시켰다.

“더 이상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다. 명령은 단 하나. 눈앞의 구중련 놈들을 모두 쓸어버리는 것이다.”

뒤이어 힘 있는 묵위현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천지를 진동케 했다.

“놈들에게 영사문과 대적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똑똑히 보여주어라!”

척! 척!

멸천대원들은 각기 깃발을 힘껏 들어 올려 유서하에게 신호대로 행동하겠다는 뜻을 알렸다.

이윽고 묵위현을 선두로 위지운과 멸천대, 영사문도들까지 모두 하나가 되어 나아갔다.

* * *

몽원양은 철옹성 같은 구중련의 방비를 뚫고 본진에 도달한 진무량을 아니꼽게 노려보았다.

치열한 경합 속에서도 결국 승패는 존재하기 마련. 그리고 승자와 패자는 결과로 인해 판단되는 법이다.

예상치 못한 기책으로 진무량이 본진에 다다른 것까지만 보면 언뜻 열세에 빠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조금만 다른 관점으로 현 상황을 본다면 진무량은 구중련의 포진 중에서도 심장부나 다름없는 곳에 제 발로 찾아온 셈이었다. 당연히 방비는 여느 요충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했다.

즉, 구중련에서도 최상으로 분류되는 고수들이 빽빽하게 모여 있다는 뜻이다.

그에 비해 진무량은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이느라, 현재 멸천대는커녕 이렇다 할 고수도 없을 것이었다.

본진을 습격한 자들은 자연스레 방어에 나선 구중련 고수들의 칼날에 쓰러져 갈 터.

그렇다면 진무량은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무원의 신세나 다름없었다.

도리어 여기서 진무량을 잡는다면 앞으로 전황이 크게 유리해지는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버러지는 결국 거추장스런 짐일 뿐. 마지막은 결국 가진 무공만이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이다.’

몽원양은 자신의 곁을 지키는 오십 명에 달하는 무인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구중련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백사동(百蛇洞) 소속으로서 모두 절정을 훌쩍 뛰어넘는 고수들이었다.

일제히 달려든다면 진무량과도 능히 일전을 치를 만한 겸비한 실력자들.

게다가 본진에 문제가 생겼으니 앞으로 더욱 많은 고수들이 모여들 터.

몽원양은 특유의 훈계하는 말투로 진무량을 쏘아붙였다.

“여전히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어리석은 놈이구나! 네놈 혼자서 나를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방금까진 겁먹은 쥐새끼마냥 움츠러들어 있더니 갑자기 자신만만해졌군. 옆에 있는 똘마니들이 제법 의지가 되나 봐.”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다니……. 당장 본때를 보여주마!”

스릉!

몽원양은 단숨에 허리춤에서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폭이 좁고 검신이 길게 뻗은 독특한 모양의 검은 몽원양의 애검 지홍검이었다.

몽원양이 지홍검을 빼들자, 곁을 지키던 백사동의 고수들도 각자 무기를 치켜들어 진무량에게 겨눴다.

다수의 상대에게서부터 쏘아지는 진득한 살기에도 굴하지 않고 진무량은 침착하게 마공을 끌어 올렸다.

스스스스스.

점차 칠흑처럼 시커먼 묵색 기운이 진무량을 중심으로 모여들면서 불길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백사동의 고수들은 서서히 사방에서 진무량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진무량 또한 가볍게 횡으로 움직이며 상대를 견제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 때, 진무량의 귓가에 멈춰 있던 유서하의 연주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번에 유서하가 펼치는 연주는 널리 퍼져나가 각지에 흩어진 정, 사, 마 무인들에게 보내는 신호가 아니었다.

소리를 작게 제한하여 오직 진무량의 단전 속에 깃든 정의 기운을 움직이게 하는 곡조였다.

진무량이 내뿜는 기운을 느낀 유서하는, 오로지 그를 돕기 위한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유서하의 내력은 잔잔히 흐르는 부드러운 음률을 타고서 진무량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에 따라 진무량의 단전 속에 정의 기운이 꿈틀거렸다.

유서하의 의지에 따라 정의 기운은 진무량의 기경팔맥을 따라 극도로 섬세하게 움직였으며, 그와 반대로 마공은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넘쳐흘렀다.

이윽고 상반된 두 개의 기운은 자연스레 융화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진무량으로부터 찬란한 황금빛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정과 마의 기운이 완벽히 어우러져 번쩍이는 황금빛은 몽원양조차 위압감을 느끼게 정도였다.

몽원양이 누구인가. 줄곧 사대신마로 군림하며 천하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정보들을 총괄하는 직책을 맡아왔던 그다.

당연히 온갖 기이한 경험들을 접하고, 구중련의 일원으로서 누구보다 긴 시간 강호에서 암약해온 장본인이기도하다.

그토록 뛰어난 식견을 지닌 몽원양임에도 불구하고, 진무량에게서 전해지는 기운은 너무도 낯설었다.

삼라만상을 아우르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초월한 존재를 대면한 기분이랄까.

오죽하면 눈앞에 증오하는 대상인 진무량이 버젓이 서 있음에도 감히 다가설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였다.

완전히 압도당한 몽원양과 달리 진무량은 흥분된 심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진무량 또한 완벽히 융합된 정과 마의 기운을 운용한 상태로 적과 겨루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로 인한 흥분으로 짜릿한 전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모두 한꺼번에 덤벼라.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주지.”

몽원양과 오십 명의 가까운 백사동 고수들은 합견진을 펼쳐 진무량에게 맞섰다.

그사이 염옥창은 몽원양이 휘두르는 지홍검을 포함하여, 여타 백사동 고수들의 병장기들과 셀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차례 부딪쳤다.

그럼에도 진무량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고, 언제나 쓰러지는 쪽은 백사동의 고수들이었다.

사대신마라 불리는 몽원양과 구중련에서도 손꼽히는 오십 명의 고수들이 합격을 가하고 있음에도, 진무량 쪽이 확연한 우세를 보이는 것이다.

몽원양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몸소 겪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몽원양은 동시대 마교에서 함께 지낸 진무량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마교에서 쫓겨나 도망치는 진무량과 직접 마주하지 않았던가.

그때로부터 그리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 진무량은 과거의 시절이 생각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고강해진 모습이었다.

사실 염옥창과 한차례 검을 부딪쳤을 때 곧바로 무인으로서 감각이 귓가에 속삭였다.

자신은 진무량에게 감히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검을 휘두르기 전부터 이미 깨닫는다. 내리치는 자신의 검이 상대의 목숨을 취하기는커녕, 작은 위협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도대체 언제 이토록 성장했단 말인가.’

전 마교 교주 천군위는 자주 진무량의 뛰어난 잠재력에 대해 언급하곤 했다.

물론 몽원양은 그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무공이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쉽사리 발전할 수 없다는 건 절정이 넘는 고수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 당시 이미 진무량은 마교를 대표하는 사대신마로 불릴 정도 뛰어난 실력자였고, 무공의 성취를 이룬다 해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허나 진무량은 마치 천군위의 예상이 맞았다고 증명이라도 하듯, 단기간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에 성취를 이뤄낸 것이다.

몽원양은 진무량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가 연상한 이는 바로 구중련주 담무흔이었다.

‘설마 진무량이 련주님과 비슷한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인가.’

몽원양은 스스로 내린 결론을 인식하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몽원양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그사이에도 진무량은 마른 낙엽을 휩쓸 듯이 백사동의 고수들을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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