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기운
2018.06.24.
유서하는 곁에서 깊은 숙면에 빠진 진무량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쑥스러워 잠을 청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깊은 잠에 빠진 진무량이 조금 얄밉기도 했지만, 지금 느끼는 기쁨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부분이었다.
긴 시간 진심으로 그리워해 온 상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행복했으니까.
또한 원 없이 진무량을 바라볼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속눈썹이 기네.’
곁에 누워 있는 진무량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평소에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이 모두 보였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점을 목에서 발견할 때면, 남들이 모르는 진무량을 혼자만 알게 된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유쾌해진달까.
사실 유서하는 몰랐지만, 진무량이 이토록 무방비한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진무량은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끔찍이도 싫어했고, 살벌한 전장 속에서 일생을 보내다 보니 경계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서하는 한시도 진무량에게서 시선을 떼지 떠나지 않았다.
질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그때 진무량의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유서하의 시야를 방해했다.
작게 인상을 찌푸린 유서하는 혹시라도 진무량이 잠에서 깰까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넘겨주었다.
그 순간, 잠결에 진무량이 유서하를 와락 껴안았다.
진무량의 넓은 품에 안긴 유서하의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진무량의 잠을 깨울까 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유서하는 살짝 진무량의 품에서 빠져나와 그를 살폈으나, 잠에서 깬 기색은 없었다.
그러다가 유서하의 시선이 진무량의 입술에서 멈췄다.
조금 전과 달리, 멈춘 시선은 어디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거라곤 오직 진무량의 입술뿐이었다.
유서하는 홀린 듯이 그 입술을 향해 다가가다가 퍼뜩 이성을 찾았다.
‘더 있어서는 안 되겠어. 여긴 너무 위험해.’
뒤이어 유서하는 조심스레 몸을 빼서 침상 밖으로 빠져나와서는 서둘러 진무량의 방 밖으로 나갔다.
* * *
이른 시각 연시우는 진무량의 방으로 향했다.
전날 진무량이 일찍 잠이 들어 제대로 전하지 못한 인사를 하기 위함이었다.
연시우가 진무량의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도착했을 때,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유서하를 발견했다.
연시우는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한 유서하를 의문스럽게 쳐다보다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딜 그리 급하게 가시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요?”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연시우는 묘하게 평소와 다른 유서하에게 의문을 품었지만, 구태여 그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연시우는 복도 너머에 진무량이 있는 방을 힐끗 쳐다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대주를 만나고 오는 길이오?”
“네. 근데 지금은 쉬고 있으니, 조금 뒤에 찾아오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알겠소. 헌데 소저는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대주를 찾아온 것이오?”
유서하는 허를 찌르는 연시우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어제와 의복도 똑같은…….”
연시우의 예리한 추측은 계속 이어졌다. 위기를 느낀 유서하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지금 위지운 소협을 찾고 있는데, 혹시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아마 지금쯤 수련에 매진하고 있을 터인데, 무슨 일이오?”
“복수를 해야 하거든요.”
유서하가 단지 연시우의 추측을 막기 위해서 꺼낸 말은 아니었다.
위지운의 거짓말 때문에 우는 모습을 진무량에게 보였다. 그것도, 그토록 기다려 왔던 진무량과 처음 재회하는 순간에.
전부터 위지운의 장난에 여러 차례 휘말려 왔으니, 이번에 그 대가를 치르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게…… 위지운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는 잘…….”
연시우는 대답을 망설였다.
유서하가 복수를 한다고 하니, 괜히 중간에 나섰다가 이로울 게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서하는 친근한 웃음을 보이며 말을 붙였다.
“에이, 복수라고 해 봤자 장난에 대한 건데요. 약간 골탕 먹이는 정도예요.”
“…….”
“함께 목숨 걸고 싸운 사이인데, 그 정도는 알려 줄 수 있겠죠?”
유서하의 집요한 물음에 연시우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여길 나가서 바로 보이는 큰길을 따라가다 보면 연무장이 나올 거요. 십중팔구 위지운은 거기 있을 터이니 가 보시오.”
유서하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고마워요.”
유서하를 바라보던 연시우는 순간, 팔뚝에서 소름이 돋는 걸 느껴야 했다.
정확히 어느 부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유서하의 웃는 모습이 진무량과 꼭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진무량과 유서하는 서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닮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제 삼자인 연시우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체감한 것이다.
연시우는 좌우로 머리를 털며 잡생각을 모두 지웠다.
“대주를 한 번 뵙기가 참 힘들군.”
* * *
연시우의 설명대로 큰길을 따라가다 보니, 유서하는 길을 헤매지 않고 연무장에 도착했다.
위지운은 구태여 찾으려 할 필요도 없었다. 다른 멸천대원들은 보이지 않았고, 위지운만 드넓은 연무장 한가운데 있었으니까.
유서하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위지운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른 시간에 홀로 수련에 열중하고 있으시다니, 조금 의외네요.”
위지운은 앉은 자세 그대로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난 언제나 성실하니까. 그보다 너 여기 있어도 되겠어? 대주께서 지금 위독하시잖아.”
유서하는 애써 평온한 어조로 대답했다.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괜찮아요.”
위지운은 유서하의 반응이 재미있어서인지, 더욱 너스레를 떨었다.
“다행이다. 널 보니까, 힘이 났나 보네.”
유서하는 대답 대신 바닥에 앉아서 금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위지운은 말로서 유서하의 행동을 제지하려 했다.
“연무장이라면 이 근처에 널렸으니까, 시끄럽게 하려면 다른 데로 가.”
“여기 지리는 익숙하지가 않아서요. 잠깐 실례 좀 할게요.”
위지운은 성가심이 잔뜩 묻어나는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일부러 사람이 없는 연무장을 찾은 이유는 집중이 필요해서야. 근데 옆에서 금을 연주하겠다고?”
“진정한 집중은 어떤 방해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하던데……. 차라리 이 기회를 살려, 실전에서 제 연주 소리가 방해되는 요소라 생각하고 수련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위지운은 유서하의 타당한 반박에 대꾸하지 못했다.
결국 체념한 위지운은 괜히 혀를 한번 차고는 수련을 위해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서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내 그녀의 섬섬옥수가 금을 켜기 시작했다.
띠링-! 띠리링-! 띠링-! 띠리링-!
유서하가 뽑아내는 곡조는 전체적으로 음률이 일정했다.
연주 방식 또한 어려운 기교를 전혀 섞지 않아 단조로우니, 금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 듣는다 해도 단번에 기억하고 흥얼거릴 법한 음률이었다.
유서하는 똑같은 곡조를 한참 동안 반복해서 연주한 뒤에야 금에서 손을 뗐다. 뒤이어 조심스레 위지운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마 고생 좀 할 겁니다.’
유서하의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그려졌다.
방금 연주한 곡조는 회성음(回聲音).
반복된 곡조를 긴 시간 동안 들려줘야 하기에, 실전에서는 사용하기 힘든 음공이었다.
회성음의 효과는 균형감각 상실.
중독성이 짙은 음률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머릿속에 각인된다. 바로 여기서 회성음의 효력이 발휘된다. 저절로 회성음의 음률이 떠오를 때마다 균형감각이 상실되는 것이다.
목표를 완수한 유서하는 서둘러 연무장을 떠났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위지운은 한껏 집중해 있던 정신을 완화시켰다.
위지운은 전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 유서하를 찾았으나, 이미 그녀는 연무장을 떠난 뒤였다.
“뭐야,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수련을 끝낸 거야? 열정이 부족하군.”
위지운은 오랫동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기에, 뭉친 근육을 풀기 위해 잠시 몸을 일으켰다.
그때 위지운의 머릿속에 각인된 유서하의 회성음이 떠올랐다.
띠링-! 띠리링-! 띠링-! 띠리링-!
결국 몸을 일으키던 위지운은 균형을 잃고 다시 바닥으로 엎어졌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위지운은 도저히 스스로 넘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 자기 발에 걸려 넘어졌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극도의 당황을 감추지 못한 위지운의 입에서 저절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고, 마른하늘에 치는 날벼락에 맞는 놈도 있는 법이지. 정말 별일이 다 있군.”
침착함을 되찾은 위지운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이번에는 문제없이 설 수 있었다.
“역시 아무렇지도 않잖아.”
안심한 위지운은 걸음을 내딛을 때 다시 회심음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 즉시 위지운은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으아악!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소리를 내질러도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된 회심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위지운은 세 시진 가까이 연무장에서 일어났다가 엎어지기를 반복해야 했다.
* * *
번번이 독대를 실패한 연시우는 정오쯤 다시 진무량의 처소를 방문했고, 그제야 진무량과 대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
덤덤하게 툭 던지는 듯한 진무량의 어조에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격려를 비롯해, 훌륭히 명령을 마치고 돌아온 수하의 공을 치하하는 뜻이 모두 무심한 어조에 담겨 있는 것이다.
물론 오랫동안 진무량을 보필해 온 연시우가 그 숨겨진 뜻을 모를 리 없었다.
“감사합니다. 다음 계획은 무엇입니까? 역시 여도강과 함께 구중련을 치려 하십니까?”
“그래. 여도강 측에서 연락이 오는 즉시 움직일 것이다.”
여도강은 현재 긴박하게 돌아가는 천하의 실정을 충분히 꿰뚫어 보고 있다. 수완 또한 뛰어나니 곧 마교 무인들과도 의기투합할 터.
멸천대가 단독으로 움직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마교 무인들과 함께 움직이는 편이 구중련에게 더 압박을 느끼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즉, 지금은 처절한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아주 짧은 휴식기라 할 수 있었다.
이는 멸천대원들 모두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늦어도 사흘 내로 여도강에게서 연락이 올 것이다. 너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기간 전에 끝내 둬라.”
말을 마친 진무량은 외출을 위해 얇은 겉옷을 걸쳐 입었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연시우가 물었다.
“밖에서 처리할 용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이제부터는 나도 쉴 거야. 그러니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일이 아니면 날 찾지 마.”
* * *
처소 밖으로 나간 진무량은 가장 먼저 유서하를 찾아갔다.
진무량에게 유서하의 기척을 찾아내는 것 정도는 아주 쉬운 일이었고, 그 기척을 따라가다 보니 어렵지 않게 연무장 근처에 있던 유서하와 마주할 수 있었다.
진무량이 유서하를 향해 물었다.
“같이 자다가 사라져서 어디로 갔나 했더니,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야?”
유서하는 작은 목소리로 진무량을 주의시켰다.
“목소리 좀 낮춰요.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누가 들으면 어때서. 뭐 엉큼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빌어먹을 독 기운 때문에 잠만 잤는데 뭐가 문제야?”
유서하는 반박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속으로 삼켰다.
“그보다 여기는 무슨 일이예요? 연무장에 가려던 참인가요?”
“아니. 널 보러 왔어. 오늘 나랑 같이 놀자.”
뜬금없는 진무량의 제안에 유서하는 의문을 나타냈다. 그런 유서하에게 진무량이 단호히 말했다.
“오늘 하루만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그냥 우리 둘만 생각해.”
유서하는 잠시 망설였으나, 곧 진무량의 의견에 따르기로 정했다.
진무량의 행동에는 분명 타당한 이유가 있을 터. 또한 언제 이런 순간이 올지도 기약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어떤 이유보다, 진무량과 함께 있고 싶었다.
“좋아요. 그럼 우리 뭐 할까요?”
사실 유서하의 질문은 진무량이 홀로 있을 때 수천 번도 넘게 고민했던 것이었다.
여인과 단둘이서 긴 시간을 보냈던 적이 없는 진무량에게 있어,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게 한참을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진무량은 나름대로의 명쾌한 해답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에 따른 해답은 그야말로 단순명료했다.
“네가 하고 싶은 거.”
“네?”
“잘 생각해 보니 네가 원하는 걸 하는 게 내가 바라는 거였어. 그러니까 오늘 하루만은 네가 하고 싶은 거 다 해줄게.”
“좋아요. 그럼, 우선…….”
유서하는 진무량과 함께 꽃이 활짝 핀 거리로 향했다.
그 거리는 진무량의 본가에 오면서 지났던 길이었다. 잠시 스쳐갔음에도 색색이 아름답게 핀 꽃들은 유서하의 머리에 남았다. 하여 유서하는 진무량의 제안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그 꽃길이 떠올랐다.
화사하게 핀 꽃들을 진무량과 함께 볼 수 있었기에 유서하는 진심으로 기뻤다. 반면에 진무량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말 하고 싶은 게 그냥 걷는 거였어? 더 거창한 것들도 많잖아.”
“하고 싶은 걸 물었을 때 제일 먼저 여기가 떠올랐어요. 예쁜 꽃도 보고 이렇게 함께 걸을 수도 있는데, 더 바랄 게 없잖아요.”
향긋한 향기와 함께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그야말로 황홀경이었다.
꽃이 가득한 아름다운 절경은 구중련과 피 튀기는 접전을 치러 온 유서하의 긴장된 마음을 잠시나마 누그러뜨렸다.
‘꽃을 보는 게 뭐가 좋은 거지?’
진무량의 관심은 오로지 흩날리는 꽃을 바라보는 유서하였다.
진무량은 꽃길에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허나 활짝 웃는 유서하를 바라보다 보니, 저절로 그녀가 보고 있는 경치에도 눈이 갔다.
‘뭐, 그리 나쁘지만은 않군.’
이 거리는 본가로 통하는 길이기에 수없이 지나쳐 왔다. 그럼에도 여태껏 단 한 번도 눈길조차 준 적 없었다.
허나 늘 봐 왔던 의미 없는 풍경과 달리, 지금은 조금 괜찮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제 이 거리의 꽃이 가득하다는 사실은 잊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 순간, 유서하의 뒤를 따라 걷던 진무량의 신형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윽고 점차 몸에 힘이 빠져 나갔고, 결국 진무량은 근처에 있던 나무에 기대 몸을 지탱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유서하는 급히 진무량을 향해 다가갔다.
“무슨 일이예요? 갑자기 왜…….”
진무량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가끔 제어하지 못한 독 기운이 날뛸 때가 있어.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감천기의 독 기운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해독약에 대해서는 조사 중이나, 아직 명확히 밝혀진 건 없었다.
하여 체내에 쌓인 독 기운을 없애는 방법은 정과 마의 기운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정(正)의 기운이었다.
정의 기운을 운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기에, 두 개의 기운을 완벽하게 합칠 수 없었다. 하여 단번에 감천기의 독 기운을 몰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근래 독 기운을 억제하기 위해 자주 상반된 두 개의 기운을 합쳐서인지, 정의 기운은 점점 더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진무량은 억지로 정의 기운을 운용해 잠시나마 상반된 두 개의 기운을 합쳤다.
그러자 진무량의 몸에서 황금빛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서하는 단번에 진무량이 정과 마의 기운을 합치고 있음을 알아챘다.
‘설마 이 기운은…….’
진무량을 감싸던 황금빛 기운은 금세 사라졌다.
애초에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정의 기운을 억지로 끌어내는 방법은 해독을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이렇듯 짧게 상반된 두 개의 내공을 운용하는 건 체내의 독 기운을 잠시 억제시키는 정도였으나, 지금 진무량에게는 그 정도 효과면 충분했다.
“이제 괜찮아.”
안심시키려 하는 진무량의 모습에 유서하는 화를 감추지 못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어서 독 기운부터 몰아내야겠어요.”
“이렇게 귀한 시간을 홀로 연무장에서 보낼 수는 없잖아. 독 기운을 억제하는 건 틈틈이 해도 괜찮아.”
유서하는 더 이상 진무량을 나무랄 수가 없었다.
끔찍한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자신과 함께 있고 싶다는 사내에게 어찌 모질게 대할 수 있을까.
그보다 유서하는 방금 진무량이 내뿜은 황금빛 기운이 계속 신경 쓰였다.
“방금 정과 마의 기운을 합친 거죠?”
“어. 상반된 두 개의 기운을 합치면 체내의 사이한 기운이 사라져. 그 과정에서 감천기의 독 기운도 없어지게 되는 거고.”
“단번에 독 기운을 몰아내지 못하는 건, 온전히 두 개의 기운을 합칠 수 없기 때문인가요?”
“음. 정의 기운이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
유서하는 차근차근 진무량이 한 말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곧, 상반된 두 개의 기운을 온전히 합치는 방법을 떠올렸다.
“정의 기운이라면 제가 움직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진무량은 의문을 나타냈다.
“내 몸에 흐르는 기를 어떻게 움직이겠다는 거야?”
“잊었어요? 제가 연주를 통해 당신의 금제를 풀 수 있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