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독공 (2)
2018.06.17.
스스스스스.
진무량이 마공을 운용하기 시작하자, 그를 중심으로 서서히 불길한 묵색 광풍이 휘몰아쳤다.
진무량은 폭발적으로 들끓는 마공만을 단독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다.
상반된 두 개의 기운을 완벽하게 다스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적무혁과 일전을 겨룬 이후부터 끝없이 두 개의 기운을 합칠 시도를 해 왔으나, 그 어떤 방법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문제는 정의 기운이었다. 낯선 그 기운은 익숙한 마공과 달리 극도로 세밀한 조절이 필요했다.
정파의 내공심법을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해 봤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정파의 내공을 뜻대로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은,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정순한 기운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었다.
여태까지는 서로 반발하는 두 개의 기운을 억지로 합쳐 왔으나, 그리해서는 정과 마의 기운을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잠시일 뿐이었다.
한계를 넘어서도 억지로 정과 마의 내공을 동시에 운용하려 한다면 미친 듯이 날뛰는 두 개의 기운들이 서로를 향해 부딪치며 극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리되면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하고 기혈들이 모조리 터져 버릴 터.
감천기의 지하 석실을 무너뜨리기 위해 내력을 소진한 지금, 더 이상 두 개의 기운을 합치는 건 무리였다.
그렇기에 진무량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으면서도 먼저 공격하지 못했고, 감천기는 그런 상대를 수상하게 여겼다.
허나 그도 잠시, 감천기는 곧 생각을 바꿨다.
‘선공을 펼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쉭! 쉭!
감천기는 순식간에 양손에 쥐고 있던 천일혈을 진무량을 향해 던졌다.
내력이 잔뜩 실린 감천기의 천일혈은 감히 육안으로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으나, 진무량의 감각을 벗어나진 못했다.
진무량은 낮은 포물선으로 날아드는 천일혈의 궤도를 정확히 읽어낸 것이다.
천일혈을 피해 진무량이 뒤로 물러나려던 찰나에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찾아왔다.
진무량은 즉각 물러서려던 동작을 멈추고, 날아오는 천일혈을 향해 염옥창을 휘둘렀다. 허나 갑작스레 동작을 바꾼 탓에 감천기의 천일혈을 완벽하게 쳐내지 못했다.
결국 천일혈은 진무량의 어깨의 작은 상흔을 남겼고, 그 모습을 확인한 감천기는 확신의 찬 비웃음을 흘렸다.
“역시 내 독이 통한 게로구나. 하긴 그리 많은 독을 들이마셨는데 멀쩡할 수 없지.”
진무량의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확실히 체내 곳곳에서 감천기 특유의 역겨운 독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원인은 역시 감천기의 실험실에서 들이마셨던 다량의 독이 확실했다.
정과 마의 기운을 합치면서 생겨난 찬란한 황금빛 기운은 체내의 가득했던 사이한 독 기운까지 중화시켜 주었다.
허나 두 기운을 완벽하게 합치지는 못했던 탓에, 감천기의 독을 완전히 몰아낼 수 없었다.
그 결과 진무량의 몸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진무량이 독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확신한 감천기는 더욱 기세가 올랐다.
남의 약점을 파악한 순간 더욱 더 괴롭히고자 하는 감천기 특유의 악질적인 천성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감천기는 재빨리 품속에 손을 넣어 천일혈을 열 손가락에 모두 끼웠다. 그러고는 그대로 진무량을 향해 양손을 교차시켰다.
‘투사십로(投射十路)!’
진무량을 향해 쏟아지던 열 개의 철일혈은 각각 공중에서 궤도가 바뀌면서 다방면으로 진무량의 급소로 날아들었다.
진무량은 급히 몸을 회전시켰다. 그 움직임에 따라 염옥창은 회전에 묘가 실린 등마회륜참을 펼쳐냈다.
팅! 팅!
회전을 머금은 염옥창은 날아드는 철일혈들을 간신히 쳐냈으나, 쏘아진 천일혈의 힘을 이기지 못해 궤도를 어긋나게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진무량이 독에 중독되어 완벽한 등마회륜참을 펼쳐내지 못한 탓이었다. 하여 또 다시 극독이 묻은 천일혈들이 진무량의 몸에 상흔을 남겼다.
고통으로 인해 진무량이 표정이 굳어가자, 감천기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꽤나 고통스러울 거야. 지금까지 내가 날린 천일혈에는 모두 부식혈독(腐蝕血毒)이 발라져 있지. 하여 작은 상처에도 출혈이 멈추지 않을 거야.”
다량의 출혈을 하게 되면 전신이 차갑게 식는 듯한 기분과 함께 몸이 마비되고, 정신마저 점점 몽롱해진다.
그렇게 끝없이 나약해지다가 끝끝내 독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
이 과정이야말로 여태까지 감천기를 상대했던 수많은 무인들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순서였다.
허나 지금까지 감천기에게 무릎 꿇었던 상대들과 달리 진무량의 투지는 조금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염옥창을 고쳐 쥔 진무량은 또렷한 안광을 빛내며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고맙다. 피를 좀 쏟은 덕에 정신이 멀쩡해졌어.”
“헛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완전히 미친 게로구나.”
“글쎄…… 과연 어떨까. 어쨌든 너 따위 놈에게 고전하여 헛된 희망을 준 건 사과하도록 하지.”
여태까지 일방적으로 감천기에게 당하면서도 머릿속에선 계속 정과 마의 기운을 합칠 생각밖에 없었다.
그 안일한 생각이야말로 가장 큰 패착의 원인이었다.
정과 마의 기운이 합쳐졌을 때 생기는 강대한 힘에 현혹되어 본래의 자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정과 마의 기운을 합치는 건 지극히 일부일 뿐. 진정한 강함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숱한 수라장을 겪어오면서 익힌 경험과, 끝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면서 익혔던 기본적인 초식. 수도 없이 사지를 헤쳐 나갔던 삶 그 자체가 바로 강함을 이루는 근본이었다.
사용할 수 없는 힘에 목매달기보다는 온전한 자신의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정과 마의 기운 또한 억지로 합치는 것이 아닌, 본디의 모습과 합쳐졌을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발현할 터.
삽시간에 강대해진 진무량의 위세를 느낀 감천기는 곧바로 위험을 인지했다.
감천기는 우선 진무량의 움직임을 제어할 요량으로 품속에서 급히 천일혈을 빼들었다.
‘투사십로(投射十路)!’
다시 한번 극독이 묻은 열 개의 천일혈이 진무량을 향해 쏘아졌다.
허나 전과 달리 진무량은 가만히 서서 방어하지 않고, 오히려 날아오는 천일혈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오직 방어에만 전념했던 등마회륜참으로도 쳐내지 못했을 정도로 투사십로의 위력은 막강했다.
무모하게 천일혈을 향해 뛰어드는 진무량의 모습이 감천기에게는 마치 불을 향해 날아드는 어리석은 나방처럼 보였다.
머리로 생각해서는 천일혈을 막아낼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허나 진무량은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특유의 예리한 감각과 경험을 통해 얻은 본능에 따라 몸이 반응했을 뿐이다.
팅! 팅!
진무량은 단 한 번 일직선으로 창을 내리찍어, 자신에게 날아드는 세 개의 천일혈을 튕겨냈다. 나머지 천일혈은 전신을 찢고 지나갔으나, 모두 급소에서 벗어나 치명상을 피했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피해로 위협이 되는 공격을 쳐내고 감천기와 거리를 좁힌 것이다.
진무량에게 접근을 허락했으나 감천기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감천기 역시 사대신마로 불리며 마교에서 제일가는 고수로 불려온 몸. 예상치 못한 상대의 움직임에 쉬이 당할 정도로 호락호락한 사내가 아니었다.
감천기는 능숙하게 양손을 품속에 넣어 특별한 천일혈을 뽑아 들었다.
그 천일혈은 위급할 때를 대비하여 칼날에 최고의 마비 효과를 지닌 마정산(痲楨散)을 묻혀 둔 것이었다.
뒤이어 곧바로 이어지는 감천기의 급습. 독에 중독된 진무량은 몸이 둔해져 미처 그 일격에 반응하지 못했다.
푸슉!
마정산이 묻은 천일혈이 진무량의 상체를 깊이 베고 지나갔다.
감천기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갑자기 진무량의 몸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기운 때문이었다.
이는 진무량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감천기를 향해 모든 정신을 집중하다 보니, 정의 기운이 스스로 움직인 것이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 정과 마의 기운이 합쳐졌을 뿐이지만, 체내의 독 기운을 몰아내기에는 충분했다.
뒤이어 감천기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는 염옥창!
위급함을 느낀 감천기는 오직 방어를 목적으로 한 호신강기를 펼쳤다.
호신강기는 염옥창과 정면으로 부딪쳤고, 감천기는 염옥창의 담긴 내력을 버텨내지 못해 땅에 발이 끌리면서 한참을 뒤로 밀려났다.
비록 억지로 호신강기를 펼치느라 기혈이 완전히 뒤틀렸으나, 진무량의 일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안심한 감천기가 다시 진무량을 바라봤을 때, 경악을 금치 못할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진무량을 맴돌던 불길한 묵색 기운이 모조리 염옥창으로 모이더니, 거대한 용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천기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방금 억지로 호신강기를 끌어올린 탓에 이미 한 줌의 내공조차 운용할 수 없었다.
“이런, 젠장.”
이내 완성된 묵색 용의 형상이 입을 쩍 벌리자, 진무량은 염옥창으로 감천기를 겨눴다.
‘용형십삼식 팔식 묵룡출두!’
묵색 용은 앞을 막아서는 것들을 철저하게 파괴하면서 나아가 단숨에 감천기를 집어 삼켜버렸다.
뒤이어 한바탕 거센 폭발이 터진 후에, 산산조각 나 버린 건물의 잔재 속에서 감천기가 쓰러져 있었다.
전신이 이빨에 갈기갈기 찢겨나간 듯한 중상을 입었음에도 끝내 감천기는 비열한 웃음소리를 냈다.
“흐흐흐……. 어찌 독 기운을 몰아냈는지 몰라도, 그건 일시적일 뿐이다. 내 독은 평생 네 몸속에 남아 영원히 너를 고통에 빠뜨릴 것이다.”
“곧 죽어도 그 더러운 입은 쉬지 않는군.”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넌 어째서 무림맹의 편을 드는 게냐?”
“무림맹의 편? 웃기는군. 뜻을 이루기 위해 내가 무림맹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거든.”
진무량은 한쪽 입 꼬리를 올리는 특유의 비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내가 구중련을 적으로 삼았을 때부터 너희의 몰살은 정해진 거지.”
대답을 끝낸 진무량은 허공섭물을 펼쳐, 여태까지 감천기가 날린 천일혈들을 모두 공중으로 띄웠다. 그리고는 검끝을 바닥으로 향하게 한 채 쓰러진 감천기 위로 이동시켰다.
졸지에 머리 위에 수십 개가 넘는 천일혈의 검끝이 겨눠지자, 감천기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놈……. 뭘 하려는 게냐!”
“내가 널 편하게 죽게 둘 줄 알았어?”
진무량은 잔혹한 눈빛으로 감천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제아무리 독에 내성이 있다고 해도, 내공을 운용하지 못하는 상태로 다량의 독을 주입하면 어떻게 될까?”
“설마……!”
“직접 제조한 독이 몸속에서 퍼지면서, 숨이 끊어지기 직전까지 고통에 몸부림치겠지.”
진무량은 감천기가 입을 놀릴 새도 없이 허공섭물로 공중에 띄워 둔 천일혈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극독이 발라진 천일혈의 검 끝은 감천기를 향해 일제히 쏟아졌다.
각기 다른 극독이 묻은 천일혈의 검 끝에 관통당한 감천기는 고통이 사무쳐 눈알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런 감천기를 바라보며 진무량이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네가 딱 걸맞은 최후야.”
결국 감천기는 독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끔찍한 통증을 느끼다가, 제대로 된 단말마도 내지르지 못한 채 천천히 숨이 끊어져 갔다.
감천기를 쓰러뜨린 뒤에 진무량은 웃옷을 찢어 임시로 출혈을 막았다. 최소한의 응급처치를 끝낸 진무량이 주변을 둘러보려 할 때, 위지운과 멸천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지운은 시체가 된 감천기의 모습을 보고도 그다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두 사람이 일절을 겨룬다면 반드시 진무량이 승리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위지운은 현재 파악한 상황을 간단히 진무량에게 보고했다.
“독룡각 내부의 적들은 대부분 처리했고, 그 외에 전황은 지금 파악 중이오.”
“그럴 필요 없다. 즉시 이곳에 없는 대원들에게 집결 명령을 내려. 여도강에게로 갈 것이다.”
여도강 일파가 독룡각에 도착하지 않은 걸로 미루어 보아, 현재 접전을 벌이는 중이라고 판단하는 편이 옳다.
그렇다면 즉시 여도강을 도와 감천기를 따르는 무리들을 완전히 뿌리 뽑을 절호의 기회였다.
위지운은 진무량의 몸에 난 상처들을 확인하고 나서 대답했다.
“뒤는 내가 책임질 터이니, 대주는 조금 쉬시오.”
진무량은 위지운의 걱정 섞인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다.
“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 적을 놓치면 훗날 담무흔과 결합해 골칫거리가 될 터. 내 직접 앞장서 후환을 없앨 것이다.”
진무량이 결심했을 때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위지운은 더 이상 진무량을 말리지 않았다.
진무량은 품속에서 꺼낸 나찰 형상의 가면을 얼굴에 쓰고는, 모여 있는 멸천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우리는 즉시 출발한다. 전력으로 달릴 것이니 뒤처지지 마라.”
* * *
여도강은 수하들과 함께 독룡각의 주력들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선두에서 용맹하게 적과 맞서던 유안은 눈앞에 적이 줄어들자,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여도강에게 말을 붙였다.
“독룡각 놈들 아무리 베어도 끝도 없이 몰려드니 이제는 진절머리가 납니다.”
“아직 농담할 여유가 있는 걸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자 그럼 이만 쉬고, 다시 날뛰어 봅시다.”
대답을 마친 여도강이 다시 적이 뭉쳐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려던 찰나, 돌연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메마른 땅이 떨려오는 감각을 느낀 여도강은 자연스레 독룡각이 있는 방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여도강은 산능선을 타고 올라오는 멸천대를 발견했다.
“먼저 독룡각에 도착해 도움을 주려 했는데, 아무래도 진무량 쪽에서 먼저 승부가 난 듯하오.”
돌아가는 전황을 파악한 유안은 감탄을 금할 도리가 없었다.
“이토록 빨리 그 감천기를 쓰러뜨리다니…….”
“이제부터는 여력을 남겨 둘 필요가 없겠군. 단숨에 몰아쳐 승부를 내야겠소.”
감천기를 따르는 독룡각원들과 여도강 일파의 결전은 한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의 호각이었다. 그 와중에 후방을 선점한 멸천대의 출현은 독룡각원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결국 양쪽에서 여도강 일파와 멸천대의 협공을 받은 독룡각원들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구중련의 세력들을 완전히 몰아낸 뒤에 여도강 일파와 멸천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두 세력은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곳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했다.
이내 자연스레 멸천대 쪽에서는 진무량이 선두로 나섰고, 반대편에선 마찬가지로 여도강이 수하들을 틈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여도강은 자연스레 갑주 위로 보이는 진무량의 상처에 눈길이 향했다.
“아무래도 꽤나 고전한 듯 보이오.”
진무량은 가볍게 어깨를 들썩였다. 여도강의 행색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전하는 행동이었다.
“뭐 어쨌든, 이제 마교는 얼추 정리된 셈인가?”
진무량의 물음에 여도강은 더없이 심각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지 않소. 마교의 변혁은 이제부터 시작이오.”
담무흔에게 돌아선 마교 고수들의 마음을 다시 돌리고, 본격적으로 구중련과 맞설 준비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여도강은 그 과정에서 무력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올바른 뜻으로 인재를 모으고, 능력에 따라 정확히 직위를 분배하여 마교를 더욱 굳건하게 변모시킬 계획이었다.
진무량은 여도강에게서부터 철철 흘러넘치는 당찬 포부와 굳은 결의가 느껴졌다.
일말의 망설임도 남아 있지 않은 여도강을 보고 있자니, 쓸데없는 걱정이나 참견하고 싶은 생각 또한 들지 않았다.
“난 이제부터 마교의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그러니까 앞으로 귀찮은 일에 날 부르지 마.”
여도강은 진무량이 어떤 의견을 내놓든 간에 수용할 생각이었다. 진무량이 마교와 엮이지 않는 길을 택했다면 그 또한 받아들일 뿐.
다만 뜻을 합쳐 같은 적과 맞서 싸운 동료에게 인사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여도강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뜻을 함께해 줘서 고맙소.”
여도강과 달리 격식을 갖추는 걸 질색하는 진무량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전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서로를 향해 전하는 인사에 담긴 마음은 비슷했으나, 표현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랐다.
그럼에도 진무량과 여도강, 두 사람이 건넨 인사 속에 담긴 뜻은 곡해되지 않고 서로에게 똑바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