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대결 (3)
2018.06.07.
차츰 날이 밝아 오는 새벽. 정신이 맑아지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여도강은 진무량이 머무는 천막을 찾아왔다.
제법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진무량은 깨어 있었고, 마치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여도강은 태연하게 진무량을 향해 말을 걸었다.
“그대를 보고 있노라니, 아무래도 내 짐작이 맞은 것 같군.”
“때맞춰 나를 찾아온 걸 보니 그런 것 같네. 그래, 오늘이 바로 결전의 날이야.”
전방위에서 독룡각을 포위한 채 공격을 퍼부은 지, 어느새 열흘이 훌쩍 지났다.
제법 긴 시간 동안 교전을 펼쳤으나, 이 사실은 담무흔에게 전해지지 못했다. 그럴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역시 주백기의 활약 덕분이었다.
맹사와 정면승부에서 승리를 거둔 주백기는, 담무흔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파견된 독룡각의 고수들을 연이어 모두 격파했다.
하여 진무량은 감천기와 승부를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독룡각에서 한껏 웅크리고 있는 감천기를 공략할 방법을 천천히 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제아무리 주백기가 연락을 차단한다고 해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감천기가 백방으로 연락을 취하다 보면, 마교가 공격 받고 있다는 사실이 결국은 담무흔에게 전해질 터.
그러기 전에 진무량은 반드시 감천기의 숨통을 끓고, 마교의 지배권을 되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 다가왔음을 직접 전장을 진두지휘한 여도강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담무흔에게 연락이 닿기 전에 독룡각을 공략하면서도, 수비에 전념하는 감천기를 상대로 허점을 찾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 비로소 끝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지연함으로 얻는 이득은 없고, 위험은 점점 커져 갈 터.
즉, 오늘이야말로 전력을 다해 독룡각을 무너뜨릴 때라는 뜻이었다.
진무량이 여도강을 향해 말했다.
“결전의 때를 정확히 꿰뚫어 보다니, 역시 안목이 뛰어나군. 덕분에 내 찾아가는 수고를 덜었어.”
“오늘은 피차 한가로이 대화를 나눌 시간은 없을 듯하니, 내 먼저 의견을 밝히겠소.”
여도강은 미리 챙겨 온 지도를 꺼냈다. 그러고는 한 지점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내가 파악한 적의 허점은 여기. 미세한 차이지만 이 남쪽 소로는 경계가 허술했소.”
여도강이 언급한 남쪽 소로 근방은 울창한 숲을 비롯해 높은 절벽도 자리한 장소였다.
언뜻 보면 공략하기 가장 힘든 장소처럼 보이나, 감천기 또한 천혜의 지형을 믿고서 상대적으로 적게 수하들을 배치했다.
그 점을 간파한 여도강은 은밀히 남쪽 소로를 세밀하게 살폈고, 본인을 포함한 주력이 불시에 들이친다면 단숨에 남쪽소로를 제압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남쪽 소로를 지나면 곧바로 독룡각으로 들이칠 수 있으니, 공략할 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여도강의 의견을 듣고 난 뒤에, 진무량은 자신의 뜻을 밝혔다.
“난 네가 언급한 방면과 정반대 쪽인 북동쪽 대로를 칠 예정이었어. 놈들이 제법 방비를 굳히고 있다지만, 기마를 통한 멸천대의 돌파력이라면 충분히 뚫어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타당한 진무량의 의견을 듣고서 여도강은 곧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서로 생각한 방면으로 나아가서 독룡각을 공략하는 걸로 하지.”
진무량은 잠시 스스로 감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 뒤에, 두 갈래로 들이치는 공격을 막아내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수는 독룡각의 뛰어난 고수들을 선별하여 한쪽 방면을 철저하게 틀어막는 것이었다.
나머지 한쪽은 길을 열어 주고, 지형적 이점을 지닌 독룡각 내부에서 시간을 버티면 된다.
그리 되면 독룡각으로 통하는 길목을 차단하던 마교 세력들이 사방에서 지원을 보낼 테고, 독룡각을 공격한 멸천대나 여도강의 동료들이 역으로 갇히는 신세가 될 터.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대패하는 순간, 독룡각을 공략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었다. 또한 어떻게든 감천기를 쓰러뜨린다고 해도, 남은 마교 세력들을 규합하지 못하면 단숨에 정마전쟁의 판도를 바꾸기는 어려웠다.
쉽지 않은 현실을 직시한 여도강은 쓴 입맛을 다셨다.
“새삼 절체절명이란 말이 떠오르는군. 한 발만 잘못 내딛어도 지금까지 쌓아 올린 것들이 모두 무너져 내릴 테니…….”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말은 쉬우나, 어찌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런가. 난 오랜만에 흥분되는 게 썩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강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무사들과 달리 감천기는 창을 겨룰 만한 가치가 있는 상대였다. 한때 사대신마의 자리에 있을 때 보았던 감천기의 독공은 실로 뛰어났으니까.
그런 호적수와 겨룰 생각을 하니, 진무량의 몸속에서 무인 특유의 순수한 본능이 꿈틀거렸다.
거기다 외통수에 몰린 현재 상황까지 합쳐지니, 진무량을 흥분케 하는 모든 요소들이 충족된 셈이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잖아. 언제나 목숨을 건 승부는 먼저 쓰러뜨리지 못하면 죽는 건 당연하니까. 앞을 가로막는 적은 전력으로 벤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즐거운 법이지.”
진무량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 여도강이 입을 열었다.
“그동안 그대를 냉정하다고만 여겨 왔는데, 아무래도 내 착각이었던 것 같소.”
여태까지 감천기의 허점을 파악하기 위해 신중히 고심하던 면모는 티끌만치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무량은 완벽하게 변해 버렸다.
지금의 진무량은 불타오르는 격정 속에 몸을 내던진 듯한 형상이었다.
“이제야 여태껏 그대를 적대했던 자들이 왜 그렇게 공포에 떨었는지 조금 알 것 같소.”
전장에서 진정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이는, 냉철하게 전략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기는 자가 아니다.
뼛속까지 새겨지는 공포는 스스로의 목숨을 내던지면서 적의 숨통을 끊기 위해 돌진해 오는 놈뿐이다.
헌데 진무량은 두 가지의 면모를 동시에 지녔으니, 실로 두려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진무량은 보일 듯 말 듯한 미세한 비웃음을 머금은 뒤에 입을 열었다.
“서로 할 일은 정해진 것 같군. 그럼 내가 먼저 일어나도록 하지.”
여도강은 천막 밖으로 향하는 진무량을 향해 나직이 말을 걸었다.
“술을 좋아한다고 전해 들었소. 내 오늘 저녁의 독룡각에서 최고로 좋은 술을 대접하겠소.”
“훌륭한 제안이네. 기대하지.”
* * *
해가 중천에 걸렸을 때쯤 진무량은 멸천대를 모두 이끌고 독룡각을 향해 진격했다.
일정하게 열과 오를 맞춘 멸천대원들이 전속력으로 말을 몰자, 거센 모래폭풍을 연상케 하는 먼지가 휘몰아쳤다.
맹렬히 질주하던 멸천대는 일순간 고삐를 쥐어 말을 제자리에 서게 했다.
“히히이이힝!”
신나게 달리던 말들은 갑자기 주인이 고삐를 쥐자 투박한 소리로 울부짖었다.
이렇듯 동시에 멸천대가 말을 멈춘 이유는, 선두에 있던 진무량이 위험을 감지하고 고삐를 쥔 탓이었다.
이내 무거운 갑주를 걸친 채 매복하고 있던 마교 무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육 척이 훌쩍 넘는 거한들로 구성된 구중련 소속의 거갑대(巨鉀隊)였다.
이윽고 거갑대주 좌령(左靈)이 거한들 사이에서 비집고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흑마 위에 올라탄 진무량을 보자마자 호쾌한 일갈을 날렸다.
“천하의 진무량도 우리 거갑대의 위용이 두려워 절로 말을 멈췄구나! 실로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 몸께서 친히 칭찬해 주마. 와하하하!”
진무량의 곁을 보좌하던 위지운은 한눈에 좌령의 무공 실력을 꿰뚫어 보았다. 겉모습만 봐도 제법 훌륭한 외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허나 현재 멸천대의 전력과 비교했을 때, 거갑대는 딱히 위협을 받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위지운은 관심이 사라진 좌령에게서 시선을 돌리고는 진무량을 향해 물었다.
“진짜 저딴 놈들 따위를 경계해서 멈춘 건 아니죠? 나름 재롱떠는 걸 보는 것도 재밌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잖소.”
위지운과 마찬가지로 진무량 역시 눈앞에 상대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다.
“너무 대놓고 살기를 드러내기에 오히려 수상쩍었다. 주변에 다른 놈들의 기척도 없는 걸 보니, 미끼도 아닌가 보군.”
좌령은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진무량의 태도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내 거대한 자신의 몸집만 한 철퇴를 꺼내 휘휘 돌렸다.
“이놈들이 겁을 먹어 실성이라도 한 게냐!”
진무량은 여전히 좌령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위지운과 담소를 나눴다.
“아직까지 코빼기도 모습을 비추지 않은 걸 보니, 아무래도 대다수의 독룡각원들은 여도강 쪽으로 향한 것 같군.”
“그거 아주 잘됐네. 감천기를 끝장낼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온 거 아니요.”
위지운은 좌령과 거갑대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삿대질을 하여 말을 이었다.
“무슨 연유인지 여길 지키는 놈들도 보잘 것 없는 놈들인 것 같으니, 후딱 해치우고 꼭꼭 숨어있는 감천기 놈을 끄집어내러 갑시다.”
진무량의 관심에서 완전히 벗어난 좌령은 얼굴이 시뻘게진 채 고래고래 외쳤다.
“네 이놈! 정말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냐?”
좌령이 하도 악을 쓰는 탓에 진무량이 잠시 좌령에게 눈길을 주었다.
여지껏 철저히 무시당하던 진무량과 시선이 마주친 좌령은 의기양양하게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이제야 기억이 났나 보구나. 나로 말하자면…….”
“아까부터 무지하게 시끄럽네. 확실하게 말해 두지. 난 너 같은 놈 몰라.”
“귀혈악인의 두뇌가 비상하더니, 모두 헛소문이었구나! 이 몸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넌 모르겠지만, 난 인상적이었던 건 절대 안 잊어버려. 그럼에도 기억 속에 없는 건, 내 기억이 문제가 아니라 네 존재감이 흐릿했던 탓이다.”
“아주 기고만장하구나! 네가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건 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이 자리에서 너를 꺾어 공을 세우고, 천하에 이름을 떨치리라!”
좌령은 손에 쥔 철퇴를 허공에 돌리면서 진무량을 향해 단숨에 땅을 박차고 나갔다. 진무량 역시 도전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좌령과 맞섰다.
한껏 치켜든 육중한 철퇴가 휘둘러지기도 전에, 불길한 묵색 마기가 넘실거리는 염옥창이 섬광처럼 좌령의 심장을 꿰뚫어 버렸다.
정과 마의 기운을 조합한 뒤로부터 진무량은 완전히 새로운 경지에 다다랐다. 그 결과 위력적인 초식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동작까지 모두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발전을 이뤘다.
좌령 정도 되는 구중련의 고수는 진무량의 발뒤꿈치에도 미치지 못할 수준이었고, 두 사람의 승부에서 그 차이가 여실히 나타났다.
스스로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른 채 숨이 끊어지려 하는 좌령에게 진무량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애석하지만 앞으로도 넌 평생 내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군.”
진무량은 망설임 없이 뒤를 따르는 멸천대원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제부터 앞을 가로막는 놈들은 모조리 베고서 독룡각으로 나아간다.”
진무량과 멸천대는 일직선으로 길게 난 대로를 따라 독룡각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구중련의 고수들을 비롯해 감천기를 따르는 마교 무인들과 접전을 벌이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고 진격했다.
그리고 마침내 멸천대는 큰 피해 없이 독룡각에 도착했다.
눈앞에 거대한 독룡각의 현판을 확인 위지운이 낮게 중얼거렸다.
“여긴 언제 와도 기분 나쁜 곳이군.”
높은 담으로 인해 사방이 철저하게 가려진 독룡각은 굳이 발을 들이지 않더라도 물씬 풍겨지는 음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쉽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장원 너머로 보이는 무수한 풀들이 모두 독초란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숨길 수 없는 시체 냄새가 지독했다.
그나마 부패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의 역겨운 냄새가 없는 걸로 보아, 시체 썩는 냄새를 지우려 애를 쓴 것처럼 보였다.
허나 오랜 시간 전장에서 몸담아 온 멸천대원들은, 독룡각 내부에 시신이 숱하게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윽고 진무량이 말을 몰아 독룡각 내부로 들어가려 할 때 예상치 못한 파공음이 들려왔다.
쐐애애액!
마치 공기를 조각조각 찢어 내는 듯한 소리를 동반하며 날아온 건 바로 화살이었다.
날카로운 화살촉은 진무량의 미간을 목표로 날아들었다.
진무량은 정확히 급소를 향해 화살이 날아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굳이 나서지 않았다.
이미 쇄검을 빼든 위지운이 화살을 쳐내기 위해 나섰기 때문이었다.
탁!
결국 애초에 목적했던 진무량의 급소에 다다르지 못한 화살은 쇄검에 부딪쳐 허공에서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불시에 날아든 화살이었으나, 위지운은 화살을 쏜 상대의 위치까지 정확히 파악했다. 독룡각 지붕을 쏘아보며 위지운이 말했다.
“네놈은 누구냐?”
위지운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유독 허여멀건 안색에 호리호리한 체격이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소천광이 위치하고 있었다.
소천광은 홀연히 독룡각 지붕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진무량과 이십 보 정도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널 기다리고 있었다. 진무량.”
완벽하게 높낮이 없는 소천광의 목소리에 진무량이 답했다.
“역시 함정이었나.”
평소보다 허술한 독룡각의 경계 상태에 진무량은 미약하게 함정의 낌새를 느꼈다.
허나 지금은 조심스레 움직이기보단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할 때였기에, 걸음을 멈추지 않고 독룡각으로 향한 것이었다.
소천광이 말했다.
“그래. 너는 여기서 죽는다. 내 친히 노군의 원수를 갚을 것이다.”
“우쭐할 필요는 없어. 함정이 있다는 건 이미 한참 전에 눈치챘으니까.”
진무량이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함정을 파 놨다고 해도, 감히 너희가 날 막을 수 있을까?”
진무량이 강경한 태도를 취했으나, 소천광 또한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건 자웅을 겨뤄 보면 알게 되겠지.”
소천광과 신경전을 벌일 때, 진무량의 예리한 감각이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했다.
가장 익숙한 기운은 적무혁의 수하였던 불귀대의 기운이었다. 그 외에도 독룡각 곳곳에서 수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소천광의 계책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력을 뺀 인원들을 독룡각으로 통하는 길목에 배치하여 시간을 벌고, 뛰어난 고수들은 일제히 독룡각으로 집결시켜 멸천대와 맞설 생각이 틀림없었다.
비록 적이었으나, 멸천대가 함부로 들어서지 못하게 철저하게 틀어막은 배치는 실로 훌륭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독룡각 내부에 자리한 고수들의 위치를 감지하던 진무량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나를 죽이기 위해 꽤나 열심히 준비했나 보군.”
“말하지 않았던가. 넌 여기서 죽는다고.”
그때 진무량과 소천광의 대화에 위지운이 끼어들었다.
“아 그놈 참, 하는 말마다 되게 거슬리네.”
소천광의 시선이 진무량에게서 위지운으로 옮겨 갔다.
“재촉하지 마라. 진무량과 함께 너희도 모두 이 자리에 묻어 줄 터이니.”
위지운은 혓바닥으로 입술을 밀면서 분노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내게 이렇게까지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놈은 정말 오랜만인데. 좋아. 넌 내가 직접 상대해 주지.”
위지운이 선두로 나서며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대주께서는 먼저 감천기를 손봐주러 가시오. 여기는 내가 맡겠소.”
여기서부터는 멸천대와 떨어져 진무량 홀로 움직이는 편이 더 이로웠다.
제아무리 소천광을 비롯한 숱한 고수들이 철통같이 독룡각을 지킨다 하더라도, 진무량이라면 능히 삼엄한 경계를 뚫고 감천기가 있는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여길 맡겨도 되겠나?”
진지하게 묻는 진무량을 향해 위지운은 장난기 가득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야 당연한 거 아니오. 여태까지 난 대주를 빼고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소. 그리고 감천기와 겨루기 전에 이런 피라미들을 상대로 힘을 뺄 수는 없지 않겠소?”
겉모습과 달리 더없이 진지한 위지운의 내면이 진무량에겐 똑똑히 느껴졌다.
진무량은 결심을 굳힌 위지운을 향해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래. 이번 기회에 너도 말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도록 해.”
“이거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야겠군. 여기 놈들은 어디 가지 못하게 확실히 묶어 두겠소.”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소천광은 단숨에 낙영신궁을 빼들어 단숨에 화살을 날렸다.
“그게 네놈들 뜻대로 될 성싶더냐.”
패앵!
지근거리에서 진무량을 향해 쏘아진 소천광의 화살은 애꿎은 땅에 박혔다. 소천광은 그제야 진무량이 무영섬전보를 펼쳐 독룡각 내부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천광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지는 진무량을 향해 낙영신궁을 겨눴다.
허나 은밀히 소천광의 뒤로 돌아들어간 위지운이 쇄검을 휘두르는 바람에, 소천광은 진무량을 향해 겨눴던 낙영신궁을 거두고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눈팔면 쓰나? 네 상대는 여기 있다.”
위지운은 언제든 뛰어나갈 수 있도록 몸을 웅크리면서 소천광을 향해 경고를 전했다.
“잘 들어. 또 다시 대주께 신경 쓰다간, 쥐도 새도 모르는 사이에 네 목이 땅바닥을 구르고 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