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122화 (122/143)

122화. 대결 (2)

2018.06.03.

진무량은 직접 멸천대를 이끌고 넓게 펼쳐진 전장을 가로질러 연신 독룡각의 무리들과 일전을 벌였다.

자유롭게 움직이면서도 적재적소에 나타나는 멸천대의 존재는, 고전 중인 여도강 일파가 쓰러지지 않도록 굳게 지탱해 주는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수차례 크게 적을 격파한 진무량은 전체적인 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잠시 멸천대의 거점으로 돌아왔다.

심각한 열세인 지점만 찾아다니면서 위기에 빠진 아군을 지원하느라 지칠 법도 했으나, 진무량은 목조차 축이지 않고 곧바로 지도가 펼쳐진 천막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직접 파악한 적의 배치와, 매복에 활용할 수 있는 지점들을 간략하게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이 모든 과정은 수비에 전념하고 있는 독룡각의 무인들을 뚫고 감천기에게 도달하기 위한 사전 준비였다.

차츰 진무량이 생각을 정리해 나갈 때, 묘하게 거슬리는 존재가 있었다. 그건 바로 가만있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거리는 위지운이었다.

진무량은 어렵지 않게 복잡한 위지운의 심정을 예측할 수 있었다.

“정신 사나우니까 얌전히 좀 있어. 그리도 주백기가 걱정되느냐?”

위지운은 유독 강하게 부정하고 나섰다.

“걱정은 무슨……. 덩치가 산만 한 사내놈을 걱정할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소.”

위지운과 주백기는 틈만 나면 티격태격하는 사이처럼 보이지만, 멸천대 내에서 두 사람만큼 서로를 챙기는 이들도 드물었다.

진무량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붙어 있을 때는 못 죽여서 안달이더니. 하여간 특이한 놈들이야.”

“큰 착각을 하고 있나 본데, 절대 걱정 같은 건 아니오. 그냥 쓸데없이 잘 보이던 놈이 안 보이니까 좀 허전해서 그런 거지.”

머쓱해진 위지운은 잠시 딴청을 피우다가 이내 진지해진 어조로 진무량에게 물었다.

“대주께서도 신경 쓰고 있을 거 아니요?”

감천기 입장에서 담무흔과 연락을 취하는 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당연히 그 임무를 맡은 자는 감천기의 수하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고수란 결론이 나온다.

물론 진무량이 판단은 지극히 타당한 선택이었다.

당장 불리한 전황에서 여도강 일파를 돕기 위해서는 진무량의 힘이 필요했고, 만약에라도 감천기의 약점이 보면 당장 독룡각 내부로 진입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담무흔과 연락을 차단하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최종 목표는 감천기를 쓰러뜨리는 것이었다.

허니 가장 중요한 적을 두고 함부로 진무량이 전장을 이탈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단순히 동료를 걱정하는 위지운과 진무량의 입장은 또 달랐다. 진무량은 강한 상대가 기다리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주백기에게 직접 명령을 내려 그 적이 있는 곳으로 향하게 했다.

혹시라도 주백기가 잘못된다면 진무량은 주백기를 사지로 내몬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에 따른 책임감은 물론, 만약의 사태에 새겨질 상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터.

진무량은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동료에게 필요한 건 걱정이나 값싼 동정 따위가 아닌 믿음이다.”

“…….”

“나는 주백기를 믿는다. 그리고 놈은 한 번도 내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어.”

“……분명 맞는 말이오.”

진무량은 표시를 끝낸 지도를 품속에 챙기고서 천막 밖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당장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허튼 소리 말고 빨리 따라와.”

위지운은 진무량을 따라나서기 전에 잠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작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괜히 신경 쓰게 하지 말고, 멋지게 이겨서 돌아와라. 주백기.”

* * *

후우웅!

맹사를 향해 노도처럼 떨어져 내리는 주백기의 쌍철극은 허공을 갈랐다.

보법을 펼쳐 가볍게 쌍철극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 맹사는, 주백기가 다시 자세를 가다듬기 전에 빠르게 복부의 주먹을 꽂아 넣었다.

내력이 실린 주먹에 적중당한 주백기는 고통이 상당했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회전시키며 그 힘을 이용해 쌍철극을 휘둘렀다.

허나 맹사의 신형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결국 이번에도 맹사를 놓친 주백기는 어느새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맹사를 노려보았다.

맹사는 주백기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하며 말했다.

“조금은 기대했는데 실망인걸. 그동안 발전한 건 말솜씨뿐이었나 봐?”

주백기와 신경전에서 맹사가 잠시 흥분했던 건 사실이나, 교전에 들어서면서부터 맹사는 지독하게 냉정해졌다.

먼저 철저하게 주백기의 움직임 파악한 뒤 미리 다음 동작을 예상하여 간발의 차로 피해 내고, 자세가 흐트러진 주백기에게 빠른 일격을 날린다.

이후에 다시 주백기가 일격을 가한다면 다시 거리를 벌려서 사전에 공격 자체를 차단한다.

이런 방법으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맹사에게 거대한 쌍철극은 무용지물로 변해 버렸다.

결국 맹사가 거리를 지배하면서 주백기를 완전히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주백기가 당하는 모습을 참다못한 멸천대원 중 한 명이 주백기에게 전음을 보냈다.

ㅡ저희가 돕겠습니다.

맹사의 곁에 있던 감천기의 수하들은 진즉에 멸천대원들의 창에 꿰뚫려 모두 이승을 떠났다.

하여 멸천대원들은 당장에라도 주백기를 돕고 싶었으나, 전음으로 전해지는 주백기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ㅡ……나서지 마라. 놈은 내가 쓰러뜨려야 할 상대다.

ㅡ하지만…….

ㅡ……명령이다.

단순한 필부의 고집이 아니었다. 다른 이는 몰라도 맹사만은 반드시 스스로의 손으로 쓰러뜨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평생을 살아도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주백기에게는 남은 생을 모두 걸고서라도 쓰러뜨려야 할 숙적이 바로 맹사였다.

확고한 주백기의 명령에 멸천대원들은 결국 나서지 못하고 자리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맹사는 여유롭다는듯 크게 목을 돌리며 말했다.

“어떻게 예전에 비해 변한 것이 하나도 없어? 아니 정확히는 그때보다 더 느려진 것 같군.”

“……과연 그럴까.”

주백기는 대답과 동시에 쥐고 있는 쌍철극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쿠웅! 쿠웅!

팔십 근이 넘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쌍철극은 바닥으로 떨어지자 지면이 깊이 파였다.

이윽고 주백기가 솥뚜껑만 한 양 주먹을 끌어올려 얼굴 앞에 두었다. 팔꿈치를 단단하게 조여 양 주먹에 힘이 들어가자, 주백기의 팔뚝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쌍철극을 두고 맨 주먹을 움켜쥔 주백기의 모습은 맹사에게조차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 자세는 뭐냐? 못 본 사이에 새로운 재주라도 익혔나 보지?”

“……그렇다. 오직 네놈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찾아낸 방법이다.”

권법을 익히기 시작한 건 일전에 진무량의 조언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속도와 변화가 아닌, 자신이 가진 힘을 온전히 모두 끌어올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힘에 편중되다 보면 필연적으로 움직임이 단조로워지면서 느려진다. 거기다 쌍철극의 무게가 더해지면 도저히 맹사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여 결국 쌍철극을 놓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권법을 익히면서 더 민첩하고 예리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됐으며, 쌍철극을 놓은 만큼 본연의 힘을 더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다만 권법은 말을 탄 상태이거나 집단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즉, 주백기의 권법은 오직 단 한 명, 맹사를 꺾기 위한 집념으로 창안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평생을 함께했던 쌍철극을 내려놓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하여 숱하게 망설였으나, 지금까지 교전을 통해 맹사에게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주백기는 마지막 비장의 한 수를 꺼내 든 것이다.

“과연 권법으로 날 쓰러뜨릴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동안 헛고생을 한 것 같군.”

도발적인 언변과 달리 맹사는 주백기가 예상 밖의 행동을 취하자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하여 맹사는 무턱대고 달려들지 않고 주백기의 행동을 살폈다.

그리고 마침내 주백기가 맹사를 향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맹사와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주백기는 연속해서 왼 주먹을 뻗었다.

맹사는 조금씩 뒤로 물러서면서 주백기의 공격을 흘려 넘겼다. 그에 굴하지 않고 주백기는 굳게 쥔 두 주먹을 거침없이 맹사를 향해 휘둘렀다.

바위조차 으스러뜨릴 기세가 담긴 주백기의 주먹이었으나, 모두 한 끝 차이로 맹사를 비껴 갔다.

얼핏 보면 주백기가 퍼붓는 공격에 맹사가 쩔쩔매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 맹사는 굉장히 여유로웠다.

‘그리 대단한 실력은 아니군. 뻔히 보여.’

주백기의 주먹에 실린 막대한 힘은 인정했다. 주백기의 주먹이 귓가를 스칠 때마다 마치 대기가 타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으니까.

허나 쌍철극을 쥐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여전히 무식한 공격이랄까. 냅다 휘두를 뿐, 짜임새 있는 정교한 움직임이 없었다.

맹사의 안목은 이미 주백기가 딱 봐도 권법을 익힌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까지 파악해 버렸다.

날아드는 주먹을 몇 차례 피해 내고 나니, 맹사는 주백기의 다음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사실 지금까지도 몇 번이나 반격에 나설 기회가 있었으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나서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점차 맹사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만 주백기의 공격을 피해 냈다.

마침내 의도대로 주백기의 주먹이 앞머리에 살짝 스쳤을 때, 맹사가 조롱 섞인 어조로 말을 뱉었다.

“아무래도 넌 무슨 짓을 해도 내 상대가 안 되나 보다.”

그 말을 끝으로 날카로운 송곳 같은 맹사의 주먹이 순식간에 주백기의 얼굴로 쏘아졌다.

퍽!

연신 허공을 갈랐던 주백기의 공격과 달리, 맹사의 주먹은 단 한 번에 목표했던 주백기의 얼굴을 꿰뚫었다.

주도권을 잡은 맹사는 단숨에 공세로 나서서 주백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위기를 직감한 주백기는 양 주먹을 끌어올려 방어 자세를 갖추었다.

맹사는 주백기가 움츠러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현란한 보법으로 주백기의 시선에서 벗어나 사각에서부터 주먹을 꽂아 넣었다.

주백기는 간신히 들어 올린 주먹으로 맹사의 일격을 받아냈다. 허나 맹사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회풍불류권(廻風拂柳拳)!’

현란한 보법과 적절한 허초가 섞인 맹사의 공격에 주백기는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주백기로서는 그저 호신강기를 끌어올려 간신히 급소를 막아내는 것이 전부였다.

맹사는 거칠게 몰아붙이며 주백기의 온몸에 타격을 가했다.

퍽! 퍼억! 퍽! 퍽!

맹사의 타격이 통할 때마다 주먹의 단단한 부분이 가죽을 뚫는 섬뜩한 소리가 퍼졌다.

결국 참다못한 주백기가 방어 자세를 버리고, 맹사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맹사가 고함을 내질렀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주백기를 향해 파고들던 맹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머리만 살짝 틀어 주백기의 일격을 피해 냈다. 그리고는 단숨에 주먹의 십 성의 내공을 실었다.

그러자 맹사의 손바닥의 냉기가 감돌면서 최고의 절초가 펼쳐졌다.

‘한빙신장!’

퍼어억!

지독한 냉기가 서린 한빙신장은 비어 있는 주백기의 가슴을 정확히 꿰뚫었다.

한참을 뒤로 튕겨 나간 주백기는 간신히 쓰러지지 않고 간신히 제자리에 섰다.

“크으윽!”

허나 주백기는 지금까지 맹사의 공격을 받아냈을 때와 달리, 서 있는 것조차 힘에 겨운 듯 다리를 비틀거렸다.

맹사는 주백기가 숨을 돌릴 여유를 주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주백기는 다시 주먹을 들어 올려 무조건적인 방어 태세를 취했고, 맹사는 주백기의 전신을 신나게 두드렸다.

주백기의 몸에서 튄 피가 얼굴에 묻은 맹사는 혓바닥으로 그 피를 핥으며 외쳤다.

“겁을 집어먹은 게냐! 내 손에 죽어간 네 동료들이 지하에서 울고 있겠구나!”

주백기는 방금 공격에 나섰을 때 역으로 얻어맞은 한빙신장을 두려워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렇기에 맹사는 주백기가 다시 무모하게 달려들도록 유도하려고, 일부러 도발적인 모욕을 내뱉은 것이다.

그리고 맹사의 예상대로 주백기는 도발에 반응했다.

주백기가 주먹을 뒤로 빼며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하자 맹사는 쾌재를 불렀다.

“미련한 놈! 넌 끝이야!”

승리를 확신한 맹사의 손바닥에서 다시 한빙신장의 기운이 감돌았다.

허나 지나치게 승리에 집착했기 때문일까. 맹사는 아까와 다른 주백기의 기세를 눈치채지 못했다.

한빙신장의 냉기가 서린 손바닥을 보는 순간, 주백기의 두 눈이 먹이를 본 짐승처럼 번뜩였다.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주백기는 맹사와 주먹을 겨루기 시작한 순간부터 단 한 번의 기회만을 노려왔다.

바로 승리를 확신한 맹사가 안도하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일전에 맹사와 겨룬 경험이 있는 주백기는 맹사와 속도 차이를 쉽게 좁힐 수 없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여 처음부터 주백기는 맹사에게 전력으로 맞서지 않았다. 권법을 수련할 때도 적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방어로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것에 집중했다.

상대의 공격을 받아내면서 일부러 평소보다 더 느리게 움직여서 맹사의 방심을 유도한 것이다.

당연히 맹사는 주백기가 갑자기 빠르게 움직였을 때 대처하지 못할 터.

수없이 맹사의 주먹에 얻어맞고, 농락당하면서도 단 한 번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이다.

타앗!

주백기가 있는 힘껏 앞으로 박차고 나가면서 땅을 지르밟자 지면이 깊게 파였다.

그러고는 여태까지 스스로 제어해 두었던 내력을 단숨에 폭발시켰다.

“흐아아아압!”

맹사는 뒤늦게 주백기에게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수상함을 느낀 맹사는 억지로 출수한 일장을 거둬들이면서 몸을 틀어 주백기의 공격에서부터 벗어나려 했다.

퍼어어억!

모든 힘을 실은 주백기의 주먹은 결국 맹사의 급소가 아닌 어깨를 강타했다.

끝까지 한빙신장을 고집하지 않고 늦게나마 몸을 뺀 덕에 치명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백기의 주먹에 맞고 튕겨 나가 땅바닥을 구르던 맹사는, 정신이 들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상체를 이리저리 더듬었다.

주백기의 주먹에 적중당한 순간, 온몸이 바스러지는 환상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죽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주백기의 주먹은 강렬했다.

맹사는 점차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는 진정을 되찾아 갔다.

다시 정신이 또렷해진 맹사는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주백기를 발견하고는 다시 큰소리를 쳤다.

“비겁하게 힘을 숨기고 있었더냐? 근데 방금 일격으로 날 죽이지 못했으니 어쩌나. 아무래도 너보다 내 운이 좋은 것 같은데.”

비록 맹사는 방금 주먹에 적중당한 왼쪽 어깨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으나, 그동안 주백기가 입은 부상에 비해서는 훨씬 더 나았다.

실제로 주백기는 지금 움직이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상태였다.

그동안 수차례 펼쳐진 맹사의 맹공을 모두 흘려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결국 심각할 정도의 부상을 입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맹사는 이제 주백기가 힘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다시 실수를 저지를 이유가 없었다.

다시 주백기의 움직임을 철저히 파악한 뒤에 대처한다면 방금처럼 어깨의 일격을 허락하는 일은 없을 터.

주백기는 단 한 차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넌 이미 졌어.”

“헛소리하지 마라!”

맹사는 아득바득 악을 쓰면서 돌진하여 주백기에게 일권을 날렸다.

주백기는 맹사의 주먹을 쳐내면서 곧바로 맹사와 거리를 좁혔다.

맹사는 주백기의 공격이 날아올 것을 예측했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일부러 주백기의 주먹을 앞머리에 스치게 할 정도로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였다. 조금 더 빨라진 것까지 계산하면 그때와 똑같은 결과가 나올 터.

맹사는 한 발 뒤로 물러나면서 주백기의 주먹을 피하려 했다. 그때 여태까지와 달리 맹사의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됐다.

퍽!

주백기는 주먹은 멍청하게 서 있는 맹사의 안면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뼈마디를 조각내 버리는 듯한 파괴력을 지닌 주백기의 주먹에 얻어맞은 맹사는 또다시 땅바닥을 굴렀다.

주백기는 터벅터벅 맹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급소를 가격당해 몸에 마비가 온 맹사는 다가오는 주백기의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오, 오지 마!”

주백기는 아무 대답 없이 맹사를 향해 다가가 누워 있는 맹사를 깔고 앉았다.

그리고는 맹사를 향해 얼굴을 바짝 붙이고서 주백기가 말했다.

“……네가 내 주먹을 피할 수 없게 된 이유를 알려 줄까? 그건 네가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다.”

맹사는 납득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강적과 겨뤄 왔다. 그런 자신이 겁을 먹다니.

허나 그 외에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반응을 설명할 수 없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도 주백기의 주먹을 보면 온몸이 얼어붙었으니까.

그 말인즉, 지금까지 숱한 사선을 넘으면서 쌓아 왔던 경험조차 뛰어넘는 공포가 주백기의 주먹에 깃들었다는 뜻이었다.

주백기는 맹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멱살을 단단하게 쥐었다.

“네가 지껄인 대로 넌 운이 좋아. 만약 네가 대주를 만났더라면 훨씬 더 큰 공포를 마주했을 테니까.”

주백기는 쉽게 숨이 끊어지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일부러 내공을 싣지 않은 주먹으로 맹사를 후려쳤다.

솥뚜껑 같이 거대한 주백기의 주먹에 수차례 얻어맞은 맹사는 턱이 돌아가 쉰 소리를 내뱉었다.

“그마안……. 미, 미아안하다.”

주백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다.

“그 사과는 저승에서 내 동료들에게 꼭 전하도록 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