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121화 (121/143)

121화. 대결 (1)

2018.05.31.

독룡각의 각주, 감천기가 머무는 집무실로 이어지는 통로에서부터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윽고 요란한 걸음 소리의 주인이자, 독룡각 인근 경계를 책임지던 마교 무인이 집무실 내부로 들어왔다.

그는 널찍한 의자에 앉아 있는 감천기를 확인하는 즉시, 무릎을 꿇고서 화급을 다투는 상황을 전했다.

“각주님! 숨어 있던 여도강 일파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마교 무인의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독룡각의 연락책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감천기의 집무실로 찾아와 말했다.

“갑작스레 여도강 일파가 출현했습니다. 독룡각을 목표로 접근 중인 듯합니다.”

감천기는 똑같은 소리를 하도 들어서 이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현재 전서구를 포함하여 똑같은 의미의 보고만 수십 차례 이어지는 중이었다. 그 내용은 숨어 지내던 여도강 일파가 출현하여 독룡각을 노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여도강 세력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붕대로 칭칭 감긴 감천기의 표정에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감천기는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내용의 보고가 올라오는 원인을 단번에 파악했다.

여기 모인 무인들은 각기 경계를 맡은 지역이 모두 달랐다. 그렇다면 이들이 동시에 위기를 알려 온 이유는 뭘까?

그건 여도강을 따르는 마교의 잔당들이 넓은 범위에서 출현했다는 뜻이었다. 즉, 지금 여도강은 독룡각을 포위하여 고립시키려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오직 연락책들이 전해 오는 보고만 듣고서도 감천기는 수십 리 밖에 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이런 면모야말로 감천기의 뛰어난 통찰력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였다.

‘제법이군. 여도강.’

삼엄한 마교의 감시를 피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거늘, 하물며 이렇듯 넓은 범위에서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 독룡각을 포위하는 건 실로 대단한 수완이었다.

여도강의 행동을 돌이켜 보던 감천기는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를 통해 여도강을 평가하자면, 그는 투박한 무인 쪽에 속했다. 예상대로라면 여도강은 수하들을 한곳에 집중시켜 단숨에 독룡각으로 쳐들어왔을 터.

그렇다면 좀 더 쉽게 여도강 일파를 일망타진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넓게 수하들을 배치하여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건 분명 평소의 여도강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감천기가 묵묵히 생각에 잠겼을 때, 맹사와 소천광이 집무실 내부로 들어왔다.

맹사는 아직 자리를 떠나지 않은 수십 명의 연락책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이게 다 무슨 난리야.”

소천광은 맹사를 뒤로하고 곧바로 감천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각주님, 긴급히 알려 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감천기는 평소와 달리 적극적인 소천광의 태도에 관심을 보였다.

“무엇이냐?”

“지금 여도강과 진무량이 연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불귀대를 통해 진무량이 여도강과 접선한 사실까지 파악했습니다.”

소천광의 말을 듣고서야 감천기는 마음속에 남은 꺼림칙한 부분이 사라졌다.

진무량이 여도강과 함께 있다면 현재 마교 잔당들이 보이는 움직임을 확실히 납득할 수 있었다.

아마도 마교 잔당들이 독룡각을 포위한 것은 불리한 시국을 전략으로 뒤집기 위함이 틀림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감천기는, 진무량이 자신에게 도전장을 던지고 있음을 확실하게 느꼈다.

붕대로 가려진 감천기의 눈매가 살짝 휘었다.

“재미있군. 먼저 승부를 걸어 왔다면 나 역시 피하지 않겠다.”

소천광은 결연한 의지를 내보이며 감천기에게 부탁했다.

“진무량을 잡는 일에 저를 써 주십시오. 반드시 각주님의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네 뜻은 알겠다만, 우선 처리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현재 진무량과 여도강을 패배시키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무림맹을 공격 중인 담무흔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제아무리 여도강이 세력을 모아 봤자, 지금 귀곡신성에 잔류하고 있는 고수들에게도 미치지 못할 터.

담무흔이 직접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 무림맹을 공격 중인 마교의 고수들이 조금만 지원해 줘도 여도강 세력의 승산은 완전히 사라진다.

허니 가장 쉽게 진무량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담무흔에게 현 상황을 전하는 것이었다.

다만 전서구를 통해 담무흔과 연락을 취하기는 어려웠다.

진무량 또한 현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을 터이니, 담무흔에게 향하는 전서구부터 없애려 할 터.

일류 무인들이 경계를 펼친다면 담무흔에게 향하는 전서구를 통제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담무흔에게 현 상황을 전하기 위해서는 포위를 뚫고 사람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손쉽게 승리하는 방법에는 마땅히 전력을 다해야 하는 법.

그리고 감천기는 바로 눈앞에서 그 임무를 해낼 적임자를 찾아냈다.

“맹사. 그대가 포위를 뚫고 나가 련주님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상세히 알리도록 하라.”

맹사는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감천기에게 대답했다.

“각주님의 명령이라면 당연히 따라야겠지요. 열과 성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도록 합죠.”

맹사는 당장이라도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아졌다.

맹사는 스스로 진무량에게 원한을 샀다는 사실을 충분히 자각했다. 혹시라도 이번에 진무량의 눈에 띤다면 그는 전력으로 자신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 터.

맹사는 그야말로 괴물 같은 실력을 지닌 진무량과 겨루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헌데 명분을 챙기면서도 진무량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저절로 생겼으니 실로 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맹사는 싱글벙글 웃음을 지으며 감천기가 내린 명을 수행하기 위해 독룡각을 벗어났다.

소천광은 떠난 맹사의 뒷모습을 힐끗 흘겨보고서는 감천기를 향해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저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서두르지 마라. 우리는 우선 철저하게 수비에 전념할 것이다. 그럼 진무량과 여도강은 저절로 무너질 것이다.”

현재 마교에 잔류 중인 고수들의 비호를 받는 독룡각은, 여도강이 이끄는 세력에 비해 모든 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중이었다.

게다가 담무흔의 지원을 받는다면 완전히 승기를 잡을 수 있으니, 시간을 끌기만 해도 된다.

반면에 진무량은 억지로 독룡각을 공략해야 하니 무리해서 나설 수밖에 없을 터.

감천기는 흉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무량, 네놈의 창은 결코 내게 닿지 않을 것이다.”

* * *

최종 지휘를 맡은 여도강은 독룡각을 넓게 포위한 뒤에 다방면으로 공략에 나섰다.

일전에 진무량과 세운 계획대로 독룡각을 포위하는 데까진 완벽하게 성공했으나, 그 뒤부터는 감천기의 수비의 막혀 번번이 패배 소식만이 전해져 왔다.

“앞서 떠난 망혼대(亡魂隊) 호남혈위대(湖南血衛隊)가 패퇴하였습니다. 급히 인원을 보충해 주셔야 합니다.”

여도강은 보고를 위해 찾아온 연락책에게 답변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주었다.

“내 즉시 고수들을 선별하여 지원을 보내겠노라 전하라.”

연락책은 머리를 숙여 정중하게 예를 취하고는, 바쁜 걸음으로 여도강이 머무는 천막을 빠져나갔다.

곁에서 여도강을 보필하던 참마검 유안은 걱정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누차 공격을 시도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습니다. 독룡각으로 통하는 길조차 뚫지 못한 실정이니,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선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쉴 새 없이 공격을 퍼부어야 하오. 이 과정에서 감천기의 빈틈을 찾아내 독룡각을 공략하는 것이 진무량과 함께 세운 계획이오.”

여도강은 스스로 생각한 정면 승부의 방식을 버리고, 진무량이 세운 계획에 동조했다.

힘의 차이가 분명한 상황에서 정면승부는 분명 옳은 판단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다만 감천기 정도 되는 뛰어난 통찰력을 지닌 고수가 쉽게 약점을 보일 리 없었다.

하여 진무량은 우선 적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일부러 전투를 유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반드시 빈틈을 찾아내리라 장담했다.

그 외에도 여도강은 수없이 독룡각을 무너뜨릴 방법들을 연구했으나, 결국 가장 승산이 높은 쪽은 진무량의 계획이었다.

여도강이 말했다.

“독룡각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없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오. 지금은 나를 믿고, 내 뜻에 따라 주시오.”

여도강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은 유안에게 온전히 전해져 확고한 믿음을 주었다.

교주에 오르기로 결심한 뒤부터 여도강은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막중한 책임감과 굳은 결의로 인해 그동안 속으로만 품고 있던 재능들이 피어났기 때문이다.

그 재능 중에 하나가 자신의 진심을 온전히 상대에게 전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여도강의 생각에 동화된 유안은 반대의 뜻을 접고, 희생을 줄이면서 여도강의 계획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천막 안으로 긴급히 연락책이 들어와 보고했다.

“의문의 무리가 독룡각을 탈출했습니다. 인상착의로 따져 봤을 때 독룡각을 빠져나간 자는 맹사로 보입니다.”

유안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구중련의 고수들 중에서도 맹사는 특히 경계해야 할 요주의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독룡각을 공략함에 있어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담무흔과의 연락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헌데 담무흔과 접선하기 위해 맹사가 움직였으니, 실로 화급을 다투는 상황이었다.

여도강은 심려하는 유안의 심정을 알아차리고서 짧게 말을 전했다.

“걱정하지 마시오. 담무흔과 접선하기 위해 떠난 자가 누구든 간에 멸천대가 막아낼 것이오.”

“그렇다면 서둘러 이 사실을 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소. 그들은 분명 우리보다 먼저 눈치채고 이미 움직이는 중일 테니.”

여도강은 독룡각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울 때 유독 진무량이 강조했던 부분을 떠올렸다.

ㅡ현재 유일하게 예측할 수 있는 감천기의 행동은, 담무흔과의 접선을 시도한다는 것뿐이야. 약삭빠른 감천기가 가장 쉽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놓칠 리가 없으니까. 허니 그것만은 내가 반드시 막아내도록 하지.

애초부터 진무량은 감천기가 담무흔에게 도움을 요청하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독룡각을 포위하여 공격하는 계획을 세웠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으니까.

독룡각에서부터 겹겹으로 둘러싸인 포위를 뚫고 나가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고, 행적을 조사하기도 더 쉬워진다.

언뜻 진무량의 겉모습은 즉흥적이고 막무가내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살피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유안이 여도강을 향해 물었다.

“정말 진무량을 신뢰하는 것입니까?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믿지 못합니다.”

“진무량을 적으로 둔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최악의 상대겠지만, 뜻이 같다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아군임이 틀림없소.”

“분명 일리 있는 말씀이지만, 그것이 진무량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아니지 않습니까?”

“진무량을 신뢰하는 진짜 이유는, 그가 전 교주님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이오. 그리고 아마도 그가 나를 신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겠지.”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마교를 통치해 온 천군위였으나, 그 긴 시간 동안 그가 진정으로 신뢰를 준 이는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천군위는 사람을 함부로 곁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천군위는 명백히 진무량을 아꼈다. 같은 자리에 있다 보면 그 마음이 전해질 정도였으니까.

천군위가 신뢰를 준 대상은 특별한 이유가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천군위를 지지해 온 여도강은 그 판단을 믿었다.

또한 여도강은 여월산에서 진무량과 다시 재회했을 때 확실하게 그의 속마음을 알게 되었다. 진무량에게서 자신과 똑같이 천군위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도강의 목소리에서는 확고한 신념이 묻어났다.

“진무량이 호언장담한 일이니, 독룡각이 담무흔에게 연락을 취하는 건 반드시 막아낼 걸세.”

* * *

독룡각을 감싸고 있는 포위에서 빠져나온 맹사는, 감천기가 내준 독룡각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맹사는 더없이 가벼운 걸음으로 산길을 거닐었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독룡각원 한 명이 맹사를 향해 말을 붙였다.

“각주님께서는 최대한 서두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좀 더 서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급할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지. 다 생각이 있으니 얌전히 안내하거라.”

맹사는 감천기를 위해 서둘러 움직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혹시라도 독룡각이 패한다 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지금 맹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진무량을 벗어난 기쁨을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누리는 것뿐이었다.

사락 사락.

풀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에서 기운을 느낀 맹사는 곧 주변을 세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주변에서 다수의 인기척을 감지한 맹사가 경계심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뭐하는 놈들이냐?”

질문에 대답하듯, 풀숲에서 나찰의 가면을 쓴 멸천대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내가 진무량의 함정에 빠진 건가?’

익숙한 멸천대원의 신형을 확인한 맹사는 순간적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여도강의 포위에서 벗어나 안심하던 차였거늘, 만약 진무량이 그 또한 계산했다면…….’

맹사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 모를 진무량의 존재를 찾아 헤맸다. 다행히 모습을 드러낸 멸천대원 중에 진무량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아직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는 단 한 명.

이윽고 마지막으로 나찰의 가면을 쓴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맹사는 환한 미소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뭐야, 진무량이 있는 줄 알고 괜히 긴장했네. 다행히 놈은 없나 보군. 그렇지 않은가? 주백기.”

멸천대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맹사는 나찰의 가면만 보고도 상대의 신분을 정확히 파악해냈다.

그리고 맹사의 추측대로 주백기가 나찰의 가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그동안 미치도록 널 찾아 헤맸는데, 드디어 이렇게 만나게 됐군.”

진무량은 감천기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독룡각을 침투할 계획을 세워야 했기에, 섣불리 맹사를 쫓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여 가장 신뢰하는 멸천대의 조장 중 한 명인 주백기를 보내 맹사를 쫓게 했다.

주백기는 맹사가 포위를 뚫고 나온 시점부터 멀찌감치 미행을 붙여 그의 위치를 파악했고, 본인은 미리 맹사의 이동경로에 매복해 있다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맹사는 가소로운 듯 입가에 만연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무량이 나를 죽일 계획이었다면, 마지막에 가장 큰 실수를 했군.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다니. 덕분에 괜히 아끼는 조장 한 명만 더 잃게 생겼잖아.”

“……그 입 닥쳐라.”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멸천대의 일 조장인 등가휘도 내가 숨통을 끊어 놓았잖아. 살려 달라고 눈물을 질질 흘리는 노인네의 목을 단숨에 그어 줬지.”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 변하지 않았군.”

“뭐야, 정말 몰라? 등가휘는…….”

“……내가 등가휘의 시신도 조사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나?”

등가휘가 쓰러진 자리에는 그를 따르던 멸천대에 비해 열 배가 훌쩍 넘는 구중련의 추격대의 시신이 함께 있었다.

등가휘와 멸천대 일 조는 열 배가 넘는 구중련의 고수들과 끝까지 맞서 결국에는 승리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던 진무량을 향해 추격대가 들이닥쳤을 터.

허나 실제로는 구중련의 추격 자체가 뜸해졌다. 그건 모두 등가휘가 맹사를 비롯한 구중련의 추격대를 훌륭하게 물리친 탓이었다.

“……등가휘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네놈들과 맞서 싸웠고, 끝내 뜻을 이뤘다.”

주백기는 특유의 끊어지는 음성 속에 분노를 가득 담아 말을 이었다.

“……그런 등가휘에게서 도망친 건 바로 너겠지. 그러니까 그 비루한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 아니더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주백기의 반박에, 여유롭던 맹사의 얼굴이 점차 흉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전에 추일풍을 지키기 위해 나와 싸우다가 패한 건 잊은 게냐? 그때 마무리 짓지 못한 네놈의 숨통을 지금 끊어 주마.”

“……가소롭군. 나야말로 이번에는 네놈의 얼굴에 흉터를 내는 걸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그 머리통을 확실하게 산산조각 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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