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의표 (1)
2018.04.19.
혈랑대주 호율이 계획한 야습은 순조롭게 감행되었다.
어둠을 틈타 은밀히 움직인 혈랑대는 단숨에 비천검문의 선발대가 위치한 곳을 포위한 뒤에 사방에서 매몰찬 공격을 퍼부었다.
비천검문의 선발대는 예상하지 못한 혈랑대의 공격으로 인해 단숨에 수세로 몰렸다.
장백령은 동시다발적으로 쳐들어오는 혈랑대의 공격을 막아 내기 위해 문도들로 하여금 급히 방어진을 펼치게 했다.
허나 만반의 준비 없이 급하게 펼친 방어진의 효력은 미미했다.
방어진 중앙에 위치한 장백령은 문도들을 독려하기 위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 적들에게 우리의 의지를 똑똑히 보여 주는 것이다!”
우렁찬 장백령의 외침에 응답하듯 비천검문의 무인들은 용맹하게 혈랑대와 맞섰으나, 불리한 정황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장백령은 안력을 집중하여 주변을 넓게 살폈다.
무공 수준만 따졌을 때 비천검문의 선발대는 결코 혈랑대의 비해 모자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천검문이 이토록 일방적으로 밀리는 원인은 혈랑대의 전략이 그만큼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삼엄한 비천검문의 경계를 피해 야습을 감행한 것부터 시작하여, 방어진을 공략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혈랑대는 단숨에 방어진을 뚫기 위해 힘을 집중하지 않았다. 넓게 무인들을 배치하여 외곽에서부터 방어진 전체를 효과적으로 갉아 내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면 비천검문의 선발대는 혈랑대의 비해 수적으로 모자라기 때문에, 비천검문의 무인 한 명이 서너 명의 혈랑대원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당연히 온전히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함은 물론, 방어진을 뚫리지 않기 위해서 불필요하게 계속 힘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장백령은 마땅히 반격에 나설 순간을 찾지 못했다.
‘지휘자가 바뀌었음이 틀림없구나.’
요 며칠간 겨뤘던 혈랑대와는 명백히 다른 체계적인 움직임. 이를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것뿐이었다.
같은 무인이라 해도 누가 통솔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힘을 발휘하는 법.
이토록 완벽하게 자신들을 궁지로 몰아붙인 상대에게 어설픈 요행은 통하지 않을 터.
이 상태를 유지한다면 제대로 된 반격 한번 해 보지 못한 채 전멸할 것이 틀림없었다.
‘정녕 방어진을 풀고 개별적으로 도망치는 방법밖에 없는 것인가.’
그 방법은 어디까지나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의 수였다.
방어진을 풀면 더 이상 집단으로 지휘할 방법이 없어져 버린다. 그 상태로 무작정 도망치려 한다면 사방을 포위한 혈랑대에게 훤히 등을 내주는 꼴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후퇴했을 때 예상되는 생존자는 기껏해야 일 할 미만.
즉, 앞으로 비천검문의 선발대는 완전히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됨을 의미했다.
앞으로 계속 구중련의 진격을 막아내기 위해 비천검문의 선발대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 향후 비천검문의 존폐가 걸린 문제이기에, 장백령은 더욱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허나 언제까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수도 없는 일. 자칫 잘못하다가는 퇴로가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도 생각해야 했다.
‘미안하네. 월천.’
결심을 내린 장백령이 방어진을 풀고 후퇴를 명령하려 하는 순간, 의문의 연주 소리가 들려왔다.
디리리리링―!
기품 있고 우아한 선율. 난해한 음의 높낮이를 우아하게 풀어낸 유서하의 연주였다.
귀에 익은 유서하의 곡조를 인지한 장백령은, 즉시 비천검문 무인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사자후를 내질렀다.
“모두 천근추를 펼쳐라!”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비천검문의 명령 체계는 흔들림이 없었다.
즉각 비천검문의 무인들은 천근추를 펼쳤고, 곧 몸이 무거워지면서 발이 땅속으로 파묻혔다.
디리링―! 디리리링―!
꺾이고 떨리는 현의 음률을 통해 유서하는 내력을 압축시키는 중이었다. 그리고 곡조가 끝났을 때, 잔뜩 응집된 내력이 충격파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콰아아아―!
혈랑대원들은 유서하가 쏘아 낸 거대한 충격파를 견디지 못하고 이십 보 이상 튕겨져 나갔다.
또한 충격파의 여파로 인해 지면이 뜯어졌으며 수백 근의 달하는 바위마저 뽑혀 버렸다.
천근추로 몸을 지탱한 비천검문의 무인들을 제외하고서는 누구도 어마어마한 충격을 버텨 내지 못한 것이었다.
무시무시한 음공을 직접 경험한 혈랑대원들 중에는 찰나의 순간 넋이 나간 자도 존재할 정도였다.
숱한 전장에서 경험을 쌓아온 혈랑대원들이라 하지만, 수백 명의 인원은 물론 수십 장 너머의 지형까지 변화시킬 정도의 음공을 경험한 건 처음이었다.
유서하를 잘 아는 장백령 또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서하가 예전의 비해 무공의 성취를 이뤄 냈음은 알고 있었으나, 이토록 발전했으리라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단 한 번 유서하의 음공을 목격했을 뿐이었으나, 장백령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할 충격을 받았다. 그 정도로 성장한 유서하의 음공이 인상적이었던 탓이었다.
천하에서 음공의 정점에 있다고 칭해지는 고수들과 비교해 봐도 유서하에게 모자라다고 생각될 정도였으니까.
즉, 이미 유서하의 음공은 천하에서 손꼽힐 정도라는 뜻이었다.
혈랑대원들이 주변을 경계하는 사이, 허공을 뛰어오른 유서하는 단숨에 경공을 펼쳐 장백령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우아하게 착지를 마친 유서하가 장백령을 향해 말했다.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장로님께서는 제 곡조를 듣고 올바른 명령을 내려 주시리라 믿고 있었습니다.”
“그, 그럼 그 정도는 기본이지.”
장백령은 얼떨떨한 어조로 대답했다.
곡조를 듣고서 유서하가 청향풍곡(淸香風曲)을 연주하고 있음은 눈치챘다.
일찍이 유서하에게 전해 들어 그 곡조가 충격파를 일으키는 음공임을 알고 있었으나, 문도들에게 천근추를 지시한 건 우연도 조금 섞여 있었다.
혹시 모를 사태의 대비해 내린 지시였거늘, 만약 유서하가 이룬 성취를 얕잡아 보고 조금만 늦게 명령을 내렸다면, 비천검문의 문도들마저 유서하의 충격파에 휩싸일 뻔했다.
장백령과 유서하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튕겨져 나갔던 혈랑대원들은 서둘러 흩어진 대열을 정돈했다.
다시 한번 공격할 준비를 끝내자 선두에 있던 혈랑대원이 공격의 신호를 알렸다.
“기이한 음공의 고수가 한 명 나타났을 뿐. 충분히 대비하고서 나아가면 된다.”
말을 마친 혈랑대원이 이번에는 목청껏 소리를 내질렀다.
“비천검문 놈들을 한 점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씹어 주자!”
장백령은 긴장된 눈길로 사방에서 압박을 가해 오는 혈랑대를 쏘아보았다.
그런 장백령을 향해 유서하가 믿음직한 어조로 말했다.
“심려치 마세요. 아주 믿음직한 분들이 오고 있으니까요.”
두두두두두!
유서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지를 짓밟는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말을 달리는 멸천대원들이 장막처럼 짙게 깔린 어둠을 찢어발기며 나타났다.
나찰의 가면 속에서 멸천대원들의 두 눈은 모두 붉게 변해 있었다. 마교에서 도망친 뒤부터 그들은 단 한 순간도 복수를 잊은 적이 없었다.
구중련과 창을 맞댈 날만을 기다려왔던 멸천대에게, 눈앞의 혈랑대는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상대였던 것이다.
콰드득!
연시우가 앞길을 막아서는 혈랑대원의 심장을 꿰뚫고서 외쳤다.
“멸천대를 적으로 두면 어떻게 되는지 놈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거라!”
연시우는 전속력으로 말을 몰아 주변을 가득 매운 혈랑대원들을 돌진했다.
그 뒤로는 추형으로 돌격 태세를 갖춘 멸천대원들이 따랐다.
멸천대는 넓게 포진한 혈랑대원들을 철저하게 짓밟으며 나아갔다.
날아드는 창에 연신 몸이 꿰뚫리면서도 혈랑대는 제대로 된 반격을 가하지 못했다.
가장 큰 이유는 멸천대에게 뒤를 잡힌 탓이었다.
제아무리 혈랑대라 해도 살벌한 기세로 배후에서부터 치고 들어오는 멸천대를 멈추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또한 혈랑대는 비천검문을 포위하기 위해 넓게 포진한 상태.
한 점으로 단단히 뭉쳐도 멸천대의 돌격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거늘, 이렇듯 흩어져 있는 상태로 멸천대의 돌격을 멈추게 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멸천대는 마치 평지를 내달리듯 거치적거리는 혈랑대를 모조리 쓸어버리며 나아갔다.
수많은 멸천대원 중에서도 연시우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머리 위로 돌리던 창의 궤적이 아래로 떨어질 때는 여지없이 서너 명의 혈랑대원들이 나가 떨어졌다.
이내 연시우의 존재를 알아챈 혈랑대는 암묵적으로 그를 먼저 제거하고자 뜻을 모았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는 연시우는 완전히 노출된 상태.
이윽고 기회를 노리던 혈랑대원 여섯이 단숨에 공중으로 뛰어올라 연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중 넷은 연시우에게 다가가지도 못한 채, 뒤에서부터 날아드는 멸천대원의 창에 걸려 숨이 끊어졌다.
접근에 성공한 두 명 중에서 오른쪽으로 파고든 혈랑대원은 연시우가 휘두른 창에 베여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홀로 남은 혈랑대원의 검이 반원의 궤적을 그리며 연시우의 목을 노렸다.
“스스로를 과신해 선두로 나선 것이 네놈이 죽는 이유다!”
혈랑대원은 손에 잔뜩 힘을 주어 더욱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허나 날아드는 혈랑대원의 검보다 연시우의 왼손이 더 빨랐다.
말 위에서 혈랑대원의 목을 움켜쥔 채 연시우가 말했다.
“남 생각할 시간에 네 걱정이나 하시지.”
스오오오오!
움켜쥔 연시우의 왼손에서부터 마정대흡인이 펼쳐졌다. 생기 자체를 빨아들이는 흡마공에 당한 혈랑대원은 몸에 수분이 모두 빠져나간 시체로 변해 버렸다.
단숨에 혈랑대의 포위를 돌파한 연시우는 비천검문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방어진 중심에 있던 장백령이 밖으로 나와 연시우와 대면했다.
허리를 곧게 편 채 말 위에 올라탄 연시우의 모습은 실로 늠름했다.
게다가 피로 물든 흉악한 나찰의 가면을 쓴 채 어깨를 들썩이며 호흡하는 연시우의 모습은 실로 공포의 대상처럼 느껴졌다.
제대로 검을 맞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쓰러져간 혈랑대원들의 심정도 이해가 될 정도였으니까.
장백령이 연시우를 향해 말했다.
“자네를 보고 반가울 때가 다 있군. 같은 편이 되니 이렇게 든든할 줄 몰랐어.”
“방해되니까 비켜. 괜히 어슬렁대다 창에 맞고 죽어서 원망하지 말고.”
“그 태도는 적으로 만났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군. 다른 건 다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비천검문을 얕보는 듯한 태도는 용납할 수 없어.”
장백령이 뒤로 돌아 비천검문 문도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방어진을 풀고 적을 섬멸하라! 결코 멸천대에게 뒤쳐져서는 안 된다!”
비천검문의 문도들은 여태까지는 예상치 못한 야습을 당해 수세에 몰려 있었을 뿐.
온전히 제 실력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결코 멸천대의 비해 실력으로 뒤떨어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스릉!
검을 뽑아든 장백령은 비천검문의 문도들을 이끌고 혈랑대원을 향해 나아갔다.
연시우의 이마에 짜증으로 인한 주름이 깊이 새겨졌다.
살짝 고개를 돌린 연시우가 멸천대원들을 향해 섬뜩한 목소리를 냈다.
“무조건 비천검문 놈들을 앞질러라.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사흘 동안, 누워 있는 시간은 일체 없을 것이다.”
나찰의 가면 속에서 멸천대원들은 모두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모두 연시우가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자.”
나직이 내뱉은 연시우의 명령과 함께 멸천대원들이 동시에 말을 내달렸다.
* * *
호율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혈랑대의 분전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는 이미 승패가 갈렸음을 직감했다.
멸천대가 날뛰고, 비천검문이 온전한 힘을 낸다면 저기 있는 혈랑대원들로는 상대가 되지 못할 터.
무엇보다 의외로 멸천대와 비천검문의 호흡이 제법 잘 맞았다.
두 세력이 처음 힘을 합쳐서 뒤엉켜 싸우다 보면 오히려 서로의 존재가 방해가 되기 마련. 허나 멸천대와 비천검문은 달랐다.
멸천대와 비천검문은 서로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이유는 오랜 시간 대립해 온 탓이었다.
자연스레 상대의 특출한 점과 단점을 파악하여 가고자하는 진로와 목적까지 예측할 수 있었다.
비천검문은 멸천대가 마음껏 말을 달릴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 주고, 반대로 멸천대는 비천검문이 합격진을 펼칠 수 있도록 혈랑대를 한곳으로 모아 주니,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극대화하게 된 것이었다.
초조한 눈길로 혈랑대의 부대주 상관호가 호율을 바라보았다.
“대주님. 지금이라도 저희가 도우러 간다면 전멸은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설프게 저들을 도우려다가는 우리의 주력을 잃는다. 지금은 우선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물론 피해는 입겠지만, 당장 혈랑대원들을 잃는다 해도 비천검문의 비해 자신들이 수적으로 훨씬 앞선다.
애초에 세웠던 계획은 혈랑대를 둘로 나눠 한쪽은 비천검문의 선발대를 공격하고, 호율을 비롯한 선별된 혈랑대의 고수들은 지원 오는 유월천을 죽이는 것이었다.
허나 기다렸던 유월천 대신 전혀 생각지 못했던 멸천대가 나타났다.
멸천대의 출현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
우선은 비천검문과 멸천대가 어떤 관계인지, 또한 멸천대가 얼마나 많이 와 있는지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했다.
무엇보다 멸천대와 더불어 신경에 거슬리는 존재가 한 명 더 있었다.
이윽고 호율의 섬뜩한 시선이 금을 켜고 있는 유서하를 향했다.
비천검문을 상대할 때 주의해야 할 고수 중에 유서하는 없었다. 허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한 유서하의 존재는 결코 얕잡아 볼 수준이 아니었다.
어쩌면 장백령보다 더 껄끄러울 수도 있을 만한 고수.
그렇다면 사실상 비천검문에서 유월천 다음 가는 실력자라고 봐도 무방했다.
호율이 상관호를 향해 명령했다.
“비천검문에 대해 놓치고 있는 점이 많다. 우선 놈들의 전력을 파악하는 데 전력을 다하도록 하라.”
우선은 상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 뒤에도 놈들을 모조리 매장시킬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 * *
멸천대와 비천검문의 선발대는 성공적으로 구중련의 야습을 격파하여, 공격을 감행한 혈랑대원들을 모조리 후퇴시켰다.
장백령과 연시우는 각각 은신처를 두어 수하들을 쉬게 했다.
해가 뜨기 직전에 옅은 미명이 비출 때쯤 유월천은 유서하, 장백령과 함께 연시우를 찾아갔다.
연시우는 가타부타 다른 말없이 그들을 임시로 만들어 둔 천막 안으로 안내했다.
천막 안에 네 사람이 모두 자리하자, 연시우가 입을 열었다.
“서로 얼굴 보는 게 편한 사이도 아닌데, 용건만 간단히 하지.”
연시우의 살벌한 눈길을 마주한 유월천이 장백령을 향해 속닥거렸다.
“정말 저자가 우리를 도와준 게 맞지? 당장이라도 내게 창을 꽂을 것 같아서 말이야.”
“실없는 소리.”
연시우가 차가운 목소리로 두 사람의 대화를 끊었다.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기 위해 온 게 아니면 빨리 사라져.”
그때 조용히 있던 유서하가 입을 열었다.
“본론부터 말씀드릴게요. 무림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요. 우리의 목적은 곧 도착할 영사문과 함께 최대한 시간을 버는 거예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연 소협을 찾아온 거예요.”
유월천이 말을 덧붙였다.
“한 가지 더하자면, 자네는 어차피 불러도 안 올 것 같아 우리가 찾아온 거라네.”
유서하와 장백령의 날카로운 시선이 동시에 유월천을 향했다.
유월천은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돌렸다.
“에헴. 무서워서 말도 못하겠군.”
장백령이 본론으로 다시 화제를 돌렸다.
“혈랑대의 움직임이 갑자기 변한 것으로 보아 지휘관이 바뀐 것 같네. 아마도 호율이 직접 온 것이겠지.”
연시우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조용할 거야. 놈은 신중한 성격이니 우리의 존재를 파악하는 데 힘쓰겠지.”
대화를 듣던 유서하가 조심스레 생각을 꺼내놓았다.
“그렇다면 영사문이 도착할 때까지는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예요. 이쪽에서 먼저 공격할 이유는 없으니 잘된 일이네요.”
장백령이 유서하의 말을 받았다.
“영사문이 도착할 때까지 놈들이 얌전히 있어 주면 좋으려만…….”
한동안 조용하던 유월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상대도 영사문의 움직임은 알고 있어. 아마도 영사문이 도착하기 전에 기회를 노려 공격해 올 확률이 높아.”
유월천이 한쪽 눈을 슬며시 치켜뜨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지.”
연시우는 단칼에 유월천의 의견을 잘랐다.
“실패했을 때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커.”
“의표를 찌르는 것. 멸천대의 대주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 아닌가?”
연시우는 유월천의 입에서 진무량이 언급되자 괜스레 화가 치밀었다.
“말 그대로 대주의 방식은 의표를 찌르는 것. 마구잡이 공격과는 완전히 달라.”
“구중련은 우리의 목적이 시간을 끄는 것임을 알고 있지. 당연히 우리의 목적은 수비라고 생각할 게야. 게다가 영사문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니 더욱 방심하고 있을 터.”
유월천이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 그렇다면 지금 공격하는 것이 과연 마구잡이 공격일까? 아니면 적의 의표를 찌르는 것일까?”
순간 천막 안에 고요한 적막이 감돌았다.
잠시 뒤 연시우가 유월천을 향해 말했다.
“확실히 의표를 찌르는 생각이군. 자세한 계획까지 생각해 둔 건가?”
유월천은 능구렁이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연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