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비천검문 (1)
2018.03.18.
견무겸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비천검문 내를 돌아다녔다. 그의 걸음걸이에 근심이 가득한 이유는 최근 유서하의 상태 때문이었다.
힘없는 걸음으로 걷던 견무겸의 뒤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그리 심각한가?”
친근하게 말을 거는 상대는 남궁지였다. 뒤를 돌아 그의 모습을 확인한 견무겸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서 대답했다.
“뒷모습에서부터 깊은 시름이 전해져 차마 지나칠 수가 없군.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가?”
“개인적인 용무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헌데 소협께서는 남궁세가로 돌아가지 않으셔도 괜찮으신 것입니까?”
남궁지는 섭섭한 어투로 대꾸했다.
“자네는 내가 빨리 돌아가길 바라는군.”
“절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조금 의문이 들어…….”
견무겸이 펄쩍 뛰며 난처한 기색을 보이자, 남궁지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설명을 덧붙였다.
“자네는 여전히 농담이 통하지 않는군. 사정이 있어 당분간 여기서 머물게 됐네.”
무림맹 소속 문파들이 구중련에게 무너지고 있는 소식은 남궁세가에도 전해졌다.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현일은 곧 구중련의 검 끝이 비천검문을 향할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당분간 지원을 금지하고 첩자를 색출하는 데 집중하라는 것이 무림맹주의 명령이었으나, 남궁지를 비롯한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비천검문과 함께 행동해 왔다.
그 점을 감안해 남궁현일은 남궁지를 불러들이지 않고 비천검문에 머물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천검문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남궁현일의 뜻이었고, 남궁지 또한 아버지의 속마음을 알아챘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남궁지가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무슨 고민이 그리 깊은가? 시름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하던데, 내게 털어놔 보게.”
잠시 머뭇거리던 견무겸은 이내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 너무 무리하고 계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유 소저 말인가? 방금도 스쳐 가면서 인사를 나눴는데, 전혀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던데.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닌가?”
“수일 동안 제대로 식사를 거르는 건 물론이고, 두 시진 이상 수면을 취한 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주변 사람들은 아무런 이질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심각하군.”
슬프면 목 놓아 통곡하고, 고통스럽다면 비명을 지르는 것이 정상이다. 허나 지금의 유서하는 그와 완전히 반대로 행동하는 중이었다.
아픈 심정을 내색하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대신 미소 짓는다.
그럴수록 상처는 더욱 곪아 들어갈 터.
한참동안 고민하던 남궁지는 멋쩍은 목소리를 냈다.
“미안하네. 아무래도 내가 도울 일이 없을 것 같네. 큰소리쳤는데 면목이 없군.”
남궁지는 진심으로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를 바라보던 견무겸은 굳었던 표정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아닙니다. 속으로 고민한 걸 꺼내놓으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렇듯 애매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어쩌면 해답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허나 마음 깊숙이 자리한 무력감만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고통을 숨긴 채 밝게 미소 짓는 유서하에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정녕 아가씨를 도울 방법은 없는 건가…….’
유서하의 상처를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할 생각이었다.
다만 지금은 아무런 대책도 찾을 수 없으니 그저 곁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 * *
무림맹주의 서찰을 받은 유월천은 장백령과 천기자를 불러 심도 깊은 의견을 교류했다.
구중련의 공세는 예상보다 훨씬 더 거셌다. 사태가 위중한 만큼 세 사람은 모두 바쁘게 움직였다.
천기자는 구중련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탐색했다. 또한 유월천과 장백령은 무공이 뛰어난 문도들을 편성하여 선발대를 꾸렸다.
보통 비천검문 정도의 거대문파가 움직이려면 제법 시간이 필요하나, 구중련의 존재를 알고 경계하고 있었던 만큼 그들은 신속하게 준비를 끝내갔다.
장백령은 선발대로 나갈 문도들을 특히나 신경 섰다. 선발대는 구중련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함은 물론, 여차하면 구중련과 정면승부도 해야 했다.
그렇기에 비천검문 문도들 중에서도 가장 무공이 출중한 자들을 엄선해서 뽑았다.
유월천은 선발대의 편성이 끝나갈 때쯤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의 무거운 발걸음이 향한 곳은 유서하의 처소였다.
“오랜만이구나.”
유서하와 마주한 유월천은 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비천검문에 도착한 뒤부터 두 사람은 따로 대면한 적이 없었다.
가까웠던 사이일수록 한번 틀어졌을 때 괴리감은 더 크게 다가오는 법. 이는 부녀지간이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간 잘 지내셨죠?”
예의를 지키면서도 친근한 감정이 엿보이는 유서하의 대답. 허나 유월천 역시 억지로 무리하는 유서하의 속마음을 눈치챘다.
태어난 후로 지금까지 가장 가까이 지냈던 자식의 마음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유월천은 안타까운 심정을 숨기고 능청스레 대답했다.
“그래, 나는 무탈하게 잘 지냈다. 헌데 너는 조금 수척해진 것 같구나.”
“잠을 조금 설쳐서 그런가 봐요. 별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유서하는 간단한 안부 인사를 마친 뒤에 유월천에게 용건을 전했다.
“구중련과 맞설 준비를 하는 중이라고 들었어요. 저를 선발대에 합류시켜 주세요.”
“네 마음은 알겠으나, 선발대는 안 된다. 네 위치는 따로 정해 둔 바가 있다.”
“선발대는 왜 안 되는지 이유를 말해 주세요.”
유월천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선발대는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적진 가장 깊이 침투해야 한다. 가장 큰 위험이 따르는 건 당연지사.
무엇보다, 지금처럼 불안정한 상태의 유서하를 선발대에 합류시키고 싶지 않았다.
유월천이 대답을 망설일 때, 유서하는 본인의 생각을 또박또박한 어조로 전했다.
“문주의 여식이라는 이유로 위험한 임무를 피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아요.”
“그런 이유가 아니다. 무공의 수준에 따라 선별할 것이니…….”
“그렇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어요.”
비천검문을 떠난 뒤에 유서하는 비약적인 무공의 성취를 이뤄냈다. 직접 언급하진 않았으나, 유월천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실제로 유월천은 유서하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음을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내뿜는 유서하의 기도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유서하의 수준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미 비천검문 내에서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적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음이 틀림없었다.
유서하가 자신감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선발대에 합류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해요. 아니면 혹시 반대하시는 다른 이유라도 있나요?”
유월천은 한숨을 속으로 삼켰다.
“알았다. 내 너를 선발대의 합류시키도록 하마. 누구 여식인지, 너무 똑 부러져서 대꾸할 수가 없구나.”
유월천은 지긋한 시선으로 유서하를 바라보았다.
허나 그도 잠시 유월천은 곧 몸을 일으키면서 방을 나서려는 기색을 보였다.
“전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하셔도 돼요.”
갑작스러운 유서하의 말로 인해 유월천은 몸을 주춤거렸다.
이윽고 이어지는 침묵. 그 짧은 시간 동안 유월천은 결심을 마쳤다. 그리고는 유서하를 생각했을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올랐던 질문을 던졌다.
“아비가 원망스러우냐?”
“…….”
“그저 구중련과 전쟁을 막고 싶었다. 그들과 전쟁을 벌이면 얼마나 많은 피가 흐를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리라 결심했지. 정파인으로서 해선 안 될 일도 벌였다.”
유월천은 유서하가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묵묵히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나는 아무것도 이뤄 내지 못했다. 천하의 모든 이들이 나를 향해 무능력한 놈이라 비판해도 반박할 수가 없구나.”
“비록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아버지께서 하신 노력이 전부 헛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
“아버지는 분명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 사실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너무 낙심하지 마세요.”
유월천은 울컥 넘쳐흐르는 감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틀었다.
언제부터인가 머릿속에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 차 버렸다.
그 원인은 역시 비정해지리라 결심하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죄책감이었다.
스스로 걸어가는 길이 옳은지에 대한 의문과, 더 잘해 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최선의 선택을 내렸다고 스스로 위안하며 나아갔다.
허나 그로 인한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그로 인한 허망함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없는 실의에 빠진 유월천에게 유서하의 한마디는 너무도 고마운 것이었다.
최선을 다한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눈물이 날 정도로 큰 위로가 되어 주었으니까.
“너는 지난날 나의 행동들이 옳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무턱대고 아버지를 비난하기보다는 돕고 싶어요. 잘못된 행동으로 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저와 나눠요. 그런 게 가족이잖아요.”
유월천은 뭉클한 심정을 속으로 감췄다. 믿음직한 자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유월천은 가벼운 어조로 농담을 던졌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자식 농사 하나는 잘 지었구나.”
유월천과 유서하는 동시에 눈웃음을 지었다. 부녀지간임을 증명하듯 두 사람의 미소는 닮아 있었다.
잠시 뒤에 유월천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정말 괜찮은 것이냐?”
여태까지 유서하가 유월천의 뜻을 반대했던 적은 단 한 번.
진무량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토록 반대하던 혼인까지 수락할 정도였으니, 진무량의 대한 유서하의 마음이 어떤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와 반대로 유서하는 씁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니요.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아요.”
언제부터인가 진무량과 함께 있는 사실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그를 볼 수 없다는 현실을 인지했을 때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진무량을 연모하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그 마음은 이미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음도 깨달았다.
허나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진무량을 찾을 수는 없었다.
유월천과의 약조도 한몫했지만, 더 결정적인 이유는 진무량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무림맹과 얽힌다면 진무량의 신변이 위험해질 터.
분명 진무량과 만나선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나, 마음은 도저히 진무량을 잊을 수 없었다.
당장 눈을 감으면 그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의 목소리는 물론 작은 몸짓까지 선명하게 그려졌다.
애써 잊어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괜찮은 척하고 있는 것뿐이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괜찮아지겠죠.”
“…….”
유월천은 안쓰러운 눈길로 유서하를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유서하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약한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감싸 주지만, 정작 스스로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민폐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를 감춰 버리는 것이다.
침울한 분위기였던 유서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목소리를 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우선은 구중련과 일전에 집중해야 해요.”
유월천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대답했다.
“네 말이 맞다. 너를 선발대의 합류시킬 테니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여라. 선발대는 백령이 직접 통솔할 것이니,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 주거라.”
* * *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장내. 그곳에는 수백 구의 시체가 가득 쌓여 있었다.
여기저기 널린 시체들에게선 두 가지 공통점이 보였다.
방금까지 살아 있었음을 증명하듯 뜨거운 피가 흘러나오고 있고.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갈가리 찢어진 상태라는 점이었다.
비릿한 혈향의 가득한 장내에 정중앙에는 구중련주 담무흔이 우뚝 서 있었다.
사대신마인 호율의 경악스러운 눈길이 담무흔의 신형을 쫓았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처참한 시신으로 변한 이들의 정체는 마교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귀갑철마대(鬼甲鐵馬隊)였다.
튼튼한 갑옷으로 중무장한 그들은 한때 마교의 방패라고 불렸을 정도였다.
그런 귀갑철마대 전원이 덤볐으나 담무흔은 혈혈단신으로 그들을 격파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귀갑철마대를 완전히 압살해 버렸다.
수백의 귀갑철마대를 상대하면서도 담무흔은 작은 생채기조차 입지 않았다. 심지어 호흡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시신 속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귀갑철마대원이 담무흔을 향해 달려들었다.
“죽어라!”
담무흔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작게 중얼거렸다.
“같잖군.”
담무흔이 움직이려는 순간,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짤랑짤랑.
소리는 호율의 양손에 찬 금팔찌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단숨에 일장을 가해 귀갑철마대원을 날려 버렸다.
담무흔이 호율을 흘겨보며 말했다.
“불필요한 짓을 하는군.”
“구경만 하는 것이 지겨워 한번 나서 봤습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용서해 주십시오.”
호율은 담무흔을 향해 극진한 예를 표했다.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담무흔의 초월적인 무(武)였다.
담무흔이 천군위를 쓰러뜨렸을 때부터 느꼈던 경외심은 결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실제로 관찰하면 할수록 그의 힘이 두렵게까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담무흔을 보고 있자면 절로 무인으로서의 이상형이 떠올랐다. 그 정도로 그는 작은 동작부터 시작해 모든 움직임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담무흔이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됐다. 그보다 여도강이란 놈의 행방은 찾지 못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찾을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대부분 마교의 세력들은 담무흔의 밑으로 들어왔으나, 그렇지 않은 자들도 더러 존재했다.
이제는 사라져 버린 귀갑철마대도 그 중 하나였다. 그들은 번번이 구중련의 명을 따르지 않았다.
담무흔은 본보기로 삼을 좋은 기회로 여겨 귀갑철마대를 직접 쓸어버린 것이다.
구중련의 뜻에 반대하는 세력들 중에서 가장 거슬리는 자가 바로 파운신검 여도강이었다.
천군위의 호위무사였던 여도강. 은밀히 그를 지지하는 마교 무인들의 수가 제법 많았다.
여도강은 당장 처단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마교 내부의 정세를 빠삭하게 파악하고 있다 보니 쉽게 찾아낼 수 없었다.
“찾으면 보고하도록.”
담무흔은 여도강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의 존재는 거슬리는 벌레일 뿐. 언제든 보이면 죽여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담무흔이 교주전으로 돌아가려 할 때, 구중련의 연락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머리를 깊이 숙인 채 담무흔에게 소식을 전했다.
“교주님. 노군께서 전사하셨다는 소식입니다.”
담무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단번에 험악해졌다.
“누가 감히 적무혁을 죽였단 말이냐?”
담무흔의 기세에 눌린 연락책은 침을 꿀꺽 삼킨 뒤에 보고를 이어 갔다.
“귀혈악인 진무량입니다.”
“으음……!”
분명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신마회의 때 마교에서 도망친 사대신마가 분명했다.
진무량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적무혁이 생전에 그를 경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따위 놈이 어떻게 적무혁을……!’
의아한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강호 무인 중에서 정면승부로 적무혁을 당해낼 수 있는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담무흔의 노한 음성이 울렸다.
“진무량의 대해 자세히 파악한 뒤에 따로 보고하거라.”
오랜 시간 곁을 보필했던 적무혁의 죽음은 담무흔을 분노케 했다.
눈치를 살피던 호율이 입을 열었다.
“제가 당장 영사문으로 가서 진무량을 잡아오겠습니다.”
담무흔은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아니.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우선 무림맹을 철저하게 두드리는 게 우선이다.”
사사로운 복수보다 대의를 이루는 것이 우선이었다. 처절한 응징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조금만 기다려라. 내 직접 진무량이란 놈과 영사문을 무너뜨려 너의 넋을 달랠지니.’
담무흔이 물었다.
“비천검문을 무너뜨릴 계획은 순조롭겠지?”
“그렇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는 어조로 호율이 말을 이었다.
“곧 검선이 죽었다는 소식이 강호에 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