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93화 (93/143)

93화. 두 번째 만남

2018.02.22.

불같은 분노도 잠시. 애써 평정심을 찾은 몽원양은 기감을 넓혀 주변을 살폈다.

그는 사대신마의 일인이자, 마교의 모든 정보를 다루는 철혈부의 주인.

쫓기는 입장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모습을 드러낸 진무량에게 다른 의도가 있음을, 몽원양은 단번에 간파해 낸 것이다.

몽원양은 곧 근방을 빠르게 벗어나는 중인 멸천대의 움직임을 감지해 냈다.

“수하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일부러 우리를 유인한 것이냐?”

“그렇다.”

의도가 들켰음에도 불구하고 진무량은 전혀 움츠러드는 기색이 없었다.

“내 의도를 알았다면 수하들에게 멸천대를 쫓으라고 명령해야 할 것 아닌가?”

“…….”

가뜩이나 주름진 몽원양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진무량의 당당한 태도가 말하는 바를 몽원양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모인 철혈부원들이 멸천대를 쫓으러 가는 순간, 자신을 죽이겠다는 의지의 표현.

“어리석구나. 수하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위험에 빠지다니.”

진무량은 몽원양을 비롯한 철혈부원들을 돌아본 뒤에 입을 열었다.

“별로 위험하지 않은 것 같은데?”

“건방진 놈……!”

몽원양은 깊은 분노를 그대로 표현했다. 허나 진무량은 그런 태도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진무량 또한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 같은 분노를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디찬 목소리로 진무량이 물었다.

“왜 마교를 배신했지?”

몽원양, 감천기, 호율. 자신을 제외한 사대신마의 배신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이 마교를 위해 싸웠다면, 제아무리 구중련이라 한들 이렇게 쉽게 마교를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몽원양이 대답했다.

“큰 착각을 하고 있구나. 나는 처음부터 구중련의 사람이었다. 뜻을 이루기 위해 마교에 잠입하고 있었을 뿐이지.”

“…….”

“감천기와 호율을 끌어들이는 건 어렵지 않았느니라. 어차피 천군위의 천하가 오래가지 못함은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게다가 노쇠한 그 몸뚱이로 천하일통은 꿈도 못 꿀 노릇이지.”

“……그것이 이유인가?”

“결정적인 이유는 련주님의 존재이니라. 그분께선 여태까지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무의 경지에 도달하신 분.”

또렷한 목소리로 몽원양이 말을 이었다.

“결국은 모두가 강자를 따르기 마련이지 않은가.”

“…….”

“대세는 정해졌다. 자네도 과거를 모두 잊고 우리를 따른다면 내 련주님께…….”

“헛소리 지껄이지 마. 난 네놈들과 다르거든.”

몽원양은 가소로운 듯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가소롭구나. 네놈은 뭐가 다르지? 스스로를 특별하다 여기는 게냐?”

“우선 난 수하들을 죽인 놈에게 함께하자고 권유하는 성질이 못 돼. 내 사람을 건드린 죄는 반드시 물어야 하지.”

파바바밧!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진무량의 신형이 몽원향을 향해 쏘아졌다.

실로 한줄기 빛과 같은 속도. 어느새 주변을 가득 메운 철혈부원들조차 순간적으로 진무량의 움직임을 놓쳤다.

나아가는 속도를 이용한 진무량의 일격이 몽원향을 향해 떨어졌다.

챙!

간신히 진무량의 움직임에 반응한 몽원양은 검집으로 염옥창을 받아 냈다.

손에 쥔 염옥창으로 몽원양을 짓누르면서 진무량이 말했다.

“그리고 난 너처럼 아무에게나 넙죽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

부르르르.

진무량이 누르는 힘을 이기지 못한 몽원양의 몸이 떨려왔다. 진무량의 일격을 받아 내는 건 성공했으나, 그의 힘을 견디기는 버거웠다.

챙!

결국 몽원양은 염옥창을 흘려 낸 뒤 뒤로 몸을 날려 진무량과 거리를 벌렸다.

진무량은 제자리에 꼿꼿이 선 채 비틀거리는 몽원양을 쏘아보았다.

“가서 네 주인에게 똑똑히 전해. 감히 내게 검을 겨눈 대가는, 구중련이 모두 몰살당하는 것으로도 다 갚을 수 없을 거라고.”

“네 이놈이……!”

진무량은 아득바득 소리치는 몽원양에게서 신형을 돌렸다.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돌려 말했다.

“분하면 내 뒤를 쫓아와 봐. 그럼 어떻게 되는지는 몸으로 직접 알려 주지.”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진무량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주변에 있던 철혈부원은 즉시 몽원양을 향해 다가갔다.

“즉시 추격하겠습니다.”

“놓아 주거라. 더 이상의 피해를 입을 수는 없다.”

여기 모인 철혈부원만으로 진무량을 추격하기는 무리였다. 애초에 그가 내공을 잃었다는 전제하에 추격대를 편성한 것이었다.

현 상태로 괜히 어설프게 진무량을 쫓는다면 추격대가 전멸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또한 그를 쫓기 위해선 자신 또한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

어차피 진무량은 무림공적으로 낙인찍힌 몸. 마교를 벗어난다 해도 그를 받아 주는 곳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무림맹에서 알아서 처리해 줄지도 모르는 일.

내공을 잃었다면 모를까, 온전한 진무량을 상대하면서 굳이 철혈부가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

게다가 철혈부원들은 앞으로 무림맹과 전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 더 이상의 피해를 입을 수는 없었다.

분명 최선의 선택이었으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찝찝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몽원양은 불만스러운 어투로 수하들을 향해 외쳤다.

“모두 돌아가자!”

* * *

진무량의 추격에 실패한 몽원양은 구중련주 담무흔을 찾아갔다.

몽원양의 자세한 보고를 들은 담무흔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실패라…….”

몽원양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저의 실책입니다.”

천천히 고개를 든 몽원양은 담무흔의 곁에 있는 적무혁을 쏘아보았다.

“놈이 내공을 되찾았다는 사실만 미리 알았다면 결코 실패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만을 내보이는 몽원양을 향해 적무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놈이 내공을 되찾았다는 사실은 나도 이제야 알았소.”

“확실치 않은 정보면 입 밖에 내질 말았어야지. 덕분에 내 수하들을 많이 잃었소.”

“그래서 그대의 실책이 내 탓이라는 것이오?”

적무혁과 몽원양에게서 사나운 기세가 흘러나왔다. 허나 담무흔이 입을 여는 순간, 그들의 기세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만. 이미 놓친 놈을 두고 실랑이 벌일 필요 없다.”

적무혁과 몽원양은 조용히 담무흔의 말을 경청했다.

“이제부터 철혈부는 무림맹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도록 하라. 두 번의 실패는 용서하지 않겠다.”

“명심하겠습니다.”

담무흔은 가볍게 턱짓을 했다.

“그럼 이만 가 보거라.”

“알겠습니다.”

몽원양이 밖으로 나가자, 실내에는 담무흔과 적무혁, 두 사람이 남았다.

담무흔이 적무혁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그대는 지금부터 사파의 동향을 살펴 주게.”

적무혁은 심각한 어조로 되물었다.

“아직 정식으로 교주 취임식도 치르지 않았습니다. 벌써 거사를 시작하시려는 것입니까?”

“모두 그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겠지. 그러니까 한발 먼저 움직일 것이다.”

미리 대비하고 있는 상대를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다. 그에 비해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상대를 쓰러뜨리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다.

모두 얌전히 눈치만 살피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 이때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혀 버리면 상대는 대비는커녕 쓰러진 몸을 추스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담무흔이 말했다.

“무림맹 쪽에도 미리 손을 써 두었다. 그대도 준비를 마치는 즉시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해 두도록.”

“알겠습니다.”

“구중련이 천하로 나아가는 첫 발판이다. 실패는 용납하지 않는다.”

“맡겨 주십시오.”

* * *

유월천은 유서하를 데리고 문도들과 함께 비천검문에 도착했다.

목표로 했던 유서하를 되찾아왔으나, 비천검문 내에 분위기는 그다지 좋아지지 않았다.

완전히 변해 버린 유서하의 모습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언제나 환하게 웃음 짓던 그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수일 동안 방문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심지어 음식도 거의 입에 대지 않으니 유월천의 시름은 점점 깊어졌다.

결국 유월천은 깊은 고민을 가장 친한 벗인 장백령에게 털어놓았다.

유서하의 행동에 대해 전해 들은 장백령은 혼란스러움으로 인해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러니까 정말 서하가 진무량을…….”

“그래, 내게 덤벼들 정도였으니 그 감정이 가볍지는 않은 것 같네.”

장백령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역시 안 되겠지?”

유월천의 의도를 짐작한 장백령이 버럭 화를 냈다.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겐가! 진무량에게 서하를 넘기는 건 하늘이 두 쪽 나도 안 돼!”

“농담이었네. 나도 자네와 같은 생각이야.”

“지금 자네가 농담이나 할 때인가?”

역정을 내는 장백령을 향해 유월천은 씁쓸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럴 때가 아님은 나도 알고 있네. 나의 업을 내 자식이 받는 것 같아 괴로워서 그런 게야.”

“자네…….”

“서하의 혼처를 좀 알아봐 주게. 자네가 직접 찾은 혼처라면 믿을 수 있지.”

한풀 수그러든 어조로 장백령이 대답했다.

“별로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네만.”

“서하도 잠시 흔들렸을 뿐일 게야. 곁에 다른 사람을 두면 해결될 걸세.”

장백령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답답한 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네는 이제부터 어쩔 생각인가?”

“우선 무림맹으로 가 볼 생각이네. 맹주께 밝혀야 할 사실도 있고, 구중련에 대해서도 대책을 세워 봐야지.”

장백령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때 밖에서 비천검문 문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주님. 천기자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감긴 것처럼 보이던 유월천의 한쪽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안 그래도 천기자의 방문이 늦어져 걱정하던 참이었다. 구중련의 암어를 풀어내고서 꽤나 시간이 흘렀으나, 그에게서 연락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문 밖을 바라보며 유월천이 말했다.

“어서 들이거라.”

그때 장백령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는 이만 가 보겠네.”

“굳이 자리를 피해 줄 필요 없네. 자네도 면식이 있지 않은가.”

“나도 생각할 것이 좀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네.”

장백령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천기자가 방문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유월천이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마음이 바뀐 줄 알았네. 이렇게 찾아와 줘서 고맙네.”

“먼 길을 떠날 준비를 하려니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리더군. 이해하게, 난 자네처럼 날아다니지도 못하잖은가.”

“그럼 나는 날아다니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럼. 내 집을 떠날 때 아주 훨훨 날아가더구먼.”

두 사람은 동시에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지.”

진지하게 변한 어조로 천기자가 말을 이었다.

“여기서 마교의 일은 전해 들었네. 놈들이 결국 일을 벌였더군.”

“그 때문에 무림맹의 가 볼 생각이야. 우선 내가 아는 것들만이라도 맹주께 전할 생각이네.”

“흠…….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네.”

유월천이 의문을 나타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당장 구중련이 마교를 장악했다고 해도 무림맹은 움직이지 않아. 애초에 무림맹은 마교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잖은가.”

“그들은 결국 무림에도 검을 겨눌 거야. 마교를 수중에 넣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걸세.”

천기자가 냉정한 어조로 대답했다.

“진정하게. 그건 어디까지나 자네의 추측이지 않은가.”

“자네는 내 추측이 틀릴 거라 보는가?”

“그런 의미가 아닐세. 자네의 언변만으로 무림맹이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뿐이야.”

대답이 없는 유월천을 향해 천기자가 말을 이었다.

“무림맹은 거대한 집단이네. 사소한 일로는 움직이지 않지. 무림맹을 움직이려면 구중련이 확실히 무림을 노린다는 사실을 증명해야만 하네.”

유월천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천기자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동안 생각을 정리한 유월천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자네의 생각은 뭔가?”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어쨌든 구중련 놈들이 무림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려 한다면 반드시 어딘가 흔적을 남길 걸세. 우선 그 흔적부터 찾아야겠지.”

유월천의 목소리에 시름이 담겼다.

“그리 쉽게 흔적을 남길 놈들이 아니야.”

“그렇더라도 당장 할 수 있는 최선은 놈들을 조사하는 걸세. 우리가 먼저 전쟁을 일으킬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유월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천기자의 뜻을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마음에 닿지는 않았다. 그러니 답답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유월천을 바라보던 천기자는 곧 주섬주섬 봇짐에서 짐을 꺼냈다. 이윽고 따로 짐 속에 챙겨 온 찻잎을 유월천을 향해 내밀었다.

“철악산에서 어렵게 구한 찻잎이네. 마음이 심란할 때 끓여 드시게. 도움이 될 걸세.”

천기자가 건넨 찻잎을 받으며 유월천이 감사인사를 전했다.

“고맙네.”

“친우의 성의를 봐서라도 꼭 끓여 드시게. 귀한 것이라 구할 수도 없는 거란 말일세.”

“알았네. 내 꼭 챙겨 먹겠네.”

천기자가 믿음직한 자태로 말을 꺼냈다.

“그럼 당장 구중련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지. 내가 직접 돕겠네.”

* * *

항상 똑같이 흐르는 것이 시간이라지만, 여느 순간 세월은 순식간에 흘러 버린다.

유유히 흐른 시간 속에서 담무흔은 정식으로 취임식을 치러 마교 교주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은 점차 무림을 향해 발톱을 내보일 준비를 진행해 나갔다.

그 준비가 끝나갈 때쯤, 한 사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내의 이름은 진무량.

모습을 드러낸 곳은 사파의 중심부에 위치한 영사문이었다.

평소와 달리 영사문으로 통하는 대문에서 묘한 긴장이 감돌았다.

펄럭!

몰아치는 바람결에 휘날리는 붉은 망토. 피처럼 붉은 적포를 걸친 그는 사파의 지존이라 불리는 묵위현이었다.

“그래, 모진 풍파를 겪은 멸천대의 대주가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건가?”

진무량은 말 위에 앉아 묵위현과 그 주변에 선 수백 명의 영사문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덤덤한 목소리로 진무량이 대답했다.

“일단 들어가지. 지금부터 말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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