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91화 (91/143)

91화. 이별

2018.02.15.

교주전 내에 위치한 거대한 의자. 그것은 오랜 세월 마교의 교주만이 자리할 수 있었던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구중련주 담무흔은 그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교주전에 자리 잡은 담무흔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던 적무혁이 입을 열었다.

“마교의 주인이 되신 기분이 어떠십니까?”

“특별한 감정 같은 건 없구나. 그저 칙칙한 암실보다 조금 나은 정도다.”

적무혁은 진한 실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저는 교주전에 자리한 련주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합니다.”

구중련은 천하를 떨게 할 힘을 지녔음에도 언제나 음지로 숨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펄펄 끓어오르는 야심을 속으로 감추며 웅비의 때를 기다려 왔다.

그리고 마침내 담무흔이 마교를 손에 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음지를 떠돌며 죽어 간 선조들의 한. 그들의 원통함을 깊이 이해하는 적무혁은 더욱 가슴이 뭉클할 수밖에 없었다.

등받이에 기댔던 머리를 떼며 담무흔이 물었다.

“마교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놈들은 없는 것이냐?”

“아직까지 특별히 눈에 띄는 세력은 없습니다. 여태 마교에 몸담았던 놈들이니, 힘의 논리를 잘 받아들일 것입니다.”

힘이 곧 정의가 되는 곳이 바로 마교. 천군위를 쓰러뜨린 담무흔을 향해 감히 반기를 드는 세력은 없었다.

게다가 사대신마들 또한 담무흔을 지지하고 있으니, 감히 헛된 마음을 품기조차 어려운 실정이었다.

싸늘한 목소리로 담무흔이 말했다.

“마교 놈들도 우선 상황을 지켜보는 것일 게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돌아서겠지.”

“따로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그런 놈들을 굴복시키는 거야 간단하지 않겠느냐? 마교 내에 명망 높은 세력들을 쓸어버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모두 본련의 사람들로 대체하거라.”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죄 없는 마교의 무인들이 수없이 죽어 나갈 테지만, 특별히 문제될 부분은 없었다.

마교의 실권을 잡은 이상, 그럴듯한 명분은 얼마든지 지어 낼 수 있을 터.

또한 앞으로 구중련의 계획을 방해하지 못하게 할 사전작업이기도 했다.

공포는 불만을 참게 하는 법. 쓸데없이 입 놀리는 놈들을 조용하게 하는 방법으로는 폭력만 한 것이 없다.

담무흔의 시선이 적무혁을 향했다.

적무혁은 앞으로 자신의 수족이 되어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교 내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직위가 필요할 터.

“사대신마의 자리가 하나 비었다고 들었다. 우선 널 사대신마로 임명하마. 정식적인 절차는 내 교주 승계가 끝나면 그때 하도록 하지.”

적무혁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래, 헌데 요새 왜 이렇게 얼굴 보기가 힘든 것이냐?”

“좀 거슬리는 놈이 일이 있습니다. 련주님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귀혈악인으로 불렸다던 그놈 때문인 게냐?”

“그렇습니다.”

순간, 적무혁의 인상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직접 무공을 전수한 추격대를 진무량을 잡기 위해 투입시켰다. 당연히 위치를 찾아낼 수 있다고 여겼으나, 돌아온 결과는 추격대의 전멸이었다.

‘수십 년간 내 명을 따랐던 추격대를 감히……!’

그들은 모두 오랜 시간 단련된 무인들. 다시 한번 그들과 같은 수준의 추격대를 편성하는 건 힘들었다.

담무흔이 말했다.

“쓸데없는 일에 너무 열 올릴 필요 없다. 귀혈악인이라 해 봤자 그냥 거슬리는 존재일 뿐이지 않느냐?”

진무량은 무림공적으로 낙인찍힌 신세. 마교를 벗어나면 그를 받아 줄 만한 문파는 거의 없을 터.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지녔다고 한들, 혼자서 마교까지 수중에 넣은 구중련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련주님의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다만 진무량에 대한 추격은 제 선에서 끝까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현 상황에서 진무량의 존재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그는 유서하의 연주가 없으면 내공조차 운용하지 못하는 몸이지 않은가.

허나 그를 놓쳤다는 보고를 들은 뒤부터, 수시로 원인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사대신마들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했다. 수시로 수하들을 보내 진무량의 행방을 물어 왔으니까. 진무량을 아는 자들은 모두 원인 모를 불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 자체가 이미 위험요소를 뜻하는 바. 하여 적무혁은 진무량을 미리 제거해 둘 요량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지. 놈에 대한 추격은 네게 일임하겠다.”

지금까지와 달리 담무흔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허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구중련의 대업이다. 그것만은 절대 잊지 말거라.”

마교를 수중에 넣는 데까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번번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손해는 천군위와의 격전 중에 입은 부상이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을 터. 그렇다면 당장 문제되는 것들을 모두 직접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썩 마음에 드는 과정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교를 수중에 넣었다.

구중련의 대업. 강호인이라면 꿈꾸는 염원이자 야망. 천하일통의 뜻을 반은 이룬 셈이다.

“구중련의 대업은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 * *

미리 파견해 둔 비천검문 일행은 마교의 영역으로 이어지는 곳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정확히 그들이 위치한 장소는 진무량이 마교를 벗어날 때 이용할 도주로였다.

지금까지 마교에서 파악한 정보와 진무량의 행적을 통해 유추. 미리 이동할 만한 도주로를 차단해 놓은 것이었다.

인근에 배치된 문도들을 통솔하는 역할을 맡은 사내는 견무겸.

그는 비천검문에서 보내온 전서구를 통해 서찰을 확인한 후, 남궁지를 찾아갔다.

남궁지는 견무겸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무슨 일인가? 비천검문에서 무슨 연락이라도 온 것인가?”

“그렇습니다. 곧 문주님이 도착할 예정이라 합니다. 언제 마교의 영역으로 돌입할지 모르니, 저희도 미리 준비를 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세가의 무인들에겐 내 전하도록 하지.”

견무겸이 걱정이 담긴 어조로 물었다.

“지금까지만 해도 과분할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시는 게…….”

“섭섭하군. 자네도 나를 손님 취급하는 것인가.”

유서하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비천검문으로 달려온 남궁지이다.

허나 장백령은 그를 함께 싸울 동료가 아닌, 손님으로 대했다. 남궁세가의 대공자인 그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여 남궁지는 견무겸을 따라 마교의 영역으로 향했다. 스스로 유서하를 도울 방법을 찾아서 행동한 것이었다.

실제로 남궁지를 비롯한 남궁세가의 무인들은 비천검문의 큰 도움을 주었다.

마교 내의 정보를 파악함과 동시에 진무량의 행적을 알아내는 것까지. 모두 남궁세가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궁지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작은 목소리를 냈다.

“아니면 이제 필요 없어졌으니 돌아가라는 뜻인가…….”

화들짝 놀란 견무겸이 서둘러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찌 제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교의 영역으로 돌입하면 위험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니 돌아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농담이었네. 너무 그렇게 정색하지 말게.”

남궁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은혜를 갚기 위해 비천검문을 찾은 것이네. 위험이 두려웠다면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았겠지.”

“…….”

“그러니 내 걱정은 말게. 검선께서 곧 도착하신다 하니 서둘러 준비를 끝내 놓겠네.”

“알겠습니다.”

견무겸과 헤어지려는 순간, 남궁지의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놀란 눈길로 한참 동안 시선이 멈춰 있던 남궁지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유 소저께서 어찌…….”

남궁지의 반응에 의아함을 느낀 견무겸이 고개를 휙 돌렸다.

남궁지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을 바라보자 견무겸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커졌다.

그곳에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유서하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씨!”

견무겸은 그간에 쌓였던 걱정을 털어내듯이 큰소리로 외친 뒤, 서둘러 유서하를 향해 다가갔다.

당황한 견무겸은 차마 유서하를 향해 말을 걸지 못했다. 그런 그를 향해 유서하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무겸.”

“아, 아니 아가씨께서 어찌……?”

유서하는 놀란 견무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곳에 오게 된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진무량과 헤어진 유서하는 비천검문 일행이 있는 곳을 향해 출발했다.

정확한 위치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멸천대원들이 나눈 대화를 통해 대략적인 위치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서하는 그 근방을 샅샅이 수색했고, 곧 비천검문 무인을 만나 견무겸을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설명을 끝낸 유서하가 견무겸을 향해 물었다.

“혹시 아버지도 여기 오셨어?”

“지금 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지금쯤 도착하셨을지도…….”

“그럼 아버지께서 계신 곳으로 가자.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어.”

견무겸은 유서하와 함께 문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현실이 믿기지 않는지, 얼이 빠진 상태로 유서하를 안내했다.

유서하가 비천검문 무인들과 인사를 나눌 틈도 없이 유월천이 도착했다.

늘 웃는 표정을 보이던 유월천마저도 유서하를 발견했을 때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서하는 곧 유월천과 독대를 청했고, 두 사람은 인적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유심히 유서하를 살피던 유월천이 먼저 말을 꺼냈다.

“다친 데는 없어 보이는구나. 헌데 왜 이렇게 수척해진 것이냐?”

“저는 괜찮아요. 아버지께 걱정을 끼쳐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네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 괜찮다. 마교로 가게 된 이유도 견무겸을 통해 대충 전해 들었다. 놈이 멸천대를 이끌고 나타나 협박했을 터이니, 너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너무 괘념치 말거라.”

“아버지의 생각과 다른 점이 있어요. 우선…….”

유월천이 유서하의 말을 잘랐다.

“자세한 사정은 본문에서 듣도록 하마. 문도들과 먼저 돌아가거라. 난 따로 처리할 일이 남아있다.”

유월천이 돌아서려 하자, 유서하가 그 앞을 막아섰다.

“따로 처리할 일이 뭔가요?”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유서하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유월천을 바라보았다.

“진무량을 해치러 가는 거겠죠. 그렇다면 제가 신경 써야 할 일이예요.”

유서하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유월천은 구중련의 야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결코 마교를 수중에 넣은 것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구중련과 전쟁을 준비해야 했다. 당연히 앞으로는 쉼 없이 바쁜 나날의 연속일 터.

그 전에 진무량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 놓을 생각이었다.

비천검문에 앙심을 품었을 테니, 그가 이제부터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른다. 화근의 싹은 기회가 있을 때 미리 잘라 놓아야 하는 법.

유월천은 감긴 것처럼 보이는 한쪽 눈을 살짝 치켜올렸다.

“내가 놈을 죽이는 것과 네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냐?”

유서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진무량은 제 목숨과 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 해칠 생각하지 마세요.”

유월천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

“방금 말한 그대로예요. 마교로 가게 된 것도 진무량의 협박이 아니라 제 의지였어요. 그리고 아버지가 진무량에게 새긴 금제도 제가 직접 풀어 줬어요.”

“뭐라고? 네가 어떻게 금제를……?”

“이제 아버지도 진무량을 쉽게 죽일 수 없어요. 그러니까 같이 비천검문으로 돌아가요.”

“아니, 그렇다면 기회가 있을 때 더더욱 진무량을 처리해야겠구나. 무슨 짓을 했기에 네가 이런 말을 하는지도 놈에게 직접 들어야겠다.”

유월천은 가로막는 유서하를 지나쳐 걸어갔다. 유서하는 제자리에 멈춘 채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가 끝내 이렇게 가시겠다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아요.”

발걸음을 멈춘 유월천은 뒤를 돌아 유서하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뜻이냐?”

“그동안 아버지가 강호에 거짓 소문을 퍼트린 것. 그리고 그동안 진무량을 이용해서 하려고 했던 일까지 모두 무림맹에 전하겠어요.”

“뭐라고?”

“힘으로 절 막을 생각이라면 제 장례를 치르셔야 할 거예요.”

“허세가 늘었구나. 넌 그렇게 하지 못해.”

“아버지께서도 이 말을 들은 이상, 진무량을 쫓지 못할 거예요.”

“…….”

유월천은 우뚝 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유서하는 유월천을 향해 다가가 손을 붙잡았다.

“이제부터 아버지 앞에서 진무량이란 이름을 올리지 않을게요. 두 번 다시 그를 찾지도 않겠어요.”

유서하는 붙잡은 유월천의 손을 간절하게 움켜쥐었다.

“부탁드려요. 더 이상 진무량을 쫓지 마세요. 그 사람이 없으면…… 저도 죽어요.”

유월천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굳게 닫혔던 입을 열었다.

“……알았다. 허나 두 번 다시 진무량을 찾지 않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또한 비천검문으로 돌아가는 즉시 네 혼처를 알아볼 것이다. 거부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거라.”

“……알겠어요.”

순순히 대답하는 유서하의 모습을 보며 유월천은 가슴에 무거운 돌을 얹은 기분이었다.

지금껏 유서하는 한사코 혼인만은 반대해 왔다. 그녀에게 있어서 결코 결정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

이 모든 걸 진무량을 구하기 위해 수락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다.

허나 이렇게까지 말하는 딸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

유월천은 결국 자신의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준비하거라. 비천검문으로 돌아갈 것이다.”

* * *

홀로 남은 진무량은 저 멀리 보이는 마교의 본산, 십만대산을 바라보았다.

“…….”

적무혁은 수하들을 풀어 끈질기게 진무량의 위치를 추적하는 중이었다.

진무량은 무리하게 포위망을 빠져나가기보다 우선 마교 내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을 선택했다. 우선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야 올바른 대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진무량은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등가휘와 천군위의 죽음까지도.

진무량은 옆구리에서 술통을 꺼내 거꾸로 돌려 들었다.

투두두둑.

술통에서 떨어진 술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당장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 이런 날 절대 용서하지 마.”

천군위와 등가휘 그리고 멸천대원들. 모두 자신이 강했다면 지킬 수 있는 자들이었다. 내가 나약했기에 그들이 죽은 것이다.

허나 미안한 마음은 가질 수 없다. 지금 그들을 애도하기 시작하면 틀림없이 무너져 버릴 테니까.

많은 사람을 잃었고, 또 떠나보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그들이 간절히 바라던 것을 이뤄 주는 것밖에 없다.

살아남는 것. 그리고 남은 멸천대를 지키는 것. 마지막으로 구중련의 존재 자체를 지워 버리는 것.

여태까진 그다지 의미 있는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 구체적인 목적도 그렇다고 간절히 원했던 것도 없었다.

수없이 검을 겨루면서 얻었던 희열. 무참하게 상대를 학살했듯이 언젠가 자신도 그렇게 죽을 거라 여겼다.

끝없는 허무한 삶의 반복. 허나 이제 더 이상 그런 삶을 살 수는 없게 돼 버렸다.

확고한 뜻을 세웠고, 간절히 바라는 것도 생겼다.

술통에 술이 다 떨어졌는지,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았다.

진무량은 그대로 술통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지금은 떠나지만 곧 다시 돌아올 거야. 장례는 그 다음에 성대하게 치러 줄게.”

마교. 구중련. 무림맹. 그 누구도 진무량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격변을 겪는 마교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진무량의 존재를 잊었다.

구중련은 그저 진무량을 거슬리는 존재로 여길 뿐. 마교를 다스리고 천하로 나아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림맹은 급변하는 마교의 동향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여 이때까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이제부터 진무량이 내딛는 걸음마다 천하가 요동치게 될 것이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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