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과거의 꿈 (1)
2017.12.03.
깊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허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잠들기 전에 봤던 객잔의 모습이 아니었다.
황량한 느낌의 광야.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거라곤 메마른 들판뿐이었다.
뒤이어 몸이 붕 뜬 것 같은 감각이 느껴졌다.
그 순간, 진무량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로 익숙한 그 느낌은, 과거의 순간들을 비추는 꿈을 꿀 때만 느껴지는 독특한 감각이었으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다리가 쉼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내리막길이 끝나는 곳에서 급히 멈춰 서자, 눈앞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마교의 교주 천군위, 그리고 전 멸천대주 추일풍(秋一風)이었다.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결코 잊을 수 없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만나게 됐군.”
진무량의 앞에 나선 쪽은 추일풍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진무량은 열 살 정도 되는 소년이었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험악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추일풍은 마치 타이르듯이 말했다.
“꼬마야, 다치기 싫으면 어서 비키거라.”
진무량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두 사람의 앞을 떡하니 막은 채 대답했다.
“이렇게 만나기까지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순순히 비킬 순 없지.”
“그게 무슨 뜻이더냐?”
“내가 그쪽을 만나게 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뜻이오.”
아무런 배경도 없는 열 살짜리 꼬마가 마교 교주의 앞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귀곡신성을 찾아오는 시간만 일 년이 걸렸다. 그동안 가장 기본적인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구하는 것 자체가 더없는 고난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간신히 눈을 붙였다. 그나마 겨울에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두 시진 이상 잔 적이 없었다.
먹을거리 따위는 꿈에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식사를 한 것이 아니라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씹으며 연명해야 했다.
귀곡신성의 도착해서는 남의 것을 훔쳤다. 그렇게 밑천을 마련하여 사기를 쳤고, 점차 더 많은 은자를 모았다.
언제나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도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조금이라도 판단이 느렸거나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지금쯤 뒷골목에서 시체로 썩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모은 은자들은 전부 천군위의 행방을 찾는 데 사용했다.
마교 교주의 행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정보조직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나마 파악한 것이라 해 봐야 아주 단편적인 정보뿐이었다. 그러나 진무량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것일지라도 천군위의 대한 것이라면 모조리 파악했다.
그렇게 하나씩 쓸모없는 소문을 쳐내고, 작은 정황들을 모아서 천군위의 일정을 예측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역경이 토대가 되었기에, 지금 천군위 앞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묵묵히 서있던 천군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냐?”
진무량의 대답은 단호했다.
“무공을 배우고 싶소.”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
“그저 정점에 오르고 싶은 것뿐이오. 최고를 바라는 것에 이유 따위 있을 리 없지 않소.”
“허허.”
당돌한 진무량의 모습은 천군위로 하여금 절로 웃음 짓게 했다.
천군위가 근래에 했던 선문답 중에서 가장 유쾌한 대답이었다.
최고가 되고 싶음에 이유 따위가 왜 필요하겠는가.
진무량에게서는 오랫동안 마주할 수 없었던 젊음이 느껴졌다. 마치 투박하게 타오르는 불꽃을 보는 기분.
그 감정이 싫지 않았다. 마치 유년시절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 같았기에.
진무량에게 천군위가 말했다.
“최고가 되고 싶기에 내게 무공을 배우고 싶은 것이라면, 네 생각은 틀렸다.”
“그게 무슨 뜻이오?”
“내 말의 의미를 모르면 더 이상의 문답은 의미가 없느니라. 또한 지금의 넌 단순히 떼를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 않느냐.”
위엄이 흐르는 목소리로 천군위가 말을 이었다.
“우선 나와 당당히 마주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거라. 그런 뒤에 나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때 네 제안을 생각해보마.”
진무량과 천군위의 강렬한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좋소. 당신의 말에 따르겠소.”
진무량의 대답을 듣고, 천군위는 추일풍을 불렀다.
“이 아이는 네가 맡거라. 그리고 저 아이가 스스로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 만한 그릇인지 한번 파악해 보거라.”
“교주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그 순간, 갑자기 지독한 두통이 느껴지면서 눈앞에 모든 것이 흐려졌다.
‘크윽!’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질적인 두통이었다. 분명히 꿈에서 깨어날 때 느껴졌던 감각이 아니었다.
진무량조차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 감각은 더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 때 느껴지는 것이었다.
점차 꿈을 꾸고 있다는 의식마저 사라져갔다. 그러고는 완전히 과거의 꿈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질끈 감은 두 눈 사이로 환한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환한 빛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뜨게 되니 방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맑은 호수였다. 그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그 동안 흐른 시간을 증명하듯 많이 변해 있었다.
어렸을 적과 달리 키가 훌쩍 커 있었고 몸에는 단단한 근육이 붙어 있었다.
특히 흘깃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느낌을 주는 매서운 눈매는 언제나 그러하듯 가장 돋보였다.
“그럼 시작해볼까.”
진무량의 신형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그가 가로로 창을 휘두르자 거대한 폭발이 일면서 호수의 물이 넘쳐흘렀다.
철썩!
진무량은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더 높은 경지로 오르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추일풍에게 처음 무공을 배웠을 때부터 진무량의 무공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
성심을 다한 추일풍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흡수한 덕분이었다. 거기에 일반적인 사고방식과 다르게 무공을 해석하는 재능이 합쳐지자, 진무량의 무공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또한 멸천대와 함께 숱한 전장을 돌아다니며 경험을 쌓았으니, 무공을 익히는 데 부족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끝없이 높은 경지를 밟아가던 중 한계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진무량은 스스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스으으으.
휘몰아지듯 거칠게 움직였던 창의 움직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진무량의 주변에서 묵천심법의 흑색 기운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한 단계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누군가의 가르침이 아닌,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밖에 없음을 진무량은 여실히 느꼈다.
무리하게 마공을 끌어올리자 서서히 의식이 멀어져갔다.
본능이 귓가에서 속삭였다. 여기서 억지로 마공을 운용한다면 심마의 빠지게 되리라는 것을.
마공을 익힌 무인으로서 진무량 또한 심마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늘 그것이 두려워 여기서 내공의 운용을 멈췄었다.
허나 진무량은 마공의 운용을 멈추지 않았다.
‘이대로 제자리걸음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스으으으으으!
이내 몸속에 잠재된 마공을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의식이 점점 옅어지는 만큼, 그 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은 본능이었다.
지극히 원초적인 파괴 본능은 눈앞에 있는 것들을 흔적도 없이 부수기를 원했다.
점차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움직였다.
역설적이게도 의식은 점차 옅어졌으나, 그와 반대로 감각은 점차 날카로워졌다.
선선한 공기의 흐름. 흩날리는 나뭇잎이 떨어지면서 들리는 소리. 손끝에서는 쥐고 있는 창의 나뭇결까지 모두 섬세하게 느껴졌다.
이내 의지를 벗어난 몸은 중심을 뒤쪽으로 기우리면서 옆구리의 창을 단단하게 밀착시켰다.
그 모습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기수식이었다.
변화는 찰나의 순간에 일어났다.
후우우욱!
진무량은 발을 앞으로 내딛음과 동시에 옆구리에 밀착시켰던 창을 일직선으로 뻗었다.
수없이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상적인 찌르기. 그의 전신에 흘러넘치던 마공은 창의 움직임에 따라 완벽하게 움직였다.
촤아아아아악!
쏘아진 강기는 호수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처음 창을 휘둘렀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파괴력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물이 사방으로 튀면서 순간 호수가 절반으로 갈라졌다.
실로 놀라운 무공에 놀랄 겨를도 없이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머릿속에 내재된 파괴본능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외쳐대는 것 같았다.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힘.
‘그렇다면 마공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폭주하기 시작한 마공은 거스르려 할수록 도리어 미쳐 날뛰었다. 그렇기에 진무량은 마공의 흐름을 읽고 자연스레 몸을 내맡겼다.
콰앙! 펑!
본능에 따라 수없이 허공에 창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묵색강기가 허공을 수놓았다.
그렇게 내력을 모두 소진해 숨이 다할 때까지 심마가 이어질 것 같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흐름에 따라 움직이던 마공들은 진무량이 내력을 모두 소진하자 자연스럽게 폭주를 멈췄다.
곧 진무량은 자신의 몸을 의지대로 가눌 수 있게 되었다.
콰악.
허나 그것도 잠시, 진무량은 바닥에 창을 꽂은 채 휘청거리는 몸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심마에서 벗어났으나, 이미 한계 이상의 내력을 소진한 상태였다.
그는 연신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지만,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조소를 짓고 있었다.
심마에 빠질 위험을 각오하고서 얻고 싶었던 것은 더 높은 경지로 다다르는 길이었다.
당장 내력을 모두 소모할 뻔한 위험을 감수한 만큼, 결과는 확실했다. 분명히 심마의 저편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는 좀 위험했군.’
이미 한계를 넘어선 몸 상태는 손끝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정도였다.
털썩.
결국 진무량의 신형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 * *
정신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희미한 향기였다.
익숙한 피비린내와 정반대인 그 향은 묘하게 이질적이었다. 뒤이어 바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최소한의 경계태세라도 취하려 했으나, 아직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일어나셨군요.”
들려온 것은 가냘픈 여인의 목소리였다.
진무량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 몸은 바람이 불면 휘청거릴 것처럼 가냘팠다.
의복 또한 수수하여 특별히 꾸민 흔적이 전혀 없었다. 허나 그런 점이 오히려 여인에게 더 큰 매력을 가져다주었다.
꾸미지 않은 그 모습은 순수함을 그대로 드러냈고, 연약한 인상은 뭇 사내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아직 제 소개를 안했군요. 전 추연희라고 해요.”
진무량은 추연희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만난 것은 처음이지만, 멸천대 내에서 가끔 언급되는 대화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추연희에 대한 주제가 나올 때면 언제나 근심 섞인 걱정이 뒤를 이었다. 멸천대주의 하나뿐인 여식인 추연희의 병세 때문이었다.
그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한 병을 앓고 있었다.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의원들에게 모두 진찰을 받게 했지만, 그 누구도 추연희의 질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그녀를 진찰했던 의원들은 모두 같은 의견을 냈다.
이대로라면 추연희는 결코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절명하리라는 것이었다.
진무량을 향해 추연희가 말했다.
“진 소협이시죠? 가끔 아버지께서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이오?”
“언제나 훌륭한 활약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특히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은 앞으로 멸천대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도 하셨죠.”
진무량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비웃음을 지었다.
“너무 좋은 내용들만 추려서 말하는 것 아니오? 그보다 나에 대한 험담을 훨씬 많이 했을 텐데.”
“그것도 맞아요.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아서 늘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더군요.”
“쳇, 역시 뒷담화를 실컷 하셨군.”
진무량은 가벼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뭐, 굳이 자세히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소. 내 앞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했던 잔소리일 테니까.”
추연희는 희미한 웃음을 지은 뒤 진무량을 향해 물었다.
“아버지께서 저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하지 않으셨나요?”
진무량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사실은 알고 있소.”
“역시 알고 계셨군요…….”
추연희는 내심 진무량이 자신의 병세에 대해 모르고 있기를 바랐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게 되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그런 면이 고마울 때도 많았지만, 가끔은 동정어린 시선들이 부담스러웠다.
허나 진무량에게서는 특별히 걱정하는 기색이나, 안쓰러워하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인지, 잠시 대화를 했을 뿐인데도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추연희는 솔직한 진무량의 생각이 알고 싶어졌다.
“진 소협께서는 불치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깊이 생각해본 적 없지만, 그렇게 대수로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소.”
전혀 생각지 못한 답변에 추연희가 재차 물었으나, 진무량의 대답은 단호했다.
“전혀 특별한 것이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소.”
검을 쥐고 사는 무인이든, 그게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죽는 순간을 알 수 없다.
불치병에 걸렸다고 한들 마찬가지다. 예정됐던 순간보다 더 먼저 숨이 끊어질지, 혹은 그 후에도 멀쩡히 살아있을지는 닥쳐오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죽는 순간까지 원하는 삶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잠깐의 침묵 속에서 추연희는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은 불치병이라는 그늘에 숨어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불치병이라는 훗날 닥쳐올 미래를 걱정하느라, 당장 눈앞의 현실에서 도망쳐 왔던 것이다.
스스로를 외면하고 사실을 알게 되자, 여태껏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깨달을 수 있었다.
진무량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약간 저리기는 했지만, 당장 몸을 움직이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중요한 약속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소.”
떠나려는 진무량에게 추연희는 진심으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언젠가 꼭 다시 뵙고 싶네요.”
그때는 지금처럼 무기력한 모습이 아닌, 더 당당한 모습으로 다시 한번 진무량을 마주하고 싶었다.
* * *
다음날 진무량이 향한 곳은 귀곡신성 내에서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교주전이었다.
수없이 많은 무인들이 교주전을 중심으로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으나, 막상 천군위를 대면하는 장소에서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슬쩍 둘러본 교주전의 모습은 웅장함 그 자체였다. 눈에 뵈는 것들은 모두 거대했고,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화려함을 담고 있었다.
뒤이어 위엄 있는 걸음걸이로 천군위가 교주전 내부로 들어왔다.
오직 마교의 교주만을 위한 공간이어서 그런지, 주변에 모든 것들이 천군위의 위용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드넓은 교주전 내부에서 진무량은 천군위를 홀로 마주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너를 만난 것이 한 십 년 정도 전이었던가.”
십 년 전에 아주 잠깐 봤던 어린아이와의 만남. 평범한 이들이라면 쉽게 잊었을 그 순간을 천군위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진무량이 말했다.
“……나를 기억하고 있소?”
“그래, 그 건방진 말투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느니라.”
“내 말투가 거슬리시오?”
“아니. 네게는 굳이 마음에도 없는 존대를 듣고 싶지 않구나.”
진무량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며 천군위가 말했다.
“그래, 내게 할 말은 없는 것이냐?”
“멸천대가 마교로 귀환하고 있음을 알리러 왔소.”
“내 묻는 의도가 그것이 아님을 알고 있을 텐데.”
어느새 진무량의 바로 앞으로 다가온 천군위가 다시 한번 물었다.
“십 년 전에 내가 했던 질문의 답을 찾았는지 묻는 것이다.”
수만 명의 고수들을 거느리고 있는 현 마교의 통치자인 천군위가 바로 눈앞에 있었으나, 진무량은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이내 그는 등 뒤의 창을 뽑아들며 천군위를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
“직접 확인해보시겠소?”
“하하하하!”
천군위는 실로 오랜만에 입 밖으로 웃음을 내뱉었다. 이렇게 웃었던 적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한껏 웃어젖힌 뒤 천군위가 말했다.
“그래, 무인에게 시답잖은 대화는 필요치 않지. 그래서 검을 통해 네 생각을 말하려는 것이냐?”
진무량은 당장 대답하는 대신에 마공을 끌어올렸다.
스으으으으.
점차 흩날리는 시작한 묵색강기를 몸에 두른 채 진무량이 대답했다.
“바로 그렇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