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재회 (2)
2017.11.02.
죽은 줄만 알고 있었던 진무량의 등장은 백소객잔에 머물던 멸천대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나마 먼저 냉정을 되찾은 연시우는 우선 혼란에 빠진 멸천대를 진정시킨 뒤, 다시 한번 진무량과 마주 앉았다.
진무량과 연시우,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았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진무량이었다.
“어떻게 멸천대가 이곳에 있는 것이냐?”
거듭 생각해봐도 쉽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마교에 알리기는 했으나, 실상 그 뒤로는 어떤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당연히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을 터. 갑자기 나타난 연시우와 멸천대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진무량의 물음에 연시우가 대답했다.
“저는 대주께서 살아있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이곳에 모인 멸천대는 모두 대주의 복수를 위해 비천검문을 찾아온 것입니다.”
“마교에서 아무런 연락도 취하지 않았더냐?”
“그렇습니다. 아마도 마교에는 저희가 출발한 뒤에 그 소식이 전해진 듯합니다. 저희는 마교에서부터 추방당한 몸이기 때문에…….”
연시우는 말끝을 흐렸다. 마교에서부터 추방당했다는 비보를 진무량에게 전하자니, 문득 면목이 없어진 것이다.
순간 연시우의 뇌리에 마교를 떠나면서 등가휘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대주라면 결코 자신의 복수를 막지 않을 것이라 여겼으나, 등가휘의 생각은 그와 정반대였다.
연시우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주께서는 제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여기십니까.”
진무량은 평소 연시우의 성정으로 미루어볼 때, 이곳까지 오게 된 과정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진무량은 별다른 감정을 내보이지 않고 묵묵히 대답했다.
“세상에 옳은 선택 따윈 없어. 그걸 판단해줄 사람은 당연히 없고.”
“그렇다하더라도 대주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어쨌든 넌 진정으로 복수를 원했으니까 비천검문을 찾아온 거잖아.”
“……그렇습니다.”
“그거면 됐다.”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는 진무량의 반응에 연시우는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잊은 것이냐. 애초에 내가 만든 멸천대의 규율은 하나뿐이다.”
신념대로 행동하고 원하는 것을 이뤄라.
멸천대에서 진무량이 정한 단 하나의 규율이 바로 그것이었다.
“네 신념대로 행동했으면 된 것이다. 마교의 남은 놈들도 마찬가지. 각자 멸천대의 규율을 지키고 있다면 뭘 하든지 상관없어.”
피식.
연시우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웃음을 감췄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진무량의 등장을 믿을 수 없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시간이 길어서인지, 아니면 너무 갑작스럽게 만난 탓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눈앞에 현실을 끝없이 의심했다는 것이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방금 문답을 통해 눈앞에 사내가 자신이 알던 멸천대의 대주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덤덤한 어조로 진무량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다만 멸천대가 모두 모여 있지 않다면, 앞으로의 일이 쉽지는 않겠구나.”
연시우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 즉시 대답했다.
“비록 이곳에 있는 멸천대가 백여 명 정도이지만, 대주께서 함께하시는데 누가 감히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 있겠습니까?”
막상 진무량에게 질문을 하고보니, 연시우는 그동안 묻지 못했던 궁금증이 한 번에 일었다.
진무량이 살아있었다면 마교로 돌아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제아무리 정파의 영역에 있었다고는 하나, 진무량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 터.
진무량이 죽었다고 믿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과거의 나였다면 별로 고민할 거리가 아니었겠지. 허나 지금 나는 내공을 사용할 수 없는 몸이다.”
진무량의 대답에 연시우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연시우를 향해 진무량은 혈마옥에 갇히고 난 뒤에 겪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목숨을 버릴 각오로 비천검문을 찾아온 멸천대에게 진무량은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진무량이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경위와 검선의 의도를 설명할 때, 연시우의 몸에서 극도로 진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유월천…….”
연시우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연시우는 아무리 크게 분노한다 하더라도 결코 겉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분노한 감정을 품고, 결코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진무량이 말했다.
“검선과는 내가 반드시 결판을 지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내상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야.”
“마교로 돌아가실 생각이십니까?”
“그게 최선의 방법이겠지.”
허나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멸천대의 인원이었다.
비천검문 인근에 멸천대를 모두 집합시킨다고 해도 기껏해야 삼 할 정도. 무엇보다 멸천사성 중 연시우를 제외한 세 명의 공백은 엄청난 전력의 손실이다.
은밀히 움직인다면 어떻게든 무림맹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교.
혈마옥에 갇힌 삼 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다고 볼 수 없다.
그 시간 동안 마교 내부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터.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을 키운 세력들도 꽤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애초부터 마교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인 진무량을 견제하는 세력이 훨씬 더 많았다.
진무량이 마교로 돌아오려 한다면, 힘을 키운 그들이 결코 좌시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추방당한 멸천대를 이용한다면 명분 또한 확실하니, 당장 덤벼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멸천대라면 분명 그의 대응할 수 있겠으나, 그에 따른 피해 또한 각오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막기 위해서는 결국 힘이 필요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강호는 결국 강한 자를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허나 내상을 입은 지금의 상태로는 절대적으로 힘이 부족했다.
거듭된 생각을 끝낸 진무량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인근의 지도를 가져와라.”
“생각하신 바가 있으십니까?”
“…….”
진무량은 잠시 동안 아무런 말도 잇지 못했다.
마교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정확히 언제 내공을 되찾게 될지는 기약할 수 없다.
마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들의 해결법. 그리고 내공을 되찾을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
그 모든 것을 이뤄줄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해답은 쉽게 나왔지만, 결코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비천검문을 떠나려 할 때 그토록 망설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인근에 장소로 멸천대를 모두 집합시킬 것이다.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멸천대를 대기시켜 놓아라.”
허나 이제는 정말 행동으로 나서야 할 때였다.
묵직한 어조로 진무량이 말을 이었다.
“마교로 데려갈 여인이 있다.”
* * *
진무량이 멸천대의 집합장소로 삼은 곳은 비천검문과 반나절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작은 동산이었다.
그곳은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었다. 그나마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주변에 버려진 폐가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전혀 특별할 것 없는 동산으로 모인 이유는, 마교로 향하는 가장 빠른 경로가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비천검문 인근에서 각자 몸을 숨기고 있던 멸천대가 도착하기 전, 진무량은 미리 약속된 장소에 자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야트막한 언덕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연시우는 곧바로 진무량을 향해 다가갔다.
“멸천대에게 즉시 모이라는 뜻을 전했습니다. 지금쯤 대주께서 살아계신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연시우는 문득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차가운 표정을 유지했다.
각자 은신처에 대기하고 있던 멸천대는 아직 대주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주가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쯤 꽤나 놀라고 있겠지.’
직접 눈앞에서 보면서도 쉽게 믿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멸천대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연시우가 보고를 이어갔다.
“또한 통행패와 지도 모두 비천검문 내부로 보내두었습니다.”
“……그래.”
가만히 진무량을 바라보던 연시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주께서 이렇게까지 고민하시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오랜 시간 진무량과 함께 숱한 사선을 넘어온 연시우이다.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진무량이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숱한 위기에 몸소 뛰어들 때도,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들 정도의 고문을 일삼는 순간에도 진무량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본 것은 단연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
진무량은 조용한 침묵으로 대답을 피했다. 이내 진무량이 화제를 바꿨다.
“그래,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본 소감은 어떠냐?”
“처음에는 좀 신기했습니다만, 뭐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실 진무량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대주가 어떤 길을 걷든 그 뒤를 따를 것이기 때문에.
실로 단순한 연시우의 반응에 진무량은 가볍게 조소를 지었다.
“별로 생각할 필요도 없고, 부관이라는 직책은 꽤나 편해 보이는군.”
“그리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머리가 편한 만큼 몸이 힘드니까요.”
“고작 그 정도로?”
연시우는 장난스러움이 묻어나는 어투로 말했다.
“섬뜩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십니다.”
도저히 살 길이 보이지 않는 곳들을 진무량과 함께 수도 없이 뛰어들었다. 그런 것이 고작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목숨이 수천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진무량과 연시우, 두 사람은 동시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금세 웃음을 지운 진무량은 신중한 어조로 연시우를 향해 말했다.
“마교 내부로 전서구를 보낼 방법은 어떻게 찾았느냐?”
마교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 뒤, 진무량이 가장 먼저 연시우에게 내린 명령은 마교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다시 마교로 돌아가는 것에 있어서 진무량은, 마교 내부와의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곧바로 연시우가 대답했다.
“믿을 수 있는 대원들을 선별하여 근처에 있는 마교의 지부로 보냈습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대주의 뜻을 마교에 전할 방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진무량이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일단 마교로 돌아갈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마친 셈이다.
“그래. 이제 기다리는 것만 남았구나.”
* * *
정오가 가까워 오는 시각.
견무겸이 초조한 어투로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아가씨 진무량이 돌아와야 할 시각이 지났습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서하는 계속해서 침묵을 지켰다.
차분한 유서하와 달리 견무겸은 불안한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가 걱정하는 점은 유서하의 냉정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총명한 사람일수록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냉정함을 잘 유지하기 마련이다.
허나 유서하는 총명하면서도 쉽게 냉정해지지 못했다.
언뜻 보면 유서하의 약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서하의 그런 면모를 어떤 재능보다도 높게 평가했다.
강호에서 협력과 믿음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불신과 의심만이 채워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모두 함께 취할 수 있는 이득을 저버리고서라도, 자신의 부귀와 출세만을 쫓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약자를 위해 희생하는 걸 세간에서 어리석다고까지 표현할 정도였다.
그런 비정한 강호에서 유서하는 언제나 선뜻 남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득과 실을 두고 정확히 가리는 냉정한 판단만으로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유서하의 그런 면모 덕분에 언제나 그녀의 곁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곤 했다.
냉정한 판단만으로는 결코 이뤄낼 수 없는, 유서하의 강점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만약 유서하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면,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앞 다투어 유서하를 돕기 위해 나설 것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을 지닌 자는, 언제나 그렇듯 결국 천하를 움직이기 마련이다.
“후우우.”
그럼에도 견무겸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상대가 다름 아닌 진무량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만은 유서하의 가치가 통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견무겸의 깊은 한숨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초조하게 진무량을 기다리던 때, 밖에서 인기척과 함께 익숙한 비천검문 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잠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심란한 유서하의 심정을 알고 있기에, 견무겸이 대신 대답했다.
“무슨 일이오? 급한 용무가 아니면 나중에 찾아오시오.”
“아가씨의 통행패를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의아함을 느낀 유서하는 곧바로 문밖에 있는 비천검문 무인을 향해 말했다.
“들어오세요.”
곧 비천검문의 무인이 유서하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통행패와 함께 여러 번 접힌 종이를 유서하에게 내밀었다.
“비천검문의 대문 앞에 떨어져 있던 것입니다. 이 종이는 통행패 옆에 놓여있었는데, 근방이 그려진 지도였습니다.”
유서하는 통행패를 먼저 확인했다. 진무량에게 전해주었던 그 통행패가 확실했다.
유서하는 침착하게 비천검문의 무인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비천검문의 무인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확인한 유서하는 통행패와 함께 있던 지도를 확인했다.
다급한 마음에 견무겸은 유서하가 보고 있는 지도를 같이 살펴보았다.
지도에는 아무런 글귀도 쓰여 있지 않았다. 다만 비천검문과 적당히 떨어진 장소에 동그랗게 표시된 부분이 있을 뿐이었다.
견무겸은 지도를 보낸 진무량의 의도를 전혀 추측할 수 없었다.
“왜 이런 지도를…….”
“표시된 곳에 가보면 알게 되겠지.”
유서하는 곧 자신의 금을 챙긴 뒤, 견무겸을 향해 말했다.
“여기는 나 혼자 갈게. 그러니까 굳이 따라나서지 않아도 괜찮아.”
화들짝 놀란 견무겸이 빠른 속도로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따르겠습니다.”
유서하는 착 가라앉은 눈빛으로 견무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번만은 내 뜻에 따라줘. 이건 부탁이 아닌, 명령이야.”
견무겸은 여태껏 처음 보는 유서하의 완강한 태도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유서하는 견무겸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자신을 따라오지 말라는 뜻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밝혔다.
결국 견무겸은 유서하가 홀로 방문을 나서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
* * *
석양이 주변을 서서히 붉게 물들이고 있을 무렵. 유서하는 지도에 표시된 지점에 도착했다.
야트막한 언덕을 하나 지나고 나니, 곧 허름한 폐가가 보였다.
그리고 곧 유서하는 폐가 근처에 홀로 서있는 진무량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무량과 눈이 마주친 순간, 유서하의 시야에는 그를 제외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녀의 시선 속에는 오로지 진무량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진무량을 향해 유서하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왜 이곳으로 불러낸 거죠?”
유서하의 목소리는 아슬아슬하게 침착했다.
진무량이 쓸모없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갑작스러운 이번 행동에도 이유가 있을 터. 하여 유서하 또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온 것이다.
“네게 할 말이 있어.”
진무량의 말이 끝나는 순간, 대지가 신음하듯이 떨려왔다.
곧이어 사방에서 말발굽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무량은 마주한 유서하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기다리지는 않아도 되겠군.”
두두두두두.
말발굽소리가 점점 다가오더니, 이내 말을 타고 있는 멸천대 무인들이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내 백여 명의 멸천대원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마주하고 있는 진무량과 유서하를 중심으로 둥그렇게 모여들었다.
백여 명의 멸천대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포진하자, 마치 철벽의 대형을 갖춘 듯한 위용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멸천대의 중심에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진무량과 유서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