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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악무도-54화 (54/143)

54화. 악연

2017.10.08.

적무혁의 손끝에서 방출된 탄지공을 정면으로 맞은 사일성은 그대로 절명했다.

“뭐하는 짓이지?”

시신으로 변한 사일성을 바라본 진무량이 사나운 기세를 내뿜으며 말했다.

적무혁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이제는 쓸모없어진 쓰레기를 처리했을 뿐이네만,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구중련은 모든 권력을 무공의 서열로 나눈다.

사일성은 구중련 내에서도 분명 최고의 위치에 근접해 있었다.

허나 진무량에게 당한 순간, 그의 존재가치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사일성은 재기가 불가능한 부상을 입었다. 오른팔은 완전히 잘려나갔으며, 어찌어찌 부상을 치료한다고 하더라도 심각한 내상으로 인해 두 번 다시 본래의 무공을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사일성은 적무혁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진무량이 말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 네가 뭔데 내 일에 끼어드는 거냐고.”

적무혁이 누구인지, 어디서 무슨 짓을 하는 자인지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다만 자신의 승부에 허락도 없이 끼어든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적무혁의 반응보다 흥분한 엄성천의 대답이 빨랐다.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고는 당장에라도 튀어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며, 엄성천이 흥분한 목소리를 냈다.

“어디서 함부로 입을…….”

적무혁은 손을 들어 올려 엄성천의 행동을 저지했다.

“얌전히 있거라.”

엄성천은 황망하게 고개를 숙이며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엄성천이 다시 물러나자, 적무혁은 가볍게 웃음을 지으며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허허. 그리 생각할 줄은 몰랐군. 자네가 하는 일에 참견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네.”

진무량은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사일성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숨이 끊어진 사일성에 미련을 두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진무량은 눈앞에 있는 상대인 적무혁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적무혁을 파악하는 데 굳이 뛰어난 기감은 필요하지 않았다. 어린아이라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적무혁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내뿜었다.

“너 또한 구중련인가 하는 그곳 소속인가?”

진무량의 물음에 적무혁이 순순히 대답했다.

“그렇다네.”

“이쯤 되니 나도 구중련에 대해서 궁금해지는군.”

지금까지는 그저 유월천이 경계하고 있는 무리라고 여길 뿐이었다. 헌데 그들에 대해 알아갈수록 점점 의문이 일었다.

사일성이나 소천광 정도의 고수는 결코 쉽게 마주칠 수 없다. 굳이 따지자면 거대 문파의 장문인과 비견될 정도였다.

심지어 지금 마주하고 있는 적무혁은 그들을 뛰어넘는 고수였다.

그럼에도 구중련은 그 이름조차 강호에 알려져 있지 않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베일에 쌓여있는 곳.

적무혁이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서로 궁금한 것을 한 가지씩 묻고 대답해주는 것은 어떻겠나?”

“좋아. 그럼 내가 먼저 묻지.”

망설임 없이 진무량이 말을 이었다.

“구중련에 너와 비슷한 수준의 고수는 얼마나 있지?”

“꽤나 당황스러운 질문이군. 글쎄…… 거의 없다고 보면 될 걸세.”

“애매한 문답이나 주고받을 생각인가.”

적무혁은 수긍한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의 질문에 떠오르는 인물은 다섯 명 정도일세. 그러고 보니…… 그중에는 자네와 면식이 있는 자도 섞여있군.”

의미심장한 적무혁의 대답에 진무량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허나 그리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단순히 면식이 있는 자는 수없이 많다.

아무런 단서도 없이 적무혁의 대답만 듣고 그 상대를 찾아낼 수도 없을뿐더러, 적무혁의 말을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적무혁은 검은 턱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물을 차례군. 자네는 왜 내 제안을 거절한 건가? 자네의 행적을 조사했을 때, 마교에 그리 충의를 드러낼 부분은 없던데.”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러니까 제안을 거절한 자네를 더 이해할 수 없는 걸세. 굳이 스스로의 힘으로 원하는 걸 이룰 필요는 없지 않은가? 구중련으로 온다면 더 쉽고 간편하게 모든 걸 가질 수 있다네.”

적무혁이 달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있지 않은가. 부귀영화, 절세의 무공비급. 만약 아름다운 여인을 원한다면,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미인으로 수십 명이라도 구해주지. 그 외에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뭐든지 이루게 해주겠네.”

적무혁은 결코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일례로 사일성은 살육을 원했고, 구중련은 어렵지 않게 그 뜻을 이뤄주었다. 수없이 살육을 저지른 사일성의 존재를 강호에서 완벽하게 숨겨준 것이다.

“다시 물어도 내 대답은 똑같아. 일단 네가 말하는 것들 중에서 내가 필요한 건 하나도 없어.”

무심한 어조로 진무량이 말했다.

“재물은 능력이 있으면 알아서 따라오는 법이니, 그건 내게 필요하지 않아. 무공 역시 비급으로 이룰 수 있는 성취는 한참 전에 지났어.”

“…….”

“그 외의 것은 생각할 필요도 없군. 여인은 많을수록 거슬리기만 할 뿐. 여인은 진정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돼.”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을 언급했을 뿐이네. 자네가 다른 것을 원한다면…….”

“구중련의 련주 직을 내게 준다면 한번 생각해보지. 난 누군가에게 명령받는 걸 제일 싫어하거든.”

적무혁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자네와는 결코 뜻을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구먼.”

그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자신을 눈앞에 두고도 전혀 기죽지 않는 배짱이나 거침없는 성격, 모두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사일성을 꺾은 무공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겉으로 보이는 그의 나이를 감안하자면, 그의 잠재성 하나만 보더라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인재임이 틀림없다.

허나 그 어떤 제안에도 흔들리지 않으니, 정해진 답은 하나이다.

이대로 살려두었다가는 구중련의 대업에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법한 사내.

재앙의 불씨를 남겨둬서는 안 되는 법.

‘오랜만에 내 직접 나서야겠군.’

적무혁이 점차 기세를 일으키려 할 때, 주변에서 무언가가 신경을 건드렸다.

“언제까지 거기에 숨어있을 생각이오?”

허공을 향해 던진 적무혁의 말에 응답하듯, 대나무 그늘이 짙게 진 곳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노인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엄성천의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적포신군!’

펄럭이는 붉은 적포를 걸친 채 모습을 드러낸 노인은 묵위현이었다.

묵위현은 적무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숨어있을 생각은 없었소. 다만 잠시 확인할 것이 있어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오.”

적무혁은 진무량과 묵위현을 번갈아 보더니, 호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하를 호령하는 고수들을 동시에 보게 되다니, 참으로 기념할 만한 날이구려.”

적무혁의 태도를 아랑곳하지 않고, 묵위현은 계속해서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적무혁의 뒤로 물러나있던 엄성천은 곁에 있는 백살대원에게 눈짓을 보냈다. 적무혁에게 접근하는 묵위현을 경계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순식간에 다섯 명의 백살대원들이 묵위현의 앞길을 막아섰다.

걸음을 멈춘 묵위현은 깊은 분노가 실린 음성을 내뱉었다.

“감히 영사문의 의복을 걸치고 있는 놈들이 문주에게 예를 차리기는커녕…….”

노한 음성이 이어짐과 동시에 묵위현은 등에 걸치고 있는 적포를 휘둘렀다.

“앞길을 막아서겠다는 게냐!”

펄럭!

적포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바람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적포에 실린 날카로운 기운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커억!”

“크악!”

“으악!”

허공에 흩뿌려진 예기는 앞을 가로막던 백살대원들에게 정확히 적중했다. 그들은 짧은 단말마와 함께 그대로 절명했다.

묵위현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본 백살대원 전체가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는 적무혁을 지키기 위해 둥그런 대형을 만들었다.

적무혁은 애써 화를 참는 음성으로 주변의 백살대원들을 향해 말했다.

“분명……. 네놈들이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을 텐데.”

적무혁의 한마디에 모든 백살대원들은 곧바로 무기를 집어넣고 다시 뒤로 물러났다.

적무혁은 민망한 어조로 묵위현을 향해 말했다.

“수하들이 주제를 모르고 잠깐 까불었던 것 같소. 피차 추태를 보이게 된 것 같소만.”

묵위현은 살기 어린 눈동자로 영사문의 문양이 수놓인 의복을 입고 있는 백살대원들을 스윽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적무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이들을 이끄는 수장이 그대인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소?”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소.”

천연덕스럽게 대답한 후, 적무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들이 첩자라는 것이 밝혀진 이상, 그대와 더 할 말은 없소. 더 이상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 이만 물러가겠소.”

묵위현이 찢어진 눈으로 적무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누구 맘대로 물러가겠다는 것이오?”

묵위현은 당장에라도 달려들 듯이 맹렬한 기세를 내뿜었다.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며, 적무혁은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허허. 적포신군께서 착각하시는 게 있나 보오. 지금 이 자리에서 양보를 하고 있는 것은 그대가 아니오.”

그 순간 적무혁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쏟아져 나왔다. 너무나 강대한 그 살기는 묵위현마저 몸을 주춤거리게 만들 정도였다.

“상황파악은 제대로 하실 줄 아는 분으로 알고 있소만. 너무 조급해할 필요 없소. 우리의 앞길을 막아서려 한다면 머지않은 때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적무혁이 진무량과 묵위현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때는 아마도 강호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겠지.”

* * *

적무혁은 엄성천만 따로 데리고 성현골을 빠져나왔다.

남은 백살대원들은 숫자가 많았기에, 영사문의 추격을 대비해 해산시킨 뒤였다.

길을 걷던 중 엄성천이 적무혁을 향해 물었다.

“노군.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이냐?”

엄성천은 머릿속으로 진무량과 묵위현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각오하고서라도 그들을 죽이는 것이 낫지 않았겠습니까? 언젠가 화근이 될지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노군께서 직접 나서셨다면…….”

엄성천의 말을 자르며 적무혁이 대답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우리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풀리고 있거늘, 그 와중에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물론 진무량과 적무혁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모두 죽였을 것이다. 허나 따로 상대한다면 모를까, 그 둘을 동시에 상대하는 건 분명 위험부담이 있었다.

특히 진무량은 사일성을 꺾은 직후임에도 전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얼핏 몸 상태가 좋지 않아보였으나, 결전을 치른다면 결코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영사문이 우리의 존재를 알았으니, 앞으로 성가시게 굴지 않겠습니까?”

적무혁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으며 대답했다.

“영사문 따위가 움직이는 것이 신경 쓰이느냐? 그들이 움직인다 해도 무엇 하나 알아낼 수 없을 것이며, 달라지는 것은 더더욱 없을 게다.”

사파에서 최고로 꼽히는 영사문은 무림인들에게 있어 정점에 위치한 곳이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보이는 것일 뿐.

천외천.

평범한 자들은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하늘 밖의 하늘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구중련이다.

적무혁이 엄성천을 향해 말했다.

“영사문과 진무량은 일단 어떻게 움직이는지만 파악해 놓거라.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는지 조금 더 두고 봐야겠으나, 감히 구중련을 들쑤시려 한다면 그에 맞는 처우를 따로 내릴 것이다.”

“알겠습니다.”

적무혁의 눈빛이 한층 진지해지면서 천천히 말했다.

“언제나 우리의 뜻을 잊지 말거라. 그저 강호를 부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내 소싯적에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일이었느니라.”

단순한 파괴가 아닌 완전한 지배.

결국 천하는 구중련이라는 이름 아래 무릎을 꿇고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느니라.’

* * *

적무혁이 떠난 뒤에도 묵위현은 한참이나 그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굳은 듯이 멈춰 선 채로, 묵위현은 머릿속으로 적무혁의 모습을 끝없이 되새기고 있었다.

영사문 내에 첩자를 심고, 심지어 장로들을 살해하기까지 한 주범이 눈앞에 있는데도 손을 뻗지 못했다.

‘나도 늙은 것인가.’

어느 순간부터 몸이 먼저 움직이기보다는 머리가 먼저 생각을 하게 된다.

다시 한번 적무혁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지만, 역시나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목숨을 걸고 적무혁과 승부를 겨룬다 하더라도 승률은 오 할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허나 이대로 얌전히 물러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반드시 갚으며 살아왔던 삶.

이대로 당하기만 한 채 물러나는 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정면승부로 상대하기 어렵다면 다른 수를 쓰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복수를 이뤄내는 것이다.

묵위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주먹을 움켜쥐었다.

‘조용히 노년을 보내기는 글렀군.’

묵위현은 펄펄 끓는 눈빛으로 적무혁과 백살대가 떠난 장소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묵위현의 시선이 쓰러진 견무겸과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유서하에게 닿았다.

견무겸은 외견만 보더라도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경계를 취하고 있는 유서하를 향해 묵위현이 말했다.

“내가 잠깐 살펴봐도 되겠는가?”

갑작스러운 묵위현의 제안에 유서하는 주춤거렸다.

정파와 사파 사이에는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 이어져왔고, 유서하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사파 최고 고수 중 한 명인 묵위현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묵위현이 자신들을 적대하려 한다면 굳이 견무겸에게 접근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선공을 취하는 것이 훨씬 더 손쉬울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결국 유서하는 견무겸의 옆자리를 묵위현에게 내주었다.

“부탁드릴게요.”

무엇보다 견무겸의 부상이 너무 심각한 수준이었다.

외상도 문제이지만, 당장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내상이었다. 차마 함부로 손을 댈 수조차 없을 정도의 내상.

허나 묵위현 정도의 고수라면 내기의 흐름을 자신보다 훨씬 더 잘 꿰뚫고 있을 것이다.

묵위현은 견무겸의 손목을 잡아 맥박을 확인하는 것을 시작으로 천천히 진찰을 시작했다.

견무겸의 상태를 살핀 뒤, 묵위현이 입을 열었다.

“스스로 무리해서 내상을 입은 게로구먼. 몸 안에 쌓인 탁기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네. 이 정도라면…….”

묵위현은 내공을 집중시킨 손끝으로 견무겸의 이마부터 시작해서 중요한 혈자리를 하나씩 눌렀다.

손길이 향하는 곳은 모두 견무겸의 기혈이 막힌 곳이었다. 묵위현은 손끝으로 내공을 흘려보내 막힌 기혈을 손쉽게 뚫어냈다.

견무겸의 상태는 점점 호전되었다. 혈색도 점점 좋아졌고, 호흡도 놀라보게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묵위현은 다시 한번 견무겸의 상태를 확인한 후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시급한 내상은 바로잡아 놓았네. 외상이 심각하긴 하지만 당장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을 게야.”

유서하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이며 묵위현에게 정중하게 감사를 표했다.

“제 동료의 목숨을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묵위현은 무표정한 표정을 지으며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난 아무 이유 없이 남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는다네. 내가 호의를 베풀 때는,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받아내지. 이자를 살린 건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일세.”

“말씀하세요.”

“방금까지 이곳에 있던 자들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말하게.”

묵위현은 아직 구중련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들에 대한 정보를 가장 빠르게 알아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유서하에게 전해듣는 것이었다.

유서하 또한 구중련의 존재를 묵위현에게 숨길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묵위현이 구중련과 관련이 없다는 확신이 생겼다. 영사문과 묵위현 정도라면 구중련에게도 분명 위협이 될 수 있을 터.

보통의 경우 구중련에 대해 말하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믿지 않겠으나, 직접 적무혁을 목격한 묵위현은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음을 정한 유서하가 묵위현을 향해 말했다.

“알겠습니다. 설명해드리지요.”

유서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구중련에 대한 정보를 시작으로, 영사문에 오게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겪은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묵위현은 유서하가 하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경청했다.

꽤나 길었던 유서하의 설명이 끝나고 난 뒤, 묵위현은 한참동안 침묵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구중련이라……. 친절한 설명 고맙네. 덕분에 그들을 조사해 나갈 방향을 찾을 수 있게 되었어.”

그때 묵위현의 등 뒤에서 진무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볼일은 끝난 건가?”

묵위현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진무량은 계속 그를 경계하고 중이었다. 그는 아군이라 해도 신뢰를 하지 않는 존재. 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상황을 살피고 있던 것이다.

“저번에 만났을 때는 정확한 정체를 몰라 제대로 인사를 건네지 못했지.”

묵위현이 고개를 돌려 진무량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니 반갑네. 귀혈악인 진무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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