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기문진법
2017.09.28.
“그 방법이 뭔데?”
컴컴한 동굴을 은은하게 비추는 야명주를 바라보며 유서하가 대답했다.
“기문진법이에요.”
기문진법이란, 자연의 펼쳐진 음양오행을 이용해서 일종의 환각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주로 원하는 것을 숨기거나 적을 유인하여 가둬두기 위해서 사용되며, 수없이 다양한 기문진법이 강호에 존재한다.
진무량과 처음 만났던 혈마옥에도 기문진법이 펼쳐져 있었다. 누구보다 진무량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검선 유월천은, 혹시 모를 접근을 막기 위해 혈마옥 주변에 기관진식과 더불어 최고의 기문진법을 펼쳐놓았다.
제갈세가의 가주를 비롯해 진법이라면 최고라고 칭해지는 인재들이 모여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문진.
그런 진법을 홀로 파훼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진무량을 만났던 것이 바로 유서하이다.
유서하의 기문진법에 대한 식견은, 강호에서 진법으로 가장 유명한 제갈세가의 가주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진무량이 의심쩍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대도 그저 그런 놈들은 아니야. 네가 펼친 진법이 그들에게 효과가 있을까?”
“진법에 대한 식견이 없으면 제 아무리 고수라 하더라도 쉽게 파훼하지 못해요.”
게다가 진법을 펼칠 장소를 자신이 선택할 수도 있으니, 시간만 주어진다면 더욱 정교한 진법을 펼칠 수 있다.
기문진법은 목적에 따라 그 형태가 나뉜다.
뛰어난 진법은 내부로 들어온 자들의 목숨을 빼앗거나, 영원히 진법 안을 헤매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허나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단순히 진법 안으로 유인한 사일성과 소천광 그리고 백살대원을 흩어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유서하는 충분히 해낼 자신이 있었다.
진무량이 말했다.
“좋아. 일단 시험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것 같군. 일단 네가 펼친 진법을 한번 보고난 후에 다시 정하도록 하지.”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상대를 흩어지게 만드는 것뿐이에요. 나머지는…….”
유서하의 어조가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사일성과 소천광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직접 마주했던 그들은 결코 만만한 자들이 아니었다.
끝을 가늠할 수 정도로 광활하게 펼쳐진 강호속에서 검을 쥐고 사는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허나 숱한 무림인들 중, 사일성이나 소천광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일반적인 상식을 완전히 초월한 그런 고수들과 다시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크나큰 부담일 것이다.
“왜, 내가 겁이라도 집어먹었을까 봐?”
입가에 진한 조소가 걸리며 진무량이 말을 이었다.
“내게 있어 그들은 잠깐의 여흥거리일 뿐이야. 그들뿐 아니라 그 어떤 상대가 덤벼든다 하더라도 모두 똑같이 해당되는 사항이지.”
자연스레 유서하의 입가의 미소가 그려졌다.
진무량의 언변을 듣다보면 저절로 불안감이 사라진다. 말 속에 깊이 배어 있는 그의 자신감 때문일까.
패배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듯한, 절대적인 진무량의 자신감이 자신에게까지 전해져온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불안했던 감정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신감이 가득 찬다.
동굴 벽에 등을 기댔던 진무량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이제 슬슬 움직여야겠군.”
* * *
은신처로 삼고 있는 동굴을 빠져나온 진무량과 유서하는, 감각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채 주변을 살피며 주로 밤을 틈타 움직였다.
과연 진무량의 예상대로 영사문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오히려 점점 무인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사파의 무리들은 진무량과 유서하의 동선을 예측해서 수색을 하는 중이었다. 그들이 집중적으로 찾는 곳은 주로 정파 지역으로 향하는 길목이나 은신처로 삼을 수 있을 만한 장소들이었다.
허나 그들의 예상과 정반대로 진무량과 유서하는 버젓이 영사문이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윽고 영사문이 있는 곡아에 도착한 진무량과 유서하는, 마을 외곽 후미진 곳에 자리한 객잔의 당도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두 사람이 한 방으로 모였다.
진무량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우선 진법을 펼칠 만한 장소부터 찾아야겠군.”
유서하는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대답했다.
“이미 눈여겨 봐둔 장소가 있어요.”
유서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곡아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진법을 펼칠 만한 장소들을 유심히 관찰해왔다. 그리고 진법을 펼치기 최적의 장소 또한 이미 파악해놓았다.
“그럼 전 바로 출발하도록 할게요.”
유서하는 조금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당장 견무겸의 생사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구중련을 붙잡는 것이었기에, 더욱 서둘러야 했다.
“생사를 알 수 없는 호위무사가 걱정되는 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서둘러서는 안 돼.”
침착한 어조로 진무량이 말을 이었다.
“네가 펼친 진법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돼. 그렇다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거야.”
단호히 고개를 끄덕이며 유서하가 대답했다.
“꼭 명심하도록 하죠. 그래도 최대한 서두를게요. 사흘 내로 연락할 테니, 여기서 부상을 돌보면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 * *
객잔을 떠난 유서하는 곧바로 미리 봐두었던 장소로 향했다. 곡아로 오는 도중 눈여겨 봐두었던, 진법을 펼치기 용이한 장소.
그곳은 딱히 정해진 명칭은 없으나,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이 성현골이라고 부르는 숲이었다. 다만 평범한 숲이 아닌, 높이 뻗은 대나무로 이루진 곳이었다.
주변을 촘촘히 매우고 있는 대나무들은 잎사귀가 풍성했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곧게 뻗은 그 자태들은 자못 신비한 기운을 뿜어냈다.
울창한 대나무 잎사귀가 대낮에도 햇빛을 가로막아 그 주변은 음기로 가득했다. 수많은 장소들 중, 유서하가 성현골을 고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성현골을 살핀 유서하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건, 태, 이, 진, 손, 감, 간, 곤. 즉 팔괘와 그 중간의 방위를 뜻하는 구궁(九宮)을 기초로 진법의 방위와 크기를 가늠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유서하의 머릿속에는 이미 구궁음양진(九宮陰陽陳)을 응용한 기문진법이 하나씩 그려지고 있었다.
이내 유서하는 주변에 널려 있는 돌멩이를 하나 집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정확히 사흘의 시간이 흐른 후, 유서하의 연락을 받은 진무량이 성현골을 찾았다. 그는 유서하를 찾기 위해 어지러이 펼쳐진 대나무 숲 사이를 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서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곧은 자태로 뻗은 대나무에 몸을 기댄 채 앉아있었다.
사흘만에 만난 유서하는 많이 초췌해 보였다. 원래부터 가늘었던 몸은 더욱 야위었고,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척 보기에도 그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진무량의 시선을 느끼고 살짝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며, 유서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티 없이 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유서하의 아름다움은 감히 초췌해진 몰골 따위가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햇살마저도 유서하의 아름다움에 이끌린 듯, 그녀가 앉아있는 주변이 더욱 밝게 빛났다.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셨네요.”
유서하의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진무량이 말했다.
“모습을 보아하니, 기문진에 꽤 자신 있는 것 같군.”
“직접 보여드리죠.”
유서하는 곁에 있는 돌탑에서 돌멩이를 하나 집어 들었다. 사람의 발목 높이 정도로 쌓인 그 돌탑은, 그녀가 미리 쌓아둔 것이었다.
돌탑의 맨 위에 있던 돌멩이를 치우자, 곧바로 유서하가 펼친 구궁음양진이 발동했다.
진무량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유서하의 모습이 마치 지워지듯이 사라진 것이다.
“어때요?”
유서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나, 그녀의 목소리만은 또렷하게 들려왔다.
허공에서 유서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목소리도 충분히 감출 수 있어요. 지금은 일부러 제가 그렇게 하지 않은 거죠.”
“흠.”
진무량은 주변을 철저히 둘러보았다. 진법이라면 분명 파훼할 수 있는 생문이 존재할 터, 그것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그때 다시 한번 유서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궁음양진의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유서하의 말이 끝나자 주변 풍경이 묘하게 일그러지더니 점차 회색빛으로 변해갔다.
이내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대나무도 사라지더니, 하늘과 땅마저 모두 희뿌연 색깔로 변해버렸다. 그야말로 공간이 완전히 변해버린 것이다.
기이하게 변한 주변을 둘러보며 진무량이 말했다.
“이건 생각했던 것 이상인데.”
기문진에 대해서 그리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했으나, 비슷한 술수를 쓰는 자들을 몇 번 상대해본 경험은 있었다.
허나 그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조차도, 공간 자체를 변형시키는 기문진은 단연 처음이었다.
온통 희뿌연 공간 안에 있다 보니, 기본적인 방향감각마저 유지하기 힘들다. 진법을 파훼할 수 있는 생문을 찾는 일은 더욱 묘연해질 수밖에 없다.
뿌옇게 주변 공간을 메우고 있던 안개 같은 것이 일순 일렁이더니, 그 사이에서 유서하의 신형이 나타났다.
“어떤가요?”
유서하의 물음에 진무량은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 진법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는 얼마나 되지?”
“이곳을 중심으로 오십 장 정도예요. 그 주변으로 접근하는 자들은 모두 가둘 수 있어요.”
진무량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분명 훌륭한 기문진이기는 하지만, 구중련 놈들에게 통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이 정도로는 부족할까요?”
유서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진무량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다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군.”
유서하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정말 다행이네요.”
말을 끝마친 후, 일순 유서하의 신형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뿌연 회색빛이 가득한 일그러진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다시 대나무가 가득한 원래의 풍경으로 돌아왔다.
진무량이 말했다.
“좋아. 이제부터 원래 짜놓았던 계획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다음은 어떻게 움직일 생각인가요?”
“장소는 준비됐으니 이제 이곳으로 놈들을 유인할 미끼를 던져야겠지.”
“혹시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가요?”
유서하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아직 생사를 알 수 없는 견무겸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진무량 또한 유서하의 조급한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성가신 놈이었지만, 살아있다면 겸사겸사 구하도록 하지.”
진무량이 말을 이었다.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구중련 놈들에게 깨우쳐주면서 말이야.”
* * *
성현골을 빠져나온 진무량과 유서하는 죽립을 깊이 눌러쓴 채 은밀히 곡아의 거리를 걸었다. 이내 그들이 도착한 곳은 대보서(大寶書)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낡은 고서점이었다.
대보서의 외견은 허물어져 가는 건물, 그 자체였다.
벽은 세월을 견디지 못해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고,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현판마저 한쪽 귀퉁이가 부서져 사선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진무량과 유서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당장 무너져도 그리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대보서의 외견을 살펴보았다.
대보서라는 현판을 걸고 고서점처럼 위장했으나, 실제로 불리는 이름은 대보방. 그들은 정보를 취급하는 집단이었다.
강호에서는 정보를 사고파는 단체들이 존재한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기본적으로 정보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강호라는 곳은 은밀한 암투와 수없이 많은 비밀이 존재하는 곳. 그런 강호에서 정보는 아주 귀중한 가치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정보를 사고파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집단은 강호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 진무량과 유서하가 당도한 대보서는, 정보를 다루는 대보방이 은신처로 사용하는 장소였다.
진무량이 옆에 서있는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여기 있는 놈들,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파는 놈들이 확실한 거겠지?”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그래요.”
간혹 뛰어난 능력을 감추기 위해 일부로 허름한 외견을 보여주는 자들도 존재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찾아온 곳은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유서하가 영사문에 잠입하기 위해 정보를 사고파는 단체들을 접촉했을 때, 비슷한 일을 하는 여러 집단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능력이 없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곳이 바로 대보방이었다.
“근데 내가 왜 굳이 이런 곳을 택했는지 물어보지 않는군.”
진무량의 물음에 대보방을 바라보며 유서하가 대답했다.
“유명한 곳일수록 정보의 신뢰도가 높을 테고, 당신이 정체를 밝혔을 때 따르는 파장도 커지겠죠.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영사문에 흘러들어가기는 하지만 그들이 적당히 헛소리라고 생각할 정도의 소문일 테니까요.”
진무량이 유서하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너무 내 생각을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좀 무서운데.”
유서하는 진무량이 자주 했던 행동인, 어깨를 가볍게 들썩이는 것을 흉내 냈다.
진무량은 유서하의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내 진무량 역시 별로 상관없다는 듯 가볍게 어깨를 들썩인 뒤, 허물어져가는 대보방 안으로 들어갔다.
대보방의 내부는 외견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나무로 된 바닥은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괴이한 소리가 울렸고, 책장의 서책들은 전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실내를 가득 메운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진무량이 손을 내저었다.
“두 번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군.”
주변을 둘러보던 진무량은 곧 볼품없이 낡은 나무의자에 앉아 있는 사십 대 정도의 사내를 볼 수 있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의자에 앉은 채 진무량에게 말을 건넨 사내는 대보방의 주인이자, 이름은 금원(金原)이었다.
“의뢰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
금원은 진무량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서책에는 관심이 없으신 분 같고, 뭐 알고 싶을 것이라도 있소?”
“그런 건 아니고, 소문을 좀 내줬으면 하는 일이 있는데.”
금원은 노골적으로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일단 보여주는 금액을 보고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소만.”
유서하는 은자가 담겨 있는 주머니를 꺼내 보였다.
척 보기에도 은자가 가득 담겨있는 은자주머니를 확인하자, 금원은 표정과 말투가 싹 바뀌었다.
“아이고~ 제가 귀인들을 몰라 뵈었군요. 그 정도 은자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습죠. 어떤 소문이든 장안에 파다하게 퍼지게 만들어 드릴 테니, 말씀만 하십쇼.”
순식간에 달라진 금원의 태도에 당황할 법도 했으나, 진무량은 덤덤하게 할 말을 이어갔다.
“죽은 줄 알았던 무림공적, 귀혈악인이 성현골 근처에서 숨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뭐 이 정도면 돼.”
금원은 얼굴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 소문을 내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너무 현실성이 없는 일이라 사람들이 믿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건 상관없어. 못하겠으면 다른 곳에 부탁하고.”
금원은 들어 올린 양손을 수차례 휘휘 저으며 말했다.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성심성의껏 소문이 퍼져나가도록 만들겠습니다.”
“일을 잘 처리해준다면 다음엔 더 많은 은자를 들고 찾아올 테니, 각별히 신경 쓰도록 해.”
대보서를 나온 뒤, 유서하가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그다지 믿음이 가는 사람은 아니군요.”
“저 정도가 딱 좋아. 은자를 꽤나 밝히는 놈처럼 보였으니, 분명 일은 제대로 처리할 거야.”
진무량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진득한 살기를 띤 그의 시선이 향한 방면에는 영사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준비는 모두 마쳤다. 나머지는 기다리는 것뿐.
이제 더 이상 도망칠 필요도, 숨어야 할 이유도 없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끝을 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