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47화 (47/143)

47화. 의심

2017.09.14.

서걱.

은밀하고도 재빠른 검격이 한 사내의 급소를 정확히 베었다.

사내의 이름은 번횡. 그는 자신의 숨이 끊어진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듯, 허연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번횡을 살해한 이는 바로 백살대의 부대주 엄성천이었다.

“확실히 숨이 끊어졌군.”

엄성천은 번횡의 경동맥에 손가락을 대고서, 그가 숨이 완전히 끊겼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번횡은 영사문 연무장에서 유서하 일행의 정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였다.

물론 그가 유서하 일행의 정체를 밝히도록 뒤에서 모든 사전 작업을 한 것은 엄성천이었지만.

소천광의 명령에 따라 영사문 내부에 남은 엄성천은, 자신이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처리해 나갔다. 은밀히 잘못된 정보를 흘려서 비천검문 일행을 쫓고 있는 추격대를 혼란시킨 것이다.

허나 번횡을 죽인 것은 본래 계획된 일이 아니었다.

근래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많았기에 엄성천은 최대한 몸을 숨기고 싶었으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번횡을 죽여야만 했다.

영사문의 문주 적포신군 묵위현의 존재 때문이었다.

묵위현은 진무량의 추격을 지시하면서도 영사문의 장로들의 죽음을 따로 조사했다. 그리고 묵위현의 체계적인 지휘로 시작된 조사는, 엄성천의 예상보다 훨씬 치밀했다.

손을 놓고 있다가는 영사문 장로들을 죽인 자가 비천검문 일행이 아님을 알아내는 것은 물론, 백살대의 숨겨진 정체까지 드러날 판이었다.

하여 엄성천은 곧바로 번횡을 죽여 입을 막은 것이다.

그는 자신들이 기록한 유서하의 인상착의와 신상이 적혀 있는 서찰을 받은 자. 어떻게든 그 서찰이 드러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번횡을 죽이고 서찰의 존재를 지웠으니, 제아무리 적포신군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구중련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엄성천은 번횡의 피가 묻은 검을 검집에 꽂아 넣으면서 곁에 있는 백살대 무인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는 이곳에 남은 흔적들을 철저하게 지워라. 나는 이놈의 시체를 맡겠다.”

“알겠습니다.”

엄성천은 번횡을 죽인 뒤, 그를 행방불명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요인들의 연속된 암살은 영사문의 분노를 키울 것이다. 그러니 번횡을 적당히 행방불명으로 처리해놓고, 흘러가는 상황에 따라 대처할 요량이었다.

엄성천이 번횡의 시체를 옮기려던 찰나, 밖에 경비를 맡고 있던 백살대원이 긴급한 상황을 알렸다.

“부대주님, 지금 이곳으로 묵자강이 오고 있습니다.”

“뭣이?”

묵자강이 이 시점에서 번횡을 찾을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다. 묵위현의 명령을 받고 찾아온 것이리라.

‘빌어먹을! 벌써 냄새를 맡은 것이냐.’

번횡을 조사하러 왔다면, 미리 그를 죽인 것은 천만다행인 일이다. 허나 아직 뒤처리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상태.

묵자강이 오기 전까지 번횡을 죽인 흔적들을 모두 지우는 일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했다.

“제기랄.”

엄성천이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설프게 흔적을 지우는 것은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 일. 괜히 꾸물거리다가는 묵자강에게 뒤를 잡힐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 즉시 이곳을 벗어난다.”

* * *

영사문 내부 운치 있게 꾸며 놓은 정원. 그 가운데는 널찍한 정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적포신군 묵위현과 영사문의 총관이 마주 앉아있었다.

묵위현이 먼저 영사문의 총관을 향해 물었다.

“아직 비천검문 일행을 찾지 못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허나 주변 문파들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추격에 나서고 있으니, 곧 찾았다는 연락이 올 것입니다.”

묵위현은 가볍게 혀를 찬 뒤 다시 말을 이었다.

“흐음, 그렇다면 그들이 뇌옥을 어찌 빠져나갔는지는 확인했느냐?”

“저…… 그것이…….”

난처해하는 총관의 모습을 보며 묵위현이 가볍게 채근했다.

“말해 보거라.”

“아무래도 그들이 탈옥하는 과정에 소정 아가씨가 연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실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묵위현은 미간을 좁히며 한참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정이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자네와 나만 알고 있는 것으로 하지.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게.”

“알겠습니다.”

묵위현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그때 묵자강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묵위현 앞에 모습을 드러낸 묵자강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님이 명하신 대로 번횡의 거처를 찾아가 보았습니다만, 그는 이미 절명한 상태였습니다.”

“뭐라?”

예상치 못한 묵자강의 보고에 묵위현이 격분했다.

“감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영사문 내에서 이따위 짓을 벌었단 말이냐……!”

묵위현은 본래 냉정한 성격이라고 할 수 없다. 오랫동안 영사문의 문주를 맡으면서 끝없이 스스로를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영사문의 문주가 아닌, 묵위현 본연의 모습은 그야말로 성난 불꽃과 같다. 그 과격함과 파괴적인 면모가 있었기에, 사파를 군림하고 있는 지금의 영사문이 있는 것이었다.

“흐음!”

묵위현은 당장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속으로 삼켰다.

지금은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로들을 암살한 자와 번횡을 살해한 자는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다.’

번횡을 조사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기에, 그를 죽인 것이 분명하다.

‘대체 누가 영사문 내부에서 이런 짓을…….’

묵위현은 자연스럽게 비천검문 일행을 떠올렸다.

허나 그들은 지금 쫓기고 있는 신세. 만약 영사문 내에 조력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또 다시 살행을 벌이는 것은 분명 앞뒤가 맞지 않는다.

도주 중인 와중에 영사문을 도발해서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은 없고, 더 큰 화만 부를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영사문은 장로들의 죽음을 조사하기 위해 출입객을 막고, 엄중한 경계를 취하고 있는 상태.

‘설마 내부에 숨어있는 자가 있는 것인가.’

묵위현은 날카롭게 변한 눈동자로 묵자강을 보며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탈옥한 비천검문 일행을 쫓는 시늉을 하되, 최대한 요란스럽게 움직이거라.”

“알겠습니다. 뭔가 생각하신 바가 있으신 겁니까?”

“영사문 내부에 적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네가 시선을 끄는 동안 나는 철저하게 내부를 조사해봐야겠다.”

묵자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첩자의 존재를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아직 아무것도 단정 짓지 말거라. 어쨌든 내부를 견고히 다지지 않고서는, 그 어떤 상대와도 제대로 겨룰 수 없다. 우선 영사문의 내부를 견고히 다지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허면 비천검문 일행은 쫓는 시늉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아직 그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그러니 요란하게 쫓되 결코 추격을 게을리하지는 마라.”

“알겠습니다.”

쾅.

묵위현은 정자의 난간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계속해서 참던 화가 순간적으로 터진 것이다.

묵위현의 주먹의 닿은 난간은 마치 두부처럼 잘게 부서져 내렸다.

“감히 겁도 없이 영사문을 건드린 자. 내 직접 죗값을 치르게 해주마.”

* * *

말을 타고 이동하는 유서하 일행은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있었다.

진무량은 적풍을 타고 달리면서 간혹 표정이 짧게 일그러졌다.

내공을 운용하면서 한계 이상의 힘을 사용했던 신체가 무리가 오는 것이다.

“푸르르릉.”

진무량을 태운 채 바람처럼 내달리던 적풍이 낮게 울음소리를 흘렸다.

말은 아주 영리한 동물이다. 기본적으로 주인이 바라보는 곳으로 이동하며, 영리한 말은 주인이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

특히 적풍은 혈통 있는 훌륭한 명마. 그렇기에 태우고 있는 진무량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무량은 대견하다는 듯 적풍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기마술에 가장 기본은 말과의 교감. 평생 말을 타고 전장을 누빈 진무량 또한 적풍의 걱정스러운 심정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지금은 나아갈 때, 일단 영사문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히이이이히힝!”

적풍은 더욱 빠르게 달리면서도 보폭을 줄여, 진무량에게 가는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적풍을 타고 달리던 진무량은 등 뒤에서 막대한 살기를 감지했다. 유서하 또한 그 사실을 눈치챘다.

유서하는 막대한 살기를 띠고 다가오는 상대를 감지하며, 자신의 감각을 의심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상대가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방룡이 이끌던 추격대도 제법 빨랐으나, 지금 접근하는 상대는 그와 비견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신속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대비를 할 틈도 없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모두 조심해요!”

유서하의 날카로운 음성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의문의 목소리 들려왔다.

“이중 누가 진무량이냐.”

다급한 마음에 견무겸이 가장 먼저 검을 뽑아들었다.

허나 견무겸의 검이 검집에서 반절 정도 빠져나왔을 때, 이미 상대의 기운이 견무겸을 덮쳤다.

견무겸은 미처 방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낙마하면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견무겸의 말은 놀라서 그대로 도망쳤고, 유서하가 타고 있는 말 또한 막대한 살기를 느껴서인지 제멋대로 날뛰었다.

“일단 넌 아니군. 너무 약해.”

섬뜩한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사일성이었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그는 쓰러진 견무겸 바로 앞에 서있었다.

유서하는 날뛰는 말 위에서 뛰어내려 사일성을 경계했다.

“진무량이 여자라는 소리는 없었고.”

유서하에게 잠시 머물렀던 사일성의 시선이 천천히 진무량을 향해 옮겨갔다.

“그럼, 너냐?”

진무량은 적풍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사일성을 마주했다.

사일성은 오랫동안 굶주린 짐승과 같은 살기를 온몸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오늘 따라 나를 찾는 놈이 많군.”

방룡과 만났을 때와 달리, 진무량 또한 상대를 경계했다.

사일성이 절정의 수준을 훌쩍 넘어선 고수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기 때문이다.

그저 그런 무인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은연 중 뿜어대는 살기만 놓고 보더라도, 사일성의 경지를 느낄 수 있었다.

진무량은 역량을 가늠해갈수록 사일성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이 정도 수준의 고수는 결코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근래의 보았던 인물과 비교해본다면 적포신군 묵위현이 떠오를 정도였으니까.

삼군이라 불리는 묵위현과 비견될 정도의 인물이라면 충분히 알려졌을 것이기에, 인상착의나 사용하는 무기를 보면 어느 정도 상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허나 눈앞의 상대를 아무리 뜯어보아도 전혀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내 정체가 꽤나 궁금한가 보지? 아마도 짐작 가는 인물은 없을걸.”

“아마……. 구중련이라고 했던가.”

툭 던지듯 내뱉은 진무량의 대답에 순간 사일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의 뒤를 캐고 다닌다는 것은 들었지만, 이름까지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

비릿한 비웃음을 지으며 진무량이 말했다.

“빌어먹을 늙은이가 했던 말이 생각나서 가볍게 떠본 것뿐인데,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맙군.”

사일성이 구중련 소속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들, 진무량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허나 그와 달리 유서하는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검선 유월천은 위협적인 힘을 숨기고 있는 구중련을 늘 경계해왔다.

구중련에 대한 일을 유서하와 상의할 때, 유월천은 늘 이렇게 말했다.

ㅡ구중련의 존재를 아는 자는 극히 드무나, 그들은 어느 곳에서든 모습을 감추고 숨어있다. 끝을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그들이 존재를 드러내고 검을 든다면,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혈풍이 강호 전역에 몰아칠 것이다.

유월천이 진무량이라는 거대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경계하는 세력. 구중련.

유서하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구중련이 비밀리에 힘을 모으는 의도를 파악하고, 만약 그들이 강호를 공격해온다면, 그것을 막아내는 것이 자신이 이뤄내야만 하는 사명이었다.

스릉.

사일성이 허리춤에서 용호쌍검을 동시에 뽑아들었다.

용과 범이 새겨진 쌍검의 검신은 예리함을 비추듯 서슬 퍼런 빛을 뿜었다.

수십 년 전 비인광검과 함께 강호에서 사라졌다고 전해지는 천하의 명검이 그 자태를 여실 없이 뽐내고 있었다.

“내 소속을 알았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지.”

용호쌍검을 뽑아들자, 사일성은 끓어오르는 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조금씩 호흡이 빨라졌다.

“마교의 귀혈악인이라 불리는 네놈과 칼부림을 할 수 있다는 것. 내겐 오직 그 사실만이 중요하다. 네 소문을 전해들은 순간부터 네놈과는 꼭 한번 겨뤄보고 싶었거든.”

진무량 또한 창을 비스듬히 들어 올렸다.

“나와 겨뤄보고 싶었다라……. 어지간히 죽고 싶었나 보군.”

“내가 특별히 너와 칼부림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는, 네놈의 소문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사일성이 말을 이었다.

“손속이 잔혹하고 자비심이 없다고 전해지며, 정파와 사파를 막론하고 수백 군데 이상의 문파를 멸문시킨 자.”

“…….”

“한 번 겨룬 상대는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는 포악함. 그리고 잔인한 고문도 서슴지 않았다는 것. 하여 강호에 문파들은 멸천대를 적으로 두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지.”

진무량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 정도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 않나. 꽤나 대단한 것처럼 떠들어대는군.”

사일성의 눈이 붉게 물들어가면서 점차 호흡이 빨라졌다. 극도의 흥분 상태, 사일성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그 사실이 네게 구미를 당기게 한 거야. 특히 아무런 망설임 없이 문파 하나를 멸문시켰다는 네놈의 소문을 들었을 때, 네놈은 나와 같은 흥미를 느끼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거든.”

여태 상대했던 놈들은 모두 정의(正義)니 무도(武道)니 이딴 것을 운운하는 시시한 놈들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철저하게 적을 짓밟는 멸천대와, 그들의 수장인 귀혈악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이다.

그 정도의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르는 진무량이라면, 응당 범인(凡人)들이 모르는 살육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고 있을 터.

“크흐흐흐흐.”

겉만 번지르르한 명분을 쫓지 않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과 닮은 구석이 있는 상대. 그런 자를 베어버리는 기분은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아주 특별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리면서 웃어젖히던 사일성이 말했다.

“그래서 네놈의 피를 꼭 맛보고 싶었다.”

사일성과 달리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진무량이 차가운 목소리를 흘렸다.

“역겨운 놈이군.”

진무량의 반응이 의외라는 듯, 사일성이 고개를 까딱이며 말했다.

“혹시 지금 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너라면 피 튀기는 살육의 즐거움을 알고 있을 거라 여겼거늘.”

사일성이 말을 이었다.

“눈앞에 있는 모든 인간을 잡아 죽인 뒤 그 피로 온몸을 적시고 싶은, 그 욕망 말이다.”

“정말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네요.”

사일성의 말을 자른 것은 유서하의 목소리였다.

갑작스레 끼어든 유서하를 탐탁지 않게 여긴 사일성은 단숨에 인상을 구겼다.

유서하는 사일성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제 뜻을 말했다.

“어떤 소문을 듣고 혼자 그런 망상에 빠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진무량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부류가 아니에요.”

“네깟 년이 함부로 끼어들 대화가 아니다.”

사일성이 찢어진 눈으로 유서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농축된 살기가 눈빛을 통해 유서하에게 직접적으로 전해졌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사일성의 살기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정신을 잃는다. 그 정도로 사일성의 살기는 두려운 것이다.

허나 유서하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적어도 소문으로만 전해들은 당신보다는, 함께 행동한 제가 진무량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을 것 같군요.”

“…….”

“적어도 진무량은 당신처럼 만나는 사람을 보면 전부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남의 피로 몸을 적시고 싶어 하는 변태 같은 짓을 원하지도 않았죠.”

“뭐라?”

격분한 사일성을 두고 유서하의 말이 이어졌다.

“과거의 어떤 삶을 살았는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제가 옆에서 본 진무량은 당신과는 전혀 다른 부류예요.”

유서하가 짧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혼자 착각하지 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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