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45화 (45/143)

45화. 금제를 풀다 (1)

2017.09.07.

엄성천은 뇌옥에 갇힌 진무량을 죽일 흉계를 꾸미던 중,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탈옥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이런 제기랄!”

백살대에게 보고를 듣는 순간, 엄성천은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벽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쿵!

뇌옥에 갇힌 진무량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계획을 거의 완성한 참이었다. 헌데 그들이 탈옥을 해버린 이상, 전부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전력을 다해 진무량을 쫓아야 한다.’

“방룡(方龍)!”

엄성천의 부름에 응답하듯이, 그의 곁에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습니까?”

“너는 즉시 수하들을 이끌고 진무량을 쫓아라. 영사문과는 따로 쫓되, 반드시 네가 그들보다 먼저 진무량을 찾아내야 한다.”

영사문의 잠입한 이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추격술을 보유한 자가 바로 방룡이다. 그 수하들 또한 모두 추격을 전문으로 하는 자들.

그들이라면 능히 영사문의 추격대보다 먼저 진무량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머뭇거리던 엄성천은 결국 마음을 정하고 입을 열었다.

“……그리고 놈의 위치를 발견하는 즉시 대주님께 알려라.”

사일성이 언급되자 방룡 또한 두려움으로 인해 몸이 경직되었다.

“알겠습니다.”

방룡은 대답과 함께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영사문에게만 맡겨 놓았다가는 진무량을 놓칠 수도 있다. 그를 죽이기 위해 벌인 일들도 덮어야 하거니와, 무엇보다 구중련의 배후를 캐고 다니는 존재들을 내버려둘 수는 없다.

사일성이 움직인다면 뒤처리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지금은 행동에 나서야 할 때였다.

‘이번 기회의 모두 숨통을 끊어놔야 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진무량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진무량만 처단하고 나면 나머지 뒷수습은 천천히 해결할 수 있다.

‘사일성이라면 분명 알아서 처리할 수 있겠지.’

휘익.

엄성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실내에서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그와 동시에 수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잔뜩 경계심을 품은 채 미세한 인기척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기이하게도 방금까지 아무것도 없었던 그곳에는 익숙한 모습의 사내가 서 있었다.

여인처럼 호리호리한 체격의 거대한 활을 등에 지고 있는 사내, 소천광이었다.

엄성천은 소천광의 모습을 확인하자 순간 너무 놀라서 말도 잇지 못했다.

허나 엄성천의 반응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냉정한 소천광의 목소리가 실내를 울렸다.

“진무량은 어디에 있나?”

엄성천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소천광을 향해 급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련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는데 이곳은 어쩐 일로…….”

소천광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엄성천의 말을 잘랐다.

“네까짓 놈한테 알려줘야 할 것 따윈 아무것도 없다.”

소천광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엄성천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쓸데없는 일로 내 입을 열게 하지 마라. 넌 그저 내가 하는 질문에만 대답하면 된다. 알겠나?”

“아, 알겠습니다.”

소천광은 다시 높낮이가 전혀 없는 특유의 어조로 말했다.

“진무량은 어디에 있나?”

“영사문의 뇌옥에 갇혀 있었으나, 탈옥을 하는 바람에 위치를 놓쳤습니다. 허나 방룡이 이끄는 추적대가 그를 쫓고 있으니, 금방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소천광은 지금 심정을 나타내듯 얼굴을 구겼다.

적무혁은 진무량을 포섭하기 위해서 당장 죽이지 말라는 명을 내린 상태였다.

하여 일단 진무량을 회유하고, 그것이 통하지 않으면 진무량을 죽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진무량을 죽여야 한다면, 그 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기에 영사문의 첩자들에게 자세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허나 지금 그로 인해 크게 일이 틀어지고 있었다.

소천광이 말했다.

“이제부터 목표는 진무량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포하는 것으로 바꾼다. 또한 진무량을 생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과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모두 말해봐라.”

갑작스러운 소천광의 명령을 듣고, 엄성천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억울한 심정을 참고 엄성천은 진무량을 생포할 계획을 설명했다.

“영사문을 포함한 인근 사파의 문파들이 진무량 일행을 쫓고 있습니다. 진무량을 죽이지 않고 생포하려 한다면, 일단 영사문과 인근 사파 문파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해서 진무량을 놓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뒤에 저희가 홀로 남은 진무량을 생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엄성천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만 진무량을 따로 빼돌리려 한다면, 그를 쫓는 영사문과 사파의 문파들마저 따돌려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큰 걸림돌입니다만…….”

“진무량의 근처로 접근하는 놈들은 모조리 내가 죽이겠다. 너는 어떻게든 영사문 추격대를 다른 곳으로 유인해라.”

“진무량 일행 쪽으로 향하는 사파 무리들을 모조리 죽인다면, 일이 너무 커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만…….”

“뒤처리까지 내가 신경 써야 하나?”

“…….”

위압적인 소천광의 태도의 엄성천은 차마 반박할 수 없었다.

‘제기랄, 뒤처리는 모조리 내 몫이군.’

속으로 화를 삭인 엄성천은 빠르게 계획을 세웠다.

소천광의 손에 죽어갈 사파의 무리들은, 그들끼리 내분을 일으킨 식으로 처리해 나가는 것이 가장 그럴 듯한 방법이었다.

엄성천은 잠시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진무량의 위치를 파악하는 즉시 사일성 대주님께 알리라는 명을 내린 상태입니다만, 이것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소천광 또한 사일성의 무위를 익히 전해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적포신군을 죽이기 위해서 심어 놓은 자.

그런 사일성과 진무량이 겨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쉽게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 명령은 그대로 진행해라.”

잠깐 동안의 고민을 끝낸 소천광이 입을 열었다.

어쨌든 진무량에게 접근하는 사파의 무리들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

그 시간동안 사일성이 진무량을 맡아 둔다면, 분명 진무량이 허튼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

‘진무량, 설마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죽어버리지는 않겠지.’

* * *

묵소정의 도움으로 뇌옥을 빠져나온 유서하 일행은 우선 묵었던 객잔으로 이동했다.

영사문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만약에 사태를 대비해 두었다. 하여 객잔도 도주로 근처에 있는 곳으로 잡았기 때문에 크게 동선이 틀어지지 않았다.

유서하는 최소한의 짐을 챙긴 뒤, 말을 타고 이동했다.

경공술을 쓴다면 말을 타고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나, 언제 습격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인 만큼 내공을 비축해둘 요량이었다.

특히 진무량의 내공을 해방시키는 것은 유서하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하여 더욱 더 함부로 내공을 사용할 수 없었다.

진무량과 유서하, 견무겸은 말을 타고 쉬지 않고 달렸다. 그들은 어느새 마을을 벗어나 이름 모를 산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세 사람은 각자 전속력으로 말을 몰고 있었는데 언제나 선두는 진무량이었다.

그의 기마술은 절로 감탄이 일 정도였다. 마치 말과 한 몸이 된 듯, 전속력으로 거친 산길을 헤쳐 나가는 진무량의 모습은 그야말로 인마일체(人馬一體)의 경지였다.

견무겸은 타고 있는 말에 아랫배를 힘껏 차면서 박력 있게 외쳤다.

“이럇!”

견무겸은 진무량의 뒤를 쫓으며 검집에 꽂힌 검을 쥐고 사방을 경계했다. 영사문의 뇌옥을 빠져나오면서 간수들을 제압하여 각자의 무기를 되찾은 상태였다.

색색으로 물들었던 단풍이 떨어진 산길을 세 사람은 말을 타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가장 선두에서 달리던 진무량은 한 손으로 말을 몰면서 앞섬에서 지도를 꺼내 살폈다.

지도는 견무겸이 미리 만들어둔 것이었다.

견무겸은 영사문의 영역을 가장 빨리 벗어나는 곳을 미리 파악한 뒤, 지도에 도주하는 방향을 그려 놓았다.

견무겸은 도주할 때 목적지로 단양을 생각해두었다. 그곳은 영사문의 영향력이 벗어나는 곳임과 더불어 무림맹의 지부가 설치된 장소였다.

어떻게든 단양까지만 간다면 추격을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진무량은 견무겸이 지도에 표시해 놓은 곳을 따라 말을 몰았다.

두가닥! 두가닥!

질주하는 적풍의 갈기가 바람에 흩날리고, 말발굽이 지면과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계속되는 가파른 경사로를 올라가던 중, 유서하가 수상한 기척을 가장 먼저 감지했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접근하고 있어요.”

유서하는 더욱 정신을 집중해서 접근하고 있는 상대의 기척을 살폈다.

자신들의 주변에 접근하고 있는 자는 한두 명이 아니었다.

거의 서른 명에 가까운 무리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유서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라.’

탈옥을 한 순간부터, 영사문과 사파문파들의 추격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자신들의 위치가 발각되는 시점을 예상해 놓았다.

허나 지금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자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자신들을 찾아낸 것이다.

바스락. 바스락.

점점 일련의 무리와의 거리가 가까워졌고, 이제는 바로 지척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진무량이 고삐를 잡았다.

“히이이이힝!”

빠르게 달리던 적풍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뒤따르던 유서하와 견무겸 또한 모두 고삐를 잡아 말을 멈추게 했다.

적풍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진무량이 말했다.

“나와.”

진무량의 나지막한 음성을 들렸는지, 풀숲에 몸을 숨기고 있던 일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약 오십 명 정도의 인원으로 어느새 주변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는 백살대. 그 중에서도 전문적으로 추격술을 익힌 선별된 대원들이었다.

추격술을 담당하는 백살대의 수장인 방룡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곁에 있는 수하에게 말했다.

“진무량의 위치를 찾아냈다. 이 사실을 대주님과 부대주님께 알려라.”

“알겠습니다.”

방룡의 지시를 받은 사내는 곧바로 몸을 날려 영사문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진무량은 태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보고는 끝마쳤겠다, 이제 어쩔 생각이지?”

방룡이 대답했다.

“자네가 한때 소문이 자자했던 귀혈악인 진무량인가.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군.”

진무량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조소를 흘렸고, 방룡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충분히 숙지하고 있네. 나는 자네와 정면으로 겨룰 생각이 없어. 여기서 자네를 묶어두기만 하면, 곧 자네를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자가 나타날 거거든.”

방룡이 허리춤에 검을 뽑아들며 말을 이었다.

“그때까지 네놈은 여기서 발이 묶여있어 줘야겠어.”

“들었지?”

진무량은 방룡의 말은 관심도 없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지금처럼 바쁜 때 여유부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

유서하는 순간 머뭇거렸지만, 이내 확고한 눈동자로 자신의 뜻을 내비쳤다.

“알겠어요.”

방룡은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자신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는 진무량의 건방진 태도가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실로 예의가 없는 놈이로구나.”

진무량은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예의? 하긴 처음에 나를 만났을 때는 반갑다고 지껄였었지.”

디디리리링―!

유서하가 켜는 금을 통해서 당장에라도 귀신이 튀어 나올 법한 음산한 음률이 서서히 시작되었다.

스으으으으.

음산한 선율이 흐르자 진무량의 몸속에 단전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조금도 느낄 수 없었던 내공이 지금은 넘쳐흐르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이내 육안으로 보일 정도에 묵색 기운이 진무량의 온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

“생각해 보니 이 감각을 느끼는 것도 참 오랜만이군.”

휘이이이익!

진무량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방금까지 잠잠했던 장내에 태풍이 몰아치는 양 바람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백살대원들 또한 막대한 기운을 곧바로 감지해냈다.

허나 진무량이 뿜어대는 기운은 몰아낼 수도 없고,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돌덩이가 온 몸을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진무량을 몸을 휘감고 있는 묵색 기운은 점점 커져갔고, 그에 따라 몸을 짓누르고 있는 기세도 점점 강해져만 갔다.

진무량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가 처음이군. 적으로 본 놈들이 나를 반갑다고 말한 것은.”

“크윽!”

방룡은 자신을 향해 집중되는 진무량의 기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나에 대한 두려움을 다 잊었다면 너희를 통해 보여주마. 감히 나와 맞서려 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끝없이 커져가는 진무량의 위압감은 방룡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공포로 다가왔다.

내공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처음 만났을 때 진무량의 인상은 온데간데없었다.

온몸의 묵색 기운을 두르고 있는 지금 진무량의 모습은, 감히 대적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악귀의 형상 그 자체였다.

방룡이 짐짓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모두 흩어져서 직접 진무량과 맞서지 말고 시간을 끈다! 대주님이 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진무량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휘몰아치는 광풍으로 인해 진무량의 흑색 머리카락이 어지러이 흩날렸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나 보군.”

진무량이 살기가 가득 담긴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 따위는 한 번에 쓸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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