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포위
2017.08.31.
고희연에 참석한 영사문의 장로들은 따로 마련된 장소에 모여 회포를 푸는 중이었다.
장로들은 각각 영사문의 요직을 맡고 있었기에 이렇게 다 같이 모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돌아보면 엊그제 같은 젊은 시절. 그 시절을 함께하며 같은 추억을 공유한 벗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연신 유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서로 술잔을 기우리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가던 때, 사일성과 백살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영사문의 장로가 사일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따로 명이 있을 때까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거늘, 자네들은 무슨 일로 찾아온 것인가?”
사일성과 백살대는 구중련의 첩자라는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평소에는 영사문 내에서 최대한 존재를 숨겨왔다. 특히 사일성은 백살대의 대주직을 수행하고 있을 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습조차 잘 드러내지 않을 정도였다.
하여 영사문의 장로들 또한 사일성이 정확히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사일성은 불만스럽다는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 죽어가는 늙은이들뿐이군. 이딴 노인들은 베는 맛이 없는데.”
순간 모여 있는 영사문의 장로들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영사문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건 아닌 것 같구먼.”
가장 상석에 앉아있던 영사문의 장로가 허허롭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일단 자네를 매달고 난 뒤에 자세한 사정을 듣도록 할까.”
영사문의 장로들이 하나둘 검을 뽑아들자, 자연스레 그들을 중심으로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비록 지금은 제법 나이가 들었으나, 이곳에 모인 장로들은 사파 최고라 불리는 영사문을 일궈낸 자들이다.
열댓 명의 영사문의 장로들이 내뿜는 투기로 인해 공기가 점차 무겁게 가라앉았다.
“뭣들 하고 있는 겐가. 어디 한번 덤벼보게나.”
허나 백살대의 무인들은 모두 검을 뽑기는커녕, 싸우려 하는 기색조차 내비치지 않았다.
그때 사일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착각하지 마라. 네놈들의 상대는 나 혼자다.”
그와 동시에 사일성은 허리춤에 꽂힌 자신의 쌍검을 뽑아들었다.
스릉.
용호쌍검(龍虎雙劍)이라 불리는 사일성의 쌍검은, 이름 그대로 두 개의 검신에 각각 용과 범이 새겨져 있었다.
사일성이 용호쌍검을 뽑아듦과 동시에 백살대 무인들은 재빨리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곳을 찾아오는 자들을 막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괜히 용호쌍검을 뽑아든 사일성의 주변에 있다가는, 그의 손에 자신마저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때문이었다.
사일성의 무례한 언행을 더 이상 참지 못한 영사문의 장로가 일갈을 내뱉었다.
“이놈,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영사문의 장로는 검을 치켜든 채 곧바로 사일성을 향해 뛰어들었다.
사일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독특한 형태의 기수식을 취했다.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검신에 용이 새겨진 검은 하늘을 향해 높이 치켜들었다. 또한 반대로 범이 새겨진 검은, 검끝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낮게 깔았다.
사선으로 그어지는 영사문 장로의 검이 지척에 다다랐을 때, 독특한 기수식을 취하고 있던 사일성이 비로소 움직였다.
검기를 두른 채 날카롭게 날아드는 영사문 장로의 검격을 사일성은 왼손에 쥔 검으로 대처했다.
서로의 검이 닿기 직전, 부드럽게 반원을 그리면서 움직인 사일성의 용호쌍검은 쇄도해오는 검을 가볍게 흘려보냈다.
영사문의 장로는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사일성의 다음 움직임을 대처하기 위해 그를 자세히 살폈다.
허나 사일성의 움직임은 그가 예상할 수 있는 범주의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용이 새겨진 용호쌍검이 일직선으로 날아들었다.
영사문의 장로는 재빨리 검을 끌어당기며 쇄도해 오는 검을 막아내려 했다. 허나 용이 새겨진 용호쌍검은 앞을 가로막는 검을 완전히 깨부수면서 영사문 장로의 목을 꿰뚫어버렸다.
영사문의 장로는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승부가 갈린 것이다.
사일성은 피가 잔뜩 묻은 용호쌍검을 혀로 핥으며 말했다.
“역시 노인네의 피맛은 형편없군.”
눈앞에서 동료가 살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 있는 영사문의 장로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이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기도 했으나,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일성의 무공을 보면서 모두 같은 사람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길이가 다른 쌍검. 독특한 기수식. 부드러움과 파괴적인 힘을 동시에 다루는 초식.
그것들이 말해주는 인물은 강호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비인광검(非人狂劍) 정고풍(丁古風).
그는 흑라교의 수장으로서 있던 인물로서 한때 강호에서 거대한 혈겁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흑라교를 이끌고 무림을 공격했던 비인광검으로 인해 강호는 한때 큰 혼란에 빠져야 했다.
흑라교를 이끄는 비인광검은 오로지 살육을 저지르기 위해서 움직였다. 정파나 사파를 막론하고 주변의 모든 이들을 공격한 것이다.
당시 정파의 칠무제가 동시에 움직이면서 비인광검을 처단하는 것으로 끔찍했던 혈겁을 간신히 끝낼 수 있었으나, 너무나 끔찍했던 흑라교와 비인광검의 존재는 그때 활약했던 무인들의 뇌리에 아직도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있었다.
‘어찌 비인광검의 무공을 익힌 자가 살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영사문의 장로들은 평소답지 않게 얼굴의 근심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정사 양쪽의 공격을 받은 흑라교가 완전히 몰살당하면서, 비인광검의 무공도 당연히 단절되었다.
쉽게 익힐 수 있는 무공도 아니거니와, 한번 익히면 끝없이 피를 탐하게 된다는 지독한 무공.
비인광검의 무공을 익힌 자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무림은 결코 방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비인광검은 무림인에게 공포의 존재로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인광검의 무공을 익혔다면 응당 무림공적으로 낙인찍고 정사 전체가 움직일 수도 있을 만한 대사건.
그만한 인물이 강호에 전혀 알려지지 않고, 심지어 영사문 내에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 믿기 어려운 사실이었다.
“이제 막 흥이 오르려고 하거늘, 갑자기 왜 얌전해진 것이냐.”
피를 보고 흥분한 듯한 사일성의 음산한 목소리가 다시 한번 장내를 울렸다.
“모두 한꺼번에 덤벼도 좋으니, 어디 한번 나를 즐겁게 해보아라.”
* * *
의복에 피를 묻힌 채 장로들의 죽음을 보고하던 사내는, 결국 침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보고를 듣던 묵자강은 살의가 가득 실린 목소리로 되물었다.
“비천검문이라 했느냐.”
묵자강의 입에서 비천검문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변했다.
“…….”
근래 정파와 사파는 크게 분쟁하는 일이 없었으나, 기본적으로 그 둘은 서로를 적대시한다.
게다가 장로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면서 잔뜩 분노한 사파의 고수들이다. 심지어 그 사건이 비천검문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사파의 영역에서, 그것도 묵위현의 고희연에 숨어들어와 영사문의 장로를 암살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기묘한 정적에 잠겨 있던 영사문의 연무장에서 점차 흉흉한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연무장에 모인 수많은 사파 고수들이 제각기 분노 어린 살기를 밖으로 표출한 것이다.
사파의 무리들 틈에 섞여있던 유서하 또한 흉흉하게 변하고 있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ㅡ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죠.
다급한 유서하의 전음에 견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으나, 확실한 것은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서하는 재빨리 영사문의 연무장을 빠져나가기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상황을 살피던 엄성천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비천검문 놈들이 잠입해 있다!”
엄성천의 외침을 듣는 순간, 연무장을 가득 메운 사파의 무리들은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곧 유서하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엄성천이 미리 손써 두었던 번횡(番宖)이 그녀의 존재를 알아보았다.
“저쪽이다!”
번횡은 인파 사이를 지나는 유서하를 정확히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사파의 무인들은 본능적으로 유서하와 거리를 벌리고 응전태세를 취했다.
칭! 칭! 칭!
각자 검을 빼든 사파의 무인들이 몰려들면서, 유서하와 진무량, 견무겸은 순식간에 포위를 당했다.
견무겸은 위급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검집에 꽂혀있는 검 손잡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연무장에 모인 사파의 무리들은 유서하 일행을 포위했으나, 당장 덤벼들지는 않았다. 아직 그들의 신분을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번횡(番宖)이 다시 한번 큰소리로 외쳤다.
“이것들이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이윽고 몰려든 사파의 무인들 중에서도 번횡의 말에 동조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그들은 모두 백살대를 통해 미리 유서하 일행의 정보를 전달받은 자들이었다.
“이자들은 비천검문의 소속이 확실하오!”
이름을 대면 알아줄 만한 사파의 인물들까지 나서자, 점차 유서하를 비천검문의 인물이라 확실시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사파의 무인들은 이제 대놓고 유서하를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저벅. 저벅.
유서하 일행을 포위하고 있는 사파의 무인들은, 검을 겨눈 채 사방에서 한 걸음씩 전진하며 조금씩 압박을 가했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사파 고수들의 위압감을 정면으로 받으며, 유서하는 식은땀으로 인해 등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여차하면 이곳에서 진무량의 내공을 해방시켜야 할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
유서하는 슬쩍 진무량의 눈치를 살폈다.
“…….”
예상과 달리 진무량은 딱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무공을 사용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진무량 쪽에서 먼저 내공을 사용하겠다고 제안해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나, 그는 먼 허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벅. 저벅.
그 와중에도 유서하 일행을 둘러싸고 있는 포위망은 점점 좁혀져만 갔다. 곧 사파 무인들의 검이 닿을 정도까지 거리가 좁혀지게 될 형국이었다.
진무량은 여전히 허공에 시선을 고정한 채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허튼 짓 하지 마.”
그제야 진무량에게 다른 생각이 있음을 눈치챈 그녀는, 곧바로 진무량의 시선을 쫓았다. 그리고 곧, 진무량이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는 상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검을 든 사파의 무인들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진무량의 시선은 처음부터 쭉 적포신군 묵위현을 향해 있었다.
내공을 사용할 수 있다면, 당장 둘러싸고 있는 포위망 따위는 쉽게 부숴버릴 수 있다.
도망치는 일도 가능하고, 둘러싸고 있는 사파의 무리들을 모두를 상대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허나 결국 그 과정에서 반드시 묵위현을 상대해야만 했다.
묵위현을 상대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수많은 사파의 무인들까지 덤벼온다면 승부는 쉽게 예측할 수 없게 변한다.
묵위현을 발견하는 순간, 유서하도 진무량의 생각을 곧바로 이해했다.
무력으로 이곳을 돌파하는 것은 상책이 아니다.
지금은 일단 분쟁을 피하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어쨌든 영사문에서 벌어진 사건은 자신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유서하는 등에 메고 있는 금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저희가 비천검문에서 온 것은 사실이나, 방금 전해들은 사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어떤 조사를 해도 그에 따를 테니 일단 검을 거두시죠.”
갑작스런 유서하의 행동에, 포위망을 좁혀오던 사파 무인들이 순간 멈칫했다.
허나 이 모든 일을 꾸민 엄성천이 얌전히 그 광경을 지켜볼 리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엄성천은 과장스럽게 검을 치켜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이런 상황에 몰려서까지 발뺌을 하려 드는가! 내 직접 저년을 죽여 돌아가신 장로님들의 원혼을 달래리라!”
엄성천의 선동은 사파 무인들에게 남아있던 일말의 망설임을 사라지게 하기 충분했다.
다시 흉흉한 기세가 퍼지면서 빠른 속도로 유서하를 향한 포위망이 좁혀들었다.
엄성천은 다시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흘러가자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서로 죽고 죽여라. 흐흐흐.’
“그만.”
그때 묵위현의 목소리가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졌다. 귀가 아닌 머릿속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묵위현의 목소리였다.
펄럭.
이내 흩날리는 적색 망토와 함께 공중에서 묵위현이 떨어져 내렸다.
그가 착지한 곳은 다음 아닌 진무량의 앞이었다.
근엄한 표정의 묵위현이 흩날리는 수염을 정리하며 눈앞의 진무량에게 말했다.
“분명 내 직접, 얌전히 연회를 즐기다가 가라고 말했을 텐데.”
진무량이 말했다.
“연회를 즐기는 사람에게 먼저 검을 들이댄 것은 영사문 쪽이야.”
묵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장로들이 살해당한 사건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물론. 굳이 거짓을 말할 이유도 없고, 또 나는 지금까지 남한테 거짓말을 해본 적도 없어.”
옆에서 진무량이 하는 말을 듣던 견무겸은 헛기침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삼켰다.
‘거짓말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지금까지 본 모든 사람들 중에 거짓말을 가장 능숙하게 하는 사람이 진무량이었다. 헌데 그가 저런 말을 입에 올리니, 다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순간 헛기침이 나올 뻔한 것이다.
진무량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들이 비천검문 소속인 것은 분명 사실이나, 이곳에서 벌어진 암살은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영사문의 무인 하나가, 묵위현을 대하는 진무량의 건방진 언행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비천검문 놈들이 왜 신분을 숨기고 연회에 참석했겠습니까! 저들이 거짓을 고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말에 동조하듯 또다른 영사문의 무인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명령만 내려 주십시오. 제가 직접 저놈의 뱀 같은 혀를 뽑아오겠습니다.”
“조용히 있거라.”
“문주님!”
묵위현의 기세가 사납게 변하면서 말을 이었다.
“자네는 내 명령이 우습게 들리는가?”
“……!”
영사문의 무인은 그 즉시 고개를 숙이고 뒤쪽으로 물러났다.
묵위현이 내공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로들이 살해당한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애석하게 생각하고 있느니라. 허나 비천검문이 그 일과 연관되었다는 확신이 없는 바, 일단은 이자들을 투옥하고 상황을 조사한다. 또한.”
내공이 실린 묵위현의 목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무인들의 머릿속을 울렸다.
“만일 이번 사건이 정말 비천검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내 친히 이들의 목을 베고 비천검문으로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모든 인간을 모조리 도륙할 것인즉, 모두 일단 내 명을 기다리거라.”
아주 평온한 어조이나 절로 위엄이 느껴지는 묵위현의 목소리.
연무장의 모인 사파의 무인들은 당장 비천검문 일행들을 베지 못하는 것이 석연치 않았으나, 묵위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적포신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연무장에 모인 영사문의 무인들이 동시에 합창했다.
결국 주변에 있던 사파의 무인들 또한 한 명씩 빼들었던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묵위현은 근처에 있던 영사문 무인을 향해 말했다.
“이들을 뇌옥으로 끌고 가라.”
“알겠습니다.”
순식간에 여섯 명의 영사문 무인들이 유서하와 진무량, 견무겸을 향해 다가왔다.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 진무량을 향해 묵위현이 떠보는 듯한 어조로 말을 붙였다.
“자네, 비천검문의 사람이었나?”
“글쎄……. 지금은 그렇다고 해두지.”
묵위현은 진무량을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여전히 그의 감춰진 정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라…….’
* * *
고희연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곧바로 장로들의 암살사건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엄성천은 미리 사일성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서두르다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땅바닥을 발로 걷어찼다.
“제기랄!”
진무량과 묵위현을 서로 겨루게 해서 힘을 깎아 놓으려던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진무량은 위기에 처하면 곧바로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 생각했고, 묵위현 역시 상대가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유서하 일행을 공격할 줄 알았다. 허나 그 생각은 완벽한 오산이었다.
‘제길. 내가 그들을 과소평가했던 것인가.’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가 굉장히 좋지 못했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묵위현이 이번 사건을 조사하다가 구중련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허나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진무량은 지금 뇌옥에 갇혀서 꼼짝도 못하는 신세.
지금의 상황과 사일성을 잘만 이용한다면, 진무량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