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고희연 (1)
2017.08.24.
고요한 새벽이 지나면서 점차 태양이 떠올랐다. 불어오는 바람이 차가워지는 것만큼, 아침도 평소보다 조금 늦게 찾아왔다.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더 두터운 의복을 챙겨 입은 유서하는 마구간을 찾았다.
“역시 여기 있으셨군요.”
진무량을 향해 다가가며 유서하가 말을 이었다.
“방에 없길래 여기 있을 것 같았어요. 이제 아침을 먹을 참인데, 어떡하시겠어요?”
“먼저 가 있어. 곧 따라갈 테니.”
진무량은 옆쪽에 쌓여있는 여물을 툭 던져주고는 가볍게 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서하는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지금껏 진무량이 이토록 무언가를 챙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말한테 여물을 주기도 하고, 가끔은 직접 씻겨주기까지 했다.
냉소적이기만 했던 진무량이 뭔가를 아낀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그런 면모를 보면서 그가 조금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말은 금세 진무량이 준 여물을 모두 먹어치웠다. 그 모습을 본 유서하가 여물을 진무량의 말에게 던져 주었다.
“푸르르릉.”
진무량의 말은 가당치도 않다는 듯 짧게 울음소리를 내더니, 유서하가 준 여물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 말은 저를 좋아하지 않나 보네요.”
“그냥 말이 아니야. 이 녀석의 이름은 적풍이다.”
“이름까지 지어준 건가요?”
“당연하지.”
유서하의 시선이 적풍에게 향했다.
‘조금 부럽기도 하네.’
특별한 이유 없이 진무량의 호의를 받고 있는 말을 보고 있자니, 괜한 생각이 든 것이다.
유서하는 재빨리 쓸데없는 생각을 지웠다.
그때 진무량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이만 가지.”
견무겸은 이미 식당에 자리하고 있었다. 마구간을 나와 식당으로 향한 진무량과 유서하는 자연스레 견무겸과 함께 자리했다.
견무겸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영사문에 잠입한 후에는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겉모습을 보고 구중련을 식별해낼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겠지만, 그럴 확률은 희박하겠지. 그러니까 우리는 구중련의 유일한 결점이라고 볼 수 있는, 신투가 훔친 서찰에 대한 것을 넌지시 흘리고 다닐 거야.”
유서하는 천천히 머릿속에 생각을 정리했다.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구중련이 남궁세가를 직접 공격하면서까지 되찾으려 했던 서찰이다.
그 서찰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가 있다면 구중련은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것이다.
유서하가 말을 이었다.
“그때 구중련이 취해오는 행동을 역으로 추적하는 거지. 그러다보면 반드시 구중련의 존재에 대한 모종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거야.”
견무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의 뜻을 나타냈다. 애초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유서하의 계획에 따른 위험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견무겸이 말했다.
“저는 그럼 다시 한번 주변을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 견무겸은 객잔에 대기하는 동안에 영사문의 영역을 가장 빠르게 빠져나갈 수 있는 도주로를 물색해 놓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영사문으로 출발하기 전, 다시 그곳들을 살필 생각이었다.
유서하가 견무겸을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는 준비를 모두 마쳤으니, 이제는 실행으로 옮기는 것만이 남았다.
* * *
가출했던 묵소정을 데리고 돌아왔던 엄성천은 영사문에서 백살대(百殺隊)라고 불리는 타격대의 부대주를 맡고 있는 자였다.
백살대는 영사문 내에서 그리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자들은 아니었다.
허나 그것은 정체를 감추기 위한 겉모습일 뿐.
그들의 진짜 정체는 영사문을 감시하고, 여차하면 사파에서 최고로 꼽히는 적포신군 묵위현을 암살하기 위해 심어둔 구중련의 첩자였다.
엄성천은 영사문에 도착하자마자 훈련을 한다는 명분으로 은밀히 백살대를 한곳으로 불러 모았다.
엄성천의 연락을 받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사십 명 정도의 백살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백살대원 모두가 도착하고 난 뒤, 마지막으로 백살대의 대주를 맡고 있는 사일성(史逸晟)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살대원들은 일제히 기립해서 대주인 사일성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사일성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엄성천을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은밀하게 모이라고 한 것이냐.”
엄성천은 다시 한번 주변의 인기척을 신중히 살핀 후,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련(聯)에서 주의하라고 경고한 자들을 찾았습니다.”
가출했던 묵소정을 발견했을 때, 엄성천은 그녀의 곁에 있던 진무량과 유서하, 견무겸을 알아보았다.
진무량 일행을 주의하라는 서찰과 함께 소천광이 인상착의를 그려 보냈는데, 엄성천은 그 인상착의와 진무량 일행이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진무량의 존재를 알게 되자 관심이 생긴 듯, 사일성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는 턱을 살짝 치켜 올리면서 계속 말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귀혈악인 진무량과 곁에 있는 비천검문 소속의 인사들까지 그 위치를 파악하고 있으며, 지금 그들이 이곳에 와서 한 행동들을 모조리 조사하라고 지시를 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러지 말고 지금 당장 찾아가서 죽여 버리면 되잖아.”
사일성은 말을 하면서 살심이 끓어오르는지, 눈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애초에 사일성이 이곳에 숨어든 이유는 적포신군 묵위현을 죽이기 위함이었다. 허나 구중련으로부터 기다려야 한다는 지시만 내려오는 통에, 요즘 한참 지루함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차에 새롭게 나타난 상대.
게다가 상대가 마교의 귀혈악인 진무량이라면…….
‘재미있겠군.’
사일성은 진득한 살기를 내뿜으며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았다.
엄성천은 저도 모르게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사일성의 살기는 같은 편조차 공포로 온몸을 떨게 만들 정도였다.
엄성천이 말했다.
“우리가 진무량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상책이 아닙니다. 그들은 일단 영사문에…… 크윽!”
엄성천은 점점 짙어지는 사일성의 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일성이 살기를 발산할 때는 옆에 있는 것 자체가 고문이나 다름없다.
사일성 특유의 광기어린 살기를 내뿜을 때면, 마치 온몸이 결박당한 채 거대한 장검이 천천히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사일성이 흥분한 듯 건친 숨을 몰아쉬다가 말했다.
“또…… 참아야 된다는 것이냐?”
엄성천은 점점 짙어져 가는 사일성의 살기 속에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진무량에 대한 일은 제게 맡겨주십시오. 대신 대주께서 마음껏 살육하실 만한 곳을 곧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엄성천의 말을 듣고 끝없이 뿜어져 나왔던 사일성의 살기가 조금씩 사그라져 갔다.
“적어도 백 명 이상의 제물은 준비해둬야 할 것이다.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사일성의 살기의 주박이 풀리자, 엄성천은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되었다.
곧 인근의 작은 부락 중 한 곳은 눈앞에 있는 사일성의 손에 무참하게 학살당할 것이다.
때때로 사일성의 살기가 폭주할 때, 그를 진정시킬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살육을 하는 행위뿐이었다.
이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는 부락을 찾아내서, 그들을 마치 처음부터 강호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들 방법을 찾는 것이다.
엄성천이 말했다.
“또한 만약 진무량이 제 생각대로 묵위현의 고희연에 참석하게 된다면, 피의 제물을 곧바로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좋다. 기대하도록 하지.”
흰자가 번득이며 웃는 사일성의 모습을 보며 엄성천은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유서하로서는 엄성천이 그녀의 정체를 눈치챘다는 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엄성천은 은밀히 유서하 일행의 뒤를 캤고, 곧 그들이 영사문의 정보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예상대로 묵위현의 고희연에 참석한다면…….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 *
묵소정은 영사문에서 열리는 고희연에 참석하기 위해 화려한 연회복으로 의복을 갈아입는 중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세 명의 시종이 나란히 서서 의복의 매무새를 바로잡아주고 화려한 장신구를 달아 주었다.
화려하고 세련된 연회복을 입으니, 가뜩이나 귀여운 외모의 묵소정은 마치 움직이는 인형처럼 보일 정도였다.
허나 아름답게 차려 입은 의복과 어울리지 않게도, 명경의 비친 묵소정의 낯빛은 어두웠다.
묵소정은 진무량을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해서 영사문에서 탈출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또한 얼마 전에 묵위현과 만났을 때의 미안한 감정도 아직 남아있어서 영 마음 편하지 않았다.
연회에 참석할 준비를 끝마치자, 묵소정의 곁에 있던 시종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묵소정은 어두운 낯빛을 유지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했다.
“알았어.”
묵소정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몇몇의 호위무사들이 묵소정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적포신군 묵위현의 고희연은 사파인들에게 그 의미가 굉장히 큰 행사였다.
사파의 최고수로 이름난 묵위현의 특별한 생일을 단순히 축하하러 모인 자들도 있었으나, 염탐을 목적으로 온 자들도 꽤나 많았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알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온 자들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군상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각기 다른 뜻을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되니 모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자연스레 연회는 그 규모가 커졌다.
묵위현의 고희연을 찾은 인파들로 거리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곳곳에 갖가지 먹을거리와 다과상들이 차려져 있었다.
성대한 연회의 분위기로 바글거리는 거리를 묵소정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걸었다.
많은 볼거리와 여러 가지 음식들이 보였으나, 그녀의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없었다.
묵소정은 미리 정해진 자신의 자리로 향하면서 무관심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어보았다.
“어라!”
무관심한 눈으로 주변을 훑어보던 묵소정이 갑자기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는 점차 입가의 미소가 만들어졌다.
묵소정이 뒤를 따르는 호위무사들을 향해 말했다.
“멀리 가지 않을 테니, 여기서 잠깐 기다려줘.”
뒤를 따르던 호위무사 중 한 명이 당혹스러움을 드러내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늦으시면 문주님께서 찾으실…….”
묵소정은 호위무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난 가볼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야 돼!”
유서하 일행은 비천검문과의 연락을 통해 미리 준비한 가짜 신분으로 묵위현의 고희연에 참석했다.
눈에 띄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죽립을 깊게 눌러 쓴 유서하를 선두로, 그 뒤에 진무량과 견무겸이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유서하는 본연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했다. 그러면서도 영사문의 무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또한 그들과 간단히 담소를 하게 되는 기회가 찾아 올 때면 자연스레 신투가 훔친 서찰의 존재를 넌지시 흘렸다.
영사문의 무인들 몇몇과 간단한 담소를 끝내고, 유서하는 잠시 멈춰서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전음으로 견무겸을 향해 말했다.
ㅡ아직까지는 딱히 수상한 반응을 보이는 자가 없는 것 같네.
견무겸이 전음으로 대답했다.
ㅡ저희를 의심하는 자들도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진무량은 유서하나 견무겸과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면서 영사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다지 쓸 만한 놈은 없군.’
내공을 잃고서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는 감각이었다.
사파에서도 특히 명성을 떨치고 있는 영사문의 무인들은 물론, 이곳을 방문한 다른 사파의 문도들까지 모두 둘러보았다.
허나 딱히 이렇다 할 무공의 소유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주 가끔 절정의 고수들도 보였으나, 그들마저도 진무량의 눈에는 한참이나 부족해보였다.
‘별 볼 일 없는 놈들뿐이군.’
적어도 이곳에서 지금까지 본 무인들은, 자신이 내공을 해방한다면 적당히 합을 맞출 수조차 없을 수준이었다.
비단 영사문이 아닌 다른 명문 문파에서도 사정은 이와 비슷했기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진무량은 주변을 살피고 있을 때, 그를 향해 묵소정이 짧은 다리를 바삐 움직이며 다가왔다.
도도도.
다가오는 상대가 묵소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진무량의 얼굴이 단번에 구겨졌다.
묵소정이 지친 숨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오라버니 맞지? 세상에, 여기서 또 만나다니!”
방금 전까지 우울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묵소정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유서하는 화재를 바꾸기 위해 묵소정을 향해 말했다.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묵소정의 시선이 유서하를 향했다.
“엇 저번에 봤던 언니도 같이 있네요. 저번에는 제가 제대로 인사도 못했죠. 그때 저를 도와주셔서 고마웠어요.”
묵소정은 나름대로 정중하게 말을 마친 뒤, 유서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 오라버니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런데, 잠시만 같이 있어도 될까요?”
유서하는 뜬금없는 묵소정의 제안에 잠시 멈칫거렸다.
지금 진무량과 떨어지는 것은 분명 현명한 일은 아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만들어서 묵소정의 제안을 거절할 수는 있겠지만, 묵소정이 그에 따라줄 것 같지는 않았다.
묵소정이 저런 기세라면,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진무량을 따라올 것이 분명해 보였다.
묵소정과 함께 다니는 것은 더 이롭지 못하다. 묵위현의 하나뿐인 손녀와 함께 다닌다면 당연히 주변의 시선을 사게 될 텐데, 지금 상황에서 주목을 받는 건 가장 피해야 할 일이었다.
“알겠어요.”
유서하는 진무량을 눈짓을 보내며 전음을 보냈다.
ㅡ우리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이쪽 방면으로 움직일게요. 이야기를 최대한 빨리 끝마치고, 제가 있는 곳으로 와주세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거예요.
진무량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서하는 견무겸과 함께 진무량에게 신호했던 방향을 움직였다.
묵소정은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오라버니는 이름이 뭐야?”
“꼭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칫,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
“내가 너를 귀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잖아. 근데 나한테 들러붙는 이유가 뭐야?”
묵소정은 자신보다 훨씬 키가 큰 진무량을 빤히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오라버니가 좋으니까. 난 당당한 사람이 좋아. 적어도 앞에서는 좋은 척 연기하면서 뒤에서 철없다고 수군대지는 않을 테니까.”
진무량이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미치겠군.”
묵소정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을 이으려던 찰나, 주변의 분위기가 묘하게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북적이는 인파들로 쉴 새 없이 소음이 가득하던 장내가 갑자기 찬물이라도 뿌린 듯 순식간에 조용해진 것이다.
진무량은 갑자기 변한 분위기에 의문을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이한 일은 한 번 더 일어났다.
주변을 가득 메웠던 인파들이 양옆으로 길을 비키고 있는 것이다.
순식간에 발 디딜 틈도 없던 곳에서 널찍한 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널찍한 길로 피처럼 붉은 망토를 등에 걸치고 있는 묵위현이 천천히 걸어왔다.
적포신군 묵위현은 길게 갈라진 인파를 헤치고, 진무량과 묵소정이 있는 곳으로 도착했다.
탁.
“여기 있었던 것이냐.”
묵위현이 묵소정의 곁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진무량을 바라보았다.
“헌데 자네는 누구인가?”
수많은 인파들이 이 광경을 보고 있었으나, 이중 단 한 명도 눈치채지 못했다.
강호에서 가장 정점에 위치해 있는 고수들의 만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