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조사
2017.08.20.
유서하와 견무겸은 곡아에 있는 정보조직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우선 영사문에 대해서 충분히 조사할 필요가 있었다. 비천검문에서 전서구를 통해 영사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는 있으나,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거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정보를 사고파는 조직들과 접선해서 영사문의 실정과 잠입할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본래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야 하기에 조사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한참동안 곡아 주변의 정보조직들을 수색하던 유서하는 다행히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거래를 틀 만한 정보조직을 찾은 것이다.
일을 끝마치고 거리를 걸으며 견무겸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아가씨께서는 방금 만난 자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우리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어.”
“그렇다면 왜 영사문의 대한 정보를 묻지 않고, 다른 것들을 물으신 것입니까?”
“아직은 처음 만남일 뿐이니까, 일단 조금 더 살펴볼 생각이야.”
유서하는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하여 접촉했던 정보조직에게 영사문의 대해 자세한 정보를 묻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영사문의 대한 것들만을 조사하다보면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수상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급하게 움직이기보다 안전하게 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조금 더 거래를 하면서 정보조직과 신뢰를 쌓은 뒤에 영사문의 자세한 실정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일을 마친 유서하는 객잔으로 향했다.
영사문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으니, 남겨두고 간 진무량과 묵소정에 대한 걱정이 일었다.
‘별일은 없겠지.’
객잔에 거의 도착할 때쯤, 견무겸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혹시 따르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전 잠시 밖을 살피다가 들어가겠습니다.”
유서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부탁할게.”
객잔 입구에서 견무겸과 헤어진 뒤, 유서하는 진무량과 묵소연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달칵.
유서하가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생각보다 방 안의 상황은 평화로웠다.
진무량은 침상에 편안하게 드러누워 있었고, 묵소정은 얌전히 다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유서하는 묵소정이 울음을 그친 것에 한시름 마음을 놓았다.
그것도 잠시, 진무량은 유서하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이 꼬맹이, 처음 만났을 때 울었던 것부터 시작해서 전부 거짓말이었어. 아무래도 수상한 꼬맹이 같으니까 얼른 데리고 나가.”
전혀 예상치 못한 진무량의 말을 듣고, 묵소정의 얼굴이 시뻘게지면서 억울한 목소리로 항의했다.
“조용히 하고 있으면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있도록 일행에게 특별히 부탁해본다면서!”
“나도 거짓말이었어.”
“뭐, 뭣?”
묵소정은 너무나 분한 나머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지금까지 남을 속인 적은 많아도 이렇게 완벽하게 속아 넘어간 건 처음이었다. 너무 분한 마음에 순간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유서하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얼떨떨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밖을 살피던 견무겸이 쏜살같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견무겸의 굳어진 얼굴을 보자마자, 유서하는 뭔가 일이 틀어진 것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야?”
견무겸은 창문으로 객잔 밖을 바라보다가, 유서하를 향해 전음을 보냈다.
ㅡ밖에 영사문의 무인들이 모여 있습니다.
유서하의 표정이 심각해지면서 견무겸에게 향해 전음으로 답했다.
ㅡ우리 정체가 드러날 만한 일은 없었는데.
ㅡ확실히는 모르겠으나 뭔가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유서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보조직과 접촉하기는 했으나, 결코 정체가 드러날 만한 실수는 하지 않았다. 신중하게 움직이기 위해 영사문에 대한 조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영사문이라 해도 벌써 자신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무인들을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생각을 마친 유서하가 진무량과 견무겸, 두 사람에게 동시에 전음을 보냈다.
ㅡ영사문의 무인들이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일단 얌전히 이 객잔에 손님인 척하죠. 만약 저들이 먼저 공격해온다면 그때 전력으로 반격할 거예요.
유서하는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일단 방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다탁 위에 있는 찻잔에 차를 따르며 밖에서 나는 작은 소리에 집중했다.
투박한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컥.
이윽고 방문이 열리면서 열 명 정도의 인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영사문을 상징하는 문양이 수놓인 의복을 입고 있었으며, 모두 허리춤에 검을 차고 있었다.
영사문의 무리들 중 가장 선두에 있는 사내가 방 안을 살펴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여기 계셨군요. 아가씨, 저랑 같이 가시죠.”
유서하를 데려가려 한다고 생각한 견무겸은 곧바로 검을 잡으려 했다.
탁.
하지만 어딘가 이상함을 느낀 유서하가 재빨리 견무겸의 손목을 움켜쥐면서 움직임을 막았다.
그때, 옆에서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이렇게 완벽하게 들킨 이상 어쩔 수 없지. 조금 더 밖에 있고 싶었는데.”
묵소정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하면서 영사문의 무인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견무겸은 당황한 눈빛을 애써 감추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영사문의 무리를 이끌고 묵소정을 찾아온 사내는 엄성천(奄誠天)이라는 자였다.
엄성천이 묵소정을 향해 말했다.
“아가씨께서 사라지셔서 문주님의 걱정이 너무나 크십니다. 어서 영사문으로 돌아가시죠.”
묵소정이 감추고 있던 신분은 바로 영사문의 문주이자 사파의 삼군으로 불리는 적포신군 묵위현의 하나뿐인 손녀였다.
묵소정이 내키지 않는 듯이 말했다.
“알았어.”
엄성천은 그제서야 묵소정에게서 시선을 떼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유서하 일행을 훑어보았다.
눈치가 빠른 묵소정은 엄성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곧바로 알아채고 그를 향해 말했다.
“이들은 내가 위험할 때 구해준 은인들이야.”
엄성천은 경계를 완전히 풀지 않은 채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를 구해주셨다니 고맙소.”
유서하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연이어 일어났으나, 조금도 겉으로 동요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침착한 목소리로 유서하가 말했다.
“영사문과 관련이 있는 분인 줄은 몰랐네요. 어쨌든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엄성천은 가볍게 인사를 끝낸 뒤에도, 뭔가 마음에 걸리는지 유서하와 견무겸, 진무량까지 의심스러운 눈길로 훑어보았다.
의문을 느낀 유서하가 말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니오. 실례가 됐다면 미안하오.”
엄성천은 말을 끝낸 뒤, 묵소정과 함께 방문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묵소정은 엄성천을 따라 방을 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진무량을 바라보았다.
그나마 사문을 몰랐을 때는 평범하게 자신을 대할 수 있었겠으나, 아마 이제는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사파에서 적포신군 묵위현이라는 이름은 절대적이다.
그 위세 앞에서는 누구라도 겁에 질려 먼저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묵소정이 가만히 진무량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라버니, 내가 또 찾아와도 될까?”
“귀찮으니까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마.”
진무량의 말을 듣고 있던 영사문의 무인들과 엄성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허나 묵소정의 입가에는 환한 웃음이 만들어졌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말보다, 진무량의 태도가 자신 주변의 사람들처럼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뻤기 때문이다.
적포신군 묵위현의 손녀라는 것을 몰랐다가 알게 된 뒤에도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묵소정이 밝은 목소리로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오라버니, 꼭 다시 돌아올게. 오늘 당한 것도 갚아줘야 하니까!”
* * *
영사문의 무인들과 묵소정이 나가자 객잔 안에는 유서하와 진무량, 견무겸이 남게 되었다.
유서하와 견무겸 또한 묵소정의 정체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묵소정이 묵위현의 손녀라는 사실을 알고 순간 당황했으나, 특별히 문제될 만한 일은 없었기에 점차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유서하가 가볍게 진무량을 향해 농담을 던졌다.
“소녀에게 인기가 많다니 정말 의외네요.”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대답이 없는 진무량을 향해 견무겸이 말을 더했다.
“헤어지면서 뭔가 당했다고 하던데, 설마 어린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건 아니겠지?”
진무량은 견무겸을 무시하면서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나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거래를 틀 만한 정보조직을 찾았고, 당분간은 여기 머물면서 영사문에 대해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 * *
화려한 가구들과 값비싼 장식품이 가득한 실내. 일반적인 객잔의 방 다섯 개는 합쳐놓았을 법한 이 넓은 공간은 바로 묵소정의 방이었다.
영사문으로 돌아온 묵소정은 자신의 방 안에서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묵소정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평소 묵소정의 시중을 드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영사문 내에서 그나마 묵소정에게 평범하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사람이었다. 눈치 빠른 묵소정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시중을 드는 여인은, 심기가 불편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묵소정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아가씨,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묵소정은 잔뜩 토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버지께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는데, 허락해주기는커녕 방문 밖으로 나갈 생각도 하지 말래.”
묵소정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딸이 가출하고 돌아오자마자 다시 밖으로 나가겠다고 하는데, 그 부탁을 허락해줄 리가 없었다.
방을 청소하던 시종이 묵소정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일 때문에 밖에 나가시고 싶으신 거예요?”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어.”
“만나야 하는 사람이요?”
묵소정이 대답을 하려다가 잠시 주춤거렸다.
‘생각해보니까 이름도 듣지 못했네.’
“어쨌든 꼭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야. 아는 거라고는 그 사람이 묵고 있는 객잔밖에 없어서, 그곳을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만나야 해.”
초조한 듯 발을 구르는 묵소정을 향해 시종이 대꾸했다.
“아가씨께서 보고 싶어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엄청난 미남이시겠군요.”
그 말에 묵소정은 진무량의 생김새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분명 그건 맞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
시종은 슬며시 웃음을 띠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관심을 가지셨던 사람들은 모두 미남이셨으니까요.”
묵소정은 멋쩍은 듯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분명 지금까지 잘생긴 외모의 사람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이번에 진무량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외모보다 다른 이유가 더 컸다.
‘분명 잘생긴 것도 맞지만…….’
묵소정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을 때, 문밖에서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안에 계십니까?”
묵소정이 방문 밖을 향해 말했다.
“무슨 일이야?”
“문주님께서 아가씨를 찾으십니다.”
묵소정이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새까맣게 잊고 있던 할아버지의 존재가 그제야 떠오른 것이다.
묵소정이 말했다.
“지금 찾아간다고 전해줘.”
묵소정은 채비를 마친 후,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영사문의 무인들과 함께 적포신군 묵위현의 집무실로 향했다.
묵위현의 집무실 문 앞에 도착하자, 묵소정의 곁에 있던 영사문의 무인들이 보고를 올렸다.
“문주님 아가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들어오너라.”
달칵.
묵소정은 홀로 묵위현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 내부는 딱히 특별한 것이 없었다. 구석에는 낡은 서책이 가득 들어있는 책장이 있었고, 중앙에는 여러 명이 함께 앉아 의논할 때 사용하는 둥그런 다탁이 놓여 있었다.
그 다탁에는 세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다. 그들 중 제일 상석에 자리하고 있는 자가 바로 사파의 최고 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묵위현이었다.
묵위현은 겉보기에는 평범한 체격의 노인이었다. 허나 용력만 놓고 따지자면 천하의 그를 당해낼 자가 없다고 전해지는 그였다.
묵위현은 역시나 그의 상징인 붉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수많은 피를 묻혀 색이 붉게 변했다고 전해지는 적포와 더불어 자비가 없는 냉혹한 손속이야말로 적포신군 묵위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묵위현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곁에 앉아있던 장로들을 향해 말했다.
“이만 물러들 가게.”
묵위현의 그 한마디에 앉아있던 장로들은 즉시 몸을 일으켰다.
장로들은 땅바닥에 닿을 듯, 머리를 깊이 숙여 묵위현에게 예를 취한 뒤 방을 나갔다.
묵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묵소정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한걸음씩 옮겼다.
그리고는 몸을 낮춰서 와락 묵소정을 껴안았다.
“어이구! 내 손녀딸 소정이가 맞구나.”
묵위현은 묵소정을 꼭 껴안은 채 말했다. 방금 전 장로들과 대화를 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묵소정을 번쩍 들어올린 채 볼을 맞대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팔불출이라 할 만했다.
평소 묵위현을 아는 사람들 또한 이런 그의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묵위현은 오직 묵소정 앞에서만 완전히 모습이 바뀌었다.
손녀딸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할아버지로.
묵소정이 묵위현을 힘껏 밀어내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숨 막혀!”
묵위현은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묵소정을 한참이나 끌어안고 있다가 놓아주었다.
묵위현이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묵소정을 향해 말했다.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서 이 할아비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느냐?”
묵소정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내가 가출한 건 다 할아버지 때문이야.”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 내 손녀딸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줄 것인데.”
묵소정이 묵위현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거짓말. 만날 밖에 나가지도 못하게 하잖아.”
“너에게 붙여준 호위들과 함께라면…….”
“오십 명도 넘는 그 험악한 호위무사들?”
멋쩍은지 시선을 피하면서 묵위현이 말했다.
“할아비는 네가 위험할까봐 그랬던 게지. 그렇다면 달리 원하는 걸 말해 보거라. 그건 꼭 들어주마.”
“무공을 가르쳐 줘.”
묵소정의 대답에 묵위현의 얼굴이 단번에 난처한 표정으로 변했다.
“소정아…… 그것은…….”
묵위현은 크게 한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무공만은 절대 안 된다고 할아비가 늘 말하지 않았더냐.”
“왜 무공은 안 되는 건데?”
“무언가를 익히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반드시 사용하고 싶어지게 되는 거란다. 헌데 할아비의 무공은…….”
묵위현은 ‘오로지 살인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뒷말을 삼켰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게 된다면, 반드시 그만큼의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만 하는 거란다. 이 할아비는…….”
묵위현의 눈빛이 가라앉으면서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나뿐인 손녀만은 절대로 나와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구나.”
묵소정은 입술을 깨물면서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자기 생각만 하고,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도 쓰지 않아.”
묵소정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몸을 돌려서 집무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소정아…….”
묵위현은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묵소정이 나간 방문을 바라보았다.
* * *
계속해서 영사문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던 유서하가 진무량과 견무겸을 한자리로 모았다.
진무량과 견무겸이 모두 착석하자 유서하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사문에 잠입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하기 위해서 이런 자리를 만들었어요.”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며 견무겸이 물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알아본 바로는 곧 영사문에서 적포신군의 고희연이 열린다고 해.”
진무량을 바라보며 유서하가 말을 이었다.
“그때 신분을 속이고 영사문으로 잠입할 생각이에요.”
이미 비천검문을 통해서 사파에서 활동할 수 있는 거짓 신분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을 이용한다면 충분히 신분을 속이고 영사문에서 열리는 묵위현의 고희연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묵위현의 고희연인 만큼 영사문의 모든 무인들이 참석할 터, 그렇다면 영사문에 잠입해 있는 구중련의 첩자도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에다 영사문의 고수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대화까지 할 수 있다.
유서하는 묵위현의 고희연이야말로 최고의 기회라고 여겼다.
허나 이 방법은 분명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묵위현의 고희연 자리에는 영사문의 무인들은 물론, 사파의 수많은 인사들이 모일 것이다. 작은 변수라도 생긴다면 큰 위험에 빠질 것은 자명한 사실.
유서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속으로 삼키며 조심스레 진무량을 바라보았다.
늘 그랬듯이 진무량에게서는 아무런 걱정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부디 진무량의 내공을 사용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