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마교
2017.08.10.
진무량이 살아있다는 내용은 마교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파격적인 소식이었다.
하여 마교의 고수들은 일단 현운각에 모여 진무량과 관련된 일을 의논하기로 한 것이다.
넓디넓은 현운각 내부에는 방 전체를 가로지를 정도로 길게 이어진 탁자가 있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자리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만들어진 것이었다.
직위가 높은 마교의 고수들은 그 탁자에 자리했으며, 나머지 무인들은 각자 본인의 자리에 서 있었다. 마교에서도 가장 큰 내부를 자랑하는 현운각이었으나, 몰려든 수많은 인파를 모두 수용하기에는 부족해 보일 정도였다.
어느 정도 마교의 고수들이 모두 모여들었을 때, 돌연 큰 소리가 울렸다.
쾅!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일제히 시선이 모였다. 그곳에는 의자의 손잡이에 주먹이 닿아있는, 사십 대 정도의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사내는 승천마도(昇天魔刀) 백철우(白鐵牛)였다.
백철우는 보통 사람의 세 배에 달하는 덩치를 가진 거한이었다. 그의 체형과 어울리는 거대한 도를 사용하며, 패도적인 무공을 사용하기로 이름이 높은 자였다.
주변의 시선이 모이는 것을 확인한 백철우가 본격적으로 입을 열었다.
“삼 년 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뜬금없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오!”
유독 격앙된 모습을 보이는 백철우. 그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현운각에 모인 마교의 고수들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백철우는 지금 공석으로 남아있는 사대신마의 한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진무량이 죽었다고 알려진 이후로도 사대신마에 어울릴 만한 인재는 나오지 않았고, 여전히 사대신마의 한 자리는 공석으로 남아 있었다.
사대신마라 불리는 것은 마교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이다.
마교를 대표하는 고수로 천하에 알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막대한 명예와 권력이 따라오게 된다.
모든 마교인들의 염원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름이 바로 사대신마였다.
공석으로 남겨진 사대신마의 자리에 그나마 가장 근접한 자가 바로 백철우였다. 별일 없이 시간이 흘렀다면, 그는 아마 사대신마의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그런 백철우에게 진무량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달가울 리 없었다. 진무량이 돌아온다면 그는 사대신마의 자리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 자명했다.
백철우가 한껏 성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들 왜 이렇게 조용한 것이오? 설마 진무량이 살아 돌아오는 것을 바라기라도 하는 것이오?”
백철우가 분위기를 휘어잡자, 평소 진무량을 좋게 보지 않았던 마교의 고수들이 하나둘씩 동조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자임은 확실하지.”
“진무량의 행적도 수상하오. 그간 아무런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남궁세가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유도 모르지 않소.”
“귀혈악인이라면 배신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소. 언제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자였소!”
여기저기서 진무량을 비평하는 소리가 조금씩 커져 나갔다.
점점 소란해지는 와중, 단번에 주변을 조용하게 만든 발언이 나왔다.
“그럼 진무량을 적대하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말을 꺼낸 사내는 파운신검(破雲神劍) 여도강(旅途剛)이었다.
그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혼잣말처럼 말했지만, 절대 무심코 던진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 또렷한 목소리였다.
여도강의 한마디는 웅성거렸던 장내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여기저기 시끄럽게 떠들긴 했으나, 결국 진무량을 적대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자는 없었다.
같은 마교 소속이기에, 여기 모인 수많은 고수들은 진무량의 강함을 더욱 잘 알고 있었다.
정파와 사파, 그 외에도 세외의 세력들까지 모두 진무량이 이끄는 멸천대의 말발굽에 철저하게 짓밟혔다.
그런 진무량을 적대한다?
“…….”
“…….”
그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순식간에 현운각 내부가 정적에 휩싸였다.
백철우가 여도강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진무량을 구하기 위해서 정마전쟁을 불사하고 남궁세가까지 쳐들어가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오?”
“그렇게까지 말한 적은 없소만. 분위기가 마치 진무량을 배신자로 몰아가려는 것 같아서 한마디 했을 뿐이오.”
여도강과 백철우는 서로를 노려보다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갑작스레 소식을 전해온 진무량의 처우에 대한 의견은 다양했으나,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는 않았다.
자연스레 주위가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묵직한 현운각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문이 열리면서 중후한 외모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수많은 마교의 고수들을 향해 말했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운가.”
절로 기를 죽게 만드는 자태, 위엄 있는 목소리의 노인은 현 마교의 교주 천군위(天君衛)였다.
무림맹에 버금가는 세력에 주인이자, 오십 년 넘게 마교를 통치한 절대자.
작금의 교주는 그야말로 마교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천군위는 강함을 숭배하는 마교에서 무려 오십 년 넘게 교주의 자리를 지켜왔다.
단순히 교주의 자리에 앉아있기만 했던 것이 아니다.
그에게 덤벼드는 상대는 수도 없이 많았다. 비겁한 수를 쓰는 자부터 시작해서 정면으로 도전하는 세력 등, 갖은 방법으로 교주의 자리를 노리는 마교의 세력은 끝없이 많았다.
허나 그들 중 어떤 누구도 천군위를 넘지 못했다.
천군위는 도전하는 상대를 늘 정면으로 상대했고, 철저하게 무릎 꿇렸다. 강자들이 득실거리는 마교에서, 오십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단 한 명도 천군위를 넘지 못한 것이다.
현운각에 모인 마교 고수들은 천군위를 보자마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머리를 깊게 숙이며 한목소리로 외쳤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천군위는 딱히 인사에 답하지 않은 채, 비어있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현운각 내에서 가장 상석에 위치한 그 자리는, 오로지 교주만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위치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천군위가 말했다.
“언제까지 그러고들 있을 생각인가? 다들 자리에 앉게.”
현운각에 있던 모든 마교의 무인들은 다시 한번 더 깊이 숙인 뒤,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천군위는 존재만으로도 좌중을 완전히 휘어잡아버렸다.
방금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자들은 조용히 천군위의 눈치만 살필 뿐, 어떤 말도 입에 올리지 못했다.
그때 현운각에 모여 있던 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마교의 원로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였으나, 그 뒤에는 천군위를 떠보려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천군위는 원인 모를 병을 앓고 있었으며, 최근 들어 그 병세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강호인들을 벌벌 떨게 했던 천군위조차도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얼굴에는 주름 하나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이미 백 세를 훌쩍 넘긴 나이.
점점 천군위의 몸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마교에 널리 퍼진 사실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천군위가 현운각을 찾은 것은 분명 예사로운 일은 아니었다.
“본좌가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것인가.”
“…….”
누가 감히 천군위에게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있을까.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천군위가 좌중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곳으로 오면서 들리는 말들은 죄다 쓸모없는 것들이던데, 더 떠들 것이 남아있는가?”
여전히 조용한 장내에는 때때로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만이 들렸다.
“본좌 또한 진무량이 살아있다는 사실은 전해 들었다. 허나 그것에 대해서 아직 왈가왈부하기는 아직 이르다.”
계속해서 천군위의 말이 이어졌다.
“진무량은 딱히 마교에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요구한 것도 없거늘, 대체 무엇을 상의하겠단 말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렸으니, 곧 다시 연락을 취해올 터. 그때 요구하는 것에 따라 행동하면 될 일이다.”
“교주님의 말씀이 모두 옳습니다.”
천군위는 특유의 권위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허면 호들갑 떨지 말고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면서 기다리도록 하라.”
현운각 안에 있는 모두가 동시에 대답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대답을 마친 후, 백철우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천군위를 향해 말했다.
“교주님, 보고드릴 안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말하라.”
“멸천대의 처벌에 관한 것입니다. 연시우와 그를 따르는 멸천대원들이 본교의 뜻을 따르지 않고 멋대로 행동했습니다.”
“그에 따른 처벌은 이미 내린 바 있거늘. 불만이라도 있는 것인가?”
멸천대는 아직 새로운 대주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 하여 천군위는 멸천대 내부가 정리되지 않았음을 감안해, 남아있는 멸천대에게는 특별한 처벌을 내리지 않았다.
명령 없이 마교를 떠난 연시우와 그 수하들을 마교에서 추방시키라는 명령만 내린 상태였다.
“보고에 따르면 멸천대 이 조장 연시우는 비천검문을 치러 갔다고 합니다. 비천검문이 멸천대의 공격을 받는다면,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것이 마교의 뜻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천천히 백철우가 말을 이었다.
“이는 결코 가볍게 넘어갈 수 없는 사안이 아닙니다. 하여 남아있는 멸천대를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멋대로 움직인 멸천대에게는 합당한 벌을 내렸다. 만약 그것을 빌미로 무림맹이 시비를 걸어온다면 철저하게 응징해주면 될 일.”
천군위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백철우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설마 자네는 무림맹의 보복이 두렵기라도 한 것인가?”
예상치 못했던 천군위의 물음에, 순간 백철우가 말을 더듬었다.
“저,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천군위는 백철우를 한심하다는 눈길로 한번 쳐다보고 난 뒤, 현운각에 모여 있는 마교의 무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더 의논할 것 없으면 시끄럽게 굴지 말고 해산하라.”
천군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운각에 있던 마교의 고수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정중한 예를 취하고 난 뒤, 현운각을 떠났다.
사람들이 모두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천군위는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머리를 기대었다.
자연스레 진무량에 대한 생각이 일었다.
‘살아있었던 것이냐.’
진무량에 대해 크게 걱정할 일도, 고민할 거리도 없었다. 그가 마교로 돌아오고자 마음을 먹고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만약 진무량이 마교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흥밋거리를 발견했을 경우일 뿐이다.
그보다 진무량의 의도가 궁금했다.
그는 결코 아무런 의미 없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존을 마교에 알린 것 또한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살아있다면 언젠가 만나게 될 터. 그때가 기다려지는구나.’
* * *
진무량이 살아있다는 소식은 귀곡신성을 시작으로 마교 전역에 퍼져나갔다.
얼마 후 그 소식은 마교에서 정파의 불손한 움직임을 감시하고,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둔 곳까지 전해졌다.
정파와 맞닿아 있는 곳의 일부를 책임지고 있는 마교의 부대는 바로 멸천대였다.
경계를 서던 멸천대원은 보고를 위해 위지운이 있는 곳을 찾았다.
멸천대의 삼 조장 위지운은 근방의 멸천대를 모두 통솔하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야?”
위지운은 자신을 찾은 멸천대원을 향해 귀찮음이 가득 담긴 어조로 말했다.
“보고 드릴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뭔데?”
“일 조장께서 다시 전서를 보내왔습니다.”
멸천대의 일 조장은 등가휘였다.
멸천대는 총 네 명의 조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흔히 멸천사성으로 불리며, 멸천대를 이루는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허나 멸천사성은 진무량의 죽음 이후 한 번도 같은 자리에 모인 적이 없었다.
온전히 멸천대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전 멸천대주. 즉, 진무량 단 한 사람뿐이었다.
멸천대주의 명령이 없으니, 멸천사성들은 각각 수하들을 이끌고 스스로의 방식대로 행동했다. 그 결과 자연스레 멸천사성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끝까지 귀찮게 구네. 놈이 뭔데 조장들을 소집하겠다는 거야?”
위지운은 아예 고개를 돌려버리면서 말을 이었다.
“정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내용으로 대충 전서를 보내.”
보고를 마친 멸천대원이 대답하려는 찰나, 빠르게 달려오는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히이이히힝!”
거칠게 달리던 투레질을 하며 제자리에 멈췄다.
말에 훌쩍 뛰어내린 멸천대원이 위지운을 향해 말했다.
“마교로부터 전해진 긴급한 소식입니다.”
“또 뭐야?”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식이지만……. 대주께서 살아 계시다고 합니다.”
“그 대주가 누군데? 됐어. 그게 누구든 여기 일이 바쁘다고 해.”
평소였다면 위지운의 명령을 듣고 돌아갔겠으나, 보고를 위해 찾아온 멸천대원은 이번만은 그러지 못했다.
처음부터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멸천대원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위지운을 향해 말했다.
“멸천대주께서 살아 계시다는 보고입니다.”
위지운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방금까지 타성이 가득했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고개를 돌린 위지운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양,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세히 말해.”
“남궁세가에 잠입해 있는 암영대원에게서 마교로 보고가 올라왔다고 합니다.”
위지운의 미간이 좁아졌다.
암영대라면 결코 허무맹랑한 소식을 전하지 않을 터.
설마…….
위지운의 주먹의 자연스레 힘이 들어갔다.
‘좀 더 자세히 확인을 해봐야겠구나.’
위지운이 말했다.
“나는 지금 당장 마교로 향할 것이다. 여기 일은 알아서 처리하고 있어라.”
“지금 바로 출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침착한 반응을 보이는 멸천대원의 질문에 위지운이 대답했다.
“그래. 정파놈들이 움직일 기미는 전혀 없으니, 당장 내가 없다 해도 딱히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정파의 불손한 움직임이 멈춘 지는 꽤나 오래되었다. 사실상 정파의 경계는 명분일 뿐, 시간을 허비하고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허나 진무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은 이상, 허비할 시간 따윈 촌각도 없다.
당장 움직이려던 위지운이 잠시 주춤거렸다. 방금 들었던 보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교에 있었던 등가휘라면 대주에 대해 더 알아낸 사실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위지운은 처음 보고를 위해 찾아온 멸천대원을 향해 말했다.
“등가휘가 귀곡신성에 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위지운은 문득 멸천대의 사 조장, 주백기를 떠올렸다.
등가휘가 멸천대를 소집하고 있으니 분명 그도 자신과 같은 연락을 받았을 것이다. 또한 대주가 살아있다는 소식도 들었을 터.
그렇다면 주백기는 반드시 귀곡신성으로 올 것이다. 대주와 관련된 일이라면 주백기는 언제나 가장 앞장서서 움직였던 놈이었으니까.
위지운의 입가가 미묘하게 씰룩였다.
“이거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