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극악무도-36화 (36/143)

36화. 서찰의 출처

2017.08.06.

황룡표국의 표행을 담당하고 있는 표사들이나 쟁자수들 모두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경로를 변경해 험한 산길을 택했음에도 녹림의 습격을 받았고, 곧바로 전대 신투에게 표물까지 도둑맞은 상황이다 보니,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기운 없이 축 처진 황룡표국의 일행을 일으킨 사람은 은소연이었다.

의식을 되찾은 은소연은 우선 붙잡은 신투를 철저하게 조사하여, 남 표두로 변장한 자가 신투의 스승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런 뒤 그녀는 표사들과 쟁자수들을 격려하면서 기운을 차릴 수 있게 각별히 신경을 썼다.

은소연은 이번 표행의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받아야 할 보수를 더욱 올려주기로 약속했고, 일일이 표사들과 쟁자수들을 대면하면서 그들을 격려했다.

그밖에도 표사들이나 쟁자수들 모두에게 조금의 차별도 없이 각자 맡은 일을 재분배했으며, 다시 표행을 이어나갈 준비를 착실히 수행해나갔다.

사실 표물을 도둑맞고 가장 힘들었을 사람은 총책임을 맡은 행수 은소연이었을 것이다.

헌데 그런 그녀가 앞장서서 표사들과 쟁수들을 격려하고 나서다 보니, 황룡표국 일행들 또한 조금씩 다시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은소연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표물의 상태와 수량을 파악한 뒤, 유서하를 찾아갔다.

은소연이 예를 취하면서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늦게 찾아와서 죄송해요. 더 일찍 은인분들을 만나려 했으나, 바쁘다는 핑계로 조금 늦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은인이라니……. 너무 과분한 표현이세요.”

은소연은 난처한 듯이 말하는 유서하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말하지 않는 유서하의 배려심을 은소연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유서하의 입장에서는 신투에 관한 일을 비롯해서 궁금한 것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서하는 자신이 표행을 정리하는 일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것들을 묻기 위해서 먼저 찾아온 일이 없었다.

분명 유서하는 자신이 마음을 다잡을 시간과 표행을 다시 정리하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기다린 것이리라.

유서하가 말했다.

“표물의 상태는 모두 파악하셨나요?”

“네. 다행히 도둑맞은 물건들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유서하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은소연은 평온한 듯이 말하고 있으나, 결코 손해가 가볍지 않았을 것이다.

황룡표국 표물들은 하나하나가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의 최상급 보물이다.

손해를 배상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은자가 사용될 것은 자명한 사실. 제아무리 황룡표국이라 하더라도 그 손해를 감당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표물을 도둑맞았다는 사실은 황룡표국의 신뢰도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은소연은 눈을 마주한 유서하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손해가 큰 것은 분명 사실이나, 너무 염려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유 소저께서 저희 표국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주셨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말한 후, 은소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표물을 도둑맞은 것은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었어요.”

이번 표행을 통해서 은소연은 스스로의 한계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표행이 위험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여러 차례 큰 표행을 완벽하게 성공시키면서 생긴 자만심이었다.

녹림의 공격에 대해서 충분한 대비책을 찾지 못한 채로 표행을 강행했고, 전대 신투가 바로 옆에서 보필하는 남 표두로 변장했음에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좀 더 이상한 점을 미리 깨닫고 세밀하게 살폈다면, 분명 간파하고 대비할 수 있던 사실들. 자만심으로 흐려진 눈이 그 사실들을 모두 놓쳤던 것이다.

하지만 은소연은 자책을 하기보다 우선적으로 할 일들을 처리했다.

황룡표국 표행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행수로서, 언제까지 자신의 한심함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스스로를 책망하기 전에 먼저 해결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개의 표물을 잃어버리기는 했으나, 아직 운반해야 할 표물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었다.

총책임을 맡은 행수의 임무는 표물을 모두 운반하고 표국의 사람들을 안전하게 돌려보내는 것. 지금 당장은 좌절하기보다 맡은 일을 우선 끝마쳐야 했다.

한심한 자신을 완전히 최악으로 만들지 않는 방법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밖에 없다.

자책은 표행의 실패에 관련된 모든 일들을 해결하고 나서 실컷 해도 늦지 않다.

그런 뒤, 부족했던 점을 고치고 더욱 성장해서 다시 표행을 시작할 것이다.

자신의 야망은 황룡표국을 천하제일의 표국으로 만드는 것이니까.

은소연이 말을 이었다.

“몇 가지의 표물을 도둑맞기는 했지만, 표행은 다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갈 거예요.”

흔들리지 않는 눈빛과 차분한 목소리를 통해, 유서하는 은소연의 마음가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은소연에게 필요한 것은 걱정이 아닌, 격려와 믿음.

유서하가 말했다.

“은 낭자라면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거예요.”

“과찬의 말씀이세요.”

은소연은 진심으로 유서하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유서하 일행의 도움이 없었다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유서하는 가볍게 웃음을 지은 뒤, 화제를 돌렸다.

“신투에 대해서 조사하실 일이 끝났다면 저희도 잠시 그를 만나려 합니다.”

“오래 기다렸을 텐데, 지금 바로 만나러 가시죠. 아무도 통과시키지 말라는 명이 떨어진 상태이니, 제가 같이 가도록 할게요.”

제자를 구하기 위해 역용술을 사용한 전대 신투가 찾아올 것을 우려하여, 은소연은 신투에 대한 경계를 삼엄하게 펴고 있었다.

은소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룡표국의 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행수님. 잠시 봐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황표표국의 표사는 은소연을 향해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만…….”

그 모습을 보고, 유서하는 은소연에게 급한 일이 생겼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서하가 은소연을 향해 말했다.

“바쁘신 일이 있다면 잠시 기다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지금도 충분히 기다리셨는데, 더 이상 실례를 끼칠 수는 없죠.”

은소연이 품속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나무패를 꺼내 유서하를 향해 내밀었다.

“황룡표국에서 저를 상징하는 것이에요. 미리 표사들에게 언질을 해놓을 테니, 이것을 들고 가면 표사들이 막지 않을 거예요.”

유서하에게 패를 건네며 은소연이 말을 이었다.

“그 패는 돌려주지 않으셔도 돼요. 언제든지 황룡표국의 힘이 필요할 때, 그것을 황룡표국의 속한 사람들에게 내민다면 반드시 도와줄 거예요.”

유서하는 은소연이 건넨 나무패가 그녀의 성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 거절하지 않았다.

“네. 그럼 잘 쓰겠습니다.”

서로 가벼운 인사를 한 후, 은소연은 급한 일이 생긴 황룡표국의 표사와 함께 다른 곳을 향해 움직였다.

은소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서하가 곁에 있던 진무량을 향해 말했다.

“황룡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럴 것 같군.”

유서하는 좋은 인연이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큰 시련을 겪었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절망에서 일어나 책임을 다하는 은소연의 모습은 참으로 대단해보였다.

기운 찬 목소리로 유서하가 말했다.

“그럼 저희도 가볼까요.”

* * *

신투는 굵은 나무에 몸이 결박당해 있었다. 황룡표국의 표사들은 그 주변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다.

유서하는 따로 신투를 감시하고 있는 견무겸과 만난 뒤, 경계를 서고 있는 표사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은소연이 건네준 패를 건네자, 신투를 감시하던 황룡표국의 표사는 유서하의 얼굴과 은소연의 패를 자세히 확인한 후 길을 비켜주었다.

유서하는 곧 두꺼운 포승줄에 묶여있는 신투를 만날 수 있었다.

신투의 몸에는 여기저기 멍든 흔적과 상처가 가득했다. 꽤나 혹독한 고문을 당한 것 같았다.

신투는 퉁퉁 부은 한쪽 눈을 치켜뜨면서 다가오는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또 무슨 일로 온 거냐……? 아는 것은…… 모두 말했을 텐데…….”

갖은 고문을 당한 신투는 더 이상 발악할 힘이 없었다.

유서하가 자신을 이런 꼴로 만든 상대인 것을 알고 있지만, 신투는 당장 살기 위해서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궁금한 것이라면, 분명 모든 사실을 거짓 없이 모두 말했음에도, 비천검문 일행이 왜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뿐이었다.

유서하가 물었다.

“안휘성에서 남궁세가에 추적을 당하다가 훔친 물건들을 두고 도망친 적 있나요?”

신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 질문은 틀린 것도 있고, 맞는 것도 있다.”

“어떤 부분이 틀렸다는 거죠?”

“분명 내가 안휘성에서 훔친 물건들을 두고 도망친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쿨럭! 물건을 두고 도망친 것이 남궁세가의 추격 때문은 아니었다.”

신투는 안휘성에서 있었던 일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 역용술을 사용하고 인파의 숨은 자신의 정체가 처음으로 들킬 뻔했기 때문이다.

유서하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을 추격한 자들은 누구죠?”

“그건 나도 모른다. 다만 그 모종의 무리는 어떻게 알았는지, 역용술을 사용해 전혀 다른 모습을 했음에도 나를 끈질기게 찾아냈다.”

신투가 마른침을 삼킨 뒤 말을 이었다.

“그들의 정체까지는 모르나, 정말 끈질긴 자들이었다. 실제로 안휘성에서 남궁세가의 추격망보다 정체 모를 그들의 추격이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몇 번이나 정체가 들킬 뻔했으니까.”

유서하는 신투가 하는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신투의 역용술만은 완벽에 가깝다.

남 표두를 연기한 그의 스승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 거기에다 신투 또한 표사로 변장해서 표행에 잠입했으나, 그의 정체를 눈치챈 자는 한명도 없었다.

역용술을 사용한 신투가 수많은 인파에 섞였음에도 찾아낼 정도의 능력. 그리고 안휘성에서 남궁세가보다 더 빠르고 위협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

유서하는 어렵지 않게 그들의 정체를 예상할 수 있었다.

‘……구중련.’

신투가 말했다.

“그 상태라면 모종의 무리에게 내 정체가 탄로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해서 일단 값비싼 물건만 챙기고, 재빨리 도망친 것이다.”

“그 뒤에 그들이 당신을 쫓지 않던가요?”

“그래. 사실 그들에게 더 쫓겼다면, 값비싼 물건들까지도 버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를 쫓지 않았다.”

유서하는 구중련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암어가 적힌 서찰. 그것이 신투에게 없었기에 구중련은 더 이상 그를 쫓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서찰을 가진 남궁헌 소협이 공격을 받게 된 것인가.’

생각을 정리하던 유서하가 말했다.

“추격을 받기 전, 당신이 마지막으로 물건을 훔친 곳이 어디죠?”

잠시 머뭇거리던 신투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곳은…… 영사문(靈蛇門)이다. 영사문에서 소수의 무인을 따로 파견해서 수상한 보물을 운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어 그곳을 털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 정체 모를 추격자들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유서하는 놀란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짧게 숨을 들이켰다.

영사문.

그들은 현재 존재하는 사파 세력 중에서 최고로 꼽히는 문파 중 하나이다.

그런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영사문의 문주이다.

사파 최고수라고 칭해지는 적포신군 묵위현. 그가 바로 영사문의 문주였다.

영사문의 이름이 나오자, 처음으로 진무량이 반응을 보였다.

“호오.”

진무량 또한 영사문의 문주를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적포신군 묵위현은 삼군이라 불리는 무인.

현 무림에서 정점을 지칭하는 칭호. 사대신마, 칠무제, 삼군.

삼군 중에 일석을 차지하고 있으며, 사파 최고의 고수로 꼽히는 적포신군 묵위현의 존재를 진무량이 모를 리 없었다.

유서하는 신투가 있던 곳을 벗어나서 진무량 견무겸과 함께 인적이 없는 곳을 찾았다.

구중련의 것으로 의심되는 서찰의 출처가 사파의 영사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앞으로의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바람이 풀을 스치는 소리만 울려 퍼질 뿐, 장내는 고요했다. 갑작스럽게 알게 된 사실에 세 사람 모두 각각의 생각을 정리하느라 침묵이 이어진 것이다.

잠시 후, 견무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암어가 적힌 서찰의 출처가 영사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만 비천검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잠시 조용히 고민하던 유서하가 견무겸을 향해 말했다.

“아니, 그보다는 일단 영사문에 대해서 좀 더 조사해봐야 할 것 같아.”

구중련의 서찰이 영사문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는 확실히 알 수 있는 사실이 없다. 다만 몇 가지 불확실한 가정을 세울 수는 있다.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수는, 역시 영사문 전체가 구중련과 내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사문은 그저 그런 흔한 문파가 아니다. 사파의 최고 고수라 불리는 적포신군 묵위현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수들이 득실거리는 거대문파이다.

수십 년간 사파에서 굴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사문이 구중련과 내통하고 있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최악의 상황을 제쳐놓더라도, 추측할 수 있는 사실들이 너무나 많다. 허나 그것들은 모두 가정일 뿐.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아버지께서 구중련은 강호에서 능력이 출중한 자들을 포섭한다고 했으니, 영사문 내부에서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사문이 구중련과 어떤 관계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가장 좋은 역시 직접 찾아가는 것이었다. 영사문 내부를 직접 조사하다 보면 뭔가 더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 있을 터.

다급한 어조로 견무겸이 말했다.

“설마 영사문을 직접 찾아가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하겠지만 영사문이 있는 곳은 사파의 영역. 명문 정파로 알려진 비천검문의 사람이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곳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영사문에 잠입할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파의 세력권인 영사문에서 만약 정파에 소속된 비천검문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너무나 위험하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견무겸의 손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유서하가 견무겸을 바라보며 말했다.

“위험하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이번 일은 조사해볼 필요가 있어.”

“그렇다면 일단 본문에 도움이라도 청하는 것이…….”

“사람이 늘어나면 상대도 주목할 확률이 높아질 테니, 그건 상책이 아니야. 비천검문이 대대적으로 움직인다면, 구중련은 그 사실을 눈치채고 대비책을 만들 수도 있어.”

“하지만…….”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이 인원으로 조사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 정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에 대응할 방법도 있으니까.”

견무겸에게 말한 뒤, 유서하의 시선이 진무량을 향해 움직였다.

“내 의사를 묻는 거라면, 난 딱히 상관없어.”

진무량이 가볍게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몸을 좀 풀고 싶은데, 겁 없는 놈들이 좀 있으면 좋겠군.”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진무량을 바라보며 유서하가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번 신투를 잡는 과정에서는 진무량의 금제를 해방하는 일이 없었다. 그의 금제를 푸는 것은 최대한 지양해야만 하기에 무엇보다 다행인 일이었다.

진무량의 힘은 분명 양날의 검이었다.

진무량이 내공을 사용하면 어떤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허나 그의 금제를 푸는 순간, 그 광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유서하가 진무량을 향해 물었다.

“영사문과는 딱히 인연이 없지 않나요?”

진무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혈월회와 몇몇 사파놈들이 결성했던 사도맹에 영사문은 없었으니까, 딱히 겨룬 적은 없군. 뭐, 그렇다고 해도 사도맹을 박살냈던 나를 좋아할 것 같지는 않지만.”

유서하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정파와 사파 가리지 않고 모두 당신을 적대하다니, 어떻게 보면 대단한 일이네요.”

“나를 반기지 않는 곳이 하나 더 있지.”

“그곳은 어디죠?”

“마교.”

* * *

마교의 본거지인 귀곡신성을 향해 수많은 무인들이 다급하게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각각 천하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마교의 고수들이었다.

마교의 고수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는 곳은 귀곡신성 내부에 있는 현운각이었다. 현운각은 마교에서 중대한 일이 벌어졌을 때 이를 상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로서, 평소에는 거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내로라하는 마교의 고수들이 평소 발길이 뜸한 현운각에 모이게 된 이유. 그것은 얼마 전 도착한 한 장의 서신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남궁세가에서 활동하는 암월단의 첩자, 벽영오가 마교에 올린 서신.

그곳에 쓰여 있는 내용은 수많은 마교의 고수들을 불러들이기 충분한 이유를 만들어주었다.

잡다한 보고들이 섞여 있었지만 결국 중요한 소식은 하나.

귀혈악인 진무량이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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