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영약 (2)
2017.08.03.
금정신단은 입속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렸고, 동시에 영약 특유의 청아한 향이 퍼져나갔다.
진무량은 금정신단을 삼키고 난 뒤,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서서히 의식을 몸속으로 전환했다.
금정신단의 효과는 지체 없이 곧바로 나타났다.
온몸의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갔다.
“후우우.”
진무량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밖으로 내뱉었다. 갑작스레 몸 구석구석에서부터 밀어닥치는 양기를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허나 어림없었다. 몸속에서 들끓는 양기는 그 정도로 다스려지지 않았다.
“크으윽!”
진무량은 고통스러운 듯 표정을 구기면서 거친 신음을 흘렸다.
제어할 수 없는 극양의 기운이 온몸의 혈관을 전부 불태우는 것 같았다. 마치 방금까지 달궈 두었던 시뻘건 쇳물이 피를 대신해서 혈맥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당장에라도 혼절해버릴 것 같지만, 진무량은 이를 악물면서 필사적으로 정신을 유지했다.
그리고 몸속에서부터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살폈다.
두근!
금정신단이 만든 극양의 기운에 반응하는지, 본래 자신이 익혔던 마공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점차 진무량의 몸 주위로 묵천심법 특유의 묵색 기운이 피어올랐다.
서서히 마공이 흘러넘치는 그 순간,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여태껏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새로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그 내공은, 묵색 기운을 가진 묵천심법과는 정반대의 느낌이었다.
새하얗고 정심한 기운을 가진 내공.
‘이 기운은 분명…….’
진무량은 그 정심한 기운을 가진 새하얀 내공의 정체를 단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정심한 기운은 바로 유월천의 것이었다.
새하얀 기운을 가진 정심한 유월천의 내공은, 흘러나오는 진무량의 마공을 철저하게 억누르기 시작했다.
진무량은 유월천의 내공이 몸 안에 심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월천의 내공이 지금까지 마공의 운용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지금 흘러나오는 이 유월천의 내공이야말로, 진무량이 마공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가장 근본이 되는 힘이라는 것을 뜻했다.
‘잘도 이딴 기운을 내 몸에 심어놓았군.’
진무량은 서서히 마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정신단의 극양의 기운이 한층 더 타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던 진무량의 마공이 의지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무량은 우선 움직이는 마공을 모두 단전으로 모았다.
서서히 단전에서부터 마공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강대한 기운이 만들어졌다.
‘흐읍!’
진무량은 단숨에 모인 마공을 유월천의 내공과 부딪치게 했다.
이윽고 응축되어 한껏 짙어진 묵색 마공이 유월천의 정심한 기운을 가진 새하얀 내공과 맞부딪쳤다.
주륵.
몸 안에서 상반되는 두 개의 힘이 격돌하자, 진무량의 입에서 한줄기 붉은 선혈이 흘러내렸다.
진무량은 단숨에 유월천의 내공을 몰아내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단전 깊숙한 곳에 자리한 유월천의 내공은, 서서히 몰아내는가 싶으면 어느 사이엔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제길.’
진무량은 꼼짝하지 않는 유월천의 내공을 몰아내기 위해서 다시 마공을 단전으로 모았다. 다시 한번 유월천의 내공을 몰아낼 생각이었다.
허나 마공은 점차 진무량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대체 왜!’
진무량은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몸속을 전체적으로 살폈다.
곧 마공을 움직일 수 없는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금정신단이 만든 극양의 기운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던 것이다.
당장이라도 혼절해 버릴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열이 내리고, 펄펄 끓는 쇳물이 혈관을 타고 흐르던 감각도 옅어지고 있었다.
이내 잠시나마 진무량의 의지에 반응했던 마공들도 몸속 깊은 곳에 숨으면서 자취를 감췄다. 또한 유월천의 정심한 내공마저 단전 깊숙한 곳으로 스며들면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더 이상 마공을 운용할 수 없게 되자, 진무량은 천천히 감긴 눈을 떴다.
단전 속에서 숨겨진 유월천의 내공을 발견하고, 자신의 의지로 마공을 움직였던 것은 크나큰 발견이었다. 허나 결국 당장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한 줌의 마공도 운용할 수 없었다.
진무량은 자연스레 시선을 금정신단으로 돌렸다.
나무로 만든 작은 상자 속에는 아직 금정신단이 한 알 더 남아있었다.
‘이것은 지금 사용해서는 안 된다.’
진무량은 당장 하나 남은 금정신단을 삼키는 것을 어리석은 판단이라 결론 내렸다.
다시 한번 금정신단을 삼키고 유월천의 기운을 몰아내는 시도를 할 수는 있다.
허나 그 방법은 이미 한 번 실패했다.
똑같은 시도를 두 번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실패했던 방법을 바꾸지 않고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공통된 특징일 뿐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다음은 다르겠지’ 라는 마음가짐으로 마지막 하나 남은 금정신단을 삼킬 수는 없었다.
진무량은 금정신단을 함속에 넣어 앞섬에 잘 챙겨두었다.
금정신단은 자신의 내상에 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이는 분명 엄청난 발견이었다.
금정신단은 분명 내상을 치유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이었다.
두 번 다시 구할 수 없는 최고의 영약.
마지막 하나 남은 금정신단은 조금 더 유월천의 금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난 후, 내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 사용해야 했다.
이제는 유월천의 내공이 단전 주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 다시 마공을 사용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사실을 알아낼 수도 있었다.
‘어찌되었건 그 여인과는 아직 떨어질 수 없게 된 것인가.’
긴장이 풀리면서 차츰 생각을 정리해나가다 보니, 그제야 고통이 느껴졌다.
전대 신투와 겨루다가 생긴 상처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같이 죽을 것을 각오하고 치른 결전인 만큼, 수없이 많은 검상들이 몸에 새겨져 있었다.
특히 가슴팍에 사선으로 그어진 검상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흘러내린 피로 인해 상의가 완전히 검붉게 물들었을 정도였다.
바스락. 바스락.
바닥에 깔린 풀들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무량은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인기척을 듣고, 그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잠혼향을 따라 표물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던 유서하는, 곧 상처투성이인 진무량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서하는 놀란 마음의 단숨에 진무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아무렇지 않은 듯한 진무량의 물음. 유서하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묻고 싶은 것이 많은 쪽은 유서하였다.
황룡표국 표사들이 있는 곳에서 기다리지 않고,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어떻게 표물이 있는 곳에 같이 있는 건가요?
그 외에도 물어보고 싶은 말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막상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쩌다 이렇게 다친 거예요?”
유서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진무량의 상처들을 바라보았다.
진무량은 옆에 있는 나무에 몸을 기대면서 대답했다.
“남 표두가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뒤를 쫓던 중에, 그놈이 나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덤벼들더군. 해서 상대를 좀 해주다보니, 이렇게 됐어.”
유서하 역시 수상한 행동을 보인 남 표두를 의심하고 있었다.
갑자기 표물을 옮긴 것이나, 은소연과 상의를 끝냈다고 한 것, 그 모두가 이치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흩어진 표물을 바라보며 유서하가 말했다.
“표물은 어떻게 된 건가요?”
“애초에 남 표두는 표물을 노리고 있었어. 나와 겨루기 전부터 몇 개 챙겨둔 것 같더군.”
진무량은 막힘없이 유서하에게 거짓말을 했다. 진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은 진무량의 설명에서는 수상한 점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유서하는 정신을 집중해서 잠혼향의 향을 찾았다. 허나 아쉽게도 남 표두가 가져간 물건에는 잠혼향이 뿌려져 있지 않았다.
유서하는 일단 이곳에 있는 표물을 옮기고 이 상황을 황룡표국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상을 입은 진무량의 치료가 시급했다.
“우선 돌아가도록 하죠.”
* * *
진무량과 유서하는 다시 황룡표국의 표사들이 모여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진무량은 사람들이 없는 한쪽 구석에 앉아서 상처를 살폈다.
우선 상처를 보기 위해서 상의를 모두 벗었다.
겉에 입는 의복은 단검에 찢어진 것을 뺀다면 그나마 봐줄 만한 상태였으나, 내의는 완전히 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피로 인해 진득거리는 내의를 떼어내듯이 벗고 나니, 구석구석에 새겨진 상처에서 피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여태껏 진무량은 상처에 대해서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헌데 막상 상처를 살펴보니, 상태가 제법 심각한 수준이었다.
‘고작 신투 따위를 상대로 이 지경이라니.’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신의 몸이 얼마나 나약한지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응급처치를 해야 하니, 진무량은 일단 짜증스러운 감정을 접었다.
찌이이익.
그는 우선 어깨에 새겨진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서 내의를 찢었다.
적당한 크기로 찢어진 내의를 이로 물어서 고정시키고, 반대쪽 팔을 돌리면서 어깨에 상처를 지혈했다.
그동안 잔부상은 수도 없이 겪어 왔기 때문에 이런 응급처치는 꽤 익숙한 편이었다.
어깨의 상처는 깊은 상처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곪거나 썩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당장은 피를 멈춰야 하기에, 일단 지혈을 해놓는 것이 먼저였다.
진무량이 대충 어깨 부위의 지혈을 끝냈을 쯤, 유서하가 그를 찾아왔다.
“도움 안 되는 행동은 그만하고, 잠깐만 기다려요.”
말을 마치고 유서하는 진무량의 옆에 앉았다.
유서하는 표물이 있는 곳을 황룡표국의 표사에게 알리고 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금창약과 약초, 붕대 등을 넉넉히 빌려왔다.
유서하는 가져온 물건들을 바닥에 잘 정리하고, 진무량의 상처를 세세하게 살폈다. 그녀는 우선 진무량이 응급처치를 위해 어깨에 묶어둔 내의부터 풀었다.
진무량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뭐하는 거야?”
“이런 건 응급처치일 뿐, 상처를 회복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돼요.”
유서하는 진무량의 어깨에 금창약을 바른 뒤, 붕대로 어깨 전체를 빡빡하게 동여매었다.
진무량이 유서하를 향해 말했다.
“도움은 필요 없어. 남 표두에 대한 일이나 표물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것도 꽤나 많잖아. 여기 있지 말고 표사들한테나 가봐.”
“아직 은 낭자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어요. 대충의 상황은 일급 표사들에게 전한 상태이고요. 사안이 중요한 만큼, 은 낭자가 일어나서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 한 표행은 움직이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당장 제가 도울 일은 없어요.”
남 표두로 위장한 신투는 표물을 빼돌리기 전에, 방해가 되는 은소연을 기절시킨 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겨두었다.
견무겸은 정신을 잃은 은소연을 찾아서 황룡표국의 표사들에게 맡겼고,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유서하는 진무량의 복부에 난 출혈을 막기 위해서 빻은 약초를 발랐다.
“윽.”
진무량이 낮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유서하는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참아요. 금방 끝낼게요.”
유서하는 재빨리 상처 난 부위에 약초를 바르고서 말을 이었다.
“고통을 느끼기는 하는군요.”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진무량이 말했다.
“당연하잖아.”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거예요?”
“유난 떨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진무량이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쓸모없는 호위무사는 어디다 두고 온 거야?”
“무겸은 신투의 감시를 맡겼어요. 앞으로 그를 통해 알아내야 할 것들이 많으니까요.”
대화를 하면서도 유서하의 손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복부에 붕대를 다 감고 나서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것을 끝으로, 복부의 상처는 얼추 지혈이 끝났다.
진무량의 가슴에 입은 상처에 시선이 닿자, 유서하는 잠시 머뭇거렸다.
흉부에 새겨진 상처는 다른 곳에 비해서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진무량의 상처를 살피고 있을 때, 평소보다 조금 낮은 진무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
갑작스러운 진무량의 말을 듣고, 유서하가 그를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이는 정적, 가까이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유서하의 물음에 진무량이 살짝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어. 네가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난 달라지는 게 없을 테니까, 나한테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뜻이야.”
“상처를 봐주는 게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걸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잠시 머뭇거리던 유서하가 이내 말을 이었다.
“저와 당신은 함께 행동하는 동료잖아요.”
“…….”
진무량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깨질 관계일 것이다.
허나 아직은…….
그녀의 말대로, 아직은 함께 행동하는 동료이다.